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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2020
  • 주식하는 마음
    홍진채 (지은이) | 유영 | 2020년 10월 "투자하라! 주식하지 않는 마음으로"

    빨갛게 물들었던 단풍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붉게 타오르던 '화살표'는 방향과 색을 바꾼다. 이래저래 추운 계절이다. 우리의 옷은 두터워지고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렇다. 주식은 믿음의 영역에 자리한지 오래다. 오르는 주식을 팔아 내리는 주식에 물타기하는 것이 좋지 못한 판단임을 알면서도 행하는 이유, 이미 수년간 답이 없음을 지켜봐 왔으면서도 팔지 못하는 이유, 너무 오른 것 같다면서도 굳이 들어가는 이유는 모두 우리의 강한 믿음 때문이다. 여러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또한 믿음일 뿐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확실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여전히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지구 평면설을 믿는다고 한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떠올려 본다. 차라리 주식하지 않는 마음으로 주식을 한다면 어떨까. 가장 쉬운 방법은 휴대폰에서 증권 앱을 지우는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도움을 받아 보자. 인기 있는 펀드매니저인 저자가 이 책을 펴낸 까닭은 투자자들이 온갖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않기를, 돈을 잃고 좌절하지 않기를, 그리고 결과적으로 투자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수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책에 담긴 수많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지금 단타로 혹은 자신만의 묘수로 재미를 보고 있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투자에 아니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까. 부디 모두의 마음만은 평온했으면 좋겠다.

  • 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은이) | 창비 | 2020년 10월 "창비 X 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대상"

    전쟁 문명이 할퀴고 지나간 지구. 스노볼 바깥은 평균 기온이 영하 41도로 내려간 혹한기가 이어진다. 누구나 따뜻하고 안락한 '스노볼' 안에 존재하고 싶어한다. 스노볼에 거주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액터'가 되어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을 드라마로 중계하는 것이다. 인기 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면 스노볼에 오래 머물 수 있다. 스노볼 밖 인력발전소 노동자인 16세 소녀 '전초밤'은 언젠가 스노볼 안에서 자신만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디렉터'가 되길 꿈꾸며 '고해리'의 삶을 중계하는 고해리의 드라마 채널을 매일 시청한다. 그런 전초밤에게 그가 동경해온 최고의 디렉터 '차설'이 나타난다. 고해리와 신기할 정도로 닮은 전초밤에게 고해리의 삶을 대신해달라는 것. "해리가 어젯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렇게 스노볼의 세계가 전초밤을 초대한다.

    <아몬드>등의 작품을 통해 영어덜트가 함께 읽을 만한 작품을 발굴해온 창비와 장르문학 플랫폼 카카오페이지가 공동 주최한 '창비 X 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의 대상 수상작. '고해리'의 죽음이라는 중요한 사건을 이야기 초반에 알려주는 것은 그만큼 뒷 이야기의 밀도에 자신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살아 숨쉬는 듯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윤리와 욕망을 향해 분투하는 동안, 빠른 호흡으로 반전을 거듭하며 '페이지터닝'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다른 누구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편집하기를 원하는 야심만만한 소녀의 눈빛처럼 선명한 이야기. "서로를 격려하며 달리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고 <룬의 아이들> 전민희가 추천했다.

  •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
    오드 메르미오 (지은이), 이민경 (옮긴이) | 롤러코스터 | 2020년 10월 "반복되는 이야기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이 책의 저자가 임신중지 경험을 서술한 내용이다.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왠지 모를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고 조카를 보며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끼지만, 저자는 "낳을 수 없고 낳고 싶지 않아서" 임신을 중단한다. 그 과정에 불안과 고통과 아픔이 배여있다. 2부는 임신중지 시술을 해온 남성 의사의 이야기다. 제 몸을 챙기지 못하는 여성들을 한심해하던 그는 여성 간호사의 조언을 통해 환자들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그들을 도와간다.

    이 책은 그동안 세상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종류의 경험을 리얼하게 써 내려간 기록이다. 책을 다 읽은 후 머릿속에 시몬 베유의 문장이 선명히 떠올랐다. "좋아서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은 없습니다." 여성들은 임신중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할'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누군가에겐 '깨달아야만' 하는 사실이라는 것이 참담하다. 2부의 주인공, 마르탱 뱅클레르 의사는 이 책이 "길고 깊게, 이야기와 이야기를 가로질러, 분노로, 기쁨으로, 단어로, 이미지로 끊임없이 반복될 이야기"라고 했다. 여성이 존재하는 한 반복되겠지만 시대에 따라 이야기의 톤은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여성들이 겪어낼 경험에 어떤 무게를 얹을지 결정하기에 앞서, 이미 존재해왔던 이 이야기들을 우선 들어주기 바란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은이), 하윤숙 (옮긴이) | 비채 | 2020년 10월 "2019 부커상 수상작! 마거릿 애트우드와 공동 수상"

    영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말한다. "문학에 흑인 영국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게 불만스러워서" 열두 명의 흑인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마침표가 사라진 자리에 문장이 흐르는 소설.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10대 소녀에서 90대 할머니까지, 연극 연출가에서 은행 부사장에 이르는 다양한 시공간 속 다양한 열두 사람의 삶이 이어져 함께 흐른다. 시대와 풍경이 달라져도 소멸하기는커녕 일상을 더욱 촘촘히 파고드는 억압과 편견. 그에 맞서 뜨겁게 살아낸 열두 빛깔의 생이 반짝인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는 작가가 평생 질문하고 추구해온 가치들이 응축되어 있다. 백인 학생들 가운데 유일한 흑인으로 보낸 학창 시절, 획일적인 모습을 강요하는 학교와 달리 다양성을 존중하는 예술의 세계로의 매혹, 연극 학교를 졸업하고도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활동에 제약이 따르자 직접 흑인 여성 극단을 만들고 페미니즘 운동을 해온 경험. 의문을 품는데 그치지 않고 행동해온 작가의 모습이 소설에 그대로 녹아 있다. 2019년 부커상 시상식에서 에바리스토와 마거릿 애트우드가 공동 수상자로 나란히 선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벅차게 했다. 생생하게 빛나는 "이 시대의 이야기"를 만난다.

11.62020
  • 베르메유의 숲
    까미유 주르디 (지은이), 윤민정 (옮긴이) | 바둑이하우스 | 2020년 11월 "2020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 이 책을 받아들면 달콤한 설탕 냄새가 나는 듯하다. 하지만 주인공 '조'가 느끼기에 자신의 일상은 마냥 핑크빛이 아니다. 새언니, 가짜 언니들과 유대감을 느끼는 건 어린 조에겐 어려운 일이다. 어색한 가족을 뒤로 하고 훌쩍 집을 떠난 조는 숲속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고집불통 여우 모리스, 사랑스런 강아지 퐁퐁이와 함께 심술꾸러기 고양이 왕에게 납치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감옥에 갇힌 친구들을 구하고 고양이 왕에게 사육된 알록달록 조랑말 베르메유도 구한 조는 뿌듯하다. 그리고 문득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노여움이 가라앉고 아이는 성장하는 이야기, 집에 가야할 시간, 다시 만날 시간. 내일 또 놀 수 있으니." 핑크빛 모험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조가 다시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모험에 함께한 우리 역시. 2020 볼로냐 라가치상이자, 앙굴렘 페스티벌 최고상 수상작이다.

  • 뇌는 팩트에 끌리지 않는다
    리 하틀리 카터 (지은이), 이영래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10월 "상대의 뇌를 설득하라!"

    그럴듯한 설명에 혹해 덜컥 물건을 샀지만 기대와 달라 실망하게 될 때, 우리는 '또 낚였다'며 한숨을 쉰다. 어디 그뿐만인가. 자극적인 기사 제목, 알고 보니 광고였던 게시글, 그리고 책소개와 굿즈 이미지까지도. 마케팅은 점점 정교해지고 그만큼 낚이는 일도 많아진다. 우리의 뇌가 그렇게 반응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일들이 때로는 좋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 낚였다는 말을 설득당했다는 말로 바꿔 보면 어떨까. 상대가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면,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설득의 기술은 충분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우리는 고객을, 상사를, 자녀를, 그리고 마주한 상대방을, 끊임없이 설득하며 매일을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온갖 미사여구와 거짓말로 상대를 낚으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뇌를 설득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포장과 각색은 필요하다. 이를테면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경고 문구보다 폐암 환자의 사진에 더욱 반응하는 것이 우리의 뇌다. 이렇듯 뇌를 유인하는 방법은 많지만 저자는 특히 잘 쓴 이야기와 그것의 전달 방식에 주목한다. 사실의 나열, 상세한 설명 같은 '맞는 말 늘어놓기'로는 상대의 뇌를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팩트보다 임팩트라는 말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떤 글은 너무 잘 썼음에도 매력이 없는 반면 어떤 평범한 글은 마음을 움직이고 매출을 낳는다. 이 글과 이 책은 독자 여러분의 뇌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은이), 최고은 (옮긴이) | 검은숲 | 2020년 10월 "우리를 살게 하는 것"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건축사 아오세가 의뢰인에게서 받은 유일한 요청이었다. 내면의 세계를 자유로이 펼치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푸른 꿈은 어느샌가 흩어지고, "시키는 대로 도면을 그리는, 그저 편리한 도구"로 쓰이는 데 익숙한 나날. 그 말은 마법의 주문처럼 아오세에게 당도해, 굳게 잠긴 무언가를 연다. 자물쇠를 채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건축에 대한 진심. 그리고 '빛'의 기억을.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을" 짓고 싶었다. 부드럽게 실내를 감싸 안는 빛. 다정하고 따스한 빛. 그것은 반드시 북쪽의 빛이어야 했다.

    '남향'이라는 건축계의 '신앙'을 깨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지은 아름다운 북향의 집. 의뢰인은 찬사를 보냈고, 집은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이라는 타이틀로 잡지에 실려 유명해졌다. 집이 완성된 후엔 건축주와 연락하는 것이 금기이지만 아오세는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 자기 자신이나 마찬가지인 그 집에서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러나 의뢰인은 연락이 닿지 않고, 직접 찾아가본 그 집엔 사람이 산 흔적이 전혀 없다. 의뢰인 가족이 증발한 것이다. 당황한 아오세는 집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의뢰인의 자취를 쫓기 시작한다.

    우리가 머무는 곳. 살아가면서 우리는 공간뿐 아니라 사람에, 직업에, 꿈에, 기억에, 빛에, 소중한 수많은 것에 머문다. 소설은 '생'이라는 물결 속에서 닻을 내려 머무르고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가 대표작 <64> 이후 7년간 깊은 슬럼프와 싸우며 써낸 책. 어쩌면 <빛의 현관>은 작가에게 자신이 읽고 싶은 단 한 권의 책, 아니 평생 그 안에서 살고 싶은 단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책장을 넘기는 내내 햇살이 가득한 창가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고요히 빛나는 소설.

  • 바이러스 X
    김진명 (지은이) | 이타북스 | 2020년 11월 "김진명 장편소설, 바이러스는 데이터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역사소설 <고구려>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사와 사회를 재해석해 흥미로운 소설을 발표해온 김진명의 시선이 바이러스를 둘러싼 논란을 바라본다.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철저한 격리조사를 시행하는 인천공항, 한 남자가 병리의를 만나게 해달라고 소란을 피운다. 이렇게 이정한을 만나게 된 의사 조연수. 그는 '바이러스란 결국 3만 바이트짜리 데이터일 뿐'이라는 이정한의 도발적인 이론을 접하게 되고, 이정한이 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의학저널에 에세이를 기고한 후 조연수는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선다. 한편 바이러스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스위스와 티베트 고원, 마이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치명적인 바이러스 X가 인류를 위협하는데.

    체내가 아닌 체외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해낼 수 있다는, 김진명이 아니면 하지 않을 상상을 기반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로비스트 이정한과 병리의 조연수를 축으로 한 이야기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X의 발발에 관한 이야기, 국제 정세를 보는 김진명 특유의 시선이 어우러져 장면을 바꾸며 유기적으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김진명의 작품을 즐겨 읽은 독자가 만족할 만한 빠른 전개와 거침없는 상상력이 눈에 띄는 2020년 김진명 최신작.

11.102020
  • 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우리를 조금은 덜 외롭도록 해주는"

    우리는 실패할 걸 알면서 산다. 삶은 실은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덜 젊은 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이 죽음이라는 관념을 정영수의 소설처럼 생각해본다. "우리가 새 물건을 그만 사게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 내가 지금 사는 물건이 헌 것이 되는 걸 내 눈으로 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은 얼마나 나이가 들었을 때일까." (<더 인간적인 말> 87쪽) 정확히 답할 수 없지만 우리가 삶에서 실패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내일의 연인들> 72쪽) 연인의 물음 이후 잠시 우리를 감싸는 적막. "그건 거부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을 선택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는데"(<내일의 연인들>, 69쪽)라고 해명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의 열기도 어느새 식어버린 자리. 연인과 나는 이혼을 앞둔 아는 누나가 비워둔 빌라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여름을 만끽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 역시 언젠가 지나갈 것을 안다. 실패를 예감하고 있는 연인들의 도시 생활. 우리는 왜 소설을 읽고, 연인을 만나고, 대화를 하는가. 정영수의 두번째 소설집 <내일의 연인들>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문학적으로 시도한다.

    정영수는 작가의 말에 "문학이라는 언어로 나누는 대화가 우리를 조금 덜 외롭도록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정영수의 시도들은 필연적인 실패를 전제로 하지만, 그 실패는 '차갑지 않다.' (평론가 신형철 추천의 글 中) <우리들>에서 시작해 <두 사람의 세계>에서 마무리되는 이 아름다운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무리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며 다른 세계를 시도한다. 지적이고 위트있는 문장, 각 단편의 마침표가 찍힌 자리마다 멈추어 소설의 진폭이 만들어낸 공간감을 음미한다.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거기 영원할 빛"(소설가 김연수 추천의 글 中)이 그곳에 머문다.

  • 비밀의 보석 가게 마석관 1
    히로시마 레이코 (지은이), 사타케 미호 (그림), 김정화 (옮긴이) | 길벗스쿨 | 2020년 11월 "<전천당>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 최신작"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작가 히로시마 레이코의 새로운 판타지물. '마석관'에 전시된 보석들의 이야기가 짧은 이야기 형태로 엮여 있다. 1권에서는 8개의 보석 그리고 8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수정, 루비, 위석, 묘안석, 문스톤, 터키석, 마노와 자수정, 산호에 얽힌 이야기들은 앞으로 펼쳐질 환상적인 보석의 세계를 기대하게 해준다.

    작가의 전작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에서 보여 준 다양한 사람의 모습과 그들의 욕망, 내면 깊숙이 숨겨진 인간성에 관한 표현이 <비밀의 보석 가게 마석관>에서도 유지된다. 욕심에 눈이 멀어 보석을 훔치고 저주를 내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반대로 자신을 희생하고 값비싼 보석을 내놓는 이들은 더 큰 행운을 돌려받는다. 작가는 눈앞의 이익보다 먼저 헤아려야 할 것을 8개의 이야기로 설명해준다. "진짜 위대한 것은" 빛나는 보석들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저마다의 보석이 감추고 있는 힘, 보석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이다.

  •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은이), 송은주 (옮긴이) | 민음사 | 2020년 10월 "조너선 사프란 포어,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대학에서 글쓰기를 배울 때, 교수님이 귀에 박히도록 강조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글 쓰는 기분에 젖어있는 상태를 경계하세요."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쓰는 기분만 내는 이들이 많고 그런 이들은 당연히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이번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멋대로 한 문장으로 추려본다면 "기후 위기를 막고있다는 기분에 젖어있지 마세요." 정도일 것 같다. 기분만 내면서 죄책감을 덜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은 이미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가 살던 대로 살 수 있는 미래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확실한 실천은 어려운 애매한 상태의 사람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는 '왜 우리는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기후 위기를 막을 행동을 실천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책을 연다. 왜 눈앞의 작은 위험에 대해서는 즉각 반응하면서 곧 다가올 거대한 재앙 앞에서는 눈을 돌리는지. 외면하고 싶은 마음의 손을 들어줘버리는지. 그러다 도움이 되지도 않는 작은 실천만 가끔 하고서는 위안까지 얻어버리는지. 그는 이 질문들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 모순의 한가운데에 자신의 갈등하는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이 나태한 태도를 떨칠 길을 찾아 나선다.

    기후 위기 앞에서 위선은 곧 영원한 실패로 연결될 것이다. 무언가 하고 있다는 기분으로 만족할 수 있는 때는 진즉 지났다. 이제는 다 같이 발버둥을 칠 때다. 정확한 방향의 실천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 내 경우 나태해지던 마음에 이 책이 다시 불쏘시개가 되었다. 이 책이 아닌 무엇이라도 좋으니, 각자 어떤 계기들로부터 힘을 얻어 발버둥의 파도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김려령 (지은이),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완득이> 김려령의 새 장편동화"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무허가 비닐하우스에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된 현성이와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 놓인 장우는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철거 직전 비닐하우스를 골라 둘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반응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즐거워했고 덕분에 현성이와 장우도 기뻐한다.

    갑작스레 바뀐 현실 속에서 즐거운 일을 찾아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삼촌의 거짓말에 속아 비닐하우스로 이사를 한 후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걸 본 현성이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새엄마가 이사 오고 친형이 일탈을 저지르는 걸 보는 장우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바깥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장우와 현성이의 환경을 보며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겉을 보고 평가하기는 쉽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과는 가장 먼 아이들이다. "최선을 다해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마해송문학상,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려령이 3년 만에 펴낸 장편 동화.

11.132020
  •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김현수 (지은이)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11월 "학교와 친구, 일상과 관계를 빼앗긴 아이들"

    어른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일터로 나가고, 쇼핑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이 너무나 힘들다고 한다. 3월, 짧은 봄방학이 끝나고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모두 모여 축하해주는 졸업식도, 설레는 마음으로 교정에 서는 입학식도 없었다. 겨울방학을 지나 다시 겨울방학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아이들은 집에 갇혀서 홀로 시간을 견디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문제를 고민한다. 학교 급식이 하루 식사의 전부이거나 집에서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의 안전 문제를, 점점 심하게 벌어지는 아이들의 학습 격차를 걱정한다. 등교를 시키냐 마냐로 토론이 이어지고, 긴급 돌봄을 누가 맡느냐로 논쟁이 벌어지지만, 여기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다. 어른들은 쉽게 말하곤 한다. 학교도 안 가고 온종일 집에서 빈둥대니 좋지 않냐고, 핸드폰만 붙잡고 있지 말고 공부도 하고 생산적인 일을 좀 하라고. '코로나 때문에 힘든 것이 있냐고 묻는' 어른들은 없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이자 대안학교 운영자인,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김현수 단장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학교와 친구, 그러니까 '일상'과 '관계'를 모두 빼앗기고 외로움과 두려움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020년 하반기 방역은 심리방역이 강조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제 어른의 목소리 말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보자.

  • 다산의 마지막 습관
    조윤제 (지은이) | 청림출판 | 2020년 11월 "공부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소학>으로 외면을 다스리고, <심경>으로 내면을 다스린다면 현인의 길에 이르지 않을까?" 오랜 귀양살이, 그 극단적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다산 정약용은 치심(治心)과 수신(修身)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으려 애썼다. 그런 그에게 참된 도움을 주었던 두 권의 책이 바로 <소학>과 <심경>이다. 2년 전, <다산의 마지막 공부>에서 <심경>과 정약용의 마음공부에 대해 깊이 살펴보았던 고전연구가 조윤제 저자는 이번 책에서 <소학>을 몸에 새기고 삶을 지키려 했던 정약용의 치열한 노력을 이야기한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와 그의 제자 유청지가 편찬한 <소학>은 오늘날의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책으로, 유교의 도덕 규범과 처신법 등 인간의 도리를 다룬다. 긴 유배 생활을 마친 예순의 정약용이 수신의 책으로 <소학>을 선택한 까닭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가 어릴 때 배운 '기본'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난 끝에 찾아온 그의 뉘우침은 또 다른 역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진한 울림을 전한다. 다시 나아가는 힘은 기본에서 비롯된다는 다산의 가르침을 깊이 되새겨 본다.

  • 괜찮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라면
    성진환, 오지은 (지은이) | 수카 | 2020년 11월 "오지은X성진환X흑당이의 행복의 모양"

    싱어송라이터이자 3권의 에세이를 펴낸 에세이스트 오지은의 신작이 2년 만에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전작들과 다르게 오지은 작가가 글을 쓰고, 성진환이 그림을 맡았다. 싱글이었던 오지은 작가는 현재 반려인 성진환과 반려동물 흑당이와 함께 산다. 그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의 이야기와 행복의 모양을 글과 그림으로 귀엽고 따뜻하게 담아냈다.

    오지은과 성진환의 첫 만남부터 결혼식, 결혼생활 이야기로 책의 문을 연다. 프리랜서면서 페미니스트 부부인 그들이 각자의 삶을 어떻게 존중하고 균형을 잡으며 살고 있는지, 흑당이라는 작고 소중한 존재를 가족으로 맞이한 후의 삶이 얼마나 충만해졌는지 각자의 시선에서 들려준다. 말랑말랑하고 유쾌하면서도 읽다 보면 뭉클함이 느껴지는 책이자,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책의 말미에는 새 가족 고양이 '꼬마'의 소식도 등장하여 훈훈한 마음과 행복감을 선사해준다.

  • 아파트가 어때서
    양동신 (지은이) | 사이드웨이 | 2020년 11월 "건설 엔지니어가 설명하는 도시의 작동 원리"

    건설 엔지니어인 저자 양동신에 따르면, 아파트와 공동주택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의 근저에는 무엇보다도 ‘친환경성’에 대한 해묵은 오해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인프라의 본질과 역할, 그 사회적 가치에 대하여 차분히 조망하며 아파트라는 거주 형태를 통해 우리가 문명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혁신적으로 뒤바꾼다.

11.172020
  •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은이), 정연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올리브 키터리지, 계속되는 이야기"

    80대의 올리브는 쓴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고. 피상적인 말들과 속물적인 것들을 가장 싫어하고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로 맞받아치며 평생 이웃의 미움과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올리브. 그가 전하는 노년의 삶은 지혜와 통찰, 확신과 여유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실수와 후회는 반복된다. 여전히 타인을 쉽게 재단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여전히 선택의 순간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알지 못한다. 혼란스럽고 외롭고 죽음이 두렵다. 어떤 깨달음이 있다면,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것이다.

    우리가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들. 소설은 작은 마을 크로스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실패하고 성공하고, 또 실패하고 성공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지리멸렬한 일상. 소설은 그 속에서 소중히 포착한 것을 내어놓는다. 일렁이는 빛의 명암과도 같은 찰나의 행복과 삶이 기꺼이 내미는 다정한 순간들. 사람들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라는 감탄사를 가만히 되뇌게 하는 순간들. "쇠락한 육신과 해진 마음에도 여전히 사랑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은", "하루의 마지막 금빛이 세상을 여는 것은", "세상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가,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들을. "그래도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고 중얼거리는 올리브를 바라보며, 무언가 마음 속에 따뜻한 것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아주 오래된 유죄
    김수정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형량에 대하여"

    이 책에는 여러 슬픈 사례들이 등장한다. 저자가 지난 20년간 법정에서 마주해 온 이 사건들은 모두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난 개별적 사건이지만, 읽다 보면 어떤 반복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너무 많은 여성들이 너무 많이 말해온 이야기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본다. 납득할 수 없이 여성에게 불리한 판결이 한두 건일 땐 법관 개인의 문제다. 비슷한 판결이 매번 되풀이된다면 문화의 문제다. 여성을 우습게 보고, 탓하고, 괘씸하게 보는 문화가 지배적인 사법부의 문제다. 피클 통에 담긴 오이는 피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지금 사법부는 그 자체로 여성 혐오의 피클 통이다.

    사법부가 피클로 절여질 때, 여성은 죄인이 되거나 죽어난다. 이 책은 피클 통의 입구에 서서 여성들을 위해 변론해온 변호사가 쓴 여성의 역사다.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이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인가” 저자는 묻는다. 우리가 온 길과 우리가 서 있는 곳과 우리가 갈 길 위에 흩뿌려진 여성들을 무겁게 떠올리게 되는 책이다.

  •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루리 (지은이) | 비룡소 | 2020년 11월 "제26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운전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진 당나귀 씨, 직장이 이사 가버린 바둑이 씨, 얼굴이 험상궂어 편의점에서 일할 수 없는 야옹이 씨, 좌판에서 쫓겨난 꼬꼬댁 씨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다. 갈 곳을 잃은 그들이 터벅터벅 걷다가 만난 것은 빈집에 모여있는 도둑들.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은 도둑들은 놀란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네."

    도둑과 동물들은 자신에게 남은 소중한 음식과 식기를 모아 김치찌개를 끓인다. 그리고 상상해본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함께 힘을 모아 김치찌개 가게를 차렸으면 어땠을까? 결국은 브레멘에 도착하지 못한 '브레멘 음악대'처럼, 갈 곳을 잃은 이들이 모여 소박한 식사를 앞에 두고 꿈같은 상상을 해보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결코 우울하거나 서글프지 않다. 뒷면지에서는 동분서주하며 가게를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는 못했지만, 희망은 남는다.

    '사회 문제와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위트 넘치는 작품.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묘사, 그리고 곳곳에 스며든 유머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는 평과 함께, 2020년 제26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했다.

  • 사랑이 한 일
    이승우 (지은이)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 내가 지시하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 (창세기 22장) '생의 이면'을 바라보는 작가, 이승우가 창세기를 인간의 이야기로 다시 썼다. 바치라 말하는 전능하신 신과 바치겠다 말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 이삭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것은 사랑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사랑이 한 일> 97쪽) 가장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제물로 바쳐야 했기에 자기 자신의 몸이 아닌 아닌 아들의 몸을 바쳐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 일의 시작이라면, 이 사건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 맞다. 그렇지만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반복해 말하면 사랑이 이유이므로 납득할 수 있나. 불가해만 남은 텅 빈 자리에 우리가 인간다움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

    소돔의 마지막 밤, 자신의 아이와 함께 사막에 버림받은 하갈,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 아브라함, 이삭의 끝없는 허기와 편애, 신의 존재를 인식한 야곱. 이승우는 성경의 빛나는 순간들을 연작 소설의 형태로 묶어 논리의 여백이 없는 단단한 문장으로 인간다움에 대해 묻는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옳지 않습니다." (<하갈의 노래> 89쪽) 아무리 외치고 물어도 들리지 않는 대답. "그렇지만 사랑하지 않거나 조금만 사랑하기가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거예요."(<사랑이 한일> 107쪽) 납득해보려 해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탐식. "법과 도리의 세계에서 사는,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그것을 넘어서고 뛰어넘으려고 할 때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허기와 탐식> 148쪽) 계속되는 질문. 답을 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되는 그 물음이 만약 소설이 된다면 꼭 이승우의 이 소설 같을 것이다.

11.202020
  •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은이), 함규진 (옮긴이)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마이클 샌델, 8년 만의 신작!"

    능력주의에 대한 의심이 날로 커짐을 느낀다. 올해 출간된 능력주의를 고발하는 책만 꼽아봐도 벌써 여러 권이다. 시대의 정의를 고민하는 학자 마이클 샌델 또한 이번 저서에서 능력주의의 위선을 일갈한다.

    샌델이 보는 능력주의는 곧 '세속적 성공과 도덕적 자격의 결합'이다. 능력주의가 공공선인 사회에서 노력과 능력은 개개인의 부와 성공에 대한 알리바이가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 성공을 이룬 삶은 겸양을 기를 필요가 없고 가난한 이들은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린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삶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 크면 클수록 우리 삶의 결과에 대해 찬양하거나 비하할 소지 또한 커진다." 마이클 샌델은 종교의 섭리론과 역대 미 대통령들이 조성한 담론들을 통해 현재의 능력주의 사회가 형성된 배경을 분석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이 시대에 공정이란 무엇일까. 공정함에 대한 집착과 능력주의에 대한 의심이 함께 커지는 혼란함 속에서, 마이클 샌델이 여러 질문과 답들을 던졌다. 이 화두를 이어받아 의미 있는 논쟁들에 불이 붙길 바란다.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은이) | 사계절 | 2020년 11월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의 세계는 넓어진다""

    우리 모두 한때 어린이였고, 우리 곁에는 늘 어린이가 있다. 그런데, 어린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독서 교육 전문가 김소영은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만난 어린이들의 이야기, 어린이들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놓으며 함께 어린이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손 내민다.

    어른보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만 스스로 신발 끈을 묶을 줄 아는 현성이, 마음을 담은 책을 선물로 건네는 자람이, 생활 계획표를 '게임, 야구, 놀기, 텔레비전 보기, 휴식, 잠'으로 빈틈없이 채운 현우 등 다양한 얼굴의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김소영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마음을 다하여 바라보고, 함께 호흡하고, 함께 나눈 시간과 경험을 이 책에서 들려준다. 저자의 시선에서 섬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과 감동을 주고, 때로는 어린이를 잊고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다. 어린이의 세계에 다시 진입할 수 있도록 여러 감각을 깨워줄 뿐 아니라, 어린이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와 마음에 관해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어린이라는 세계>. 이 작은 책이 우리의 세계를 넓힐 수 있는 문이 되어줄 것이다.

  •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조원재 (지은이)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방구석 미술관> 이번엔 한국 미술!"

    내 방구석으로 고흐와 모네를 초대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신선한 설정으로 15만 독자의 선택을 받은 미술 분야 베스트셀러 <방구석 미술관>이 이번엔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한다.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부암동 환기미술관의 김환기. 이 책과 함께 거닐면 우리집 '방구석'이 미술관 정원이 된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부터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열 명의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풍부한 도판과 함께 유려한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한다.

    이중섭부터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까지, 각 화가의 이야기를 따라 듣다보면 작품을 보는 눈이 트인다. 바다 건너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은박지에 '소'를 그려온 이중섭의 마음. 이혼 후 아이들을 잃고 절과 거리를 떠돌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나혜석의 마음. 번잡한 도시 대신 덕소에 터를 잡고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201쪽)하며 밤을 보냈을 장욱진의 마음. 그들의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품의 아름다움을 누구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전달하는 친절한 해설이 장점. 2탄에서도 팟캐스트 '방구석 미술관'의 QR코드를 함께 실어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게 했다.

  • 염소 4만원
    옥상달빛 (지은이), 조원희 (그림) | 그린북 | 2020년 11월 "옥상달빛 x 조원희, "염소 덕분에 학교 간단다." "

    "아프리카에선 염소 덕분에 학교 간단다." 주로 일상 속 진솔한 이야기를 곡에 담아온 듀오 밴드 '옥상달빛'. 동갑내기 두 친구가 아프리카 봉사 활동을 다녀온 뒤 만든 노래 '염소 4만원'은 특유의 발랄한 리듬과 의미 있는 메시지로 특히 학교 현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초등학생들이 노래에 맞춘 그림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등 활동자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 조원희도 아이들이 만든 뮤직비디오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조원희 작가는 옥상달빛의 노래처럼,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그림처럼, 밝고 씩씩한 응원의 느낌을 가득 담아 그림을 그렸다. 동생을 업고 물통을 이고 염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프리카의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방을 들고 활짝 웃으며 씩씩하게 학교 가는 아이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경쾌하고 발랄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전하는 옥상달빛의 노랫말이 조원희 작가의 감각적인 그림을 만나 따뜻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11.242020
  • 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은이), 양영란 (옮긴이)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기욤 뮈소, '작가와 소설에 바치는 오마주'"

    로맹 오조르스키는 지금까지 쓴 19권의 소설을 모두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려놓으며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타이틀을 얻었다. 유명세는 로맹에게 성취의 표식이자 강력한 족쇄다. 모두가 그의 상업적 성공을 인정하지만 뻔한 작가라는 편견을 덧씌우기 때문이다. 신작을 발표해도 더는 문학계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저 '연례행사' 정도의 취급을 받으며,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도 같은 질문들만 반복될 뿐이다.

    진부한 작가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 로맹은 변신을 감행하기로 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결심이다. 로맹은 이름을 바꾸고 지금껏 한 번도 다루어본 적 없는 소재의 참신한 소설을 쓰고자 한다. 그러나 로맹의 비밀스러운 구상이 현실이 되어 새로운 작가가 탄생했을 때, 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까지 함께 터져나오고 만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 변신을 시도해온 기욤 뮈소가 이번에는 그 자신을 가장 연상케하는 등장인물과 함께 돌아왔다. 소설 속 소설과 여러 작가들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소설. 기욤 뮈소가 자신의 삶을 담아 "위대한 작가와 소설에 바치는 오마주"를 만난다.

  • 슬로싱킹
    황농문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생각의 습관을 바꿔라!"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고대 그리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올림픽의 정신을 계승하기라도 하듯 오늘날 현대인들은 지금 상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주어진 시간의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과정보다는 결과이기 때문일까, 특히 빠름에 대한 갈망이 그렇다. 단기 속성 공부법이나 속독법, 빠른 암기법 등에 비해 명상과 같이 현재에 오롯이 집중할 것을 권하는 책들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하다. 그럼에도 <몰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우리가 몰입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혹시 빠른 몰입을 통해 주어진 문제를 후다닥 해치워 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몰입 전도사 황농문 교수는 이번 신작에서 조급한 우리들의 기대와 오해를 바로잡는다. 산만함에서 고도의 몰입 상태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몰입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슬로싱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슬로싱킹은 몇 개월, 몇 년 이상의 긴 시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난이도에 맞는 충분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심각해질 것까진 없다. 슬로싱킹의 전제조건은 명상하듯 편안하고 느긋한 상태니까. 책에 담긴 독자들의 체험담과 함께 이제 천천히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 보자. 황 교수의 말처럼, 그것은 가슴 벅찬 삶의 변화를 위한 일이다.

  • 스켑틱
    마이클 셔머 (지은이), 이효석 (옮긴이) | 바다출판사 | 2020년 11월 "회의하고, 회의하고, 회의하라!"

    얼마 전 유튜브에서 '쌍꺼풀이 생기는 주파수' 영상을 봤다. 이게 무엇인고 하고 클릭해봤더니, 특정한 주파수를 들으면 쌍꺼풀이 생긴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고 조회수는 10만이 넘었다. 해당 채널엔 피부가 좋아지는, 코가 높아지는 등 각종 주파수 영상이 게재되어 있었다. 세계의 한 쪽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대신할 머지않은 미래에 대해 논쟁하고 드론 택시가 상용화되는 동안에도 세계의 다른 한쪽에서는 밤마다 쌍꺼풀 주파수를 듣는다.

    왜 사람들은 과학이 아닌 것을 믿는가? 여전히 비과학적인 대상에 대한 맹신이 넘쳐나는 세상을 보며 <SKEPTIC>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는 사람들에게 과학의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가설을 검증하고 의심하고 시험하는 자세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기본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bullshit"에 혹하게 된다. 그는 이번 책에서 유사과학, 초자연적 현상, 외계인과 UFO, 대체의학 등의 주제를 하나하나 다루며 지금 앞에 놓인 정보를 의심할 것을 끝없이 강조한다. 회의하고, 회의하고, 회의하라!

  • 결과가 증명하는 20년 책육아의 기적
    서안정 (지은이)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11월 "평범한 아이를 책벌레로, 20년 책육아 노하우"

    <엄마 공부가 끝나면 아이 공부는 시작된다>의 저자이자, 사교육 없이 세 아이를 모두 영재원, 과학고 등을 거쳐 원하는 명문대에 합격시킨 엄마 서안정의 신작. 아이들 간의 학습 격차가 벌어지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유혹이 점점 많아지는 요즈음의 환경에서도 행복한 책육아는 가능하다고,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수많은 엄마와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책육아가 불가능한 아이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책보다 스마트폰에 빠져 있더라도 분명 책을 즐기는 아이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어떤 아이라도 언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처음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먼저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깨달은 책육아법,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또 아이와 함께 자라온 20년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많은 추천 도서와 다양한 독후활동을 소개하여, 막연하게 느껴지는 책육아에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엄마와의 독후활동이 놀이이고 엄마의 사랑이어서 행복했다는 아이의 편지와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독후활동 예시가 인상적이다. 무려 애니메이션을 만화책으로 옮긴 <베이블레이드 버스트> 읽기. 엄마들이 꺼리기 십상인 만화책으로 구연동화, 색칠놀이, 수련놀이, 인형극, 요리, 토론까지 가능하다니! 아이들이 엄마를,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다.

11.272020
  •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홍은주 (옮긴이)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소설집"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신작 소설집으로 돌아왔다. 청춘을 에워싸던 음악들과 영혼 깊숙한 곳에 가닿아 '나'를 변화시킨 음악들, 퇴근길에 들이키던 맥주의 맛과 야구에 대한 오랜 애정, 그리고 알지 못할 사이 인생의 행로를 조금씩 틀어왔을 사소한 기억의 편린. 일인칭 '나'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여덟 개의 이야기로 하루키 월드를 다시 만난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무수한 사건과 감정을 회상하고 기록하는 마음에 대하여. 그것을 통과하던 시기에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하고 끝내 받아들 수 있게 되는 것은 더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아졌기 때문일까. 70대에 접어든 노작가가 덤덤히 돌아보는 생의 뒷모습이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온 크고 작은 순간들을 떠올려보게 한다. 압도적인 일인칭으로.

  •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유발 하라리 (원작),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긴이),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0년 11월 "그래픽으로 읽는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열풍 속에서 덩달아 구매했지만 앞부분만 읽다가 덮어둔 채로 속절없이 가는 세월만 탓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 알고 있다. 호킹 지수가 괜히 생겼겠는가. 책장 속에서 소복이 먼지 쌓여가는 이 벽돌 책을 보며 죄책감 가지던 분들이 반가워할 소식이다.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는 <사피엔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지만 약간의 각색과 연출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그래픽 노블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에 끼얹어진 재기 넘치는 그림들은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다.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통찰을 흘려보내지 않고 다시 살필 기회가 온 것이 반갑다. <사피엔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중도 포기했던 독자에게도, 다 읽었지만 가물가물하여 다시 읽어보고픈 독자에게도 좋을 책이다.

  •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은이), 민승남 (옮긴이)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김연수 "이건 완벽한, 단 하나의 세계다.""

    오프라 윈프리, 록산 게이, 마돈나 등이 즐겨 읽었으며 김연수, 이제니 등의 작가가 함께 읽기를 권하는 시인,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의 시집이 처음으로 우리 독자를 찾았다. 원문과 나란히 행갈이마저 섬세하게 배치된 한국어 시어들, 메리 올리버를 소개해 온 번역가 민승남의 세심함이 시를 시각적인 관점으로도 인식하게 한다.

    천진난만한 자연세계의 관찰자, 메리 올리버는 "가끔 나는 나무 한 그루의 잎들을 세느라 종일을 보내지. 그러기 위해선 가지마다 기어올라 공책에 숫자를 적어야 해."라고 적는다. (<어리석다고? 아니, 그렇지 않아> 중, 23쪽) '무수한 잎들, 고요한 나뭇가지들, 나의 가망 없는 노력.' (같은 시) 속, 경이감은 도처에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뻐,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참으로 기뻐." (<만약에 내가>중, 29쪽) 우리가 메리 올리버처럼 '바위, 연못, 의자, 빗방울 같은 것들'(옮긴이의 말 중)의 자매가 되어 이 시와 같은 말을 진심으로 외칠 수 있다면, 필시 우리의 삶도 "저절로 아름다워"(김연수의 추천사 중)질 것이다.

    메리 올리버는 시에 관한 에세이 <긴 호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가 그런 사람들에게 의미를 지니려면, 그들이 먼저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물질에 구속된 사리추구적 삶에서 벗어나 나무들을 향해, 폭포들을 향해 걸어야 한다."(<긴 호흡> 42쪽) 시인처럼 말하고 시인처럼 생각하기, 우리는 어느덧 메리 올리버처럼 걷고 있다.

  •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
    짐 로저스 (지은이), 전경아 (옮긴이) | 리더스북 | 2020년 11월 "열기가 뜨거울수록 위기를 대비하라"

    코스피 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10월을 2267.15로 마감했던 코스피 지수는 11월 26일 현재 2625.91로 16%의 상승률을 보였다. 11월만 놓고 보면 16번 오르는 동안 단 3번 하락했으며, 3월 19일에 1457.64까지 내려갔던 것에 비하면 무려 80%나 상승한 수치다. 누군가는 고진감래라며 기뻐하겠지만 누군가에겐 호사다마가 아닐지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열기에는 분명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개미들이 팔게끔 하려는 기관의 겁주기 전략이라며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위기는 이렇게 짧게 끝나 버린 걸까? 경제는 정말 반등에 성공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다가올 더 큰 위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에게서 힌트를 들어 본다. '블랙 먼데이'를 예측하고, 굵직한 경제 위기들을 겪어낸, 그리고 결과적으로 큰 돈을 벌었던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투자 원칙은 물론 버블과 위기를 포착하는 혜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10년, 15년 주기설의 진위 여부를 떠나, 위기의 신호를 읽고 한발 앞서 행동하는 자만이 돈을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은 뜨거운 시장에서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원칙 중의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