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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한글로 살아남기
#1화
먹을 게 없어 나무껍질을 끓여 먹었다.
덮을 게 없어 땅을 파서 몸을 묻었다.
제국의 변경에서 살아가는 천민의 삶은 소설에서 읽던 것보다 더 궁핍했다.
이건 살아가는 게 아니라 버텨 내는 것이었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전생을 기억한다.’
빼빼 마른 얼굴로 테른은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물이여, 솟아나라.
쪼륵.
허공에서 맺힌 물방울이 컵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실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중요한 건 성공했다는 거다.
‘역시.’
다시 말하지만 테른은 전생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세계의 마법은 한글로 만들어진다.’
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테른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 * *
이세계로 전생한다는 설정은 소설에서 많이 봤다.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는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했다.
전생의 삶이라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으니.
‘그다지 미련도 없었으니까.’
되살아나서 감사했고, 빌어먹을 인생이라도 다시 시작돼서 다행이었다.
물론 그 생각은 금방 접어 버렸다.
크아아악!
이세계의 삶은 소설보다 녹록지 못했으니까.
크악! 크아아악!
“또 울어 대네.”
밤이면 굶은 아귀들이 요동을 쳐 댔다.
숲에는 눈 셋 달린 괴물이 뛰어다녔고, 종종 마을로도 내려와 사람을 잡아먹었다.
여긴 평화로운 판타지 세계보다는 아포칼립스에 가까웠다.
오죽했으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을까.
테른은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아카데미에 가야지.”
오랫동안 몬스터와의 전쟁을 벌여 온 제국엔 아카데미라는 시설이 있다.
끔찍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인류를 수호하고자 고안해 낸 특수한 교육기관.
살아남는 방법은 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다.
‘거기다 아카데미는 졸업만 하면 먹고살 걱정도 없어진다.’
신분이 비천한 그에겐 그것만이 출셋길이었다.
전쟁 통인 제국의 아카데미는 입학 제한 따위를 두질 않았으니까.
아카데미의 입학 조건은 오직 하나, 재능이었다.
즉.
“마법사가 되면 돼.”
전생을 기억하기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는 분야였다.
테른의 장래는 옹알이가 끝날 무렵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생을 기억한다고 하여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내 재능은 평범할지도 모른다.’
한글은 배우면 누구나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언어다.
세종대왕님도 백성들의 문맹률을 낮추고자 고안해 낸 게 아니던가.
전생의 기억을 가졌다고 하여 자신만만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테른은 마법을 써도 그렇게 잘 쓰는 편은 아니었다.
물이여, 솟아나라.
쪼륵.
테른은 힘겹게 생성된 물방울을 컵에 담았다.
어릴 때부터 시도해 봤지만, 이 이상의 출력은 무리였다.
한글을 아무리 유창하게 구사해도 만들어진 마법은 늘 비루한 것이다.
빛이여, 반짝여라.
불꽃이여, 타올라라.
바람이여, 불어라.
찰나간 반딧불이 반짝였고, 촛불이 일렁였으며, 입김만 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테른은 자신의 마법에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확신했다.
아마도 그 무언가는 ‘마력’이라 부르는 것일 터였다.
‘판타지 세계에서 마력은 배터리야. 배터리가 없으면 뭐든 제대로 작동될 리가 없지.’
문제는 이세계인이라 마력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거다.
또한 그가 살아온 제국의 변경엔 물어볼 사람조차 없다.
여긴 그저 하루하루 간신히 버텨 내는 사람들만 있었으니까.
도끼로 나무를 찍어도 마력으로 언어를 재단하는 사람은 없었다.
“테른. 너라면 잘할 거다.”
소꿉친구 에리온이 나름 능통한 제국어로 응원을 해 왔다.
테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잘해야지.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두 사람은 번듯하게 지어진 대로 위로 섰다.
아카데미로 입학하고자 벌써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었다.
제국의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얼굴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테른도 걸음을 옮겼다.
에리온은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럼 나도 열심히 해 볼게.”
에리온은 동갑내기 여자아이로 기사학부를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 그녀에게도 한글을 가르쳤으나, 그녀는 마법엔 흥미가 없었다.
땀을 흘리며 달리길 좋아했고, 칼을 들고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데에 쾌감을 느꼈다.
변경의 유일한 기사인 테오도르 경의 딸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마법학부는 여기입니다. 수험생들은 입장해 주십시오.”
로브를 걸쳐 입어 누가 봐도 마법사로 보이는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멀어지는 에리온을 일별한 테른은 주먹을 움켜쥐며 마법학부의 시험장으로 향했다.
결과가 어찌 되든 이젠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걸음을 내딛기도 전이었다.
“비켜라, 천것들아!”
두두두두.
거침없이 대로를 가로질러 달려오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요란한 입장을 마친 무리의 중앙엔 금으로 장식한 마차도 있었다.
마차에선 얼굴에 금칠을 한 이름 모를 귀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니, 이름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제국의 기둥이신 빅토르 백작의 차남, 디에고 빅토르 님의 행차시다! 모두 길을 비켜라!”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의 행렬이 양옆으로 나뉘었다.
그 사이를 당당히 걸어가는 디에고 빅토르와 하수인들.
슬쩍 고개를 든 테른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분 사회란 건가.’
변경에선 죄다 천민들밖에 없어 실감은 안 났던 이세계의 구조였다.
하지만 이렇듯 거리를 활보하는 귀족을 보고 있으려니 착잡한 기분도 들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태생부터 디에고 빅토르와 테른은 큰 벽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카데미에서는 신분의 차이를 두질 않는다는 거려나…’
어차피 전장으로 나서면 귀족이든 천민이든 상관없이 똑같이 싸우기 마련.
아카데미에선 태생적 신분보다는 후천적 계급을 훨씬 중차대하게 보았다.
아카데미의 그늘 아래에 있는다면 테른조차 디에고 빅토르와 맞먹을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디에고 빅토르 님이신가.”
문득 테른의 귀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 명가 빅토르라… 실물은 처음 보는군.”
“조기교육을 받아 왔다던데, 과연 어떨지.”
“마법에도 특히 재능이 있다던데 기대가 되는군.”
“과연, 이번 학기 수석 입학은 따 놓은 당상인가…!”
…아니, 어쩌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도 그 벽을 넘긴 힘들지도.
‘됐어. 먹고살 길만 찾으면 된다.’
테른의 목표는 거창한 대마법사가 아니었다.
마법을 익혀 이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도 없었다.
그저 전생에 못다 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내일 먹을 음식이 없어 전전긍긍하지만 않는다면야.
“우선 시험이다.”
긴장한 얼굴로 테른은 마법학부의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각자 준비한 마법을 보여 주며 점수를 받고 있었다.
테른은 시험장의 정면, 커다랗게 그려진 그림을 발견했다.
‘물인가…!’
감독관은 수험생들에게 말했다.
“물을 만들어 내라. 발현해 내면 합격이다.”
테른은 주먹을 움켜쥐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운이 좋았다. 물을 생성해 내는 건 그에겐 가장 자신이 있는 종목이었다.
‘깨끗한 물을 찾기 힘든 변경에선 수시로 펼쳤던 마법이야.’
이 마법이라면 낙제만은 면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때였다.
“천것들. 격의 차이란 게 무언지 보여 주지.”
예의 당당하게 들어갔던 빅토르 백작의 차남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주변으로는 그의 가문에 대한 소문과 디에고 빅토르에 대한 이야기가 들끓었다.
테른의 시선도 절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마법 명가… 조기교육을 한 수석 입학 예정자의 마법이라.’
한국에서도 조기교육은 꽤 중요하게 여겨졌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운 학생이 뒤늦게 배운 학생보다 잘하는 법.
일찍이 명가에서 마법을 배워 온 디에고 빅토르라면 확실히 격이 다른 마법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
디에고 빅토르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솟아나시오. 이 세계의 규칙을 비틀어서. ㅁ!”
응?
“맺혀지시오. 간곡한 나의 요청을 따라서. ㅜ!”
으음?
“발현되시오. 힘의 근원인 나의 명령을 따라서. ㄹ!”
장황한 제국어에 이어 짤막하게 이어진 한글 철자.
테른은 잠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눈을 멀뚱멀뚱 떴다.
그리고 이내 주변에서 어마어마한 찬사가 이어졌다.
“과연 마법 명가로군! 완벽한 영창이었어!”
“대단하군. 이번 학기 수석은 디에고 빅토르로 확정이겠어.”
“오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디에고 빅토르 님 만세!”
테른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실화인가.’
* * *
테른은 금방 정신을 차렸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확실히 대단한 건 맞다.’
디에고 빅토르의 앞으로는 쏟아진 물이 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법 영창이 장황하긴 해도 마법의 효율이 차원이 다른 것이다.
‘어쩌면 저게 정통적인 방법일지도 몰라.’
거기다 주변의 수험생들 대다수가 비슷한 영창을 잇고 있었다.
“솟아나시오. 하늘 아래 내 소원을 들어서. ㅁ…”
“맺혀지시오. 피로 맺어진 나와의 인연에 따라. ㅜ!”
영창의 내용은 전부 달라도 방식은 똑같았다.
어쩌면 저게 바로 마법의 효율을 만들어 내는 차이점일지도 모른다.
“테른, 자네도 시험을 시작하지?”
감독관의 말에 테른은 잡념을 털어 내고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제대로 된 마법을 발현하고자 했다.
‘다들 물 한 컵은 채우고 있다. 최소한 남들 정도는 되어야 한다.’
설마 마법의 수준이 이다지도 차이가 날 줄이야.
테른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일단 디에고 빅토르를 따라 해 볼 생각이었다.
“솟아나시오. 이 세계의 규칙을 비틀어서. ㅁ!”
“맺혀지시오. 간곡한 나의 요청을 따라서. ㅜ!”
“발현되시오. 힘의 근원인 나의 명령을 따라서. ㄹ!”
하지만 허공에는 조금의 물기도 묻어나질 않았다.
“…지금 한 건가?”
감독관의 말에 테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자세를 바로 한 테른은 다시 한번 영창을 이어 나갔다.
어쩌면 영창이 다른 데에는 저마다 적합한 영창이 있는지도 모른다.
“솟아나시오. 하늘 아래 내 소원을 들어서. ㅁ!”
“맺혀지시오. 피로 맺어진 나와의 인연에 따라. ㅜ!”
“발현되시오…!”
하지만 그럼에도 마법이 발현될 기미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의 컵은 가뭄이라도 든 듯 메말라 있었다.
주변에선 그런 테른을 보며 비웃는 사람들도 나올 정도였다.
“마법이 발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군.”
“무슨 자신감으로 마법학부로 지원한 거지?”
“옷 꼬라지 봐라. 변경에서 온 모양인데.”
“하긴, 그들이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겠군.”
“그럼 어쩌나. 재능이 없으면 무소용인 것을.”
“쫓겨나겠군. 쯧.”
제아무리 귀한 신분이라도 재능이 없으면 입학조차 어려운 게 아카데미다.
하물며 신분이 미천한 그가 재능조차 없으면 문전박대를 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
‘이대로 끝낼 순 없다.’
테른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허공을 응시했다.
계속해서 기다려 주던 감독관도 한숨을 섞어 말했다.
“테른, 더 기다려야 하나?”
“…할 수 있습니다.”
테른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더는 마법의 효율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재능이 아예 없진 않다는 걸 보여 줘야 한다.
“못하면 그만 물러나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
물이여, 솟아나라.
“…고, 고등 문장??!!?”
테른은 허공에 맺어진 물 한 방울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앞에 선 감독관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 경악이 들어찬 것도 모르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