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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풀리지 않는다.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마감에 이르면 어떻게든 쓰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글은 마감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진척이 없다. 꽉 막힌 사무실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제때 마감을 했다. 시간이 도와주고 공간에는 문제가 없다면, 정녕 무엇이 문제일까. 물론 나 자신이 가장 큰 원인겠지만, 오늘은 이 책을 탓하고 싶다.
프랑수아즈 사강, 한나 아렌트, 실비라 플라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수전 손택, 버지니아 울프 등 당대를 수놓고 오늘을 비추는 서른다섯 명의 여성 작가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글을 썼는지 스케치하는 이 책은, 글을 쓰는 장소가 경우에 따라 피난처나 낙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옥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지만, 지나간 그들의 고통은 빛으로 남고 지금 겪는 내 고통은 어둠으로 가득할 뿐이다. 서둘러 이곳에서 벗어나 그들의 공간으로 도망치고 싶다. 세상을 집처럼 여기고 글쓰기를 삶으로 가득 채운 그들 곁이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