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돌은 주목받고 싶지 않습니다
이 아이돌은 주목받고 싶지 않습니다
제1화
“할머니, 나 이장님 댁 다녀와요.”
“…….”
“할머니?”
왜 말씀이 없으시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 봤다.
벌써 주무시고 계시네. 코골이 소리까지 들렸다.
조용히 문을 닫고 집을 나왔다.
한우 때깔 고운 거 자랑 좀 하려고 했더니만, 이런 날엔 꼭 일찍 주무신다.
내일 바로 구워 드려야지. 일단 이장님한테 불판 좀 빌려 오고.
겨울이라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임에도 하늘이 깜깜했다.
거리의 네온사인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촌이라 더 그랬다. 별 보기 참 좋은 곳이지.
‘예쁘네…….’
벌써 이곳으로 내려온 지도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셀 수 없는 별이 수놓아진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그 광경이 낯설었다.
좁은 흙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 정말 저 별들이 쏟아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미안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이런 곳에서 나오면 안 되는 소리인데. 발걸음이 멈췄다.
“돌아가자.”
숨이 막혔다.
시야가 흐려졌다.
점점 사고도…….
의식을 잃었다.
* * *
나는 죽었다.
……라고 생각했다.
이게 뭐냐?
전부 꿈이었나.
그러니까, 지금 이것까지.
꿈이 아니고서야 눈에 이런 게 보일 리가 없지.
눈을 감았다.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나는 빳빳한 이불이 볼에 눌리는 감각이 선명하다.
“…….”
벌떡 일어났다.
이거 꿈이 아니다.
나는 자각몽조차도 꿔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꿈? 말이 안 된다고.
머리를 굴려야 한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부터 해야지.
일단 저 홀로그램.
눈을 깜빡이고, 문질러 봐도 사라지지 않는다.
훠이, 훠이.
손으로 휘저어도 그대로다.
몸을 움직이면 내 시야에 맞춰 따라왔다. 꼭 VR 게임처럼 말이다.
얼굴을 더듬어 봤다. 당연히 VR 기계 같은 건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홍 할머니 집에 그런 게 있을 리도 없고.
‘나 멀쩡한데 왜 이래? 거슬리게. 좀 꺼졌으면…….’
픽-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꺼지래서 꺼졌나?
뭐가 됐든 나한테 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이런 미친.
홀로그램에 정신이 팔려서 이제야 봤는데 방도 이상했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홍 할머니 댁이 아니라, 내가 스물 즈음에 살았던 고시원이랑 구조가 똑같았다.
‘……설마.’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렇지?
이불을 뒤져 핸드폰을 찾았다.
아하하. 이거 전에 쓰던 폰이네. 캘린더, 캘린더 앱이…….
날짜는 기억과 얼추 일치했다. 마지막 기억이 13일 저녁이었으니까, 자고 일어났다면 14일인 게 맞겠지.
손을 덜덜 떨면서 캘린더 앱 메뉴의 ‘[년]’을 눌렀다.
……다르다. 일의 자리 숫자만 바뀌었지만 무려, 7년이란 시간이 사라졌다.
혹시 몰라서 설정에 들어가 날짜 자동 설정이 풀려 있나 확인도 해 봤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뭔…….”
7년 전이면 스물인가.
한창 검정고시를 마치고 다음 해 수능을 볼지 바로 일자리를 찾을지 고민하던 때로 기억한다.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니, 정말 얼굴이 앳되다.
상황을 정리해 보자.
죽은 줄 알았더니 회귀했다.
사실 누가 봐도 이건 행운이다.
내가 이전에 이룩해 둔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긴 했어도 남에게 얹혀사는 처지였다.
전부는 아니지만 되돌리고 싶었던 사건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신이 나에게 기회를 준 거다. 이전과 다른 삶을 살라고.
하나 거슬리는 게 있다면, 아까 보였던 그 홀로그램.
정체를 아예 추측하지 못할 만큼 이쪽에 문외한이 아니라서 솔직히 많이 거슬렸다.
게임 시스템, 뭐 그런 건가?
혹시 갑자기 게이트가 열리고 헌터가 등장한다든지 하면 곤란했다. 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고.
원래 같으면 이런 현실성 없는 헛소리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회귀했다.
이런 시간을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경험을 직접 하게 됐는데 다른 일이라고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하.”
한숨을 쉬던 때였다.
우웅-
책상에 올려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우경인 실장님]
통화가 걸려 왔다.
반가운 이름이었다.
우 실장님은 아주 예전에,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소속사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줄곧 내 편의를 봐주셨는데, 실장님이 회사를 나가고 내가 연습생을 그만둔 이후에도 꾸준히 도움을 주곤 하셨다.
덕분에 아르바이트 자리 걱정 없이 경력을 쌓았었지.
“네, 실장님.”
-어, 이운아. 이른 시간에 미안해.
“아니에요. 잘 지내세요?”
-나? 잘 지내지. 하하. 어제도 연락해 놓고 뭐야.
아차. 한창 연락할 때였나.
생각해 보니 딱 이 시기부터 우 실장님께 일을 받아 왔던 것 같다.
“늘… 반가워서요.”
-애가 안 하던 짓을 하네. 그래서, 생각은 해 봤어?
“네?”
회귀란 거 생각보다 어렵다. 나오는 얘기마다 기억나는 게 없으니 손에 땀이 막 났다.
-이번에 잘 될 거 같대. 이미 지원한 애들 물이 좋은가 봐.
아, 저 말을 들으니까 뭔지 알겠다.
이거 <테이크 미 세븐> 얘기다.
<테이크 미 세븐>은 케이블 방송사인 EAN에서 방영한, 한때 나라…는 너무 크고, 인터넷을 휩쓸었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참고로 ‘세븐’은 시리즈 순서를 의미하는 숫자가 아니라 그냥 붙여 놓은 거다.
생존 경쟁을 펼치고, 시청자의 투표로 데뷔할 상위 7명의 연습생과 7로 구색만 맞춘 기타 등등의 시스템을 의미했다.
<테이크 미 세븐>이 우리나라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초는 아니다.
그 전작은 같은 방송사에서 제작된 <아이돌메이커>로, 무려 시즌 3까지 나왔었다.
꽤 성공한 시리즈인데, 여느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그렇듯 갈수록 화제성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가장 저조한 성적을 냈던 시즌 3에서 탄생한 여자 그룹이, 데뷔 후 해외에서 대박이 터진 거다.
EAN은 대기업 산하의 채널이다. 기업은 돈 냄새를 아주 잘 맡는 놈들이고.
이번에는 전통적으로 팬덤이 강한 남자 아이돌을 만들어 돈 좀 벌어야겠다 한 거지.
<아이돌메이커> 시리즈의 포맷을 가져와 조금만 손보고 이름을 바꾼 <테이크 미 세븐>을 만들었다. 대대적인 홍보를 돌리고 프로그램 규모도 역대 최대로 키웠다.
무려 112명의 연습생을 데리고 시작했다. 60명이었던 전작의 두 배가량이다. 기획사들에 무슨 조건을 내건 건지 연습생 물도 나쁘지 않았다.
결국 흥행에 성공했다. 전 국민 수준은 아니어도, 연예인 좀 아는 사람은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데뷔한 그룹이 잘되었느냐?
아니.
데뷔하고 1년도 안 지나서 2위는 학폭 폭로가 터지고 7위는 혼전 임신을 발표했다.
그런데도 학폭은 팬이 많으니 탈퇴 없이 뻐기고, 7위는 해외와 국내 소수 팬덤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버텼다.
그렇게 7을 강조해 놓고 일곱 명이 아니면 무슨 소용이냐는 방패가 한몫했다. 7인 지지와 6인 지지, 5인 지지끼리 서로 싸우는 내분이 일어나고, 외부에서는 아직도 탈퇴 안 했냐며 틈만 나면 처맞았다.
나머지 멤버와 그 팬들만 빠르게 지쳐갔고.
게다가 멤버 간 불화도 있었다.
1위랑 2위의 사이가 안 좋은 건 업계 관계자도 아니고, 그냥 연예 커뮤니티 좀 본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대중적 인기는 아니어도 팬덤 하나는 제대로 형성한 그룹이었는데, 활동부터 문제가 생기니 서서히 열기가 식었지.
그렇다고 데뷔 후만 문제인 것도 아니었다.
<테이크 미 세븐>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큼 욕이란 욕은 다 처먹었다.
방송사도, 참가한 연습생도 골고루 먹었다. 연습생이 조금 더, 실은 많이 더 먹긴 했다.
문제가 뭐 이렇게 많아?
프로그램의 이런 결말을 알고도 출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뭐, 간절하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제 아이돌엔 관심이 없어서 말이다.
애초에 데뷔부터가 문제긴 하다.
데뷔조의 평균 실력이 연습생 수준을 넘었다는 게 흥행의 첫 이유다.
비주얼 또한 몇 년 뒤까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으니. 이게 첫째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데뷔도 못 하고 포기했던 놈이 이 그룹 망할 거니까 출연하기 싫다니.
명예로운 죽음 같은 소리를 내가 하고 있었네.
이렇든 저렇든, 거절하는 게 맞는 처사다.
운 좋게 성공? 사이비보다 믿을 게 못 된다. 안 사요.
-내 사심으론 네가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솔직히 너 그렇게 썩힐 인재 아니었어.
“감사해요. 실장님 덕에 살아요, 제가.”
-진짜 이상하네? 밤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갑자기 이래.
실장님 덕분에 살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지.
믿을 구석 하나 없던 어린 내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주고, 그나마 익숙한 업계의 일을 쉽게 받아 오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은인과 같은 친구도 이쪽 일을 하다 만났다. 나 진짜 실장님 덕에 살았네.
“진짜 감사해서 그래요. 그런데… 프로그램은 안 되겠어요. 저 자신이 없어요.”
-이거 거절하려고 그런 거였지? 그냥 아쉬워서 해 본 말이야. 괜찮아.
“감사해요. 조만간 한번 봬요.”
-그래. 잘 지내고. 공부할 거라고 했나?
옛날에는 이때 뭐라고 대답했더라.
결국 수능 공부는 몇 달 하고 포기했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겨우 넘긴, 남들 다 공부할 때 학교 안 나간 놈이 갑자기 공부하려니 힘들더라고.
“공부하려고요. 대학은 가야죠.”
진학을 쉽게 포기했던 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부린 만용이었다.
막상 그렇게 사회에 나가니, 생각보다 많이 위축됐다. 안 그래도 전에는 지금보다 더 뻣뻣한 성격이었던 터라.
새 기회가 주어진 만큼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공부해 봐도 나쁘지 않겠지.
-너는 어떤 길을 걷든 잘 될 거야. 형이 기도할게.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고.
“실장님도요. 들어가세요.”
전에는 잘되지 못해서 미안하네.
이번에라도 꼭 그간 챙겨준 보람 정도는 느끼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고, 7년 전의 생활을 따라가기 위해 당시에 풀던 문제집을 꺼내왔다.
물론 전혀 안 떠올라서 처음부터 공부하기로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얼마 전에 뭔 일을 해 둔 건지 통장에 용돈도 들어와 있어서 기분이 더 좋았다.
원래 잊고 있다가 발견한 비상금만큼 반가운 게 없지 않은가.
기쁘게 고시원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갔다.
음료와 과자를 들고,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젤리는 어디에 있는지…….”
팟-
[달성 완료!]
[달성 보상 : 체력 증진 효율 상승(D-30)]
……그랬더니 얘가 작동했다.
이 아이돌은 주목받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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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운론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3-03-07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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