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삼생 001화

Cover
00


천마삼생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지독한 정마대전이었다.

무려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된 전쟁.

억울했다.

우리는 벌레처럼 죽임을 당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나는 마도의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적들은 나를 비열하다 모욕했지만 나는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칼을 막아 낼 방법은 진짜 힘밖에 없었다.

모자란 힘을 지략으로 메우며 천마신교의 교주까지 되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모두를 지킬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깨달아야 했다.

아내가 죽고, 딸이 죽고, 혈육과 같은 마도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나 또한 정파 최고수 십(十) 인의 합동 공격을 당해 내지 못하고 죽었다.

지독하게 아픈 패배.

그것이 내 첫 번째 죽음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삶이 찾아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기회였다.

살아남아 이길 수 있는 기회!

나는 비극적인 죽음을 막기 위해 가족조차 만들지 않았고, 진짜 힘을 키우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백 년 전에 명맥이 끊겼던 천마신공(天魔神功)의 진의(眞意), 천마의 힘의 끝자락을 밟을 수 있었다.

힘을 갈망하던 내게 닿은 마신의 은혜 같았다.

고작 그 정도 힘이었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전보다 빨리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어 마도의 모든 힘을 내게 집결시켰고, 정파 최고수 십(十) 인이 연합을 하기 전에 그들을 하나하나 각개격파 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정마대전에서 승리하였다.

단지, 그게 끝이 아니었을 뿐.

최후의 승리를 남겨 두었을 때였다.

푸욱! 푹!

“컥!”

푹!

“이, 이게 무슨……!”

푹! 푸-욱!

정파 최고수 십(十) 인 중 마지막 남은 이(二) 인 검성(劍聖) 모용진과 선승(先僧) 각오의 심장이 꿰뚫렸다.

그리고 나 또한…….


“일이…… 니다.”

“자네…… 마교를…… 옳았군.”


온몸이 불에 타는 듯 지독한 고통이 밀려오고.

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아야 했다.

그것이 내 두 번째 죽음이었다.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 * *


천마신교가 자리한 곳.

마도들의 터전, 십만대산(十萬大山)은 높고 광활한 산맥이었다.

평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땅이기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낯선 위험을 경계하고 강인함을 사랑해야만 했다.

어쩌면 마도는 그렇게 탄생했을지도 몰랐다.

마령(魔靈)은 그중에서도 가장 험하고 척박한 곳이었다.

늘 코를 찌르는 듯한 메케한 냄새로 가득했고 쌀 한 톨 농사 지어먹을 땅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령은 마도에서 가장 특별한 땅이었다.

일 년 내내 땅속의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마도들은 마령의 불을 초대 천마의 심장, 아수라의 불이라 믿었다.

그리고 신성한 불을 지키는 자들, 바로 수라현가(蒐羅玄家)였다.

수라현가는 천마신교 팔대호법 가문 중 하나로, 초대 천마의 혈족으로서 대대로 마령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수라의 불에서 나오는 유황과 온천, 각종 보화가 마르지 않는 금력을 제공하고, 가문의 무단인 흑풍대는 죽음의 돌풍이라 불리며 마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작금에 이르러서 수라현가는 팔대호법 가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대세가로 불리고 있었다.

현천우(玄天佑)은 바로 그 대세가의 대공자였다.

비록 열두 살 때의 현천우는 존재감도 없는 호부견자(虎父犬子)로 유명했지만 말이다.

‘또 열두 살 때로군.’

현천우는 작아진 손과 몸을 못마땅한 듯 익숙한 눈으로 보았다.

가주인 현명도가 갑자기 쓰러진 바람에 미래를 비호받을 수 없는 대공자.

수라현가를 팔대호법 가문 중 으뜸으로 올려놓은 아버지와 달리 무재라고는 가문의 문지기 아들보다 못한 천덕꾸러기.

호부(虎父) 현명도와 그의 아들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약하고 쓸모없는 견자(犬子) 현천우에 대한 소문은 당시 마도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나일까? 왜 하필 이때일까?’

현천우도 고민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시간을 역행하는 건 세상의 순리를 벗어난 일이었다.

하늘이 어떤 생각인지, 이게 대체 무슨 신묘한 조화인지, 또 그게 왜 하필 제게 일어나는 것인지.

두 번째 생 내내, 평생을 거쳐 고민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답을 찾지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진리를 깨닫고, 세상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마의 끝자락을 밟을 때까지 답을 찾지 못했던 걸 지금까지 붙잡고 고민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분명히 목소리가 들렸어.”

현천우는 죽음과 함께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일이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몸이 꿰뚫리던 순간이었다.

“꽤 익숙한 목소리였지.”

살의를 느끼고 차마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꿰뚫리는 섬뜩함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 뒤라니!

목소리, 신혈검(新血劍), 그 개새끼가 저를 배신한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네의 말을 듣고 마교를 선택한 것이 옳았군.”]


신혈검에게 답한 ‘누군가’의 목소리는 가물가물했다.

다만 그자는 그때의 모든 일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혈검 그놈이 존대를 했어. 누구지? 마교도, 정의맹도 아니면 놈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감히 마교의 이인자에게 하대할 놈이 교주인 저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놈의 목소리는 분명 제 등 뒤에서 들렸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의심한들,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렇게 멍청하게 뒤를 내주고 죽임을 당한 것 아니겠는가!

‘놈들은 마치 우리가 정의맹에게 항복 선언을 받을 걸 예상한 듯했다. 마치 제 놈들이 그 승리를 만들어 낸 듯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나의, 우리의 승리를 빼앗았다.

두 번의 생의 모든 것을 바쳐서 만들어 낸 승리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놈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모두가 놈들의 손에 놀아난 것이 아닌가.

무려 사십 년을 넘도록 정파와 마교가, 그리고 자신이……!

저는 두 번의 생을 살고서야 겨우, 진짜 적을 알게 된 것이다.

“까드득!”

이가 갈리도록 치욕스러웠다.

두 번의 생을 바쳐 만들어 낸 승리가, 사실은 다른 누군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포석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필사적이었단 말인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죽었다.

모두가 만신창이가 되어 싸웠지만 결국은 불행하게 삶을 마쳐야만 했다.

저는 어떠한가.

죽었다 살아나서조차 그놈들의 손에 놀아난 것이다, 가족조차 만들지 않고 발버둥을 치고도 까맣게 속은 것이다, 멍청이같이!

애정하는 모든 사람의 삶이, 희생이, 저의 모든 인생이 시궁창으로 처박히는 순간이었다.

“하하하하, 재밌네. 그 끔찍한 지옥이 모두 애먼 놈들의 불장난이라니. 하하하, 하…… 으아아아아악----! 젠장! 젠장! 젠장아--악!”

현천우는 피를 토하듯 고함을 지르고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러고 나니 머리가 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하! 세 번째까지 당하면 그냥 쪽팔려서 죽어야지. 오냐, 이번엔 제대로 같이 놀아 주마! 어떤 놈들인지 모르지만, 신혈검 그 새끼를 타고 올라가면 꼬리가 밟히겠지. 천천히 타고 올라가서 네놈들 또한 나락의 끝, 수라의 지옥 속에 던져 주마!”

현천우의 속에서 새까만 살의가 타올랐다.

세 번째 삶.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현천우는 그 어떤 때보다 삶의 의욕으로 가득했다.

그때였다.

“공자님, 기침하셨습니까?”

밖에서 현천우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들은 현천우는 잠시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이게 시작이었지.”

두 번째 생도 저 하인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했었다.

수십 년 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목소리였지만 다시 들으니 마치 어제처럼 생생해졌다.

그때와 똑같은 전개에 현천우는 반갑다는 듯 사르륵 입꼬리를 말았다.

“공자님, 기침하셨으면 안으로 세숫물을 들이겠습니다.”

“아아, 들어와.”

현천우의 허락이 있자, 하인 하나가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데워 온 세숫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 하인을 보며 현천우는 조용히 동경을 움켜쥐었다.


* * *


늦든 빠르든 현천우는 천마신교의 교주 자리에 올랐다.

두 번이나 교주 자리에 올랐던 그가 어린 시절엔 어째서 견자밖에 될 수 없었을까?

이유는 하나, 기맥이 약해서 남들보다 무공 성취가 느렸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다시 만나면 꼭 해 주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세 번째로 열두 살이 된 현천우가 환하게 웃으며 하인을 맞았다.

“예?”

늘 예민하고 까칠하던 주인이 웃으며 반갑게 저를 맞자, 놀란 하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현천우를 보았다.

그런 하인을 보며 현천우는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진짜 멍청했지. 등신 중의 상등신이 바로 나였어.”

현천우가 혼잣말을 하며 자책했다.

현천우가 눈을 뜨고 처음 맡았던 퀴퀴하고 익숙한 냄새는 마령의 유황 냄새였다.

마령에서는 흐르는 물에도 퀴퀴한 유황 냄새가 났다.

그래서 윗전에 바치는 세숫물에는 유황 냄새를 중화하는 약재와 향을 덧입히기 위한 꽃잎이 섞이기 마련이었다.

제 손으로 매일 향이 나는 세숫물을 흠뻑 피부에 적셨으니, 뭔가를 섞으려면 세숫물만큼 적당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다 아는 거 이번에는 시간 끌지 말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꿈뻑거렸다.

그 순간, 현천우가 곧바로 그 눈을 향해 동경을 휘둘렀다.

쉐---엑!

“우아아악!”

갑자기 동경을 맞은 하인인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어쭈, 피해?”

현천우는 피가 철철 흐르는 하인의 얼굴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동경과 하인을 번갈아 보다 제 실수를 알아차렸다.

“아아! 이런, 내가 느려진 걸 깜박했네.”

현천우가 다시 무심한 얼굴로 하인에게 다가갔다.

“고, 공자님, 살려……!”

겁에 질린 하인이 피투성이로 빌었지만 현천우는 두 번 실수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동경을 휘둘렀다.

쉐에에엑!

퍼-억!

이번에는 피할 새도 없이, 동경이 하인의 목에 꽂혔다.

하인의 목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흘러내렸다.

“커헉! 왜…… 왜…….”

현천우를 향해 뭔가 말을 하려던 하인은 결국 말을 마치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하인을 보며 현천우가 짜증스럽게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에이, 씨, 다 튀었네! 내가 네놈을 다시 만나면 꼭 세숫물을 든 채로 그 멍청한 대가리를 따고 싶었지.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다고.”

어린아이의 완력으로는 동맥을 끊어내는 것이 최선이라, 키가 작은 현천우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현천우는 신경질적으로 얼굴의 피를 닦아 냈지만 오히려 더 지저분해져서 그만둬야 했다.

대신 이왕 손을 버린 김에 피로 흥건하게 젖은 하인의 품을 뒤졌다.


[“가, 가슴 안주머니에 매일 들고 다녔어요! 그냥 세숫물에 몇 방울만 타면 된다고 하셔서. 자, 잠깐이었어요! 다른 건 정말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세심하게 뒤질 것도 없이 곧 하인의 품에서 작은 병 하나가 나왔다.

“와! 진짜 매일 들고 다녔네…… 이런 솔직한 새끼.”

현천우가 죽은 하인의 정직함에 감탄했다.

내심 설마 했는데, 두 번째 생에서 이 하인을 이틀 밤낮 고문해서 알아내었던 게 방금 막 사실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병에 든 것은 독(毒)이었다.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열두 살의 현천우를 견자(犬子)밖에 되지 못하게 만든 원흉……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던.

어쩌면 현천우와 수라현가를 둘러싼 모든 불행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현천우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작은 병을 보았다.

“지금 이때엔 신혈검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때야. 게다가 이건 수라현가 내부의 일이었고. 그런데…… 수라현가에는 이만한 독을 만들 만한 사람이 없어. 그렇다면 수라현가의 사람에게 이 독을 쥐여 준 쥐새끼는 어디에서 왔을까?”

현천우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그놈들일까, 그놈들이 이때부터 본가를 노리고 있었던 걸까.

의심은 갔다, 그것도 강하게.

하지만 지금 당장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현재의 감정에 치우쳐 판단할 사항도 아니었다.

“적어도 왜 굳이 지금 이때로만 두 번씩이나 돌아왔는지는 알겠네. 지금이, 처음부터 시작하기에 딱 좋은 순간이었어.”

현천우가 작은 병을 쥐고 환하게 웃었다.

세 번째 삶.

현천우는 이번이야말로 제대로 된 시작을 했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