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환생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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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젠장! 또 환생이야?




칠흑처럼 깜깜했던 세상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서서히 밝아졌던 것이다.

그 사실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절규했다.

“또야? 또냐고!”

“도, 도련님?”

“고, 공자님?”

한순간에 밝아지는 세상에 눈을 뜬 소년이 주먹을 번쩍 들고서 소리쳤다.

병약한 얼굴과 비쩍 마른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기 힘든 포효와 박력이었다.

그래서인지 침상 근처에서 간호를 하고 있던 일남일녀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응? 뭐가 불만이야! 말을 해, 말을! 난 만족하며 죽었었다고!”

“도련님! 왜 그러세요!”

죽은 것처럼 잠만 자던 소년이 갑자기 일어나 허공에 대고 악을 쓰는 모습에 하녀 복장을 한 중년 여인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팔을 붙잡았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누가 봐도 미치광이와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소년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지만 덩치는 장정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오히려 장정보다 더한 거구의 소년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아.”

번쩍 뻗은 자신의 팔을 붙잡으며 애달픔과 안쓰러움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내오는 중년 여인을 쳐다보며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잠깐 사이지만 극과 극의 감정 기복을 보였던 것이다.

‘확실히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내가 미친놈으로 보이겠지.’

눈을 뜬 그, 아니 이제는 석진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그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뇌리에는 석진호라는 아이의 기억이 천천히 떠올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십칠 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마치 그의 적응을 도와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도련님? 의원을 불러올까요? 역시 의원님께 진찰을 받으셔야…….”

“괜찮아, 유모. 악몽을 꾼 것뿐이니까.”

“악몽요?”

석진호의 대답에 유모의 얼굴에 수심이 깊게 떠올랐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새 석진호는 밤에 도통 잠에 들지 못했다.

아니, 깨어 있어도 산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응.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또 누워 계시려고요?”

“걱정하지 마. 잠은 안 잘 거니까.”

“정말이죠? 정말 다시 안 주무실 거죠?”

“응. 생각을 좀 정리하려고. 그러니 둘 다 나가 줬으면 하는데.”

석진호의 시선이 유모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진짜 형제처럼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온 종복 탁윤을 향했다.

그러나 그의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족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걱정되어 선뜻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신 둘 다 눈동자만 데구루루 굴렸다.

“어…….”

“정말 괜찮다니까. 내 눈이 미친놈의 눈처럼 보여?”

“조, 조금은요?”

“참, 나.”

이번만큼은 직언을 하겠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는 유모의 모습에 석진호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방금 전의 행동을 떠올려 보면 이러는 것도 이해는 됐다.

“그럼 식사부터 하시는 건 어떠세요? 이틀 내내 아무것도 안 드셨는데. 심지어 물도 안 드셨어요.”

“한 시진 후에 가져다줘. 그동안 생각 좀 정리하게.”

“알았어요!”

이틀 만에 무언가를 먹겠다고 대답하는 말에 유모가 그제야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탁윤도 유모를 따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부탁해.”

“맛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유모가 한시름 놓은 얼굴로 탁윤을 이끌고서 방을 나섰다.

석진호의 부탁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탁윤은 유모의 손에 이끌려 나가면서도 연신 걱정스러운 눈으로 석진호를 쳐다봤다.

그러나 석진호는 생각에 빠져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달칵.

이윽고 두 사람이 방을 나가자 무거운 정적이 안을 가득 채웠다.

찬 바람에 가뜩이나 병약해진 석진호가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싶어 창문도 모조리 닫아 두었기에 실내에는 침묵만 내려앉았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말이지.”

편하게 침상에 누우며 석진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죽음은 너무나 익숙했기에 생이 끝나는 것을 느낄 때 그는 편안히 잠들었다.

꿈이자 야망을 모두 이루었기에 처음으로 미련 없이 눈을 감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환생도 같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니미럴.”

계속해서 이어지는 환생에 그는 당연히 이유가 자신의 미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인이 되고 싶다.

강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결국 천하에 우뚝 서고 싶다.

남자라면 자연스레 가지게 되는 꿈이자 목표.

첫 환생을 하기 전 그가 품었던 야망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불알 두 쪽만 가지고 태어난 그가 고수가 될 확률은 전무했다.

첫 번째 삶에서, 시전에서 사서 익힌 삼재검법과 삼재기공을 어쭙잖게 익히고 중원을 돌아다니다가 산적의 손에 죽임을 당한 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상하게도 태아로 태어난 적은 없었다.

늘 십 대 초반에서 십 대 후반의 몸을 차지했다.

“이번 녀석은 자기 비관 끝에 자살인가.”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육신을 느끼며 석진호가 쓰게 읊조렸다.

팔을 드는 것조차도 힘겨울 정도로 몸뚱이에는 힘이 없었다.

근육은 최소한만 남고 다 녹아 버린 뒤였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는 석진호를 욕하지 않았다.

“마음의 병만큼 무서운 병도 또 없으니까.”

질병에는 그에 맞는 약이 있었다.

무릇 모든 독에는 해독법이 있는 법이고.

하지만 마음의 병은 달랐다.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답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집안이 좋네. 늘 혈혈단신이었는데.”

석진호가 마음대로 혼잣말을 중얼거릴 수 있는 이유.

그건 서출이기도 했지만 가문에서 거의 내놓다시피 한 상태였기에 그의 혼잣말을 엿들을 사람은 없었다.

처소도 말이 좋아 별채이지 서출들이 주로 머무는 외원에 위치하기도 했고 말이다.

“일단 상황은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좋긴 한데, 대체 왜 또 살려 낸 거지? 뭐가 부족한 거야?”

석진호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자신이 환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깨닫고서 딱 백 번까지는 숫자를 셌었다.

혹시나 제한이 있는 건 아닐까, 환생에도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아홉 번과 아흔아홉 번째 삶을 살 때는 진짜 절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았었다.

“하지만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

어떤 삶이고 대충 살았던 삶은 없었다.

웅심을 품었기에 그는 늘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그렇듯 언제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환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경우가 수두룩했던 것이다.

“해적에 죽고, 산적에 죽고, 수적의 손에 죽고, 북방에서는 오랑캐의 손에 죽기도 했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과 비교하면 지금의 환경은 너무나 좋았다.

가문에서 괄시를 넘어 멸시를 당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죽음을 걱정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늘 혼자였던 전생들과 달리 지금의 그에게는 진짜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존재들이 무려 두 명이나 있었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힘들다고 생각한 건지. 이 정도면 과하다 못해 넘치는데. 뭐, 각자의 기준이라는 게 다르긴 하겠다만.”

죽은 석진호의 결정을 그는 납득하고 존중했다.

하지만 이해하지는 않았다.

그였다면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차라리 망나니로 살지. 어차피 망가진 삶이라면. 뭐, 나로서는 다행이지만.”

석진호는 단순히 누워 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새로 얻은 육신에 대해 면밀히 조사했다.

수십, 수백 번의 환생을 겪으니 이제 육체에 대해서는 도가 텄다.

“지극히 평범하군. 나쁘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영양실조가 우려될 정도로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크게 다친 곳이 있다거나, 특이체질이라거나 하는 큰 문제는 없었다.

적어도 무공을 익히는 데 저해되는 요소는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또다시 시작하기에는 의욕이 전혀 나질 않는데.”

셀 수조차 없는 삶을 살아온 그였다.

죽으면 새로운 육체로 다시 시작되는 삶.

처음부터 시작하는 무공 수련.

물론 천하제일인이 되겠다는 야망이 있을 때는 다시 시작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다 이루어 봤으니까. 천하제일인? 무림황제? 무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해 봤는데 무슨 미련이 있을까.”

야망에 모든 것을 활활 불태웠기에 이제는 재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궁금했다.

도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자 시련을 준 것인지.

더불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이다.

“이유가 뭘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고.”

꿈을 이룬 순간, 목표에 도달한 순간 그는 조금의 미련도 없었다.

때문에 눈을 감을 때 당연히 마지막이라 생각한 것이었고.

그런데 결과는 다시 한번의 환생이었다.

“미치겠군.”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나오지 않는 답에 석진호가 결국 두 눈을 감았다.

일단은 좀 쉴 생각이었다.

고민을 많이 했더니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아직까지도 석진호의 기억과 그의 기억이 뒤섞이는 중이기도 했고.

“그냥 막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언제나 천하제일인이라는 목표만을 생각하며 달려온 그였다.

그렇기에 석진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정도는 마음 편히, 마음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이다.


사흘 동안 석진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모가 가져다주는 밥만 먹을 뿐, 자고 싸는 게 하루 일과의 다였다.

조금 더 나열하자면 멍 때리는 걸 추가할 수 있었다.

“석가장이면 그래도 돈 걱정은 안 할 줄 알았는데.”

농땡이나 피우며 대충 살까 했던 석진호의 계획은 처음부터 어그러졌다.

아무리 석가장주의 서출이라 하더라도 열여덟 살이 되면 일을 해야 했다.

일감을 받든 자신이 일거리를 찾든, 어떻게든 제 몫을 해야 하는 게 석가장의 가규였다.

그 말인즉 내년이 지나면 그도 누군가에게 일거리를 받거나 혹은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필이면 그런 가훈이라니. 상가(商家)라서 그런 건가.”

석진호가 입맛을 다셨다.

조금은 쉽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삶은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사는 것도 힘들구나.”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지루했다.

늘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는데 멈춰 있기만 하니 묘하게 답답한 느낌이었다.

마치 수련 중독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쩌억! 쩍!

느릿하게 떨어져 내리는 눈발 사이로 새까만 피부를 가진 탁윤이 웃통을 벗고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한겨울의 추위도, 눈발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탁윤은 묵묵히 도끼를 휘둘렀다.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말이다.

“아깝군. 외공에 최적화된 육체인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석진호는 장작을 패는 탁윤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나이가 많은 게 흠이었지만 그렇다고 늦은 건 아니었다.

내공에 비해 외공은 시기의 제한을 덜 받는 공부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 무림에서 외문기공은 점점 쇠락해 가고 있었다.

“외공이 극에 이르면 내공의 고수와 별반 차이가 없는데 말이지. 외공을 익혔다고 해서 꼭 내공을 익히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탁윤을 보고 있자니 가르칠 만한 무공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하지만 이건 강요할 문제가 아니었다.

육신의 주인인 석진호에게 있어 탁윤은 일개 종복이 아니라 형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