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영주님 0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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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하는 영주님

이안 (1)




이계인이 침공하는 할리우드 영화엔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적인 존재가 꼭 등장한다.

그래서 지구는 평화를 되찾는다.

“그럼 그렇지.”

뻔하고 시시한 결말을 비웃던 내 앞에 어느 날, 진짜 이계인들이 등장했다.

지구보다 앞선 기술력을 갖춘 그들은 평화 대신 전쟁을 선택했다.

미증유의 환란이 인류를 덮쳤고, 시민들은 민병대를 조직해 부족한 군인들 대신 생존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민병대를 이끄는 리더로 변화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 * *


인천 부평 지역 제5민병대 대장 박현성은 살아남은 대원들의 수를 세어 봤다.

‘스무 명도 남지 않았군. 빌어먹을.’

D-day.

부평 탈환 작전에 투입된 그의 민병대는 적의 통신 기지를 파괴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이계인들은 사자나 곰 같은 맹수들의 유전자를 조작해 생체 병기화 했는데, 그 녀석들과 싸우느라 피해가 컸다.

“대장! 시간이 없어! 어서 안으로 들어가야 해!”

열세 살에 민병대로 들어온 어린 소년이 지금은 어엿한 전사가 되어 박현성을 재촉했다.

“민호! 얘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곧 따라 들어갈게.”

“오케이. 모두 무기 확인하고 진입한다!”

민병대 부대장의 말에 살아남은 민병대원들이 부서진 이계인들의 전투 로봇과 생체 병기 들을 뛰어넘어 통신 기지 중앙 시스템 내부로 들어갔다.

대원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현성은 몸을 돌려 벽으로 다가갔다.

생체 병기와 싸우다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나 죽어 가는 친구가 그를 힘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현성아, 나 죽는 거냐?”

“내장이 다 튀어나왔는데, 그럼 안 죽겠냐? 병신.”

친구 옆에 털썩 주저앉은 현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제 마지막 친구마저 그의 곁을 떠나려 한다.

슬퍼하기도 이젠 지쳤다.

“나 죽으면 너 심심해서 어쩌냐?”

피를 흘리며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현성은 아무 말 없이 친구 귀에 낡은 이어폰을 끼워 주었다.

“너 좋아하는 아이돌 음악이다.”

신나는 비트 위에 청량한 목소리가 가미된 노래는 우울한 지금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매우 밝고 달콤했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감성인가.

“천국의 노래 같다.”

“실컷 들어. 그 아이돌 그룹도 천국에 있을 테니까.”

“정말 그럴까? 크크크.”

낮게 웃던 친구가 숨을 헐떡였다.

“아, 시발 졸라 아프네. 왜 이리 안 죽지 나? 어서 죽고 싶은데.”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에게 그가 해 줄 수 있는 건 담배 한 대를 물려 주는 게 전부였다.

“현성아, 악착같이 살아남아라. 우리 몫까지.”

“지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넌 강하잖아. 독하고.”

두뇌만 천재가 있는 게 아니다. 육체에도 천재가 있다. 

10년간 싸우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여러 번 뛰어넘은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병대원들이 들어간 통로 안쪽에서 총성과 폭발음이 연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아직 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나 그만 들어가야겠다.”

말을 하며 돌아보던 현성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친구의 고개가 앞으로 쏠려 있었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죽어 버린 친구의 두 눈을 감겨 준 현성은 이어폰을 회수해 자신의 귀에 꽂았다.

현란한 비트와 지금은 사라진 아이돌의 미성이 그의 고막을 자극하고 심장을 두드렸다.

뭔가를 폭발시키지 않으면 이대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총성이 요란한 중앙 시스템실로 뛰어 들어가며 등에 멘 칼을 뽑았다.

이 칼은 이계인들이 사용하는 칼로, 금속도 무 베듯 할 수 있는 무기다.

3년 전, 이계인을 죽이고 탈취한 이 칼은 그 후로 현성의 주 무기가 됐다.

‘네놈들 무기로 박살을 내 주지!’

중앙 시스템실로 진입한 현성은 동료들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내부를 지키는 보행 로봇 가까이 접근했다.

보행 로봇의 손끝에서 레이저포가 연이어 번뜩였다.

푸슝! 푸슝!

한 대라도 맞으면 팔다리가 날아가고 몸이 산산조각 난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레이저를 피해 낸 현성은 중앙 시스템실 내부 벽을 디딤돌 삼아 허공으로 크게 점프했다.

끼이이잉!

보행 로봇의 팔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현성의 몸을 정조준했다.

그리고 막 레이저포를 사용하려는 순간, 현성의 칼이 번개처럼 내려와 보행 로봇의 팔을 잘라 버렸다.

“대체 언제까지 이 지랄 할 거야, 이 개자식들아!”

로봇의 팔을 하나 자르고 바닥을 구른 현성은 뒤로 회전해 주먹을 날렸다.

한순간 파랗게 빛나는 그의 주먹에 로봇의 머리가 반쯤 파묻히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7년 전 배운 기공권의 고수가 다 된 현성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가 꿈틀거리는 보행 로봇의 머리를 칼로 단번에 잘라 버렸다.

그때서야 로봇은 위이이잉 소리를 내며 동작을 멈췄다.

이계인이 조종하는 로봇을 잠시 노려보던 현성은 안으로 들어오는 대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 폭탄 설치해.”

현성의 명령에 민병대원들이 시스템실 곳곳에 폭탄을 부착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사라지면 인천 부평 지역에서 인간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로봇과 생체 병기 들은 무력화된다.

이계인들은 또다시 통신 기지를 설치해 공격해 오겠지만, 그 전까진 안전해진다.

“대장, 괜찮습니까?”

어깨에 레이저포가 스쳐 피부가 옷과 함께 타들어 갔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지만 현성은 담배를 입에 물며 피식 웃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한두 번 당하는 부상도 아니다. 

“대장! 이쪽으로 와 보십시오!”

대원 중 한 명이 현성을 크게 불렀다. 

가까이 가 보니 시스템실 가장 안쪽에 단단한 유리창으로 가로막혀 있는 작은 공간 안에 이계인이 있었다.

인간과 흡사한 생김새의 이계인이 워프 이동을 준비 중이었다.

‘이곳에서 로봇과 생체 병기를 조종하던 녀석이군.’

이계인들은 워프라는 특수한 장치를 통해 지역을 이동하곤 했다. 그래서 녀석들을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간들아, 또 보자꾸나.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워프를 가동시킨 이계인의 비웃음에 현성의 분노가 폭발했다.

“너 거기 가만있어! 대가리를 쪼개 줄 테니까!”

총으로 쏴도 유리창은 끄떡도 안 했다.

“후훗, 무식한 인간.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구는 우리의 식민지가 될 것이다.”

“알았으니까 꼼짝 말고 있어, 이 개자식아! 갈아 마셔 줄 테니까!”

고함을 친 현성은 기공권을 사용해 유리창을 무지막지하게 후려쳤다.

쿵쿵쿵쿵!

거대한 해머로 내려치는 것처럼 유리창이 연속으로 출렁였지만, 쉽게 깨지지는 않았다. 

금속의 단단함과 고무의 유연성을 겸비한 특수 유리다.

‘젠장. 통신 기지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더니 힘이 달린다.’

기공권을 무한정 사용할 수는 없었다. 무리하다간 혈맥이 터져 버릴 수도 있다.

주먹을 멈춘 현성은 등에 멘 칼을 다시 꺼내 들었다.

“우리 무기를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으로도 어렵지.”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유리를 깨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해 칼을 계속해서 내려쳤다. 

유리와 칼이 부딪치는 충격으로 인해 손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현성은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내게 남은 건, 악밖에 없어, 이 새끼야!”

쾅쾅!

마침내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비웃던 이계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하하! 더 웃어 봐, 개자식아!”

“대장, 그만 나가야 합니다. 곧 폭탄이 터집니다.”

폭탄 타이머가 빠르게 돌고 있었다. 

“먼저 나가. 이 새끼 죽이고 따라갈 테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저 유리가 언제 깨질지 모르잖습니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잠깐이면 돼.”

현성은 차가운 눈빛으로 유리창 너머 이계인을 노려봤다. 

이계인의 얼굴 위로 그동안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민호야, 더 큰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믿고 먼저 나가. 알았지?”

흥분을 가라앉힌 현성의 차가운 눈빛에 민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너무 늦지 마십시오.”

대원들이 빠져나간 시스템실은 현성과 이계인만이 남게 됐다.

“내가 재밌는 얘기해 줄까? 3년 전이었어. 생체 병기를 타고 사람들을 쫓아가며 죽이던 이계인 녀석을 내가 사로잡은 적이 있어.”

깡! 깡! 깡!

현성은 말을 하면서도 유리창을 내려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울면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을 다 하더군. 그때 깨달았지. 이계인도 두려워하는구나, 이 싸움 어쩌면 이길 수 있겠구나. 그 작은 희망이 여기까지 날 데려온 거야. 오늘 난 널 꼭 죽일 거야. 좀 더 큰 희망을 얻기 위해.”

“미친 새끼. 나 하나 죽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나?”

“두려워하고 있군. 네놈 눈에 공포가 보여!”

콰앙!

워프실을 보호하던 단단한 유리가 깨졌고, 그 안으로 현성이 칼을 들고 들어갔다.

“심판의 시간이다.”

“열등한 종족은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발악하듯 외친 이계인은 빛기둥이 생성된 워프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유리가 깨진 순간 동시에 워프가 발동된 것이다.

“어딜!”

현성은 이계인을 쫓아가며 칼을 휘둘렀다.

“커억.”

허리가 베인 이계인은 몸을 돌려 현성을 끌어안고 뒤로 넘어졌다.

의도치 않게 이계인과 함께 워프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현성은 온몸이 부서지는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런 빌어먹을!’

워프 공간을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이계인이 놓아주지 않았다. 

“흐흐흐.”

징그러운 녀석의 웃음과 함께 현성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잠시 후 시스템실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쿠콰앙!


* * *


원심분리기 속에 들어간 물질처럼 현성은 워프 속에서 끝없이 회전하며 빛과 어둠을 거쳐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

손톱과 머리카락이 뽑혀 나가고 눈이 갈라질 것 같았다.

‘몸이 분해되는 느낌이다! 빌어먹을!’

현성은 부풀어 오른 눈동자로 반대편에서 회전하고 있는 이계인을 노려봤다.

기세 좋게 쳐 웃던 그자는 옷과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드러난 어깨뼈가 가루가 되어 반짝이며 사라지고 있었다.

워프가 잘못된 것인지 그자는 입을 벌려 비명을 내질렀고, 그 입도 곧 얼굴과 함께 바스라지며 한 줌 먼지가 되어 워프 공간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나도 저렇게 사라지는 건가?’

눈동자 하나가 폭발하듯 터진 현성은 주변의 모든 것이 그 순간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봤다.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그의 신체들이 아름답게 폭발하고 있었다.

고통에 앞서 웃음이 먼저 나왔다.

‘워프 속에서 죽다니, 어이가 없군.’

하나 남은 눈동자 속으로 그때 뭔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것은 인간의 눈동자처럼 보이는 푸른 빛깔의 맑은 눈이었다.

거대한 태양처럼 확대된 푸른 눈 속으로 현성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