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학> 그 너머, 이제 우리는 '부의 축적'이라는 단계를 지나 '부의 운용'이라는 더 깊고 근원적인 철학을 마주해야 한다. 수많은 이들이 '어떻게 더 많이 벌 것인가'라는 숫자의 성벽을 쌓는 데 매몰되지만, 정작 성벽 안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어떻게 쓰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차원적인 감각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속담의 진의는 결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벌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은 부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정승처럼 쓰는 법' 그 자체에 있다. 부의 품격은 통장에 찍힌 숫자의 잔고가 아니라, 그 돈을 대하는 단단한 태도와 돈이 흘러가는 지혜로운 방향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초월적인 힘을 어디에, 왜 써야 하는지 깨달은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영웅으로 각성했던 슈퍼맨처럼, 우리 역시 돈이라는 도구의 가치를 명확히 정의할 때 비로소 책임감이 동반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결국 돈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모건 하우절이 제시하는 '부=가진 것-원하는 것'이라는 명쾌한 방정식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핵심 변수는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원하는 것'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있다. 당신은 돈의 주인인가, 아니면 돈이 당신의 주인인가? 돈을 잘 다루는 능력은 스프레드시트나 엑셀이 아닌 자기 인식에서 비롯되며, 순간적 행복이 아닌 지속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를 누리는 길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미 가진 것으로 인생에서 최대의 가치를 얻는 법, 진짜로 '가질 만한 것'을 원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돈은 우리를 복종시키는 주인이 아니라, 우리를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돈을 지위와 성공의 기준 그 이상으로 다루기 위한 길을 제시한다.
훗날 내 아이에게 숫자 너머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부모로서 어떤 뒷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하며 이 책의 모든 페이지를 밑줄로 채우며 정독하고 또 정독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 경제경영 MD 김진해
저자의 말
"인생은 돈을 어떻게 버는가가 아닌 '돈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돈의 방정식>에는 현명한 선택을 통해 삶의 자유와 독립을 찾는 법을 담았습니다. <돈의 방정식>은 <돈의 심리학>의 완벽한 후속작입니다."
허공에 발차기를 하게 되는 수치스러운 기억, 자꾸만 추측하게 되는 타인들의 나에 대한 평가, 끊임없이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이 모든 것엔 '자아'가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만일 자아라는 개념이 허구라면? 하나로 통합된 나라는 존재가 애초에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스스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미국의 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아부어는 '자아'란 좌뇌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좋아하는 좌뇌가 우리 행동에서 패턴을 읽어내어 허상의 개념을 만들었고, 우리 사회가 좌뇌 중심의 인간상 위주로 흘러가며 우뇌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져 버렸다는 것. 그는 좌뇌와 우뇌 고유의 기능을 설명하며, 전체를 관망하고 직감을 제공하는 우뇌의 힘을 믿어볼 필요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서양의 신경심리학을 동양의 '무아' 사상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서양의 과학이 뒤늦게 밝혀낸 사실을 동양에선 이미 오랜 철학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는 '무아'가 우뇌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동서양의 철학과 과학을 흥미롭게 풀고 엮으며 우리의 오해로부터 비롯되는 괴로움을 풀 방법을 알려주는 책.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지만 읽기의 난이도에 비해 얻을 것이 많다. 카이스트 뇌과학자 김대수가 추천했다.
- 과학 MD 김경영
이 책의 한 문장
대부분의 사람에게 '나'는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니 내가 사람들에게 "나라는 건 사실 거기 없어요.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는."이라며 신경심리학자의 입장을 얘기하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인류가 문명과 지구 환경을 스스로 파멸시킨 핵전쟁 이후, 생존자 릴리스 이야포는 어딘지 모를 곳에 감금된 채 또다시 눈을 떴다. 정체 모를 존재에게 납치되어 알 수 없는 공간에 감금된 채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는 이제 알 수 없었다. 문도 창문도 없는 방, 그리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목소리의 존재는 여태껏 그에게 질문을 던질 뿐, 그의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어둑한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낸 존재, 온몸을 덮은 예민한 촉수로 세상을 감지하는 외계 종족 오안칼리의 일원인 스다야는 릴리스가 그들에게 포획된 지 이미 250년이 지났으며 그 사이 그들이 지구 환경을 복구해 두었다고, 그리고 릴리스를 비롯한 남아있는 인류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단, 그들이 제안하는 ‘거래’에 응한다면.
흑인 여성 작가라는 정체성을 마주하며 혹은 이를 뛰어 넘나들며 인류의 본질을 가장 예리하게 파고든 거장 옥타비아 버트러의 ‘제노제네시스’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인종, 성별, 계급이 얽혀 발생하는 권력의 위계를 철저히 해부하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윤리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 작가의 1987년 작인 이 소설에서는 그 논의의 단위를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관계를 넘어 아예 생물학적 존재 양식 자체로 과감히 이동시켜 인간성을 질문하고 재정의한다. 핵전쟁으로 자멸한 인류를 구원해 주며 자신들과의 유전적 융합을 요구하는 외계 종족. 그리고 그 결합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포스트휴먼의 창세기라 할 만 한 거대한 이야기.
- 소설 MD 박동명
이 책의 한 문장
방금 말한 그 조치 또한 그들이 릴리스의 몸에 동의 없이 저지를 짓이었다. 아마도 릴리스 본인을 이롭게 하려고. “그건 우리 인간들이 동물을 다루던 방식인데.” 그녀는 씁씁하게 중얼거렸다.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후 7년 만에 만나는 이제니의 시집은 헌사로 시작된다.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이 시집은 듣는 이에게 화자와 같은 입장이 '되기'를 청한다. 각자의 상실과 부재의 기억을 안은 채 우리는 이제니적인 음률로, 이제니의 시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맞춰 겨울 묘지를 거닌다. 이 한낮의 겨울 묘지는 '누군가 영영 잃어버린 낱말들의 공동체 같아서 / 누군가를 대신해 울어주는 공평한 입술 같아서' (<멀리서 들려오듯 가까이에서> 30쪽) 걸음은 이어진다. 그렇게 시가 놓인 대로 화성을 쌓아 나아가면 시집의 말미에서 만나는 것은 '되기' 연작이다. 이 연작이 청하는 대로 곁에 누워본다. 잿빛 위의 작은 파랑이, 말라가는 물감의 표면이, 그밖의 모든 것이 되어본다.
이제니는 움직이는 것들, 흐르는 것들, 진동하는 것들에 관해 말해왔다. 시가 음악이라는 걸 환기하는 반복의 리듬을 따라 소리내어 읽는 동안 틀림없이 시간이 흐른다. 이 흐름에 입술을 맡기는 일. '이제는 말보다 먼저 빛이 다가온다.'는 시인의 말을 믿고 빛이 지나가는 것을 감각하는 일. 쓰고 읽고 읊고 걷고 물방울이 되는 꿈을 이제니의 시와 함께 꾸길 바란다. <되기- 마지막에서 시작되는 첫 장면>을 빌려 말하자면 '그리하여 / 너의 인물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 시 MD 김효선
이 책의 한 문장
영원이 미래의 얼굴을 돌아볼 때 바람과 들판은 손을 잡을 수 있다. 사위어가는 빛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다. 야위어가는 빛이 있다면. 내면에서 울리는 음률을 들을 수 있다.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