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톱스타는 조용히 살고 싶다
회귀한 톱스타는 조용히 살고 싶다
001화. 돌아왔습니다
인간은 자기 앞의 생을 내다보지 못하는 법이다.
지금의 천서준이 그러하듯이.
천서준은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한국행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한, 전 세계 최고의 아시안 배우였다. 한국에서는 톱스타 중의 톱스타, 연예인 중의 연예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다.
영화계부터, 드라마, 광고계까지… 그의 영향력이 안 미친 곳이 없었다.
그가 지금 이 비행기를 타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가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됐고, 천서준은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비행기가 지금은…….
- 꼼짝 마! 다들 머리 위로 손 올려!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한 상태였다. 이미 승무원 몇몇은 저항하다 총에 맞아 사망하기도 한 상태. 승객들은 굉장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천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사히 인천 공항으로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기 어려워 보였다.
‘망할… 하필 이런 날에… 이런 일이…….’
천서준은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에라도 테러범들의 멱살을 잡고 내던지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에게 그런 초인적인 힘은 없었다.
영화에서는 영웅 역할을 몇 번이나 했었다지만, 현실의 그는 그저 모델처럼 몸만 좋은 잘생긴 사내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항공 보안에 병적일 정도로 치밀한 나라에서 일어난 항공기 납치 테러와, 영웅이 나타나 무사히 구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어이없는 현실에 실소가 터져 나오는 천서준이었다.
- 거기, 너! 똑바로 손 안 올려?
테러범이 서준에게 다가와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서준은 머리 위로 순순히 손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천서준이란 존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서준은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천서준이란 톱스타가 이 비행기 납치 사건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평소의 천서준은 세상에 염세적이었다. 톱스타라서 살짝만 이성과 엮여도 스캔들이 났고, 세상은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지라시는 늘 돌고 있었고, 이성과 엮이지 않자 동성과 엮어서 새로운 소문을 만들어 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지만, 그런 삶이 무의미해지던 찰나 이런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제기랄…….”
- 거기, 아시안! 뭐라고 지껄인 거지?
서준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더욱 날이 선 테러범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던 중 기장실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요란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이어 기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살아서 한국 땅을 밟긴 어렵겠구나.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서준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의 말을 들어 줄 이가 없었다.
모두가 공포와 두려움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
옆을 돌아보니 매니저는 이미 소변을 바지에 지린 상태이기까지 했다.
몇몇 스태프들은 혼절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서준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밑바닥부터 올라와 46살이라는 나이에 최고의 상을 거머쥔 톱스타 중의 톱스타 천서준.
그의 운명은 이제 끝이구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촬영장의 예쁨 받는 막내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한 단계씩을 밟아 왔던 천서준. 이젠 안녕이었다.
그렇게 눈을 꾹 감은 그때.
기체의 날개가 폭발하는 굉음이 들렸다.
진정 살아 돌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몸소 깨닫고 있었다.
소변을 지렸던 매니저는 정신 줄을 놓고 울부짖고 있었다.
서준은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인간은 자기 앞의 생을 들여다볼 수 없다.
이 문장만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빌어먹을… 내가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런 것도 인기를 누린 대가라고 해야 하나…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그땐 조용히 살고 싶다. 아주 조용하게. 이런 일에 얽히지도 않게.’
그것이 서준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기체의 날개부터 시작해 공중에서 폭파되었고, 테러범들 역시 사망했다.
탑승객 전원 사망.
이 사고는 최악의 사건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 * *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3평도 안 되는 좁은 방 한구석에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 방에 누운 사람은 다름 아닌 천서준이었다.
서준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저 잠든 채 꿈을 꾸는 듯 끙끙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 안 돼… 이렇게 죽기엔 아깝다고… 여기까지 얼마나 공을 들여서 왔는데… 이렇게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었어…….”
말도 안 되는 잠꼬대를 중얼거리던 서준.
서준은 갑자기 눈을 휙 떴다.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고?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폭발하는 기체에 탑승하고 있었는데?
서준은 주변을 둘러봤다.
작은 원룸. 여긴… 자신이 오래전에 살던 집과 닮아 있었다.
내가 톱스타가 되는 긴긴 구운몽을 꾼 것이라고?
이렇게나 생생하게?
서준은 당황해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다가, 휴대폰을 확인했다.
하나둘씩 스마트폰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는 와중에, 가난한 서준은 아직 2G 폰을 사용 중이었다.
거기에 뜬 날짜는 2013년 1월 26일.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46살이었던 자신이 20년 전, 즉 26살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분명… 분명히! 비행기 폭파로 죽었는데? 내가 살아 있다고? 그것도 20년을 거슬러 올라왔다고? 하, 하하…….”
입에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서준은 자신의 볼을 꼬집어도 보고, 때려도 봤다. 아픔이 느껴졌다.
“…살아 있잖아… 내가… 죽었던 내가 살아 있잖아…….”
한동안 젊어진 자신의 몸과 예전 집을 살펴보며 어리둥절하게 있던 서준은 만약 다음 생이 주어지면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제는 배우 같은 것도 하지 않고, 비행기도 타지 않고, 모든 불행을 비켜서서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다고.
서준은 자신이 살아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발을 신고 원룸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저기요… 제가 보이세요?”
“뭐야, 이 사람. 술이 덜 깼어요?”
“생긴 건 멀쩡한데… 정신에 문제가 있나 봐…….”
사람들은 서준을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길을 비켜 갔다.
그제야 서준은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게 진짜라는 것을.
그것도 시간을 되돌려 왔다는 것을.
26살의 천서준이 되었다는 것을.
“…그럼 이제… 조용히 살 준비만 하면 되는 건가… 세상에… 모든 신께 감사드립니다… 저 이번 생엔 톱스타니 뭐니 욕심 안 부리고 조용히 살겠습니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는 서준을 보던 사람들을 그를 보며 경찰에 신고를 넣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동한 경찰은 서준에게 길거리에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며 경고하고는 사라졌다. 서준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실실 웃고 있었다. 자신이 살아 있다니. 무사히 살아서 다시 한번 생을 누릴 수 있다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와 명예를 다 쥐었음에도 권태로웠고, 지루한 삶이었다.
그런 삶을 살았던 자신이 이제는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아 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마치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던 그 순간과도 같은 기쁨이었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던 그때. 서준은 무척이나 기뻤다. 자신의 모습이 몇 초 되지도 않은 짧은 시간 앵글에 잡혔지만 그마저도 행복했었다.
몇 초, 몇 분, 몇 시간… 그가 앵글에 담기는 시간은 늘어났고, 그는 누군가의 뮤즈로 자리를 잡아 갔다.
그렇게 충무로부터 방송가까지 모두를 섭렵했던 그는 할리우드 진출에까지 성공했다. 불혹이라는 이르면 이른 나이에 이룬 성과였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면 기쁨이 배가 될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온갖 저질스러운 유혹들이 난무했고, 서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인간들이 늘어났다. 서준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잘라 내고 버텼다.
그렇게 살아남아 톱스타 중의 톱스타가 되었고, 강남 한복판에 대저택을 짓고 살 수 있었다. 혼자서 5층짜리 대저택을 짓고, 고요한 아침의 새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는 삶을,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원룸에 살고 있었다. 자신이 현시점에서 어떤 상황인지 서준은 잘 알았다. 26살이면…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밖에 안 되었을 때쯤이다. 부모는 교통사고로 동시에 여의었고, 할머니만이 유일한 보호자였다.
연기자의 꿈을 꾸는 서준을 늘 응원해 주던 할머니는, 서준이 브라운관에 정식으로 데뷔하기도 전에, 아니,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걸 보기도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늘 그게 한으로 남아 가슴 한구석에 자리를 잡곤 했었다.
26살로 돌아왔기에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지만…….
‘할머니. 저 그래도 힘내 볼게요.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 볼게요. 알았죠? 먼 곳에서 저 응원해 주세요. 사실… 이렇게 두 번째 삶이 주어진 건… 할머니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할머니… 보고 싶어요.’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난 서준은 다시 터덜터덜 원룸으로 돌아왔다. 원룸 문 앞에는 월세를 내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를 확인한 서준은 당시 사용했던 통장 계좌의 잔액을 확인하러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스마트폰으로 바꾸든가 해야지. 다른 건 아껴 쓰더라도 폰만은 아끼지 못하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서준은 통장 잔액이 월세를 내고도 남을 정도인 것을 확인하자 쪽지에 적힌 계좌 번호로 바로 계좌 이체를 했다.
“이 시절은 은행 앱들도 불편하긴 했지. 뭐… 한창 개발되는 중이던 때였으니. 그래도 2G폰은 좀 아니야. 폰부터 당장 바꾸러 가야지.”
그렇게 볼일을 마친 서준은 집 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 휴대폰 매장으로 향하던 길.
“와, 저 사람 봐. 얼굴 대박…….”
“진짜 잘생겼네.”
“연예인인가…?”
인근 중고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서준의 외모를 본 여학생들의 말이 들렸다.
이런 일이 회귀 전에도 비일비재했기에 서준은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서준이 가는 길을 조심스레 뒤따라왔다.
가까운 휴대폰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이 서준과 문밖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어휴, 손님… 웬 여자애들이 저리 쫓아와요? 인기가 많으시네…….”
하지만 서준은 그 말에 대답하진 않았다.
“…휴대폰 바꾸러 왔는데요. 스마트폰 최신형으로요.”
“어디 보자. 지금은… 히익. 그런 고물을 아직도 써요?”
서준의 휴대폰을 본 매장 직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온 지 얼추 7년은 넘었으니 고물로 보일 수밖에. 그만큼 서준이 돈을 아끼는 편이기도 했고. 이 휴대폰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사 주셨던 휴대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기도 했다.
“네. 귀한 분이 마지막으로 사 주셨던 거라서요. 요즘 어떤 게 잘 나오나요?”
“그럼 이건 어떨지…….”
서준은 매장 직원의 추천을 받아 휴대폰 하나를 장만했다.
개통이 되자마자 서준은 매장을 나서며 앞으로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배우의 길을 포기한다면… 무언가 생각해 둔 것이…….
‘내가 좋아했던 것…….’
서준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그의 발걸음은 시가지를 향해 갔다.
회귀한 톱스타는 조용히 살고 싶다
회귀한 톱스타는 조용히 살고 싶다
지은이 : 한라봉쉐이크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3-10-10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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