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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022
  • 애쓰지 않아도
    최은영 (지은이),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우리는 더 사랑할 것이다"

    "어떤 엄마가 자기 자식을 싫어하겠니." (219쪽)
    짧은 소설 <무급휴가>의 목소리 하나. 다른 누구도 아닌 현주가 한 말이라 이 말이 미리에게 상처가 됐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현주처럼 말했고 그 말들의 합창은 미리를 예민한 사람이 되게 했다."(220쪽) <쇼코의 미소>, <밝은 밤>의 작가 최은영은 연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첫 소설을 내며 작가는 말했다. '지금 맞는 아이가 자라서 폭력 어른이 됩니다'(156쪽)라는 지하철 광고문구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곳을 피하는,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이의 얼굴을 (<손 편지> 중) 최은영은 기록한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최은영의 소설은 말한다. 같아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키우던 병아리 '꾸꾸'의 여린 부리를 기억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그녀를 두고 부모님은 그녀의 사랑을 유난이라고 말하고 농담거리로 삼았다. (<안녕, 꾸꾸>) 초등학교 2학년,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캔디'를 동네 아저씨들이 잡아갔다는 걸 알게된 이후 (이후의 상황은 상상에 맡긴다...) 나는 떼를 쓰고 원망하며 울었고, '어떤 고기'는 절대 먹지 않기로 했다. 왜 어떤 어른들은 어린이의 슬픔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래도록 나는 그것이 궁금했었다.

    "너도 참 별나다" (120쪽)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최은영을 이미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그의 문장에서 우리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소설'을 만난 최은영이, 도처에 슬픔이 가득한 이 세계를 살고 사랑하는, 우리에게 사랑을 담아 전한다.

  •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황인찬 (지은이) | 안온북스 | 2022년 4월 "황인찬의 시선으로 다시 태어나는 시들"

    네이버 오디오클립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에서 타인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삶을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들려준 황인찬 시인. 그의 목소리가 얹어진 시와 삶의 이야기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와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시인과 함께여서 더 큰 울림이 되어준 원고들을 선별하여 단행본으로 선보인다.

    이 책은 시 한 편, 그 시로 파생된 산문 한 편이 짝을 이뤄 이어진다. 유희경 「좋은 것 커다란 것 잊고 있던 어떤 것」, 김소연 「바깥」, 정현우 「슬픔을 들키면 슬픔이 아니듯이」, 에드거 앨런 포 「애니를 위하여」, 김복희 「귀신 하기」, 성미정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총 마흔아홉 편의 시를 읽고 유년시절, 가족, 사랑, 슬픔, 좋아하는 마음, 그리움, 계절, 일상을 이야기하며, 시가 삶이 되기도 하고, 삶에서 시를 찾기도 하는 시인만의 시간을 공유한다. 먼저 시를 조용히 음미한 후 시인의 섬세한 시선을 따라가 보면 혼자의 시가 다른 의미의 시로 읽히고,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일 잘하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이윤규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시간은 목표와 계획대로 흐른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지만 정작 뭘 했는지 잘 모르겠을 때,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지만 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우리보다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고 있는지, 제목처럼 일 잘하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저자 이윤규 변호사만 봐도 그렇다. 본업 이외에 여러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영화도 보고 게임도 즐기고 술자리에도 참석한다는 그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리고 그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럴 땐 하루 일과부터 촘촘하게 계획해 볼 필요가 있다. 숨막히는 일정에 시달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내려놓자. 저자는 잘 짜여진 일정이 오히려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적 멘토들이 누차 강조해 왔던 시간 관리의 기본 원칙 중에서도 직접 체득하여 지켜 오고 있는 것부터 아날로그 시계를 통해 시간을 양적 개념으로 파악하자는 등의 팁까지 알짜들만 골라 담았다. 이제 어떤 일정으로 시간을 보낼 것인지, 삶의 목표와 계획부터 점검해 보자. 저자의 말처럼 시간 관리는 곧 인생 관리다.

  • 예술가의 서재
    니나 프루덴버거 (지은이), 노유연 (옮긴이) | 한길사 | 2022년 4월 "그들이 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이제 책을 뱉어내는 지경에 이른 내 책장은 가족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골칫거리이지만 여전히 남의 책장 구경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일들 중 하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어떤 모습으로 쌓아가며, 책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고 있나. 이것은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샘솟는 질문이라 지인들의 집들이에서 결국 발이 오래 머무르는 곳은 당연히 서가 앞이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시작되는 집들이다. 책에 소개된 서른두 개의 서재는 작가, 서점 주인, 미술가, 디자이너 등 예술가들의 공간인데 책에 살짝(보다 조금 더) 미쳐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답게 볼 거리와 읽을거리가 충만하다. 가지각색으로 아름다운 서재의 사진과 이 서재들을 가득 채운 책을 모으고 정리하고 읽고 사랑하는 이야기들.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든 황홀해 마지않을 구성 아닌가. 커다란 판형과 고품질의 인쇄는 사진의 현장감을 더 높이기까지 해서,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안만큼은 마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62022
  • 너의 권리를 주장해
    국제앰네스티, 안젤리나 졸리, 제럴딘 반 뷰런 (지은이), 김고연주 (옮긴이) | 창비 | 2022년 5월 "국제앰네스티 공식 어린이·청소년 인권 가이드"

    "네가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어린이는 미래형의 이야기를 줄곧 듣는다. '~린이' 라는 단어가 무언가에 서투른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이런 말들은 어린이가 스스로를 미숙하며 완전하지 않은 존재로 여기도록 강요하는 해로운 표현이다. 우리는 언제나 유념해야 한다. "어린이는 미래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을 사는 사람"이며, "어린이의 권리는 어른의 권리와 똑같은 위상을 지닌다"는 것을.

    이는 1989년 196개 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되어 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내용으로, 아동이 자신의 일상을 짓누르는 억압들을 떨쳐낼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인 수단이지만 교육 현장이나 가정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출간되었다. 만 18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서로 기능하기 위해서. 탁상공론에만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며 명시된 권리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솔직하게 담아냈고, 이를 일치시키기 위해 투쟁해온 아동 활동가들의 사례도 충실히 실었다. 그레타 툰베리가 "세상에 관심을 갖고,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완벽한 책”이라 추천했고,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우리의 권리에 대해 이해해야 비로소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하며 함께 읽은 책이다.

  • 귀신 선생님과 또 다른 세계
    남동윤 (지은이) | 사계절 | 2022년 5월 "3년 만에 돌아온 '귀신 선생님'!"

    "안 본 어린이는 있어도 한 번만 본 어린이는 없다"라는 <귀신 선생님> 시리즈가 3년 만에 돌아왔다. 새 책을 기다리다 중학생이 된 '유준'이와 책을 빨리 내주지 않으면 똥침 100,000번 한다는 '서연'이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이 이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다.

    지금은 많이 쓰지 않는 돼지 저금통, 어린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인형들, 주인 모를 망가진 우산, 환경파괴를 피해 깊은 숲으로 들어간 제비... 주변에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을 주인공 삼아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번 책은 지난 3년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가 간절히 원한 일상과 망각해버린 사소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귀를 기울이면 보이는 작지만 큰 세계는 때로는 거짓말처럼 어린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책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세상엔 사람들 눈에 잘 안 보이는 신비한 일들이 엄청 많아.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은 겪어.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너무 바빠 기억을 잃어버린 거야. 어른들은 맨날 정신없다고 하잖아."라는 제비의 말을 돌이켜 보자. 이 세상의 어른들은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

  • 스마일
    김중혁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안간힘을 다해서 만들어낸 최후의 표정"

    <북유럽>, <대화의 희열> 등의 TV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독자가 아닌 시청자에게도 익숙할 소설가, 김중혁이 7년 만에 소설집을 엮는다. 그리고 찍고 쓰는 사람. 영화, 음악, 독서 등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다양한 방법을 유쾌하게 소개해온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 주목한 소설적 표정은 '스마일'이다. 헤로인을 신체로 운반하는 '스왈로어'가 비행기에 갇힌다. 죽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힘(40쪽)을 그러모아 짓는 미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 얼굴, 들엔 무슨 사연이 있을까.

    다섯 편의 이야기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립을 경험한 우리에겐 익숙할 상황들이다. 비행기에, 섬에, 자동차에, 버스에 인물들이 갇혀있다. 폐쇄는 자유를 제약하고, 우리는 오히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볼 수밖에 없다. 죽은 스왈로어의 마지막 표정을 피할 수 없고, (<스마일>) 45인승 버스를 캠핑카처럼 운전하며 스스로의 뺨을 치는 주원 씨 (<휴가 중인 시체>)의 표정을 피할 수도 없다.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안간힘을 쓰면 죄사함을 받고 삶을 교정할 수 있을까? 김중혁은 질문하며 음악을 권한다. 브라이언 윌슨의 'smile'을 선곡한 작가의 감각에 기대며 김중혁의 소설처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우리가 여태껏 한번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는 존재(193쪽)가 맞을까? 의심하면서도, "네, 아직 살아있어요." (193쪽)

  • 나도 세금 내는 아이가 될래요!
    옥효진 (지은이), 서정해 (그림) | 청림Life | 2022년 5월 "유튜브 [세금 내는 아이들]의 양육자와 아이 실전편!"

    실제 초등학교 교사인 옥효진 선생님의 학급 경영 프로그램을 담은 유튜브 [세금 내는 아이들]은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라 이름을 정하고 직업을 찾고 그에 맞는 월급을 받는다. 실제 사회와 똑같이 세금도 내고 원하는 재화도 구매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 전반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경제 동화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티브이에도 출연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 관심이 모여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은 워크북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동화를 기반으로 어렵게 다가오는 경제 관련 단어들에 익숙해지도록 구성했다. 양육자들이 직접 작은 나라를 만들고 운영하는 팁도 실려 있어 옥효진 선생님의 제자가 아니어도 신나게 경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경제에 대한 감각이 중요해지는 현재 사회에서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는 공부를 미리 배워보자.

5.102022
  •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변진경 (지은이) | 아를 | 2022년 5월 "당신이 어린이를 위해 울 수 있는 어른이라면"

    정갈하고 세련되게 내부를 꾸민 채 깔끔한 폰트로 No Kids를 쓴 공간들이 늘어간다. 용기를 낸 정당한 요구와 같은 모양새로. 위엄 있는 척하는 "No Kids"들이 늘어나는 "쾌적한" 어른들의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이 책은 어른들이 머릿속에서 편하게 지워버린 어린이들의 불편한 삶을 들여다본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들의 삶과 관련한 문제를 취재해온 변진경 기자는 이 책에서 아동학대, 스쿨존 안팎의 교통사고, 키즈 유튜브를 빙자한 아동노동의 실태, 난민 아동들을 향한 혐오 등의 주제로 취재의 결과물을 풀어 놓는다. 반복되는 현실이지만 딱하다고 생각할 뿐 더 이상 깊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 문제들을, 저자는 차곡차곡 정리해 우리의 눈앞에 차분히 들이민다. 혐오와 배제, 학대와 방임으로 얼룩진 기록을 앞에 두고 그는 한국 사회가 "아이들에게 유독 가혹한 세계"라고 정리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세계에서 살아간다. 모욕과 위험을 가득 심은 세계에서 기꺼이 태어나야 할 책무를 지닌 아이는 없다. 이 사실을 계속해서 무시한다면 한국 사회는 곧 출생률 제로, No Kids의 땅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내치는 행동은 '나쁘다'"는 생각이 상식의 자리를 지키기를 원하는 저자는 이 책의 이야기들을 읽은 독자들이 아이들을 위해 함께 울어주길 원한다. 그것이 이 세계를 함께 만든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염치일 것이다.

  • 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은이)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갓 지은 책 냄새를 맡으며 쉬어 가세요"

    운영하던 스타트업을 정리한 후 유진은 '인생 일정표에 없었던 선택지'를 집어든다. 소양리에 땅을 사 숙소를 겸한 북카페 '소양리 북스 키친'을 시작한 것. '매화나무 너머로는 굽이굽이 이어진 산등성이가 보이는'(9쪽) 곳에서 유진은 메이브 빈치의 소설 <그 겨울의 일주일> 속 아일랜드의 작은 호텔이 지닌 따뜻함을 꿈꾼다. 유진과 같은 꿈을 꾸며 소양리를 찾는 손님들이 있다. 서른을 앞두고 서로가 달라졌음을 절감하는 대학 절친들, 밝은 겉모습과는 달리 요즘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린 가수, 암진단을 받은 변호사 등의 사람들에게 유진은 제안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을 꺼내어 놓고, 그저 쉬어가세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잇는, 다정한 위로를 전하는 소설. 최은영의 <밝은 밤>이 고수리의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로, 또 이민진의 <파친코>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이어지는 등장 인물들의 책 수다를 따라 읽으며 꼭 이런 곳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이런 음악을 듣고, 이런 비를 맞고, 이런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나마 소양리의 볕을 느낄 수 있는 책. 갓 지은 잘 익은 책 냄새가 꼭 풍겨올 것만 같다.

  •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김달님 (지은이) | 수오서재 | 2022년 4월 "한 시절 곁에 있어준 이들에게"

    <나의 두 사람>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따뜻한 두 권의 산문집을 집필한 김달님이 3년 만에 신작을 펴냈다. 이번 책은 한 시절 작가의 곁에 있어준 여러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과, 그들과 함께했던 시절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다.

    살면서 마주한 다양한 사람들과 사물들, 풍경들이 한 권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러모은 그 작고 소중한 것들을 오래된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불러내어 따스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되살린다. 너무 다정해서, 너무 따뜻해서, 너무 애틋해서 눈물이 난다. 한 편 한 편에 담긴 마음이 깊고 아름다워 단숨에 읽어내지 못하고 아껴 읽게 된다. 사려 깊음과 다정함으로 충만한 이 책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 눈물 없는 뜨개
    엘리자베스 짐머만 (지은이), 서라미 (옮긴이), 한미란 (감수) | 윌스타일 | 2022년 5월 "위안이자, 영감이자, 모험이자, 치료제인 뜨개에 관하여"

    전 세계 뜨개인들의 스승, 엘리자베스 짐머만의 뜨개 바이블이 국내 첫 출간되었다. 엘리자베스 짐머만은 1910년 탄생하여 뜨개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를 세웠고, 뜨개 철학을 담은 뉴스레터를 최초 발행했으며, 매년 뜨개 캠프를 열며 뜨개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대모'가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가 낸 첫 뜨개책으로 출간 후 50여 년이 지난 시점에 국내에 처음으로 출간이 되었다. 도안과 이미지가 전부인 요즘의 뜨개책들과 달리 이 책은 뜨개의 기본과 스킬에 대해 줄글로 설명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인 짐머만의 뜨개 철학과, 뜨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나는 뜨개질에 문외한이며,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손재주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책을 조용히 따라가보니 어쩐지 차분한 마음으로 뜨개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뜨개는 위안일 수도, 영감일 수도, 모험일 수도 있다. 뜨개는 육체적, 정신적 치료제다. 뜨개는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도 따뜻하게 해준다.”라고 짐머만은 말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더 복잡해지고, 더 시끄러워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뜨개질은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5.132022
  • 봄꿈 : 광주의 조천호 군에게
    고정순, 권정생 (지은이) | 길벗어린이 | 2022년 5월 "경상도 아이 보리문둥이가 광주의 조천호 군에게"

    아이와 아빠는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숨바꼭질하고, 노래하고, 강으로 산으로 들판으로 쏘다니며 사계절을 보낸다. 봄이 오면 꽃을 찾아 아빠에게 선물하고, 아빠의 배 위에서 노곤한 낮잠을 즐긴다. 그 어느 봄날, 다정하고 용감했던 아빠는 갑자기 사라졌다.

    1980년 5월, 아빠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다섯 살 조천호 군의 사진은 8년이 지나 세상에 공개되었다. 같은 땅의 다른 편에서 우리는 몰랐었다. 아빠의 영정 사진을 품고 있는 다섯 살 어린 아들의 맑고 슬픈 눈을 보고, 그제야 이 땅의 비극을 알고, 권정생 작가는 한없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경상도 보리문둥이'가 차마 부치지 못했던, '광주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는 고정순 작가에게 가 닿았다. 고정순 작가는 조천호 군과 우리 모두에게 글과 그림으로 권정생의 편지를 전한다.

  • 언제나 밤인 세계
    하지은 (지은이) | 황금가지 | 2022년 4월 "<얼음나무 숲> 하지은의 귀환"

    <얼음나무 숲> 하지은이 7년 만에 발표하는 신작소설. 아길라와 에녹은 본래 하나였다.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이 하나로 붙어있던 샴쌍둥이는 세기적 수술을 받고 둘로 분리되었다. 남매의 부모인 남작 부부는 분리되어 나간 아길라는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인 에녹을 선택했다. 아길라는 기적적으로 하체 없이도 살아남았고, 에녹에겐 아길라가 분리되어 나간 자리가 흉터로 남았다. 그리고 아길라는 이 사실을, 부모가 선택한 게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아이는 우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13쪽) 남작 부인의 두려움은 현실이 된다.

    <얼음나무 숲>의 키욜 백작과 <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의 마라 공작이 등장해 세 작품이 한 점으로 모이는 순간을 발견하는 것 역시 하지은 세계의 팬에겐 즐거운 일이 될 듯하다. 연금술과 악마술로 에녹을 조종하려는 아길라와 점점 그의 욕망에 대해 깨닫게 되는 에녹의 대립이 귀족가문과 은찻잔과 협곡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에녹은, 아길라는, 독자가 마음을 실어 응원하게 될 그 캐릭터는 승리할 수 있을까?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기 전부터 독자적인 상상의 세계를 눈에 그리듯 보여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온 작가 하지은이 압도적인 어둠의 숲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 민낯들
    오찬호 (지은이) | 북트리거 | 2022년 5월 "오찬호, 이곳의 절망을 직시하는 글들"

    어떤 구호의 반복은 사실 그 내용이 가리키는 바의 실질적 부재를 가리기 위함일 때가 많다. 끊임없이 선입견에 의한 단정을 짓는 이가 "에포케"를 외쳐보는 것처럼, 누구보다 낡은 태도를 고수하는 이가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처럼. "잊지 않겠습니다.", "침묵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유독 자주 울려 퍼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 구호들은 무엇을 가리려 애쓰고 있는가.

    오찬호는 이 책에서 열두 가지 사건을 다룬다. 하나하나, 무심결에 이름만 들어도 갑작스레 심장이 쿵 떨어지는 사건들이다. 故 변희수 , 故 최진리, 故 김용균, N번방,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사회적 충격을 일으켰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채 기억의 뒤편으로 밀려나고 있는 일들. 해결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비극들을 이 책은 다시 한번씩 되짚어 살핀다. 잊지 않겠다는 말이 공허해지지 않도록.

    모두 함께 분노했으나 변함없는 현실 앞에 또다시 모두 함께 좌절하는 패턴이 반복되면 무기력은 학습된다. 회의적인 태도가 번지는 사회 앞에서 오찬호는 우리의 꾸준한 관심으로 교통사고 사망률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놀라고 탄식하고 추모하고 고민해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고 외친다. 왠지 절규처럼 들린다.

  • 처음 만나는 알렉산더 테크닉
    김수연 (지은이) | 판미동 | 2022년 5월 "내 몸 바르게 사용하는 법"

    현대인들은 아프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바라보며 피로감을 느낀다. 목과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생겨 병원에 가면 '혹시 최근에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세요?'란 의사의 말에 더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온다.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해 본다.

    알렉산더 테크닉은 F.M.알렉산더(Frederick Matthias Alexander)에 의해 고안된 요법으로 고착화된 몸과 마음의 습관, 긴장, 통증 등을 새롭게 인식하여 본래의 유연하고 건강한 나를 회복할 수 있게 돕는다. 더 좋은 자세와 움직임을 스스로 찾고 습관을 바꾸어 일상생활에 적용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국내에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유아인이 이 요법을 통해 집중력을 기르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소개되어 잠시 열풍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유아인과 정유미의 선생님이 알렉산더 테크닉의 대중화를 위해 집필한 책이다.

    책은 우리 신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사진들과, 실제 알렉산더 테크닉에서 활용하는 자세 등을 집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되었다. 잠시 내 몸에 귀를 기울여보자.

5.172022
  • 낙원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은이), 왕은철 (옮긴이) | 문학동네 | 2022년 5월 "2021 노벨문학상, 압둘라자크 구르나 대표작"

    "낙원이 이럴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좋지 않아?" 소년 유수프가 만난 아름다운 폭포의 모습. 세상이 산으로 둘러싸여 빛마저도 녹색을 띠는 곳. 그 부드러운 시간은 찰나에 머문다. 유수프의 현실은 부모와 헤어지고 부유한 이슬람 상인에게 팔려 아프리카 내륙 깊숙한 곳을 향하는 여정 속에 있다. 유럽이 지도를 바꿔놓기 전의 아프리카, 소설은 그 무엇도 미화하거나 뭉뚱그리지 않는다. 여전히 누군가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약탈하고, 누군가는 짓지도 않은 죄를 뉘우치며 수치스러워한다. 초록빛 풍광은 그 모든 인간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워서 지옥을 통과하는 이에게도 잠시나마 황홀경을 선사한다.

    아랍계 이슬람 동아프리카인이라는 다층적인 소수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영국 사회에서 망명자로 살아온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그리는 아프리카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다채로움이 가득하다. 아프리카를 말할 때 언제나 따라붙는 흑인 대 백인, 아프리카 대 유럽, 피해자 대 가해자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자, 인도양 무역의 중심지 잔지바르 섬에서 공존했던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인, 아시아인, 백인의 면면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지워지지 않고 생생히 보인다.

    어떻게 이런 작업이 가능했을까.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영국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고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와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해 비로소 반추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승리자가 만든 역사에서는 실제 일어났던 일들이 변형되거나 생략되고, 새로운 논리에 맞게 재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그것은 "인종 해방과 진보에 대한 익숙한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작가는 한때 그 안에 속했지만 언젠가 상실했고 이제는 그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고국의 도시가 증언하는 과거의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 가장 잔혹한 기억에서부터 어쩌면 잠시나마 '낙원'을 만난 가장 아름다운 순간까지도.

  • …스크롤!
    정지돈 (지은이) | 민음사 | 2022년 5월 "그래서 나는 소설을 썼다"

    소설은 안전한 장르이다. 허구라는 점에서 그렇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이가 이미 배포한 상상(문학으로 인정받아 이 땅에 존재하는 온갖 문장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조합해 새로운 패턴의 직물을 보여주던 작가 정지돈에게는 특히 그렇다. 이 소설에서 어떤 사람들의 재수없음이, 어떤 장소의 부조리함이 연상된다고 해도 이것은 소설이다. <돈 룩 업>의 대통령 메릴 스트립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해도, 해당 영화가 픽션이듯.

    소설은 SE와 NE 두 가지를 축으로 전개된다. 팬데믹과 코인 광풍 등이 휩쓸고 지나간 근미래. 증강-가상 현실에 기반을 둔 '메타플렉스'의 중심 공간, '메타북스' 점원들은 지리멸렬함과 싸운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음모론을 파괴하기 위해 창설된 초국가적 단체 ‘미신 파괴자’ 소속 대원들은 '존재론적 행방불명자'가 되어 (이들의 전투는 고골의 '죽은 혼'이 연상되기도 한다...) 음모론의 한가운데로 '내가 싸우듯이' 들이닥친다.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정키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눈물을 흘렸다."(41쪽)라는 문장이다. 대학 선정 100대 고전이면 '구림', 아무도 모르는 층위의 책이면 '멋짐'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층위의 감정들, 이 감정들은 소설속에서 비로소 안전하다. 왜 읽고 쓰는가? 소설가 정지돈은 이렇게 쓴다. "단지 실천할 수 있는 일일 뿐이고 그래서 나는 소설을 썼다. 앞으로도 쓸 것이다."

  • 사고 싶게 만드는 것들
    폴린 브라운 (지은이), 진주 K. 가디너 (옮긴이) | 시공사 | 2022년 4월 "미학이 곧 차별점이다"

    백화점에서 고객을 오래 붙들기 위해 느린 음악을 틀어 놓는다는 등의 마케팅 전략은 익숙하다. 그러나 와인잔 유리의 두께에 따라 같은 와인의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잔의 유리가 얇을 수록 와인이 더 품격 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때문에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와인 가격대에 따라 와인잔을 달리함으로써 그 격을 맞춘다. 우리는 9km 상공에서 미각과 후각을 잃은 채로 기내식의 품질을 논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제품의 품질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들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비중은 무려 85%나 된다.

    그럼에도 기업은 15%에 불과한 기능과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 한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 그룹의 북미 회장을 지낸 저자는 그래서는 소비자들의 염원을 따라잡을 수 없으며, 제품을 통해 꿈을 꾸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미학 비즈니스는 디자인의 아름다움, 그 이상의 영역이다. 저자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강의를 정리한 이 책은 무엇보다도 경험을 중시하는 오늘날 마케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그 미학의 가치, 즉 고객들에게 미적 기쁨을 주는 일은 뷰티/패션 업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은이) | 느린걸음 | 2022년 5월 "12년 만에 만나는 박노해 시집"

    가수 이효리는 사랑에 지쳤을 무렵 박노해의 시를 만났다.

    사랑을 구하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았지
    사랑으로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지

    강아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를 괴롭히던 무렵,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시집의 제목마저 자신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고 말하며 이효리는 박노해의 시집을 추천했다. 독자의 사랑을 받은 붉은 시집 이후 12년이 지나 푸른 빛 시집이 이제 독자를 찾았다.

    "가난이 서러울 땐 하늘을 보았어요 / 죽은 아빠가 그리울 땐 하늘을 보았어요 / 억울하고 따돌림당하고 외로운 날엔 / 홀로 먼 길을 돌아가며 하늘을 보았어요" (<하늘을 보는 소년> 中) 박노해의 시를 읽을 때엔 아름다운 단어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설운 마음이면 충분하다. 어두운 하늘을 밝힐 301편의 시를 건네며 시인이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하늘이 있다."

5.202022
  • 오은영 박사가 전하는 금쪽이들의 진짜 마음속
    오은영 (지은이) | 오은라이프사이언스(주) | 2022년 5월 "우리 부모님들을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우리의 권리를 존중해주시고, 우리 부모님들을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년 11월, 오은영 박사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수여하는 '우리들의 우상' 상을 받았다. 이 상은 100여 명의 어린이 심사위원이 직접 후보를 뽑고 2,787명의 아이가 직접 투표해 수여한 상이다. 아이들은 왜 오은영 박사를 이렇게나 좋아할까?

    부모들은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요즘 부모들은 아이에 대한 정보나 지식도 풍부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와의 문제가 있고, 또 그걸 풀기 어려워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리고 부모가 노력할수록 아이의 문제가 더 심해지는 경우도 많다. 오은영 박사는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준다. 그리고 부모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한다. 뒤늦게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된 부모들은 "저런 마음인 줄 몰랐어요."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 책에는 오은영 박사가 임상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진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아이의 그 마음에 딱 맞는 금쪽같은 육아 비법을 함께 실었다.

  • 최재천의 공부
    최재천, 안희경 (지은이) | 김영사 | 2022년 5월 "괴짜의 정도(正道)"

    책을 몇 장만 읽어보면 다들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아, 최재천 교수... 괴짜구나...?" 이 책은 그가 저널리스트 안희경과 공부를 주제로 나눈 대화들을 갈무리 한 것이다. 인터뷰 형식의 책인 만큼 대화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오가는데, 최재천의 말들은 어딘가 계속 예상한 지점으로부터 벗어나는 구석이 있다. 공부는 꽉꽉 다지기보단 조금 엉성하게 해야 한다거나, 활발한 토론 수업을 위해서는 주도하는 몇 명의 입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에서 '내가 반대로 읽었나?'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읽어보지만 그것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다. 그는 10년 전부터 꼭 쓰리라 다짐했다는 이 책을 통해, 사회적 통념 속의 '공부'와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한다.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서울대 교수를 거쳐 이화여대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최재천은 명실상부 공부의 대가다. 그런 그가 보는 현재 한국의 빈틈없이 딱딱한 교육 방식엔 잘못된 지점이 많다. 가깝게 다가온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서 그는 교육이 달라져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하며 삶을 탐구하는 방식으로서의 배움을 제안한다. 책에서는 그 자신의 공부 경험과 교육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핵심엔 '우리가 함께 잘 살아남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공부'라는 단 하나의 기둥이 있다. 결국 공부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방식이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을 이기기 위한 공부를 해온 사회에서 그는 조금 괴짜처럼 보이지만, 재난 앞에서의 공생이라는 공부의 새로운 목적 앞에서 사실 그의 말은 논리적인 모범 답안이다. 위태로운 세계 앞에서 최재천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가리킨다.

  •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서경식 (지은이), 최재혁 (옮긴이) | 연립서가 | 2022년 5월 "순례자 서경식의 눈에 비친 이단자들"

    전범국가 일본에도 "'일본'이라는 질곡 아래 발버둥 치면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며 싸워 나간 이단자들, 일본 미술계의 '선한 계보'"(5쪽)에 속하는 이들이 있었다. 서양미술 - 서양음악 - 조선미술을 거치며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눈으로 본 세계를 기록해온 서경식 선생이 드디어 일본 근대미술을 소개한다.

    한국의 근대미술사에 아로새겨진 이쾌대라는 이름이 있다. 서경식의 전작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자세히 소개되기도 한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그림이다. 1934년 동경의 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이쾌대는 이중섭, 김학준 등과 어울려 동경에서 조선적인 서양미술을 꿈꿨고, 조각가 권진규는 그의 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웠다.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걸 바쳤지만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던 그들의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이단자들의 외로움이 서경식과 공명한다. 죽음을 들고도(해골을 든 남자의 자화상은 서양화의 '바니타스(허무)'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평온한 나카무라 쓰네의 얼굴을 보며 그는 "불행의 불행을 거듭한 끝에 죽어 갔으면서도 어째서 이 남자는 미칠 듯 노여워하지도, 울부짖지도 않고 이렇게 달관한 듯 고요한 표정일 수 있는가?"(19쪽) 하고 묻는다. 벨 에포크의 파리가 아닌, 으스스하고 쓸쓸한 파리를 스케치한 사에키 유조의 순수한 열정을 두고 그는 "순수한 영혼에게 겨우 숨통이 트였던 때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끼어 지극히 짧았던, 허구의 평화가 잔존했던 시기에 지나지 않았다."(72쪽)고 애석해한다. 마냥 감탄하지도, 마냥 비판하지도 않는 자리에 서서 서경식은 자신이 놓인 그 '사이'를 바라본다. 2권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 넬라의 비밀 약방
    사라 페너 (지은이), 이미정 (옮긴이) | 하빌리스 | 2022년 5월 "18세기 연쇄 독살사건을 둘러싼 세 여성의 모험"

    18세기 런던 뒷골목의 허름한 가게. 간판도 없고 출입문도 숨겨져 있지만 런던의 여성들은 이곳을 은밀히 알고 있다. 손님들은 누군가를 죽여야만 할 때 이곳을 찾는다. 바로 살인 대상과 상황에 맞춤한 독약을 만들어 파는 여성 전용 약방이다. 약제사 넬라는 거대한 곤경에 처한 여성을 돕는다는 긍지를 갖고 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독살은 다른 살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살인자와 희생자가 친밀한 관계여야 하고, 신뢰가 존재할 때만 실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그런 인연을 끊을 결심을 하기까지는 신뢰가 산산조각나는 일들이 일어났기 마련이다.

    "2월 4일 새벽, 주인마님의 남편, 아침식사." 주인마님의 심부름으로 독약을 주문하는 쪽지를 가져와 넬라에게 건네는 하녀 엘리자. 그리고 200년의 세월이 지난 후 템즈강 진흙 속에서 빈 약병을 주운 런던 여행객 캐롤라인. 넬라와 엘리자와 캐롤라인. 운명의 소용돌이는 세 여성을 하나의 연으로 이어 기묘한 모험에 동참시킨다. 시간을 넘나들며 공명하는 세 여성의 고통과 환희와 비밀스러운 연대. 런던의 화려한 외양 뒤에 가려진 어둠으로 입장하는 초대장이 도착했다.

5.242022
  • 변화하는 세계 질서
    레이 달리오 (지은이), 송이루, 조용빈 (옮긴이) | 한빛비즈 | 2022년 6월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 교과서"

    금리, 환율, 기름값, 물가 등 내가 산 주식 빼고 안 오르는 게 없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주식 시장에서 실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계기가 어떻든 전 세계 경제 상황과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석유파동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경제 전망 속에 우리는 이 하락장이 얼마나 지속될지, 언제 바닥을 치고 시장이 반등할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황이 이럴 때면 예외 없이 '주기론'이 큰 주목을 받는다. 투자계의 거물 레이 달리오 역시 이 책에서 '빅 사이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흔한 주기론들과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곤란하다. 그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분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경제 역시 운명처럼 흘러가진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그것을 발생시킨 요인이 있고 일반적으로 공통된 사건에는 공통된 요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방대한 요인들을 축적하여 예측 가능한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레이 달리오의 시도다. 물론 그 세부는 다를 수 있는데 그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추세를 보려면 세부적인 디테일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사건들을 빅 사이클로 오인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책은 묻는다. 우리는 거시경제 지표들을 정말 거시적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변화를 일으키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힘' 앞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경제 이론과 역사적 통찰을 오랜 현장 경험과 연구로 버무린 이 책은 바로 지금, 위기의 시절을 보내는 우리를 위한 경제 교과서다.

  • 크게 그린 사람
    은유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2년 5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가 긴급 수혈처럼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악의들에 시달려서 인간에게 지칠 때, 인간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떠올리면 온통 그늘지고 비열한 인상만 생각날 때. 위험한 상황이다. 마음에 증오가 들어차면 사는 일이 괴롭다. 이럴 땐 희망을 잊지 않기 위해 얼른 아름다움을 채워줘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살았다' 싶었다. 은유가 발굴한 이야기들, 책장마다 여리지만 꺾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뚝뚝 떨어진다. 임용고시라는 경쟁에서 벗어나 노들 야학에 들어가 만난 세계가 너무 좋았다는 홍은전, 힘든 일을 당한 사람들 곁을 그저 자연스럽게 평생 동안 지킨 씨돌 김용현, 고 김용균을 잃고 운동가로 거듭난 김미숙... 18인의 이야기 하나하나, 마음을 세게 울리는 내용을 품고 있다. 섬세한 산파 은유는 이들의 삶에 박힌 위엄 있는 이야기를, 묵어서 기품이 된 그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고도 알차게 끌어내 고스란히 기록해두었다. 사람에게 실망한 사람들에게, 희망도 사람 안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한동안은 인간사가 회색으로 보일 때마다 이 책을 찾게 될 것 같다.

  • 이웃집 식물상담소
    신혜우 (지은이)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마음과 인생을 나누는 특별한 장소, 식물상담소"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신혜우는 식물학자로서 화가로서 다방면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대중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을 간직하던 중, 좋은 기회에 누구나 와서 식물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식물상담소'를 시작했다. 그 공간을 찾아온 사람들이 궁금한 식물에 관해 물으면 저자는 답해주면서 그들이 털어놓는 인생 이야기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전작 <식물학자의 노트>가 과학서였다면, 이번 <이웃집 식물상담소>는 마음과 인생을 나누는 '식물상담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생 이야기에 관한 에세이다.

    식물이 좋은 이유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어린이 상담자, 농업학교 졸업 후 농사도 지으면서 학문적인 공부도 병행하고 싶은 상담자, 비주류 분야의 박사 과정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상담자... '식물상담소'의 문을 두드린 다양한 사람들과 나눈 잡초, 야생식물, 희귀식물, 일상 식탁에 자주 등장하는 아보카도와 벼 등 다채로운 식물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진로, 꿈, 인생의 깊은 고민들까지 촘촘하게 기록했다. 식물과 인생의 이야기 사이사이, 식물학자와 화가로서의 삶의 이야기와 아름다운 식물 그림이 더해져 보다 특별하고 풍성한 한 권이 되었다.

  •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배명훈 (지은이)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5월 "부서지지 않게 지켜내려는 마음"

    화성 인근의 스페이스 콜로니 사비.(백제의 도읍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옹진, 사비의 그 '사비'이다.) 이초록은 친구 김구름이 한 말을 듣고 그의 꿈을 훔쳐 '관직을 사서' 사비로 떠났다. 화성의 밤하늘을 조선시대 방식으로 계산해 미래를 점치는 고모는 사비에 온 이초록에게 "암, 첫 직장은 사서 다니는 게 좋지."(22쪽)하며 그를 응원한다. 응원의 속내는 따로 있었는데, 공무원이 된 이초록이 알게될 공적인 정보를 이용해 역법인 양 약간의 노하우를 발휘해 의뢰인의 삶을 해석하는 것이 그의 사업비밀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 예상과는 다른, 낡고 비싸고 부도덕한 행성 사비에서 보내던 이초록의 평화로운 날들이 돌연 위기에 처한다. 사비에 킬러가 있으며, 그의 표적이 '사비의 일인자로 추대될 사람'이라는 것. 이제 이초록의 삶은 우주활극이 된다.

    우주의 도시 사비에서 서예를 가르치는 삶을 꿈꾸는 김구름과 사비의 전향력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영점조준에 성공하는 스나이퍼 한먼지는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탁월함이 부서지지 않게 지키려는 마음을 지닌 이초록이 있다. 관직을 사서 사비에 갈 정도로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던 그도 의지를 가지면 타인에 대한 애정이라는 탁월함을 얻을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귀한 마음 한 조각, 바로 그 작은 씨앗에 대해 배명훈이 SF를 썼다. 영화처럼 눈에 그려지는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한 '언톨드 오리지널스'가 배명훈의 소설과 함께 출항한다.

5.272022
  •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오건영 (지은이) | 페이지2(page2) | 2022년 5월 "알아야 버틴다!"

    지난 5월 26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75%로 0.25% 인상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2.25%에서 2.50%의 기준금리가 합리적이라며 추가적인 인상을 시사했다. 같은 날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5%로 내놓았는데, 이는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그 결과 올 한 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3.0%에서 2.7%로 하향 조정됐다. 문제는 내년에도 4%대의 물가 상승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지속되는 금리 상승과 우려되는 수준의 인플레이션, 경기 둔화에 대한 걱정까지. 투자자들의 돈과 마음이 온전할 리 없는 요즘이다.

    어쨌든 당면한 현실 앞에 놓인 투자자들의 최대 과심사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투자해야 안전하게 돈을 지키면서 불릴 수 있느냐가 되겠다. 지난 2년여 동안 적극적으로 주식에 뛰어들었다면 이제는 한발 물러나 방어적인 투자 내공을 키워야 할 때인 것이다. 금리가 오르면 어떤 자산이 타격을 입으며 어떤 주식을 조심해야 하는지부터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 연준의 생각, 전쟁과 공급망 변화 등에 따른 세계 경제 전망까지, 거시경제 전문가 오건영의 친절한 설명을 통해 희망의 단서를 찾아 보자. 고금리 고물가 시대가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투자는 계속되어야 한다.

  • 행성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은이), 전미연 (옮긴이) | 열린책들 | 2022년 5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구의 운명을 건 결전"

    쥐들과 페스트가 점령한 파리를 탈출해 '마지막 희망' 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향한 동물들. 이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처참히 무너진다. 파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쥐 떼가 뉴욕을 점거 중이었던 것이다. 범선을 공격한 쥐 군단과의 전투에서 전사자가 대거 발생해 생존자는 단 일곱 뿐이다. 망연자실한 고양이 바스테트의 눈에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명멸하는 불빛이 보이고, 이내 그것이 모스 부호를 본딴 섬광 신호임을 알아챈다.

    폐허가 된 뉴욕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인류는 쥐를 피해 고층 빌딩에 숨어 살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바스테트는 각 인간 집단 대표들이 모인 총회에서 동물 대표 자격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지만 인간들은 이를 무시한다. 지구를 장악하려는 쥐 군단의 위협과 핵폭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인간들. 바스테트는 갈등을 극복하고 이 행성을 구할 수 있을까. 나아가 그가 염원했던 서로 다른 생명체가 공존하고 연대하는 문명을 세울 수 있을까. <고양이>에서 <문명>을 거쳐 <행성>까지 이어져 온 대장정의 피날레.

  •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서윤빈, 김혜윤, 김쿠만, 김필산, 성수나, 이멍 (지은이) | 허블 | 2022년 5월 "김초엽, 천선란, 다음은 이 작가!"

    한국과학문학상이 2022년 제5회 수상자를 발표한다. 서윤빈은 우주에서 모계 사회를 이루며 해물 대신 광물을 캐는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 <루나>로 대상을 수상했다. 우주 조난자 '켈빈'을 구출하게 되며 자신들이 출발했을 지구, 제주의 바다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루나. 그 마음을 짐작하면, 영화 '그래비티'가 착륙한 그 바다가 상상된다. 혼란스러운 욕망으로 가득한 환상적인 소설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과 <천 개의 파랑> 천선란은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엔 수상자를 내지 않은 한국과학문학상이 2022년을 맞아 가벼운 가격으로 수상작품집을 엮어 새로운 작가들을 이 우주에 소개한다. 중,단편 부문 수상자인 서윤빈, 김혜윤, 김쿠만, 김필산, 성수나, 이멍이 그들이다. 구형 기계 속으로 의식을 옮겨간 이들과의 단절에서 소수자성을 이끌어내는 김혜윤의 이야기며 책 속에 갇힌 남자가 동로마 시대를 오가는 김필산의 하드 SF까지, 김쿠만의 판교부터 이멍의 종차별주의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들이 우리가 당도한 새로운 우주의 풍경을 밝힌다. 작가의 탄생을 환영한다.

  • 감정 어휘
    유선경 (지은이) | 앤의서재 | 2022년 6월 "'대박'과 '짜증 나'를 빼고 감정을 설명하는 법"

    김영하 작가는 강의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졸업할 때까지 "짜증 난다"는 말을 금지 시킨다고 한다. 결결이 다른 감정을 짜증 난다는 말로 '퉁치면'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할 수 없어 기분만 불쾌해진다는 이유에서다. 말은 상태를 재정의하는 힘이 있다. '대박'과 '짜증 나'를 번갈아가며 읊조린 하루, 자기 전 돌아보면 왠지 2차원의 세계에서 납작한 감정만 소모한 기분이다.

    이 책은 압축팩에 눌러진 것 같은 감정의 말 그릇에 후후 바람을 넣어 부피를 만들어낸다. 181가지 상황별로 1000개가 넘는 감정 어휘를 다루며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적절한 이름을 찾아 연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풍성한 어휘들로 내 감정을 돌보다 보면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우리가 오랫동안 이성을 떠받드느라 감정을 뒷전으로 생각해왔지만, 감정이야말로 "내 인생의 징후"라고 말한다. 재난의 사전 예방도 행복의 극대화도, 징후에 대한 정교한 파악으로 가능할 것이다.

5.312022
  • [세트] 한국 팝의 고고학 세트 - 전4권
    신현준, 최지선, 김학선 (지은이) | 을유문화사 | 2022년 5월 "신중현에서 신해철까지, 한국 팝 1960~1990"

    레드벨벳의 여름노래 '빨간 맛'(2017)이 00년대생에겐 학창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노래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30세 이후에는 새로 알게된 노래를 거의 듣지 않는다는 영국의 연구결과도 본 적이 있다. 어떤 음악은 우리의 한 시절을 정의한다. 시간의 퇴적층에서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는 그 음악들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한다. 2005년 1960년대편, 1970년대편 출간 이후 17년이 흘러 만나는 <한국 팝의 고고학> 완간 세트. 1980년대의 이야기와 1990년대의 이야기를 더해 한국 대중음악의 통사를 세운다.

    사랑은 모든 걸 가능케한다. 신중현, 이장희가 말하는 1960년대, 조용필, 배철수가 말하는 1970년대, 나미, 한영애가 말하는 1990년대, 신해철, 장필순이 말하는 1990년대에 대한 기억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고고학을 '발굴'하듯 시대를 아카이빙한 저자들의 노력이 놀랍다. 박정현이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원곡 : 조용필)와 이수영이 부른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원곡 : 배인숙)를 들으며 이 책과 함께 나 역시 그 시간을 여행했다. 동아기획과 하나뮤직, 대영AV와 (90년대의) SM엔터테인먼트를 기억하는 당신이라면, 김현철의 시티팝을 2020년대에 즐겨듣는 당신이라면 이 책과 함께 당신의 '그 음악'을 재생해보는 건 어떨까.


  • 요 네스뵈 (지은이), 문희경 (옮긴이) | 비채 | 2022년 5월 "어두운 오슬로, 사랑을 잃은 해리 홀레"

    오랜 연인 라켈을 반려자로 맞으며 안락과 행복의 감정을 처음 알게 된 해리 홀레. 피와 범죄의 나날에 익숙한 그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너무도 맞지 않는 옷 같아 두렵기도 하다. 불안한 행복의 옷을 벗어던지고 낯익은 불행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무의식의 욕망이 현실에 손짓을 보낸 것일까. 만취해 전날 밤의 기억을 잃은 채 눈을 뜬 그날, 그는 뭔가 잘못됐음을 예감한다. 이내 라켈이 살해당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해리 홀레가 그간 겪어온 무수한 곤경. 폐허를 방불케 하는 황폐한 일상 속에서 더이상 잃을 것도 없었기에 그 어떤 공포에도 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 잃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 라켈이 그의 인생에 등장했다. 그 이후는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생의 가장 높은 순간에서 끝모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그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충격으로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알게 된다. "행복은 헤로인과 같"으며 "한번 맛보면, 행복이란 게 있는 줄 알면 다시 행복해지지 않고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온전히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악과 공포는 인간의 사랑과 행복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 마음이 하는 일
    오지은 (지은이) | 위고 | 2022년 5월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고 밝은 곳을 보려면" 오지은 에세이"

    2010년 <홋카이도 보통 열차>, 2015년 <익숙한 새벽 세시>, 2018년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를 펴내며 한 시절의 이야기와 생각을 담백한 글로 공유해 온 오지은. 더 깊어지고 넓어진 시선과 더 무르익은 마음을 담은 에세이로 돌아왔다.

    SNS 프로필의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 "버티는 사람", "즐겜러"로, 그리고, 여성으로 살면서 편견이라는 단단한 벽을 수없이 경험했음을 고백한다. 버티고 견디는 시간을 통과하며 마음은 깎이고 납작해졌고, 생각은 깨지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마음에 귀 기울이고 애쓰며 보낸 몇 년간의 흔적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하루도 온전히 좋은 적 없다고 말하는 구씨(손석구 분)에게 염미정(김지원 분)은 말한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라고. 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이 그렇게 하루를 채워준다.

  •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은이), 이수현 (옮긴이),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우리가 해친 것을 치유합시다."

    아홉 살 로빈이 사랑하는 것들. 야생동물 도감을 보며 동물 이름 외우기, 멸종 위기 동물 그리기, 개울에서 갑각류 놀이 하기, 산속에서 별 관찰하기. 로빈은 물을 좋아했었던 엄마가 도롱뇽 같은 물가에 사는 동물이 되어 생태계로 돌아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고 다른 존재가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아파한다. 로빈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생명체에 해를 끼치는 행위와 학교에 가는 일이다. 어른들은 아스퍼거, 강박 장애, ADHD라는 단어들로 로빈을 특정짓고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빠는 반짝이는 눈으로 좋아하는 것에 골몰하는 로빈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인생은 우리가 멈춰 서서 교정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지 않을까. 잦은 산불의 대책으로 국유림을 베어버리는 것이 거론되고, "지구상에 남은 동물의 총 무게 중 98퍼센트가 호모사피엔스이거나 호모사피엔스가 산업식으로 채취하는 식량이며 겨우 2퍼센트만이 야생동물"인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은 아닐까.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한데 모인 사람들을 그린 <오버스토리>로 201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워스가 생명체를 향한 무해한 사랑으로 가득한 소년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마거릿 애트우드, 천선란 작가가 함께 읽고 추천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