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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을 읽어본다. "대상과 세계에 솔직한 말을 걸고 싶었다. 둘러대지 말고 짧게 선명하게". 이 말은 이 시집을 받아들이는 길잡이가 된다. 시인이 보았을 풍경들. 애월에서, 바라나시에서, 정류장에서, 마애불 앞에서, 꽃길에서, 호수에서. 시인은 보고 느끼고 가급적 선명하게 적는다. 봄볕처럼 순정하고 온화한 시들은 서럽고 환하다.
소멸하고 이별한다. 사라지고 무뎌지지만 시는 격정을 토로하지 않는다. '밝은 곳과 어둔 곳의 경계'가 사라진 얼굴, '눈두덩과 눈, 콧부리와 볼, 입술과 인중, 목과 턱선의 경계'가 사라진 마애불을 보고 온 후, ' 내 위로 무엇인가 희미하게 쓸려 흘러가는 것'을 느끼는 것. (여시(如是) 中) 사라짐이라는 것은 결국 '평범해지고 희미해지는 것'을 불현듯 깨닫는 것.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中) '누운 소와 깡마른 개와 구걸하는 아이와 부서진 집과 (....) 뱀과 오물과 신(神)과 더불어 나도 구름 많은 세계의 일원(一員)' (일원 中)임을 내 안에서 마침내 소화하는 것. 세계는 필연적으로 소멸하고, 개인의 서정도 그러할 것이다. 이 모든 자연의 섭리가 온화하게 순환할 때를 시는 가만히 기다리는 듯하다. <가재미> 문태준의 여섯번째 시집. 먼 훗날 곱씹어보았을 때 한결 기쁨이 될 시의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