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당번병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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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당번병

지은이 남운

발행인 이종주


발행처 (주)로크미디어

출판등록 2003년 3월 24일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330 DMC첨단산업센터 B동 314호

Tel (02)3273-5135  Fax (02)3273-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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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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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START UP!

독재자의 당번병 1권 1화





실제 역사와 다른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일련의 모든 설정은 작가의 임의입니다.






직업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항상 내게 나라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그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난 후회한다.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었다. 진실로…….




#1장




흔들흔들.

오래되어 도색이 벗겨진 낡은 갓등이 이리저리 불규칙하게 좌우로 오갔다.

흔들리는 갓등 아래에 매달린 반쯤 부서진 백열전구.

방바닥에는 백열전구의 파편이 몇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창문을 통해 비쳐 드는 달빛과 오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에 반지하 방은 흐릿했다.

창문 바로 아래.

벽에 등을 대고 퍼질러 앉은 한 노인.

몰골이 말이 아니다.

심한 폭행이 가해졌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이다.

뻗은 두 다리는 관절이 꺾인 듯 심하게 뒤틀렸다. 팔 역시 어깨에서 탈골되어 축 늘어져 있다.

피투성이 얼굴은 심하게 멍이 들어 얼굴 생김새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노인을 마주보는 나.

정말 싫다.

이런 임무가 과연 나라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쿨럭쿨럭.

고개를 조금 숙여 기침하는 노인.

한때는 알려지지 않은 정권 실세로 엄청난 파워를 자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위험 요소에 다름 아니다. 제거 임무가 떨어질 정도로…….

“팀장님.”

귀에 들린 낮은 음성에 좌를 돌아봤다.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 슈트를 입은 부팀장 차진영. 가슴 어림으로 드는 그의 오른손에 USB가 들려 있었다.

“맞나?”

“네.”

차진영이 외마디 대답과 함께 고개를 까닥였다.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다. 내 눈에 보이는 방 안을 수색하는 세 명의 팀원.

“모두.”

내 말에 팀원들이 멈칫거리며 돌아봤다.

“밖으로 나가. 대기하도록.”

“네.”

“예.”

팀원들이 대답과 함께 동작을 멈췄다.

다들 일어나거나 뒤돌아섰다. 그리고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 * *


잠시 뒤.

방에 나와 노인. 우리 두 사람만 남았다.

슥.

오른손을 들어 상의에서 글록과 소음기를 꺼냈다.

끼릭, 끼릭.

소음기를 돌려 글록의 총구에 끼우는 나직한 미성이 반지하 방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노인이 눈을 깜빡이며 날 쳐다봤다. 그 눈에 회한이 배어들었다.

“죽기 전에 담배 한 대 피울 수 없겠나?”

힘없는 노인의 음성에 난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가만히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왕 죽을 몸.”

각오가 보인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포기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긍.

“후우우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왜 그랬습니까? 조용히 지내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면.”

“…….”

“당신이 죽을 일은 아마 없었을 텐데.”

이해되지 않아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처연히 웃었다.

“희망을 보았거든.”

“희망?”

“그렇다네, 이 나라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것을 봤지.”

“그래서 드러낸 겁니까?”

“맞네, 그 결과가 이런 꼴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지.”

“어리석군요.”

“큭큭큭.”

노인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소음기를 끼운 글록을 등 뒤로 돌렸다. 허리에 끼우고 다시 상의에서 담배와 일회용 라이터를 꺼냈다.

더 원.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우.”

한 모금을 빨고 뿜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저벅저벅.

노인에게 걸어가 상체를 숙였다.

손을 뻗어 노인의 입에 불붙은 담배 개비를 물려 주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당신에게 개인감정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임무일 뿐입니다.”

노인이 입에 담배를 물고 깊이 빨았다. 이어 담배 연기를 뿜으며 이빨로 담배를 물었다.

“아네.”

노인은 담담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노인이 담배를 다시 빨더니 내게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

순간 난 멈칫거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망설였다.

“죽을 목숨 아닌가?”

귀에 들린 노인의 말에 살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뗐다.

“한상, 이한상.”

내가 이름을 말하자.

“쿨럭, 쿨럭.”

노인이 놀라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입에 문 담배 개비가 툭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에 고인 핏물에 이내 담배의 불이 꺼졌다.

한편.

놀람이 노인의 얼굴을 눈 깜짝할 사이에 집어삼켰다.

“D, de……deja……vu……."

놀람이 그득 배인 노인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난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노인이 잠깐 동안 날 빤히 쳐다봤다.

천천히 일어나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렸다. 손에 글록이 잡힌다.

꺼내는 날 보는 노인.

씩.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웃더니.

“내 이름도 이한상이라네. 그걸 아나?”

노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말없이 소음기를 부착한 글록을 노인의 이마에 갖다 댔다.

“조심하게.”

노인의 말에 멈칫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동요하고 말았다.

“미궁의 법칙이란 게 있다네.”

“…….”

“암살자를 다른 암살자로 하여금 죽이게 하여 모든 것을 미궁에 빠트리지.”

“…….”

노인의 이마에 갖다 댄 글록.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자넨.”

“…….”

“이런 일을 꽤 많이 했을 거야. 그럼 듣고 본 것이 많겠지.”

“…….”

“부디 사냥이 끝난 사냥개가 되지 마시게.”

이를 지그시 악물며 방아쇠를 당겼다.

핏.

미성과 함께 노인이 고개가 푹 숙여졌다. 죽은 노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건 정말 아닌데…….”

나직이 중얼거리며 글록에서 소음기를 뺐다. 글록과 소음기를 다시 상의에 집어넣고 일어났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청렴했던가?

반지하 방.

모아 놓은 돈이 없는 모양이다.

생활보호자.

그 말이 생각날 정도로 볼품이 없는 방이다. 곧 처리반이 와서 모든 것을 깔끔하게 청소할 것이다.

내가 죽인 노인을 돌아봤다.

“왭니까? 왜 기록을 남긴 겁니까? 들키지나 말지.”

아련한 아픔이 인다.


* * *


반지하 방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순간.

“흐, 헉!”

나도 모르게 크게 헛바람을 삼키고 말았다.

정면에 서서 내게 총구를 겨눈 세 팀원. 내 우측 관자놀이에 총구를 댄 부팀장 차진영.

“무슨 짓이야?”

고함쳤다.

“훗.”

차진영이 외마디 나직한 실소를 흘렸다.

“팀장님, 상부의 지십니다. 이제 그만 쉬시게 해 드리랍니다.”

“뭔 개소리를 지껄이…….”

화가 나 소리친 내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피피피피피핏.

내게 가해진 총격으로…….


* * *


아버지!

아버지!

원망스럽습니다.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왜 제게 나라에 충성하라고 하신 겁니까?

할 짓 못 할 짓 다해 가면서 나라에 충성한 결과가 이런 겁니까?

제게 이런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까?

아버지!

아버지!

소리쳐 아버지를 불렀다.

…….

대답이 없다.

이제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가? 모든 것을 체념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

화아아아아앗.

눈부신 빛이 날 한입에 집어삼켰다.


* * *


모든 것이 하얀 세상. 백야가 생각난다.

황황급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하얬다.

“놀라나 보군.”

귀에 들려온 늙수그레한 음성.

홱.

거칠게 정면을 돌아봤다.

“다, 당신이 어, 어떻게!”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죽인 노인 이한상. 그가 버젓이 살아 내 앞에 서 있다.

씨이익.

살며시 웃은 이한상.

“신의 장난이라네.”

“신의 장난?”

이한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자네.”

“…….”

“악연도 인연이겠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분명 당신은 내가!”

“맞네. 자네 손에 죽었지.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네. 내가 꿈꿔 왔던 새로운 대한민국!”

“무슨……?”

“사람이 사람답게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

“…….”

“작지만 강한 나라!”

“…….”

“작지만 큰 나라!”

“…….”

“작지만 위대한 나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아아아아!”

소리쳤다.

노인 이한상은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자네가 나 대신 해 줘야겠네.”

“뭘?”

“다시!”

“…….”

“……흐름을 바꾸어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게.”

“당신! 미쳤습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세요!”

“신의 장난은 한 번이네. 결코 두 번은 없다네.”

“…….”

“우린…… 도플갱어…… 공간과 시간대는 다르나…… 동일한 삶을 사는 데자뷰…….”

노인 이한상의 말과 함께 눈을 뜨기 힘든 강렬한 광채가 번쩍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난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숙였다.

날 집어삼키는 그 무엇이 내게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 속에서 노인 이한상의 아련한 음성이 들렸다.

“같으나 다른…… 평행 차원의 미러!…… 자네는 신의 실수와도 같아…… 동일한 공간과 시간대에 존재할 수 없는 우리 두 존재의 조우!…… 그 능력들이 자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네. 그리고…….”

알 수 없는 뭔가가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함께 견딜 수 없는 두통이 날 엄습했다.

머리가, 두개골이 빠개지는 것 같다. 참을 수 있는 성질의 고통이 아니다.

“……아아아아아…….”

그저 비명을 지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 *


1980년 0월 0일.

박정희의 죽음으로 인한 서울의 봄이 12.12에 이은 5.18 광주 사태로 그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며 급부상한 신군부!

독버섯처럼 어둠속에서 태동한 그들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은 프라하의 봄에 빗댄 서울의 꿈에 희망으로 한껏 부풀었었다.


-유신 독재가 끝나고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새로 바뀔 것이다!


다들 그리 믿어 마지않았다. 하지만 신은 그런 바람을 철저히 외면했다.

하나회!

달리 신군부라 불리는 그들의 부각이 모든 것을 다…….


* * *


“으으…….”

옅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깜빡였다.

“욱.”

일순간.

밝은 전등의 빛이 내 두 눈에 쏟아졌다. 따가워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이제 깨어났나 보군.”

낭랑한 사내의 음성.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내게 걸어와 서는 자를 돌아봤다. 군복, 하얀 가운. 목에 건 청진기.

군의관?

가슴에 있는 명찰에 오버로크된 이름.


[오정태]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오정태는 왼손을 내 눈으로 뻗었다. 그러며 상의 주머니에서 작은 라이트를 꺼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왼손으로 내 눈을 밀어 올리고 라이트로 동공을 살피는 그의 행동에 난 혼란을 느꼈다.

잠시 뒤.

오정태가 두어 걸음 뒤물러났다.

“생각 외로 멀쩡한데.”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여긴 의무실 같은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하하하하, 이 친구야. 그야 자네가 다쳤으니 여기 와 있는 게 아닌가?”

오정태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다쳐요?”

“기억 안 나나, 이한상 상병.”

“…….”

“자네 작업하다가 전선에 걸려 감전 사고를 당했었어.”

황당하다.

무슨 감전 사고란 말인가? 불과 조금 전에…….

“크흐으으!”

신음하며 머리를 숙였다. 동시에 양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기억이란 틈새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편린.

감전 사고!

맞다!

난 분명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