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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할머니와 나는 목성을 봤다. 목성의 흐린 줄무늬를 봤다. 할머니는 아이처럼 감탄하면서 접안렌즈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 (99쪽) 할머니와 엄마의 사이가 나빠 오래 만나지 못한 할머니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곳은 희령. 지연은 이혼 후 희령에서 천문대 연구원으로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오래 혼자 살아온 할머니는 화사한 빛으로 '일복'을 맞춰입고 동료인 할머니들과 소소한 노동을 하며 자신을 스스로 돌보며 사는 법을 안다.
할머니와 지연의 공통점은 말이 없고 잘 참는 아이였다는 것. 자신의 어머니가 백정이라는 아이들의 놀림에 어떻게 대처했냐는 지연의 질문에 할머니는 "난 그런 걸 말하는 애가 아니었어."(95쪽)라고 대답하고, 그 대답에서 지연은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같은 쪽)가던 자신을 발견한다.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증조 할머니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으며, 지연은 증조할머니 - 할머니 - 엄마 - 나로 이어지는 모계서사의 백 년의 시간과 만난다. "우리 대견한 영옥이. 아가 아처럼 울지도 않구, 마음 다 감추고 사느라 얼마나 서럽구 외로웠어."(115쪽)라고 달래주던 새비 아주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로,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86쪽)던 지연이 치유된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단 두 권의 소설집만으로도 문장의 질감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작가 최은영이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자꾸 '왜'를 묻곤 했던, 그저 있는 그대로인 내 모습 그대로 용인받고 싶었었던 우리의 유년을, 그 외로움을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왜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잔인한 일을 저지르냐고, 왜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영영 없어져버리는 거냐고, "천주님에게 사과받고 싶"(124쪽)다고, 언젠가 별이었을, 우리의 몸에 깃든 이 고통은 무엇이냐고. 그 서럽고 외로웠던 이들의 물음에 응답하는 답장. 최은영이 편지를 쓴다. 이제 밝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