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컨의 원 코인 클리어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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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컨의 원 코인 클리어


프롤로그+접속 (1)




가상현실 게임 ‘단탈리안’.

출시된 지 8년이 된 장수 게임이다.

장르는 판타지, 미궁 탈출 로그라이크.

다른 유저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온라인 서비스를 지원했다.


단탈리안은 출시와 동시에 가상현실 게임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싱크로율 99%, 수천만 번 도전해도 동일 패턴 반복 없음.

단탈리안이 선보인 경이로운 기술력은 전 세계의 가상현실 게이머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이전까지 1위의 왕좌를 차지해 온 격투 게임 ‘킹 오브 피스트’는 대거리도 제대로 못 해 보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1위를 차지한 단탈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시 접속자 2억 명을 달성했다.

그러고도 상향 곡선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명백히 비정상적인 추세.


그것보다 더 비정상적인 건 그 많은 유저가 5년 동안 게임을 플레이했는데도 클리어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단탈리안이 비정상적인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를 이론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싱크로율 99%라는 SF적 기술력이 선사하는 초월적 감각이 비정상적인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 * *


퍼억.


태양의 주먹이 마지막 스켈레톤의 턱뼈를 으스러뜨렸다.


-?ㅋㅋ 원래 얘네 이렇게 약했냐?

-이상하다. 스켈레톤 원원투 하이킥에 골통 부서진 게 엊그제 같은데.

-엌ㅋㅋ 스켈레톤한테 골통이 박살 남?

-보통 사람이면 박살 남. ㅡㅡ

-이렇게 약할 리가 없는데; 하향된 거 아님?

-단탈리안에 밸런스 패치가 어디 있음. ㅋㅋ


“이제야 감이 좀 잡히네.”


이리저리 팔을 휘돌리며 신체를 점검하는 태양.

그리고 그 뒤로 무수히 널브러져 있는 스켈레톤의 잔해들.


말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아무 보정도 없는 기본 캐릭터 맞지?

-1층 첫 번째 스테이지, 망자의 탑 맞는데.

-아니, ㅆㅂ 이거 뭐야. 말이 돼?

-ㄷㄷ 이게 킹피 고인물인가?


태양이 씨익 웃었다.


* * *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리를 꼰 채 한 알록달록한 그래프를 보고 있다.


현재 접속자 수 299,999,995


천문학적인 숫자를 담은 그래프는 아주 미미한 상승세를 그리고 있었다.


현재 접속자 수 299,999,998


남자의 긴 속눈썹이 미려하게 내려앉았다 다시 올라갔다.


현재 접속자 수 300,000,005


“3억.”

붉은 입술이 유려한 호선을 그렸다.

남자가 희고 얇은 손가락을 들어 입술을 톡, 톡 쳤다.


“이 정도면…….”


남자의 눈에서 푸른빛이 일렁였다.

그 빛은 지구에 사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이윽고 기하학적인 도형이 빼곡하게 들어찬 마법진이 모니터를 감쌌다.

도형은 모니터를 잠식하고, 전선을 침범하여 가상현실 게임 단탈리안의 서버를 담당하는 슈퍼컴퓨터의 본체에 도달했다.


투웅.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곳곳의 인터넷 신문사가 속보를 내보냈다.


[속보! 가상현실 게임 단탈리안, 치명적 오류 발견. 사망자 속출…….]


* * *


초월 진각 – 선풍권.


꽈지지직.


반인반마(半人半魔)의 주먹이 초월적 전자기를 휘감았다.


맞으면 뼈아픈 데미지를 입고, 풀 콤보를 얻어맞겠지.


막는다면?

상태 이상 감전에 걸린다.

감전은 피격 데미지 증폭, 반응 속도 감소 효과를 가진 뼈아픈 디버프다.


꾸웅.


초월 진각.

싱크로율 70%를 유지하고, 0.1mm의 오차도 없이 모션을 이행해야 이펙트가 발동한다.

어려운 만큼 메리트가 큰 기술이다.


물론 대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맞지도 말고, 막지도 말고, 피하면 된다.


가장 좋은 건 피하는 김에 내 기술을 때려 넣는 거다.

지금처럼.


훅.


허리를 숙이며 전진한다.

권투 선수들이 흔히 ‘더킹’이라고 부르는 움직임이다.


번개를 휘감은 주먹이 태양의 이마를 스쳤다.


꽈지지직!


짜릿하다.

종이 한 장만큼만 더 움직였어도 피격 판정이었다.


동시에 앞발을 내딛는다.

방금 저 반인반마가 밟은 보법과 똑같은 경로로.


초월 진각 - 승룡권.


꽈지지지직.


오른팔에 미증유의 힘이 깃들었다.


태양의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반인반마, 아이작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피식.


태양은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어떡하냐. 내가 잘하고, 네가 못 하는 걸.


뻐억.


아이작의 턱에 태양의 주먹이 꽂혔다.

선풍권의 모션이 끝나기도 전이라 아이작은 어떤 대처도 할 수 없었다.


클린 히트(Clean Hit).


-아아아! 태양, 태양, 태양! 신기에 가까운 피지컬!

-초월 진각을 맞초월 진각으로 회피!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감탄만 나오는 선수예요, 윤태양!


이후는 쉽다.

선풍권, 승룡권, 중단 무릎 치기.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할 것도 없이 콤보를 욱여넣는 과정이다.


태양은 슬쩍 눈을 들어 아이작의 체력 게이지를 확인했다.

잽 한 대만 맞아도 죽을 피다.


그럼 마무리로.


태양격(太陽挌).


태양격.

아직 킹 오브 피스트가 쇠락하지 않았을 때, 제작진이 태양을 위해 헌정한 기술이었다.

최고 난도 모션과 화려한 이펙트, 그에 걸맞지 않은 한심한 데미지의 기술.


모션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주먹이 화르륵 작열하기 시작했다.


태양이 허공에서 미처 내려오지도 못한 아이작의 얼굴을 보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번쩍!


경기 화면이 점멸했다.


-아아! 태양격! 투신 윤태양 선수! 킹 오브 피스트가 헌정한 자신의 시그니처 기술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을 마무리합니다! 믿기지 않는 기록! 5연패입니다!


치이익.


캡슐이 열렸다.

후욱, 상쾌한 공기가 땀 맺힌 태양의 얼굴을 핥았다.


정정.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 공기가 상쾌하진 않았다.


태양이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온라인으로 중계되는 킹 오브 피스트 월드 챔피언십.

해설자들의 소란이 한창이었다.


시청자는…… 4,602명.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게임이라기에는 적은 숫자였다.

한때는 10만을 우습게 넘던 시절도 있었다.


그나마 이 정도 숫자가 나온 것도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라는 타이틀이 걸렸기 때문이라는 게 더 슬펐다.


-비운의 준우승자! 아이작과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아이작 아킨페프.


불쌍한 녀석이다.

다른 선수들 사이에선 언터처블(Untouchable)로 통하지만, 하필 태양과 동시대 사람인 바람에 항상 2인자에 머무르는 녀석.


이번으로 결승전에서만 태양과 네 번째로 붙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인터뷰가 막바지로 치달았다.


-아이작! 우승자 윤태양 선수에게 한마디 하시죠!

-다, 다음엔 내가 이긴다. Fuck!

-역시 화끈합니다.


어쭈, 한국말도 배워 왔다.


그래도 욕은 제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씨발까지 배워 왔으면 만점인데.


세계 대회라고는 해도, 인터넷 방송이나 다름없는 규모인지라 저렇게 욕을 해도 상관없다.


-렘뒷발상필: ㅋㅋㅋㅋ 아이작좌 오늘도 2등.

-할머니리어카부수는아이작: 눈물... 나 같으면 킹피 때려 쳤다.

-뉴비는4초진부터: ㄹㅇ. 단탈리안이나 하지. 왜 이런 똥겜을 붙잡고서 난리인지...

-킹피재림기원: ? 단탈리안 소식 못 들음? 지금 조졌는데?


-그럼 다음으로 우승자! 5연패의 주인공! 윤태양 선수를 만나 보겠습니다.


인터뷰.

킹 오브 피스트 선수로서 하는 인터뷰는 익숙하기 그지없다.


묻는 것은 항상 비슷하다.

5연패인데 긴장되지 않았냐. 초월 진각에 맞초월 진각으로 대처할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기분이 어떠냐.


당연히 대답 역시 평소와 다를 바 없다.

긴장됐지만 잘 이겨 냈다. 그냥 했다. 좋다.


-킹피재림기원: ㅋㅋ 윤태양 매크로 on

-렘뒷발상필: 쟨 항상 대답이 똑같냐?

-뉴비는4초진부터: 감흥이 있겠냐? 나왔다 하면 우승인데.


아, 다른 대답도 하나 있었다.


-아이작 선수가 윤태양 선수에게 한 말이 커뮤니티에서 화제인데요. 아이작 선수에게 한마디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Fuck?”

“하하하. 네. 그거요.”


태양이 캠을 바라보고는 픽 웃었다.


“너무 상심하지 마. 상대가 나잖아.”


* * *


킹 오브 피스트는 모션 기반의 격투 게임으로, 유저 본인이 실제 행동을 취해야 기술이 발동되는 하드코어한 게임이었다.


라이트 유저를 위해 보정이 꽤 크게 들어간 버전도 있었지만, 프로 게임은 당연히 그런 보정 따위는 없다.


킹 오브 피스트의 프로 게이머들은 현실에서 해당 기술을 연습했다.

고작 게임에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연봉이 억 단위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게임은 즐기는 놀이가 될 수 없었다.


연습은 치열했다.

기술의 형태적인 완성도 부분에서 킹 오브 피스트 프로 게이머가 현역 격투기 선수보다 더 많이 뛰어다닌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였다.


뭐, 과거의 이야기지만.

킹 오브 피스트가 과거의 영광이 되어 버린 이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태양과 아이작, 줄리아 정도밖에 없었다.


대회는 고인물화되고, 올라오는 사람이 맨날 올라오고, 재미는 없어지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털썩.


“좋다!”


태양이 푹신한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리고 조각같이 갈라진 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즐길 생각이었다.


태양이 그의 동생, 별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받아라.”


보통 남매는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들 많이 하는데, 별림과 태양은 사이가 돈독한 편이었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서로 의지하며 성장한 탓이 컸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태양이 입술을 삐죽였다.


“방송 중인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별림의 직업은 게임 스트리머였다.


전화를 포기한 태양은 스마트폰을 또닥였다.


-오빠 우승했다. ^^


당연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월드 챔피언십 결승인데. 좀 봐 주지.”


별림은 태양과 남매 사이라는 걸 밝히기 싫어했다.

밝히면 자신의 이미지가 ‘태양의 동생’이라는 이미지에 덮일 게 분명하다나.


맞는 말이긴 했다.

과거의 영광이긴 하지만 태양의 인지도는 어지간한 연예인 수준이니까.


태양은 게임 전문 사이트에 접속했다.


킹 오브 피스트 월드 챔피언십 5연패.

태양 자신이 생각해도 전설적인 업적이었다.


“이게 뭐야.”


한참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던 태양의 입술이 뚱 나왔다.

사이트가 온통 가상현실 게임 단탈리안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단탈리안이 뭐라고!”


곧 동시 접속자 3억을 찍을 추세라니 대단……하긴 하지만 여긴 한국 사이트고, 한국인인 내가 킹 오브 피스트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했는데!

어떻게 기사 한 줄이 없을 수가 있냐고!


태양은 뚱한 얼굴로 기사를 클릭했다.

이내, 그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확장됐다.


[가상현실 게임 단탈리안, 치명적 오류 발견. 사망자 2천만 명 추정]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 단탈리안에 사용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되어 세계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단탈리안은 동시 접속자가 3억에 다다르는 메가 히트 게임으로…….


태양이 벌떡 일어났다.


단탈리안.

별림이 주로 하는 게임이었다.


치명적 오류라고? 목숨을 잃을 정도로?


그때 태양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을 울렸다.


발신자는 현혜였다.

어렸을 때부터 알아 온 소꿉친구이자, 별림이와 같은 게임 스트리머.

그녀의 주력 게임 역시 단탈리안이다.


“여보세요?”


긴장한 탓인지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너 별림이랑 연락돼?

“나 대회 방금 끝났잖아.”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태양이 조급하게 물었다.


“단탈리안 기사 봤어. 혹시 별림이 지금 접속해 있는 상태야?”

-모르겠어.


태양은 삽시간에 머리에 피가 식는 걸 느꼈다.

별림은 태양의 유일한 피붙이였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을 덮친 화마에서 건져 낸 마지막 피붙이.

기억 속 태양의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믿는다. 아들!


태양이 초조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나 지금 상암동으로 바로 갈게.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하자.”

-내가 먼저 별림이네로 가서 확인해 볼게. 그거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이럴 땐 현혜의 빠른 눈치가 고마웠다.


“부탁한다. 확인하고 바로 연락 줘.”


전화를 끊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진 태양이 자취방을 박차고 나갔다.


* * *


태양과 현혜는 침울한 채 별림의 방에 앉아 있었다.


짧은 사이, 사태는 꽤 파악됐다.


사람들은 게임 안에서 사망하면 실제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심장이 멈춘 것이다. 끔찍했다.


유족들이 할 수 있는 건 시체가 되어 버린 유저를 캡슐에서 꺼내는 것밖에 없었다.

방송을 송출하고 있던 스트리머들의 방송이 끊기지 않았고, 이를 통해 게임 속에 있는 유저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현재, 문제 해결은 전혀 되고 있지 않았다.


각국의 정부는 허겁지겁 단탈리안의 다운로드를 막았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3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인구가 접속해 있었으니까.


몇몇은 추가 접속자를 막기 위해 가상현실 캡슐도 전량 회수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가상현실 캡슐은 21세기 컴퓨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캡슐을 회수한다는 규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세계는 뒤늦게 책임을 묻기 위해 단탈리안 관계자를 찾았다.

이쪽의 상황은 더 놀라웠다.


회장은 실종, 대표 이사는 유서도 없이 자택에서 목을 맸다.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던 팀장급 인사는 강도에게 총을 맞았고, 브라질에 출장을 간 또 다른 인사는 마피아에게 린치당해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밖에도 주식회사 단탈리안의 고위 임원진이거나 ‘이었던’ 사람들까지도 하나 같이 자취를 감추거나, 죽었다.

팀장 이상 계급 인원이라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벌어졌다고 말하기엔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


현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트리머들이 바깥소식을 안으로 전했대. 별림이도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걱정하지 마. 생체 반응이 있는 걸 보면, 죽지는 않은 거니까…….”

“별림이도 스트리머잖아. 왜 별림이는 방송 안 켜?”

“방송 안 켜고 게임만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원래 켜져 있던 방송은 계속 송출되는데, 게임 안에서 새롭게 송출 프로그램을 조작할 수가 없대.”

“그게 뭐야…….”


태양이 까치집이 된 제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