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세가의 궁귀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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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001화. 천인(天人) (1)



색이 바랜 연갈색 각궁(角弓)의 줌통을 꽉 잡은 뒤 절피에 화살을 꽂았다.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인 손으로 시위를 당기자 기다란 화살이 뒤로 쭉 빠지며 각궁이 부러질 듯 위태로이 뒤로 꺾였다.

수만 번. 아니, 수십만 번이 넘게 활시위를 당겨 온 서현우는 자연스럽게 활시위를 당기며 허리를 틀고, 턱을 왼쪽 어깨에 붙이며 시위를 당긴 등에 힘을 줬다.

그러자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의 끝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나…… 둘…… 셋…….’

이미 화살촉이 과녁을 향해 있음에도 서현우는 발시를 하지 않았다.

그의 각궁에 새겨진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처럼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부르르-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팔이 옅게 떨려왔다. 근육의 텐션이 한계에 달하며 과녁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히 눈에 들어온 지금.

지금이 바로 화살을 손에서 놓을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큭!”

일순간 파도처럼 밀려드는 오른팔의 통증에 오른손으로 쥔 화살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피슝!-

촉 끝이 방향을 잡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화살이 시위를 떠나 쏜살같이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56파운드의 힘을 가진 화살은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을 향해 쏘아졌고,

팅!-

화살은 철제 과녁의 끝에 부딪혀 튕기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젠장할…….”

50발 중에서 고작 1발의 적중.

과거 백 발 중 백 발을 맞추는 기염을 토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꽤나 비참한 광경이었다.

“정말 안 되는구나.”

현우는 참담한 눈으로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봤다.

수술 자국이 가득해 기괴해 보이기까지 하는 오른팔은 지진이 난 것처럼 거칠게 떨려 오고 있었다.

“역시 무리였어.”

현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과녁을 쳐다보다 현실을 수긍하듯 눈을 감았다.

‘그래. 접자. 알고 있었잖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부상도, 부러진 화살과 잃어버린 꿈도 오 년의 시간 동안 많이 익숙해졌다.

물론 아직까지는 미련이 남아 있긴 했지만.

‘한 번만 제대로 활을 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아쉬움을 집어삼킨 현우는 그렇게 국궁장을 떠났다.



* * *



사자의 갈기처럼 삐죽 튀어나온 흑발의 소년이 숲속에 누워 있었다.

“허허.”

중원에서 쉬이 찾아볼 수 없는 푸른 빛의 눈이 인상적인 소년은 잿빛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것처럼 실실 웃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소년이 이를 악물었다.

어디 보자.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그 시작은 분명 국궁장이었다.

통증으로 활쏘기를 포기한 현우는 바닥을 뒹구는 화살을 주우려 과녁 뒤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떨어진 화살을 줍는 그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했지.’

현우는 그걸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질적이고 낯선 숲속에서 빌어먹을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살던 현실이 아니다.’

도시화 된 현대에서는 맡을 수 없는 이 이질적인 숲의 냄새도, 생소한 풀과 나무도 이곳이 현우의 현실과는 다른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여긴 어디일까.”

어안이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때. 현우의 머릿속으로 낯선 기억들이 폭포처럼 밀려 들어왔다.

“으윽!”

흑도의 세 가문 중 하나인 화운종가(火雲宗家) 소속이자 고작 열다섯 어린 나이에 가주의 네 번째 제자 후보로 오른 천부적인 재능의 무인.

그러나 그 무지막지한 재능 탓에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을 당해 단전을 잃은 진소백의 기억들이었다.

‘내가…… 무협 소설 안에 들어왔다고?!’

기억을 승계받은 현우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누구나 그렇듯 현우도 여러 소설을 읽으며 언젠가 한 번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활약을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피식피식 미소를 지었고, 때때로 잠에 들기 전에는 상상의 나래를 몇 시간씩 펼치기도 했다.

무협 세계 속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건 독자라면 당연한 것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무협 세계에 오기를 원한 적은 없었다.

“왜 하필 와도 망할 사교혈전(邪敎血戰)에……!”

사교혈전(邪敎血戰)은 무협의 협을 혐오하는 작가가 쓴, 미친놈과 미친놈의 피 튀기는 유혈 낭자 소설이다.

내용은 대충 미친 광신도들이 서로가 진짜라 우기며 서로의 몸에 칼로 안부를 묻는 소설인데, 이 소설은 엄청난 잔혹함으로 독자들에게 유명했다.

‘독자들이 악X를 보았다의 무협판이라 했을 정도였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사망하며 소설의 주인공인 독고무극은 세계를 멸망으로 이끈 뒤 자결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모든 이들은 십 년 뒤에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다.

“십 년…… 시한부 판정 같네.”

현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주저앉은 그의 머리 위로 비가 후드득 쏟아졌다.

“일단 상황부터 좀 정리하자.”

사람이 숨 쉴 때마다 죽어 나가는 소설에 들어왔다고 불평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런 생산적이지 못한 것에 시간을 보내느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환경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름은 진소백. 흑도 출신의 열다섯 꼬맹이. 소설 속에서는…….’

소설 속에서 진소백의 이름을 찾던 현우가 미간 사이를 찌푸렸다.

진소백이 누구더라?

열 번은 넘게 읽은 소설인데도 진소백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중요한 인물이 아닌 건가.’

현우는 사교혈전의 내용을 곱씹어 가며 진소백과 관련된 어떤 것이라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잠깐만. 이거 설마…… 그 녀석인가?’

현우의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검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 주인공 독고무극에 버금가는 천부적 재능의 소년.’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당겨 머리카락의 색을 확인한 현우는 바닥에 고인 빗물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녀석 맞네.”

푸른 안광을 뿜는 눈동자를 확인한 현우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왜 하필 듣보…… 아니 엑스트라에 빙의를 하는 건데. 보통은 막 주인공이나 주연급에 빙의하지 않나?”

사교혈전은 천마신교, 혈교, 백백교, 염도교 등 여러 광신도들이 광기 어린 혈투를 벌이는 내용의 소설이다.

주인공 독고무극 역시 혈교 출신의 무인이고, 주연이나 조연들 역시 그쪽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진소백이라는 녀석은 그런 것과는 상당히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중원의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단전을 잃으며 폐인처럼 반평생을 살다 가는 단역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설 속 진소백의 큰 비중은 딱 한 번뿐이었다.

‘단전을 잃고 이론으로만 만들어 낸 무공을 혈교에 전달해 줄 때였지. 아마.’

주인공 독고무극은 진소백이 만들어 낸 그 무공을 통해 무림맹주를 다섯 조각의 고깃덩이로 만든다.

그리고 진소백은 그 소문을 듣고 호탕한 웃음을 뱉던 중 복수를 위해 온 무림맹 측 자객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어차피 다 죽으니 누구로 빙의하든 무슨 상관이겠냐만.”

현우는 착잡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지. 생각해 보니 이게 나은 거 아닌가? 주인공이 돼서 광신교들 사이에서 고생하느니 자유분방한 흑도가 낫잖아?”

혈교나 배교, 밀교 같은 미치광이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 세계에서는 이득이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장점도 꽤 있다.

우선 단역이기에 자유롭다.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끔찍한 전쟁에 휘말려 죽음을 맞이하는 에피소드들에 강제로 휘말릴 필요가 없다.

둘째로는 잠재력이 뛰어나다.

진소백은 먼치킨 중의 먼치킨인 독고무극에 버금가는 재능을 가졌다고 서술된 캐릭터이다.

‘당장은 약하지만 미래가 좋아.’

지금 당장이야 일류 초입 수준에 불과하지만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만큼 남들보다 쉽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무공을 만들어 낼 정도로 뛰어난 녀석이니까.’

현우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무성한 나무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캐릭터는 파악했고. 이제는 상황 파악을 할 차례인가?”

진소백이 처한 상황.

머릿속에 주입식으로 들어온 기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녀석이 배신을 당해 단전을 잃었다는 것이다.

‘근데…… 이상한데?’

현우는 물에 젖어 속이 훤히 비치는 피풍의를 통해 자신의 배를 바라봤다.

현우는 단 한 번도 갖지 못한 선명한 복근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소백의 배에는 어떠한 흉터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단전이 망가지면 배꼽 주변의 살이 뒤틀려 확연히 보인다고 했는데.’

다시금 바라봐도 소백의 몸에는 어떠한 상흔이 없었다. 마치 단전이 망가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현우는 소백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친우의 말에 속아 독초를 삼켰고, 단전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느끼며 혼절했다.

마지막으로 소백이 바라본 것은 살과 함께 뒤틀려가는 자신의 단전이었다,

‘분명 단전이 망가지긴 했다.’

하지만 지금 소백의 단전은 멀쩡했다.

‘망캐 특전인가? 단전까지는 너무하니까 봐준 거야? 그럴 거면 절세신공 같은 것도 좀 같이 주지.’

현우는 쓸모없는 상상을 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단전이 다시 생겨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따질 것도 없었다.

그렇게 따질 거면 애초에 어떻게 책 속에 들어오게 됐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지금 현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파악과 적응이고 현우는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돌아가자.’

현우는 빗물이 고여 만든 웅덩이를 밟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저기다!”

“저쪽이야!”

숲속의 왼편에서 사내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두 명의 사내가 낡은 철검과 낫을 쥔 채 현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눈빛에 호의가 전혀 없는데.’

사내들의 눈빛에는 욕심이 가득했고, 현우는 그 눈빛을 보자마자 그들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시체꾼이군.’

흑도 무림에는 사람의 시체를 암시장에 파는 꾼들이 있다.

물론 너무도 당연하게도 그들은 시체만 팔지는 않는다. ‘시체에 가까운 사람’ 역시도 시체로 치기 때문이다.

‘단전이 망가지며 죽어가는 날 잡으려는 거야.’

현우는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뒷걸음질 쳤다.

“흐흐. 어디 가냐. 꼬맹아.”

“도망치지 마라. 아프지 않게 끝내 주마.”

현우는 나름 최선을 다해 뒷걸음질 쳤으나 성인인 그들과 열다섯의 몸뚱이를 얻은 현우 사이에는 꽤나 큰 보폭의 차이가 있었다.

실시간으로 좁혀지는 거리를 보며 현우는 곤란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어떻게든 저들을 막을 방도를 찾기 위함이었다.

‘시체꾼은 이류에 불과하지만 무공도 쓸 줄 모르는 나 따위보다는 훨씬 강해.’

잡스러운 것이긴 해도 무공이라는 것을 익힌 놈들이다.

이제 막 무림 세계에 도달한 현대인이 감히 덤벼 볼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다.

“돌이라도 던져야 하나.”

적절한 크기의 바위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던 현우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 커졌다.

“어?”

현우의 시선이 떡갈나무를 거칠게 깎아 만든 활에 고정됐다.

‘활?’

무협 소설에서 활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운 편이다.

쓰는 이들도 잘 없을뿐더러, 보통 제대로 다루지 못해 그 위력을 다 표현해 내지 못하는 탓이다.

탁-

현우는 홀린 듯 활을 바라보다 손에 그걸 쥐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체꾼들이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크하하. 꼬마야. 그걸 다룰 줄은 알고?”

“좋은 말로 할 때 내려놔라. 활 따위로 우리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비웃음을 입가에 가득 머금은 시체꾼들을 보며 현우는 말없이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다룰 줄 아냐고?”

화살촉의 끝을 미간에 겨눈 채 현우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가 검을 다루는 것보다는 잘 다룰걸?”

“뭐? 이 어린놈의 새끼가. 건방지게!”

현우의 도발에 욱한 시체꾼 하나가 철검을 꽉 쥔 채로 돌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우의 손끝을 떠난 화살이 대기를 가르며 쏘아졌다.

‘화살을 막는 사이 도망치자.’

현우는 화살이 날아감과 동시에 몸을 뒤로 돌리려 했다. 화살이 통할 리가 없으니 막는 동안 시간을 벌며 도망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무학을 익힌 무인에게 활은 통하지 않는 법이니까.’

무인에게는 화살이 통하지 않는다는 상식. 

그러나 그 상식을 깨뜨리는 일이 지금 현우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피슈웅!-

대나무로 만든 화살이 대기를 가르며 창공을 날았고,

“고작 활 따위로 뭘 하겠다는…….” 

푸욱!-

화살은 달려들던 시체꾼의 미간 사이로 깊숙이 박혔다.

“커헉.”

시체꾼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삼류도 아니고 이류의 경지에 오른, 어기충검(御氣充劍)의 묘리를 펼칠 수 있는 무인이 화살 한 방에 절명한 것이다.

“어?”

현우는 당황한 눈으로 시체가 된 시체꾼을 바라봤다.

“뭐, 뭐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기껏해야 발걸음만 저지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헤드 샷이라니?

“잠깐만. 화, 활이…… 이렇게 센 거였어?”

내공을 실은 것도 아니고, 활의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다.

그냥 한 발 당겨서 쏜 것에 불과하다. 근데 이류 무사가 제대로 막지조차 못하고 죽었다. 

‘생각보다 엄청나잖아.’

현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해 그 크기가 작은 손. 팔목에 끔찍한 흉터가 보이지 않는 그 어린 손에서는 항상 느껴지던 통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노오오옴! 감히 내 동생을!”

홀로 남은 시체꾼이 안광을 뿜어내며 현우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다-

경공을 펼친 것인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시체꾼을 보며 현우는 차분히 숨을 들이켰다.

‘싸워야 돼. 아니, 죽여야 돼.’

호흡으로 심장 박동수를 줄이며 정신을 집중시킨 현우는 시체꾼의 미간을 향해 활을 겨눴다.

‘망설이지 말자.’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두렵지 않냐고.

‘두렵겠지. 여기가 내가 살던 현실이라면.’

이 세계는 현우의 현실과 다르다. 

이곳은 법보다 검이 가까우며, 언제든 누구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비정한 무림이다.

새로운 술에는 새로운 잔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전 세계의 규칙은 이전 세계에 남겨두고 이제는 이 세계의 규칙에 맞춰 살아가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죽을 테니까.

“건방진 애송아. 활 따위가 통할 것 같냐? 난 동생과 다르다. 내 무학은 무려 일류를 앞두고…….”

푸욱!-

현우가 쏜 화살이 다시금 시체꾼의 미간에 적중했다.

시체꾼은 낫으로 현우의 화살을 쳐 내려 했지만 그가 낫을 휘둘렀을 때는 이미 화살이 그의 손을 지나쳐 미간 사이를 꿰뚫고 있었다.

즉, 또 한 명의 이류 무인이 반응조차 못 한 채 죽어 나간 것이다.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놀란 얼굴로 활을 바라보던 현우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어쩌면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현우는 더 이상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오른손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십 년 뒤에 멸망할 세계. 모두를 죽이고 자결할 주인공.’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 진소백이라는 몸뚱이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정공법으로 주인공 독고무극을 상대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니까.

게다가 검술이니 무술이니 하는 몸 쓰는 일에는 현우도 그리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활이라면 할 수 있어.’

그 누구보다 활을 잘 다루기에 천재 궁사라 불리던 현우였다.

다른 건 몰라도 활 하나만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자신 있었다.

‘주인공을 죽이고, 이 세계에서 살아남자.’

차분하게 상황을 인지하고 계획을 세운 현우는 발걸음에 조금씩 힘을 들이며 화운종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반갑군. 천인(天人)

현우의 머릿속에 이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제갈세가의 궁귀


지은이 : 서녘

제작일 : 2024.07.25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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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05-298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