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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삑!
붉은색 빛이 반짝였다. 바코드 기계는 물건의 가치를 숫자로 토해 냈다.
“2700원입니다.”
무료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카드 한 장이 내밀어진다.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카드를 받아서 카드기에 긁고 말한다.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손님도 귀찮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그어 내리면서 사인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상호작용은 그것으로 족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철우는 고개를 숙여 편의점을 나서는 남자의 등을 향해 인사했다. 인사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녘을 향해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고 이때의 손님들은 대부분 취객들이거나 방바닥 폐인들의 경우가 많았다.
술에 취해 봉변을 안 당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철우였다.
“후우! 이제 한 시간 남았구나.”
철우는 오늘도 무사히 아르바이트를 마쳤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낮보다 손님이 드물면서도 알바비가 높았다. 그 때문에 한가한 시간이 상당히 많아서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편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며칠 전에도 취객이 난입해서는 가게의 물건들을 전부 엎어 놓은 일이 있었다.
경찰을 부르고 그 취객과 드잡이질을 하느라고 아직도 얼굴 한 쪽이 부어 있다.
철우는 그 취객이 파출소로 끌려가고 난 뒤에 엉망이 된 편의점을 보며 망연자실했었다.
그런 날이 한 달에 두어 번은 있었으니 야간 아르바이트가 꼭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우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두꺼운 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덟 시간 근무 중에 겨우 두 페이지 넘겼네.”
철우는 전형적인 88만 원 세대이다.
대학을 졸업을 할 나이는 되었지만 취직을 하지 못해 휴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청년 백수들이 그러하듯이 수십 장이 넘는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썼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우습게 생각하기라도 한 듯이 번번이 서류 통과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계속된 실패는 자존심을 짓밟고 결국에는 자신감마저 사라지게 만든다.
덕분에 꿈도 희망도 사라져 버린 철우였지만 그렇다고 마냥 놀고만 있기에는 주변의 시선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두꺼운 공무원 책을 보고 있었지만 이미 자포자기 상태인 철우의 머릿속으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철우는 항상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짤랑!
철우가 억지로, 억지로 공무원 책을 보려고 하고 있을 때 편의점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무의식적으로 외치는 목소리에는 철우의 현재 상태처럼 가득 귀찮음과 피곤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 왔다.”
“아! 상준이 형!”
상준이라고 불린 남자는 조금 힘이 들어가는 철우의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철우의 상태를 아는지라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또한 그런 철우와 같은 상태였던 것을 떠올린 것이었다.
하지만 상준은 철우의 앞에 놓인 공무원 시험 책을 보고서는 결국 한마디 말을 하고야 말았다.
“야! 이 새끼야! 그딴 식으로 해서 언제 공무원 될래!”
철우는 자신을 생각해 주는 상준임을 알고 있었지만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울컥한다고 자신이 상준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상준은 할 일 없이 집구석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자신을 편의점에 아르바이트라도 시켜 준 고마운 선배였다.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고 고립되어 있었다면 철우는 정말이지 견디지 못했을 것이었다.
“죄송해요, 형.”
“됐다! 니가 나한테 미안할 것이 뭐가 있겠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거 가져가서 먹어.”
상준은 날짜가 지나 버린 삼각 김밥과 도시락을 봉지에 담아서는 철우에게 내밀었다. 야간 아르바이트가 주간 보다는 높다지만 아르바이트는 단지 아르바이트일 뿐이었다.
최저 생계비에 겨우 턱걸이를 하는 돈으로는 서울에서 버텨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돈을 아껴야만 방세나 학원비를 모을 수 있을 터였다.
“고마워요, 형.”
철우는 상준이 내민 검은 봉지를 받아서는 상준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정리해 편의점을 나왔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가 되었지만 어둑어둑한 것이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이거 비가 오려나?”
편의점에서 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철우는 우산을 챙기러 편의점에 다시 들어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빨리 뛰어가면 되겠지.’
철우는 뛰기 시작했다.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가 상준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철우가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쏴아아!
빗방울은 이내 폭우로 변하기 시작했다.
“제기랄! 하필이면 지금 내릴 게 뭐람!”
철우는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하는 폭우에 발을 더욱 빨리 놀렸지만 이미 온몸이 비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었기에 비를 맞으며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아!”
겨우 원룸에 도착을 한 철우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인 자신의 상태를 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철우는 원룸의 문을 열고서는 다녀왔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원룸에는 찬기만이 자신을 맞이해 주고 있었다. 고작해야 6평 남짓한 방 안에는 침대 하나와 컴퓨터 책상, 그리고 자그마한 냉장고가 다였다.
이런 곳에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는 없었지만 철우는 이 좁은 원룸을 나갈 때나 들어올 때 항상 누군가에게 하듯이 인사를 했다.
철우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서는 비에 젖은 옷을 전부 벗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보통이었다면 그냥 침대에 몸을 던져 버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온몸이 비에 젖어 버려서 샤워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뜨거운 물이 철우의 몸을 따뜻하게 덥히자 철우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막상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씻기보다는 뜨거운 물에 몸을 맞기고 있다가 화장실을 나온 철우였다.
“잠이 달아났네.”
간혹 선잠을 자기는 했지만 밤새도록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철우는 상준이 준 삼각 김밥을 뜯으면서 컴퓨터를 켰다.
적당히 놀다가 졸리면 자려는 생각이었다.
컴퓨터가 부팅이 되고 윈도우 화면이 켜지자 철우는 멍하니 무엇을 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딱히 뭘 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기에 화면을 둘러보다가 무심코 화려한 모양의 아이콘을 더블 클릭했다.
“오랜만에 이걸 하네.”
철우는 이제는 사람들이 거의 하지 않는 PC 게임을 로딩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르바이트에 일단은 공무원 준비 중인 철우였기에 온라인 게임과 같은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온라인 게임은 며칠 하지 않으면 금세 레벨이나 장비에 밀려 버려서 할 흥이 나지 않았지만 PC 게임은 며칠 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와 비교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현실에서도 비교가 되는데 게임상에서까지 비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철우는 게임상에서도 자신이 패배자가 되는 듯한 것에 온라인 게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PC 게임에 몰입이 되지도 않았다.
과거였다면 난이도가 어려워도 어떻게든 도전 정신을 가지고 깰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귀찮았다.
결국 철우는 이것마저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제길! 왜 이리 안 되는 거야? 능력치가 너무 낮아서 그런가? 아니면 장비가 너무 구려서 그런 건가!”
잠은 오지 않았다. 차라리 잠이 왔다면 그냥 때려치우고 잠을 잤을 것이었다.
“에이, 이거 에디터 해야겠다!”
철우는 에디터를 해야겠다며 알트 텝(ALT +Tab)을 누르고서는 바탕화면에 있는 범용 에디터 프로그램을 클릭했다.
이 에디터 프로그램만 있으면 PC 게임의 대부분은 수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철우가 더블클릭을 하는 순간 하늘 위에서 번개가 철우의 원룸 건물 위를 직격했다.
과르르릉!
엄청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번개가 내리꽂혔고 그 번개는 원룸 건물의 배선들을 통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우의 컴퓨터를 통해 철우의 마우스로 향했고 철우는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엄청난 전력에 외마디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으아악!”
철우는 전기에 감전이 되어서는 몸이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모니터의 화면에서는 에디터 프로그램이 로딩되었다는 것이 뜨고서는 곧바로 검은 화면으로 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