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한 장군님은 천재배우
환생한 장군님은 천재배우
환생한 장군님은 천재배우
지은이 : 일월비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3-08-04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본사 :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 483번길 40 서경B/D 3F (우) 14640
편집부 : 서울특별시 구로구 디지털로 272 한신IT타워 404호 (우) 08389
전화번호 : 02-695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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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장군님은 천재배우
제1화 전장에서 눈을 뜨다
“장군, 장군! 괜찮으십니까?”
허겁지겁 달려온 부관 조복이 쓰러진 이수봉을 안아 일으키며 다급히 외쳤다.
수봉은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가슴에 깊이 박힌 탄환이 느껴진다. 총알구멍으로 뜨거운 피가 쏟아져 나와 가슴을 적셨다..
임진년 왜란 때 경상우도를 지켜낸 의병장 초전장군 이수봉. 말을 타면 화살보다 빠르고 활 솜씨는 주몽에 버금가며 용력이 대단해 호랑이도 피해 간다던 그도 총탄은 막을 수 없었다.
수봉은 상처를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나는 괜찮다… 그러니 상관 말고… 이제는 네가 선봉에 서라.”
“장군… 허나…”
“어허, 괜찮대도!”
수봉은 애써 조복을 밀어냈다.
“가거라, 복아. 왜적에게… 한 치의 땅도… 더는… 내주지 마라.”
“수봉 형님…….”
한동네에서 나고 자란 죽마고우인 조복이 옛 호칭으로 불러 수봉은 희미하게 웃었다.
조복은 이를 악물고 수봉을 내려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복도 알았으리라. 이제 수봉에게 더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조복은 수봉이 떨어뜨린 장군도를 주워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격하라!! 물러서지 마라!!!”
조복이 적진을 향해 내달리는 것을 수봉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았다. 조복의 뒤를 따라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내달린다.
생명의 불씨가 서서히 꺼져가는 동안 수봉은 생각했다.
‘짧았으나 후회 없는 삶이었다. 허나 이 전쟁의 끝을 보고 가지 못함이 한이로구나.’
어두워지는 시야 위로 아내와 두 아들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완전히 어두워졌던 세상이 일순 환하게 밝아졌다.
밝아진 눈앞으로 낯선 저잣거리가 펼쳐진다. 바퀴 빠진 소달구지가 땅에 모로 자빠져 있고 사방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시신이 나뒹굴었다. 민가의 지붕에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귓가에 쟁쟁하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나는 분명 방금 죽었는데 어찌 또 전쟁터란 말인가? 혹여 지옥에라도 떨어진 건가?’
수봉은 놀란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저만치 저자 끝에서 백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도망치는 백성들의 뒤를 무장한 왜놈들이 뒤쫓고 있었다. 왜놈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칼을 휘둘러댔다. 왜놈의 칼에 백성들이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피난을 가는 듯 아이를 업고 보퉁이를 든 여인 하나가 길가에 얼어붙어 있다가 뒤늦게 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세 육박해 온 왜놈이 등 뒤로 칼을 휘두르자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것을 보는 순간 수봉의 눈이 홱 돌아갔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수봉은 내달렸다. 그리고는 추상같이 소리쳤다.
“감히 왜놈들이 조선의 백성을 해하려느냐!!!”
수봉은 온몸을 던져 방금 여인을 향해 칼을 휘두른 적장에게 부딪쳤다. 회심의 몸통 박치기였건만 맥없이 나동그라진 것은 적장이 아닌 수봉 자신이었다.
“커어어엇!!!”
누군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은 어마어마한 사자후였다.
그와 함께 쓰러져 있던 백성들이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뭐야?”
“무슨 일이야?”
고꾸라져 있던 아이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부스스 일어나 수봉은 깜짝 놀랐다.
“저 꼬마가 갑자기 뛰어들었어요.”
여인이 수봉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꼬마?’
수봉은 어리둥절해 바닥에 앉은 채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통통하고 작달막한 다리에 고사리 같은 손. 어린아이의 몸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눈높이가 이상하게 낮았고 목소리도 이상했다.
“대체 이게 무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니 입술 사이로 높고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발음도 어눌하게 뭉그러진다. 수봉은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저 새끼 저거 빨리 치우지 않고 뭐해?!!!”
누군가의 불호령이 울리자 여자 하나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구불구불한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생전 보지 못한 괴상한 옷을 입었는데 치마가 짧아 다리가 드러났다. 여자가 가까이 달려오자 분 냄새가 짙게 났다.
여자는 수봉을 덥석 둘러업고 내달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인은 수봉을 안고 한참 달려 너른 공터에 다다랐다. 바퀴가 달린 커다란 쇠수레가 줄을 맞춰 길게 서 있었다. 여인은 수봉을 쇠수레 하나에 던져 넣고 문을 닫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영민아, 갑자기 왜 그랬어?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무서운 아저씨들이 쫓아오면 소리 지르면서 도망치는 척하면 되는 거야.”
수봉은 얼이 나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척’이라니. 그 지옥이 진짜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도대체 왜 이런 광대 짓을 한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어째서 어린아이의 몸이 되었으며 대체 이 세상은 무어란 말인가. 괴이한 복장을 하고 괴이한 탈것을 타고 괴이한 놀음을 하는 이 낯선 세상은. 그리고 이 여인은 왜 자신을 처음 듣는 이름으로 부르며 자신을 어머니라고 칭하고 있는 것일까?
* * *
“저 새끼 저거 누가 캐스팅한 거야?!”
감독은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전쟁 씬이니만큼 NG가 나면 다시 세팅하는 데 시간과 공이 상당히 들어가므로 화가 나는 것이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고작 네 살짜리 아이에게 이 새끼 저 새끼 육두문자까지 날릴 일인가.
조연출 승환은 속으로 욕을 하며 촬영된 장면을 다시 돌려 보았다. 감독이 분풀이하는 동안 어디까지 살릴 수 있을지. 어디서부터 재촬영해야 할지를 빠르게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어라?”
화면을 돌려보던 승환이 당황하여 중얼거렸다.
왜군이 들이닥치는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달아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 아까까지만 해도 지시대로 연기하지 않았으니 두말할 것도 없이 NG일 거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 달랐다.
아이가 휘둥그레 눈을 뜨고 전장을 돌아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가 줌인해 들어가며 아이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아이의 표정과 눈빛에는 당혹과 경악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냥 멍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전쟁에서 느낄 법한 영문 모를 공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가능한 연기야? 전쟁이라는 게 뭔지도 모를 나이인데?’
“뭘 멍하니 있어? 빨리 다시 세팅해! 이번엔 아역 빼고 다시 찍는다.”
감독이 한동안 욕지거리를 뱉다가 간신히 화를 가라앉히고 스태프들에게 지시했다. 승환이 번쩍 손을 들었다.
“감독님, 다시 안 찍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뭐? 왜?”
“촬영된 거 다시 한번 보세요.”
감독이 다가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알 수 없는 감탄사를 연신 뱉었다.
“어? 엉? 허…….”
“괜찮죠, 감독님? 왜군에게 달려들기 직전까지 자르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 그렇네.”
감독이 머쓱하게 답하더니 스태프들에게 다시 지시했다.
“이 씬은 이걸로 끝내고 다음 씬 촬영까지 잠시 쉬었다 가지.”
감독은 그렇게 말해놓고 현장 편집 기사를 재촉했다.
“지금 바로 편집 좀 해 봐.”
현장 편집 기사가 작업하는 것을 감독은 등 뒤에서 지켜보다 새삼 감탄사를 흘리며 만족스러워한다.
“허, 그놈 참. 어떻게 저런 표정이 나왔나. 실제 상황이라고 착각한 거겠지? 왜군에게 달려들던 기세를 봐도 그렇고.”
그런가? 그렇겠지. 네 살짜리가 정말로 의도하고 저런 연기를 할 수는 없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건 정말로 괴물이지.
“승환이 너는 가서 애 엄마한테 대신 사과 좀 하고 출연료도 좀 더 챙겨 준다고 해. 어차피 애 경력 만들어 준다고 교통비 정도나 받고 왔을 텐데.”
“예, 감독님.”
승환은 일어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역 배우의 엄마가 승용차 안에서 아이에게 뭐라고 말하며 달래고 있었다. 승환은 다가가 차창을 톡톡 두드린다. 애 엄마가 급히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PD님. 영민이가 이런 큰 현장은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나 봐요. 감독님, 화 많이 나셨죠? 실수 없도록 제가 다시 잘 가르칠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애기니까 그럴 수 있죠. 그러잖아도 정신없는 촬영장인데 가뜩이나 전쟁 씬이잖아요. 감독님이 큰소리 내서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셨어요.”
“어휴~ 아니에요.”
영민이 엄마가 반색하며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영민이 촬영은 여기서 끝내도 될 것 같아요.”
“아… 잘린 건가요?”
영민 엄마의 얼굴에 금세 실망감이 서린다.
“아니요. 다시 보니까 아까 그 장면 상당히 좋아서요. 필요한 만큼 편집해서 쓰기로 했어요. 영민이가 너무 잘해 줬다고 감독님이 출연료도 신경 써서 챙겨 주라고 하셨고요. 약소하지만 조금 더 입금해드릴 겁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영민 엄마는 감격하여 꾸벅 고개를 숙인다.
“시키지 않은 연기까지 하긴 했지만, 저 녀석 기백이 아주 장군감이던걸요. 앞으로 크게 될 것 같습니다.”
승환이 덕담을 건네며 차창 너머로 영민을 바라본다. 아이가 빤히 이쪽을 마주 보았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면서도 묘하게 어른스럽고 깊은 눈. 혹시… 이 아이가 정말로 괴물 같은 천재 배우라면?
승환은 충동적으로 영민 엄마에게 청했다.
“명함 있으시면 한 장 주시겠어요?”
승환의 말에 영민 엄마가 눈을 크게 뜨더니 얼른 주머니를 뒤져 명함을 꺼내 건넸다. 그리고는 기대감을 담아 덧붙이는 것이다.
“여기요. 출연 기회 생기면 꼭 좀 연락 부탁드려요.”
승환은 명함을 받아 스태프 전용 조끼 주머니에 넣으며 답했다.
“예, 연락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