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세가의 환생 정령사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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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물의 정령사는 다른 헌터들보다 생존율이 높았다. 물의 정령이 원기도 회복시켜 주고 치유까지 해 주니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았으니까.


‘으윽. 설마 이게 끝인가…….’


그러나 그런 물의 정령사도 온몸이 갈가리 찢겨서는 살 도리가 없었다.


던전에 들어와 몬스터들에게 공격당해 난자된 채 죽어 가는 C급 정령사.


지금 내가 바로 물의 정령사임에도 살기 어려운 그 상태였다.


온몸이 난자당해 피 흘리고 죽어 가는 내 모습 때문일까. 나와 계약한 정령이 주변을 걱정스럽게 맴도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 이건 내 힘으로는 치료를 못 해.’


내가 죽고 나면 이제 계약자가 없어질 정령. 심지어 내 몸이 이렇게 죽어 버리면 이 아이는 고통스럽게 역소환을 당하리라.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난 정령을 돌려보내지 못하는 중이었다. 죽어 가는 내 옆에 누군가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고아인 내게 정령이란 존재는 단순히 힘을 주고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기적인 마음속 어딘가에서 정령에 대한 걱정도 한편으로 들고 있었다.


‘역시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돌려보내야겠지.’


정령 스스로가 자신이 어떻게든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참으로 고맙게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슬슬 단순하게 정령을 소환한 채 유지하는 일조차 버거워지고 있었으니.


슬슬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한 듯 보였다.


“쿨럭.”


이쯤 되자 시야가 붉어지다 못해 아예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령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하게 감각으로만 느껴졌다.


돌려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정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작정이었다.


“다음에는 너도 나 같은 C급 정령사 말고 A급 이상으로…… 쿨럭.”


죽어 가는 육체는 이제 머리까지 멍하게 만들었다. 그게 내가 의지로 내 뜻을 전달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소리 내 정령에게 말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이제는 무리였다.


고작 그 몇 마디 말 좀 했다고 내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커헉.”


약간 이야기 좀 했다고, 급격히 몸의 상태가 악화된 듯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세상천지가 갑자기 어두워질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죽으면 이 아이도 고통스럽게 역소환될 텐데…….’


그게 물의 정령사이자 C급 헌터로서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어두워지던 두 눈에 빛이 들어왔다. 환한 햇살과 다르게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몸.

거기에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바닥과 던전에서 풍길 리 없는 풀 내음. 이 모든 걸 느낀 내 소감은 간단했다.


‘죽기 전에 꾸는 꿈인가?’


죽음이란 게 찾아오기 직전에 벌어진다는 주마등. 그걸 실제로 겪게 될 줄이야.


‘근데…… 원래 꿈이 이런가?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세상이 날 짓누르는 그 기분. 그건 온몸이 갈가리 찢겨 죽을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고통이 확실히 있는 쪽이 나았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죽어 가는 기분은 더 끔찍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쓸모없는 존재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돌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려고 한 그때였다. 내가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잠깐만…… 주마등은 원래 본인이 겪은 일만 떠오르는 거 아닌가?’


헌터 생활을 하는 틈틈이 본 너트뷰 영상들. 알고리즘이 추천한 그 영상 속에서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이 겪은 주마등은 다 이런 쪽이었다.


본인이 한평생 겪은 수많은 일들을 한순간에 흘려보내는 것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 머릿속에 재생되는 장면은 그런 류가 전혀 아니었으니.


‘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데?’


경험하지 못한 것은 물론 아예 모르는 사람들까지 내 기억 속에 있었다. 분명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임에도 현실감 있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를 찢어발길 듯이 들어오는 모습들이 있었으니. 그건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이게 뭐지?’


흘러 들어오는 기억들은 뜻밖의 것들이었다. 32세의 나이로 던전에서 몸이 꿰뚫린 채 죽은 나와 완전히 다른 인생이었기에.


고작 10살짜리 아이의 기억이 내 머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중이었다.


‘말도 안 돼. 설마 이거 던전에서는 이미 죽고 다시 태어난 거야?’


죽어 갈 때 겪는 주마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주마등이 아니라 환생한 이후의 삶에 대한 기억이라니.


‘이거…… 아무리 봐도 이번 생에 굶어 죽으면서 전생의 기억이 깨어난 건가 본데.’


무슨 원리로 굶어 죽어 가는 몸에서 전생의 기억이 깨어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전생에서 그렇게 죽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이거 하나는 모르고 싶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다시 태어난 이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무림? 이게 실존하는 세계일 줄이야.’


헌터 생활을 하기 전 틈틈이 본 무협지. 이곳은 그 책 속에 나오는 세상과 흡사한 곳이었다.


‘환생을 무림에서 할 줄 알았으면, 그 책들을 더 봐 두는 건데…….’


고작 C급인 정령사였기에 난 바쁘게 살아야 했다.


S급은커녕 A급이나 B급도 안 되는 나 같은 헌터가 먹고 살기 위해선 많이 움직여야 했으니까.


근데 이럴 줄 알았으면, 일을 줄여서라도 무협지를 더 들여다볼 걸 그랬다.


혹시 아는가, 다시 태어난 이 책과 비슷해 보이는 세상에서 도움이 됐을지도.


‘이딴 시답잖은 생각까지 하는 걸 보니…… 진짜로 나 맞네.’


10살짜리 꼬마의 정신이 아닌 32살 헌터였던 내 정신. 그게 이 몸에 깃든 모양이었다. 어쩌면 주도권을 성인인 내 쪽이 잡은 걸지도 몰랐고.


‘으윽.’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정신이 어른이면 뭘 하는가. 몸은 다 죽어 가는 어린아이의 것인데.


‘안 돼! 정신 차려!’


남들은 단 한 번뿐인 인생. 난 어쩌면 두 번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이게 어떻게 얻은 건데…… 이대로 다시 죽을 거야?’


일부러 자신을 향해 더 강하게 말했다. 그러지 않았다간 이대로 잠들어 버릴 것 같았기에.


사실 지금 난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딱할 수 없었다. 그만큼 온몸 구석구석 제대로 힘이 들어가는 곳이라곤 없었으니까.


그나마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가는 입술을 움직였다.


바짝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진 입가. 난 일부러 그 입술을 짓씹었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모양인지 내가 힘을 좀 주자 곧바로 입가에선 비릿한 맛이 맴돌았다. 익숙하디익숙한 맛. 바로 피였다.


‘윽. 도대체 얼마나 굶으면 피도 이렇게 잘 안 나오지?’


아이의 기억이 드문드문 끊겨 있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거지로 떠돌아다녔기 때문일까. 꽤 긴 시간을 굶은 듯한데, 정확한 건 알 수 없었다.


‘제갈세가 출신이라…… 지금은 이런 것보다 밥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하는 게 더 중요한데 말이지.’


어머니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는 점이나 아버지가 그런 어머니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점.


혹은 아버지가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던 자랑스러운 어떤 가문의 이야기. 그런 기억들이 이 꼬마의 머릿속에 칼날처럼 박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하등 쓸모없는 정보였다.


‘그래도 아버지가 기초 무공이라도 알려 줘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이 세계가 무림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바로 아버지인 제갈류가 제갈세가의 기초 무공을 이 몸에 알려 준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픈 어머니를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아버지 제갈류. 그는 비록 몰락했지만 나름 유명한 가문이었던 제갈세가의 방계였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고 했던가. 바꿔 말하면 3대 정도가 지나면 어지간한 부자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리라.


제갈세가도 마찬가지였다. 약 백여 년 전에 몰락하며 그 후손들은 서로 연락조차 안 될 정도로 뿔뿔이 흩어졌다.


직계 후손이 누구인지, 아니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예 망해 버렸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후손이 아예 없어진 걸 테니…… 제갈세가란 곳도 완전히 세상에서 없어지는 거겠지.’


세상에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


‘아!’


어딘가 섬뜩한 그 생각을 머리에 떠올린 순간 난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다 죽어가는 내게 갑자기 초인적인 힘이 생긴 이유. 그건 내가 어떤 존재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으니.


‘내 정령! 님프! 운디네!’


내가 죽으면서 역소환되었을 게 분명한 그 아이들. 정령에게 역소환이란 건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알고 있었다.


거짓이라고는 모르는 그 아이들이 내게 의지로 전달해 준 점이었으니, 분명 맞는 말이리라.


‘얼른! 얼른 좀 움직여!’


방금까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던 몸이었다. 그러나 난 어떻게 해서든 쇳덩이 같은 몸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크흡.’


역시나 어지간한 일은 다 의지로 되는 듯했다. 그 무겁던 몸이 덜덜 떨리면서도 기어코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러나 난 그런 자신에게 감탄할 새가 없었다. 더 중요한 걸 찾아야 했으니까.


‘쓸 거…… 필기구, 아니. 뭐라도 근처에…….’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소환진을 그려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원래 소환진을 그릴 도구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눈을 뜬 곳은 무슨 숲속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이 근방에는 돌이나 흙으로 보이는 것들만 가득했다.


볼펜이나 연필은 물론 들고 쓸 만한 나뭇가지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도구가 없으면…… 만들어야지.’


이제 막 눈을 뜬 내가 유일하게 가진 것. 난 그걸로 필기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뚜둑-


손가락을 있는 힘껏 깨물자 다행스럽게도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그리는 데 사용할 손가락, 거기에 소환진을 그릴 수 있는 피까지.


이렇게 전부 준비가 끝났다.


‘다행이네. 아직 입에는 힘이 남아 있어서.’


조금 전 입술에서 피를 나오게 만든 내 치아. 그건 이번에도 해냈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덜덜 떨리는 손가락. 그러나 이로 깨물며 피를 봤기 때문일까.


다 죽어 가던 감각까지 돌아오는 느낌이 역력했다.


‘좋아…… 아주 좋아. 이거면 님프는 부를 수 있어!’


물의 최하급 정령이자 가장 오랫동안 나와 함께 계약을 맺어 준 존재. 난 님프를 부르기 위해 피로 소환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확 집중한 덕분에 작고 삐뚤어진 소환진을 겨우 그릴 수 있었다. 어설프게 완성된 소환진을 바라보며 난 간절함을 담아 중얼거렸다.


‘제발! 잠깐만이라도 나와 줘!’


지금의 난 헌터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정령사도 아니었다. 마력도 없는 이런 몸으로 정령을 오래 소환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내가 그린 소환진이 맞는다면, 찰나의 순간 정령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 그 정도만 되어도 난 충분했다.


그거면 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걸. 그리고 살고야 말겠다는 걸 내 정령에게 보여 줄 수 있었으니까.


우웅-


그런 내 간절함이 통했기 때문일까. 붉은 피로 그려진 소환진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갈세가의 환생 정령사


지은이 : 연재형

제작일 : 2024.01.2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나쵸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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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05-239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