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이갈리아의 딸들>의 세계"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역할 체계가 뒤바뀐 가상의 세계를 그려 현실의 모순를 드러내고, 이를 바탕으로 문명이 나아갈 방향을 살핀다. 이렇게 설명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성역할을 뒤바꾸는 일은 현실을 거울에 비춰 반사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각자의 역할을 바꾸려면 그 세계를 구성하는 문법과 이를 이해하는 체계를 모두 새롭게 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부계사회에 익숙한 오늘날 세계가 이를 상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해지)고, 그래서 재미난 상상과 도전이 닥쳐와도 모른 척하고 지나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이제는 생각하기 귀찮다고, 바꾸기 어렵다고, 그런 세계는 불가능하다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현존하는 <이갈리아의 딸들>의 세계, 즉 가모장제 모계사회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로펌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던 추 와이홍은 끝없는 경쟁과 그 끝에 굳건히 자리한 남성중심 문화를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중국 윈난성 외딴 곳, 여신을 모시는 부족이라는 호기심에 끌려 찾아간 땅에서, 오랫동안 가모장제 모계사회로 살아온 모쒀족을 만났고, 이 이야기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전한다.
간단하게는(?) 결혼, 이혼, 불륜 같은 개념이 없다는 데에서 출발하지만, 가장이 바뀌고 역할이 달라지니, 단순히 지금의 권력이 뒤바뀌는 상황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공동체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그토록 찾아 헤멘 '오래된 미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생기는데, 그런 한편 현대 문명이 그곳에 들어가면서 가부장제 부계사회로 변화하려는 마음도 생겨나는 걸 보면, 이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며, 그곳이 아니라 결국 이곳에서 바꿔가야 할 문제라는 게 분명해진다. 새로운 상상력이 현실에 맞닿아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내길, 이 책이 그 단초가 되길 강력하게 바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사회과학 MD 박태근 (2018.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