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1화
1월의 극도로 더운 날, 고기 타는 냄새로 가득 찬 공간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니, 이 일을 설명하려면 조금, 아주 약간 되돌아가야겠군.
* * *
빌라의 계단을 밟자 딱딱, 신발 소리가 울렸다.
어서 방으로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무거웠다.
“망할 야근.”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2층 가장 안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좁은 신발장에는 슬리퍼 한 쌍이 끝.
그조차 근처 편의점을 다니기 위한 것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것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혼자 사는 집이니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
전등 스위치를 누르자 천장에서 밝은 빛이 찌지직거렸다.
불이 켜지나 싶더니,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암흑이 찾아왔다.
“내일, 내일 고치자…….”
무거운 숨을 내쉰 다음 터덜터덜 욕실로 들어갔다.
몇 분 뒤, 잠옷 차림으로 나와서는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작은 냉장고를 열자 찬 공기와 함께 푸르스름한 빛이 얼굴을 뒤덮는다.
-우웅.
휴대폰 알람음이 근육을 긴장시켰다.
서둘러 콜라 캔을 꺼낸 뒤 몸을 돌렸다.
“이 시간에?”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휴대폰을 뒤집자 ‘11:47’이라는 선명한 숫자가 보였다.
이런 늦은 밤에 대체 누굴까 싶었는데, 문자 내용을 보자마자 그런 궁금증 따윈 방치해 둔 콜라의 탄산처럼 날아가 버렸다.
「일한 씨, 오늘 자료 내일까지 정리해서 보내 줘.」
정말이지.
소름 돋을 정도로 간결하고, 기분 나쁠 정도로 직설적이다.
‘내일은, 1월 1일 정도는 쉬게 해 달라고.’
아무리 머릿속으로 생각해 봤자 부장의 대답 같은 건 돌아오지 않는다.
쏟아지는 일 때문에 정신이 나가 버린 걸까 생각하면서도, 컴퓨터 앞에 있는 의자에 몸을 날렸다.
“후우.”
일한이 몸에서 힘을 빼자 의자의 등받이가 끼익 밀렸다.
어깨를 살짝 돌리니 우드득, 하고 큰 소리가 났다.
회사에서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탓에 일한의 어깨는 항상 뭉쳐 있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등도, 허리도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부장이 잔업무를 모두 넘겨주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
바르지 않은 자세 때문에 어깨가 좁아졌고, 그리될수록 입고 있는 옷이 괜스레 커 보였다.
스트레스와 피로로 인해 짙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았다.
머리카락은 아무리 린스를 처발라도 푸석푸석할 뿐이다.
얼굴은, 한마디로 까칠해 보인다.
뾰족한 눈매는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수험생을 연상케 했다.
건강했던 어린 시절과 변하지 않은 게 있을까?
아, 있다.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왼팔의 화상 자국. 다른 하나는 오른쪽 눈 아래의 얇고 긴 흉터.
이것들을 제외하면 모든 게 변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머리카락, 언제 자르지.”
눈가를 가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휙 넘기는 일한.
점심시간에 부장에게 맞은 정수리가 아프다.
별것도 아닌 일로 매일같이 때리니, 언젠가 사람도 죽일까 봐 겁난다.
‘성격은 더러워 가지고.’
컴퓨터가 켜지기를 기다리며 콜라 캔을 땄다.
-치익.
탄산 빠지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올라왔다가 스르륵 내려갔다.
일 때문에 쌓인 피곤함도 그 거품처럼 사라졌으면 좋겠건만, 그럴 일이 있을 리가.
휴일인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일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 반복적인 일상이다.
일한은 콜라를 들이켠 뒤 뺨을 두어 번 때렸다.
그렇게 피로를 날리고는 컴퓨터 화면의 구석에 있는 아이콘에 시선을 보냈다.
그것의 바로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엘리멘트’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일한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그 아이콘을 클릭했고, 커다란 화면은 잠시 검은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붉은 세상을 띄웠다.
붉은 세상, 이랄까. 그것은 마그마와 불기둥이 가득한 세계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접속은 해야지.”
목을 기울이자 으득, 하고 뼈 소리가 났다.
“일 같은 건 잊어버리고, 오늘도 가 볼까.”
엘리멘트.
네 명의 용사가 일궈 낸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설정의 게임.
여섯 개의 개성 있는 월드와 높은 자유도가 특징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이기도 하다.
아니, 이제는 ‘유명했었다’라고 하는 게 맞겠지.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후로 돈에 미친 게임이 되었으니까.
아이템 풀강화나 사역마 계약에 몇천, 몇억이 무슨 말인가?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런 급격히 도입된 엉망진창의 시스템들 때문에 절반 이상의 유저가 게임을 접었다.
한때는 각종 SNS에서 계정 삭제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나도 그때 지워 버릴까 싶었지.’
하지만 게임이 오픈할 때부터 해 왔다는 사실과, 플레이하다 보면 풍겨 오는 기묘한 정취가 마음을 붙잡았다.
때문에 접을 수가 없었다.
일한의 생활에는 일과 게임뿐이었다. 무려 14년 동안.
방대한 세계를 몇 번이나 돌아다녔다.
모래 설원 끝자락에 있는 특이한 던전부터 멸망한 불의 마을까지,
안 가 본 곳이 없다.
게임의 메인 콘텐츠는 ‘길드’에 치중되어 있기에 일한처럼 월드를 탐험하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다.
‘솔직히, 나만큼 구석구석까지 잘 아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1년 전에 업데이트된 새로운 맵까지 정복했다.
‘제일 어려운 맵이었지.’
일명 ‘지옥’.
마그마와 화염뿐인 데다 워낙 위험한 몬스터가 많아서 방문하는 유저가 가장 적은 곳.
하지만 일한은 매일같이 그곳에 들른다.
“여기 오는 게 유일한 낙이니까.”
한창 손가락을 움직이다 보니 나타난 큐브 모양의 검은 구조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새하얀 불꽃이 가득한 방의 중앙에는 원형 테이블이 있었다.
다양한 과자가 시선을 끌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의자에 앉아 있는 NPC.
그녀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일한은 이에 화답하듯 키보드를 두드렸다.
「안녕.」
「응, 안녕.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
지옥의 단 하나뿐인 NPC. 그게 바로 솔라다.
검은 드레스와 화려한 장신구들.
가슴께로 흘러내리는 상아색 머리카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대한 맵에 NPC가 단 하나라니.
‘정보가 공개됐을 때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지.’
한데, 막상 솔라를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찾기도 힘든 NPC의 대사는 ‘오늘도 수고했어’, 이 하나가 전부였으니까.
그게 끝이다. 아무런 이벤트도 없고 다른 대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유저들은 솔라가 같은 말만 반복하자, 흥미를 잃고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았다.
‘확실히 좀 싱겁긴 해.’
그렇지 않은가?
몇 시간이나 들여서 만난 캐릭터가 한마디밖에 할 수 없다니, 가히 실망스러울 거다.
다만 일한에게는 그 한마디가,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말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에 그 대사를 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늘도 일 때문에 힘든가 보구나?」
조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뭐, 그렇지.」
그녀가 진짜 사람처럼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솔라, 너는 오늘 어땠는데?」
「당연한 걸 뭐 하러 물어? 종일 여기에 있었지. 여기 오는 사람은 너밖에 없는걸.」
일한은 멋쩍게 웃었다. 이 캐릭터를 찾아올 괴짜는 자기밖에 없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괴짜? 아니, 이젠 아니지.’
진짜 사람처럼 말을 하고, 하소연을 들어 주고, 위로해 주는 NPC는 누구든지 찾고 싶어 할 거다.
「세상은 재밌어?」
솔라의 물음에 일한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갑자기?’
당황하는 것도 잠시. 작은 웃음을 흘렸다.
「재미없어. 매일매일 반복되는 세상보다는 이 게임 속이 훨씬 좋은걸.」
화면 속 솔라는 「그렇구나.」라고 말하더니 몇 번인가 끄덕거렸다.
‘이러는 건 또 처음이네.’
의아한 것도 잠시,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컴퓨터 하단으로 시선을 옮기니 숫자의 행렬이 보였다.
오전 12:32
01-01
이룰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던 1년이 이렇게 지나갔다.
‘올해도 일만 하겠지.’
잡생각으로 머리를 채우며 멍하니 솔라를 보고 있다가, 남은 콜라를 모두 들이켰다.
“더 이상 눈뜨고 못 있겠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겁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난 슬슬 자러 갈게.」
「응, 바이바이.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게임 종료.
홀린 듯 양치질을 한 일한은 녹은 버터처럼 침대에 스며들었다.
“으으, 추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그는 순식간에 잠들었다.
그렇게 눕고 나서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찝찝함.
이유는 모르겠지만 끈적이는 껌이라도 밟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빠져나왔다.
손을 더듬거려 보았지만 전신을 덮고 있던 이불은 만져지지 않았다.
“더워…….”
갈라지다 못해 쉬어 버린 듯한 목소리가 기어 나왔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 잠옷에 스며들었다.
“난방을 너무 세게 틀었나.”
전기세 걱정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응?”
무거웠던 눈꺼풀이 한껏 가벼워지며 눈이 크게 뜨였다.
온갖 메시지부터 재난 문자까지,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쌓여 있었다.
절친이자 직장 동료인 김 대리가 몇 분 전에 보낸 메시지.
「야어디냐」
급하게 보낸 건지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다.
일한은 갸웃하면서도 먼저 재난 문자를 클릭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신속히 대피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쓰여 있지는 않았다.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거야?”
메시지 한 통으로는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김 대리라면 무슨 일인지 알고 있을까 싶어서 그에게 답장하려던 찰나.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수신자를 본 일한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얘가 갑자기 웬일이래?’
앨리스 아리아나.
오랫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던 미국인 친구였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한국에, 아니 전 세계에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김 대리를 까맣게 잊은 채 앨리스가 보낸 것을 확인했다.
「여러 나라에서 기괴한 구조물이 등장…….
심지어는 화염이나 얼음, 물 등으로 뒤덮인 곳도…….」
영문 모를 장문의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Can you see this, too?
(너도 이거 보여?)」
허공에 떠 있는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
익숙한, 무서울 정도로 익숙한 것이었다.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어떻게 봐도 엘리멘트의 상태 창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실이 게임으로 변했다는 거야?”
아니면 엘리멘트가 대규모 이벤트라도 진행하는 걸까?
‘일단 침착하자.’
당황한 채로 뭘 하겠는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흐트러진 호흡을 골랐다.
그런데 진정하려고 하면 진정할수록 점점 더워졌다.
“후, 일단 창문 좀 열까.”
그리 중얼거리며 커튼을 걷었을 때.
몸이 조각상처럼 굳었다.
“어?”
눈앞의 광경에 피로 따윈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잠잠했던 심장이 과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전신으로 피를 보냈다.
“미친.”
일한은 차가워진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하나, 눈앞의 광경은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는 가냘픈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창문에 너머로 일그러진 세계가 비친다.
아니지, 그 광경을 일그러졌다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옥…….”
가장 어울리는 말을 찾아냈으리라 장담한다.
하얀색으로 뒤덮인 머릿속에는 ‘지옥’이라는 단어만이 붉게 떠올랐다.
길거리를 뒤덮은 마그마와 불기둥으로 변해 버린 빌딩들.
그저, 그뿐이었다. 1월 1일. 회사를 쉬는 빨간날에, 눈앞의 광경이 붉게 물들었다.
심장이 뛴다.
“하아…… 하아…….”
호흡이 거칠어진다.
일한은 이를 꽉 깨물었다.
“진정해!”
떨리는 팔을 다른 한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아무리 봐도 엘리멘트야.’
세상이 게임에 뒤덮이고 있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도달하는 결론은 같았다.
창밖으로 익숙한 구조물들이 보였다. 솔라를 만나러 갈 때마다 봤던 구조물들이다. 이곳은 지옥.
극악의 난도를 가진 맵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더럽게 익숙한 곳이지.”
왜일까. 어처구니없는 상황임이 분명한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분명 몬스터도 있을 거야.’
엘리멘트 세계관 속에는 몬스터들이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지옥’에도 하나 있는데, 바로──.
“솔라의 방.”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 괴물이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분명 못 들어가는 거다.
일한은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여기서 멀진 않은 것 같아.’
솔라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자비를 결코 확신할 순 없거니와 NPC가 구현되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렇다 한들, 집에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가 보자.”
창밖으로 화염이 일렁인다.
“갈…… 수 있나?”
그때.
-화아악!
불길이 치솟으며 빌라 전체를 덮었다.
“젠장!”
큰일이다. 나갈 길이 막혀 버렸다.
‘2층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살았어야 했나?’
불길은 벽을 태우며 서서히 다가왔고, 그럴수록 머릿속은 실없는 생각으로 차올랐다.
불똥이 튀며 옷에 작은 구멍이 났다.
“이대로 타 죽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데.”
힘없는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을 때였다.
-띠링.
고요 속에서 울린 알람음.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바라보았으나 검은 화면 그대로다.
애초에 소리의 출처는 불 속에서 깨져 버린 휴대폰이 아니었다.
그 청량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조금 더 위쪽.
일한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유일한-
레벨: 300
직업: 없음
스킬: 화염 내성(Lv. Max)
고유스킬: 없음
소속 길드: 코퀴토스」 |
직접 보니 알겠다. 엘리멘트의 상태 창이 확실하다.
게임 속과 조금 다른 점은 이름. 닉네임은 온데간데없고 실명이 쓰여 있다.
“레벨을 보면 게임 계정 그대로인가.”
어느새 불길이 발치를 메웠지만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식어 가는 핫팩처럼 미지근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심지어 입고 있는 옷에도 불이 붙지 않았다.
‘화염 내성’이라는 글씨에 시선을 고정했다.
‘불에 타 죽을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겠네.’
밀려오는 안도감을 억지로 밀어냈다. 안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야 밖에는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후우.”
숨을 크게 내뱉은 뒤, 방에서 빠져나왔다.
아슬아슬 무너져 가는 계단을 밟고 1층으로 내려온 그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달렸다.
몇십, 몇백 번이나 봐 온 것들.
최단 거리는 물론이요, 괴물이 가장 적은 길까지 꿰고 있는 건 당연하다.
일한은 익숙한 구조물들을 이정표 삼아 솔라의 방이 있을 검은 벽을 찾기 시작했다.
잿빛 하늘에서 번개인지 뭔지 모를 빛이 번쩍거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한 도시의 모습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지옥’은 게임 속 형태를 세세하게 갖추어 갔다.
“저건…….”
경악했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괴물들이 보였으니까.
분명 있을 거라고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인간처럼 생긴 것들부터 각종 짐승을 닮은 것들.
게임 속에서 봤을 때는 그저 시스템 덩어리에 불과하던 것들이 일렁이는 화염을 두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그런 잔인한 사실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마주치면 안 돼.’
지금 보이는 건 멀리에 있는 것들뿐이지만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야 몬스터가 가장 많은 맵이 이곳, 지옥이니까.
어디 녀석들뿐인가?
곳곳에 위험천만한 것들이 널려 있다.
‘이 앞에 함정이 있었지.’
일한이 높이 점프하자 바닥이 꺼지며 마그마 구덩이가 나타났다.
‘조금 더 가면 함정 두 개 더. 그다음이 도착이다.’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계속 달린다.
매일 화면 속에서 마주치는 함정을 피하고, 달리고, 피하고, 달리고.
“됐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저 멀리 검은색 구조물이 흘끔 보인다.
전신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서 땅을 밟았다.
그렇게 3분 정도 달렸을까. 드디어 도착했다.
달려오는 와중에 괴물을 마주치지 않은 것은 정말이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한은 심장에 손을 얹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되었을 때쯤, 문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들어갈 수 있어!’
아무런 소리 없이 활짝 열린 문.
“응?”
방의 내부를 보고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새하얀 불꽃은 흔적조차 없었으며 원형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으니까.
한 발짝 내디디자 문이 쾅, 하고 닫혔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온통 새카만 공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어둡지 않다.
일한의 입술이 떨렸다.
그저 현재의 모든 것이 당황스러웠고, 믿기지 않았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점들이 던져 놓은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엉켜 버린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건 분명했다. 무엇보다 살아야 했고, 살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온 거다.
솔라의 방에 말이다.
그런데.
“솔라?”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이곳에 있는 그녀가 없다.
‘NPC는 구현되지 않는 건가?’
몬스터와 함정도 있는데 NPC가 없다니. 그럴 리가 없다.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의식중에 그리 간청하던 일한은 테이블 위의 무언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편지?”
평소라면 다과로 가득 차 있을 테이블에는 흰색 편지 봉투 하나가 휑하니 놓여 있었다.
진한 검은색으로 쓰여 있는 글씨를 눈으로 훑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솔라가.]
짧고 간결하지만, 자기 전에 봤던 부장님의 문자보다는 와닿는 글이었다.
‘친구’라는 애매모호한 말이 쓰여 있으나, 그 단어가 칭하는 건 분명 유일한이다.
이 장소에 오는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는 사실 아닌가.
조급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조심스레 편지를 뜯었다.
“열쇠…….”
일한은 그것을 꺼낸 뒤, 봉투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끝이야?”
별다른 설명도, 물건도 없었다. 그저 쇳덩이 한 개. 그게 끝이었다.
시선을 옮겨 열쇠를 뚫어져라 보았다.
철로 된 물건이었는데, 얼마나 오래된 건지 표면이 꺼끌꺼끌해진 것도 모자라 군데군데가 깨져 있었다.
그 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열쇠였다.
혹시 테이블 아래 상자 같은 게 있을까 싶어 허리를 숙였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의 당혹함을 느끼며 편지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려던 찰나.
-화륵!
“응?”
새하얀 불길이 편지 봉투를 비롯해서 일한의 팔을, 몸을, 전신을 뒤덮었다.
“으아아악!!!!”
뜨겁다.
미친 듯이 뜨겁다.
화염 내성이 있을 텐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파.
죽을 만큼 아프다.
함정? 모르겠다. 게임 속에는 이런 시스템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으윽!”
비틀거리던 일한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일렁이는 불꽃. 마치 악마가 비웃는 것만 같은 광경이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바닥을 구른다. 구르고, 구르고, 구르지만 불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그 크기를 키웠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고통이 줄어든다.
“…….”
1월의 극도로 더운 날, 고기 타는 냄새로 가득 찬 공간에서 그는.
유일한은 불탔다.
소사(燒死)했다.
만렙 F랭크 플레이어의 하극상
지은이 : 강현
제작일 : 2024.11.1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레아
표지 : 숲향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405-354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