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의 시대 홍경래 평전 001화

Cover
00


민초의 시대 홍경래 평전 1권 : 수신제가(修身齊家)


1 여기가 어디야?




우천은 평생 회사에 충성했다.

한국 제일의 명문대인 최고대학교 3대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도 뛰어났다. 그런 그가 경영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한국 최고의 회사에 입사할 줄 알았다.

실제 입사 제의도 받았었다.

그러나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고 30대 기업의 말석인 회사에 입사했다. 이렇게 된 데는 회장의 아들이 동문인 점도 영향을 끼쳤고, 능력을 발휘해 회사를 키워 보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회사를 설립해 직접 경영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업 실패로 평생 고통 속에 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당부 때문이다.

입사 이후 밤낮없이 일했다.

결혼도 늦게 할 정도로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만 살았다. 입사 초기부터 종합기획실에 배정된 덕분에 그룹 전반을 살펴볼 수 있었다. 

덕분에 누구보다 많은 업무를 추진할 수 있었고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성공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회장과 2세의 신뢰가 큰 몫을 했다.

특히 2세의 믿음이 컸다.

2세도 최고대에 입학할 정도로 나름 공부를 잘했다. 그는 대학 입학 때부터 수석이던 우천을 점찍고서 영입에 공을 들였다.

회장도 수시로 용돈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을 주며 공을 들였다. 이런 두 사람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 덕분에 최고의 역량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다 2세가 회장이 되면서 그룹 전반을 이끌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룹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IMF의 파도도, 금융 위기도 잘 넘기면서 재계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 

그동안 우천은 부회장까지 승진하며 최고가 될 수 있었다. 2인자였지만 2대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그룹을 장악해 이끌었으며 세간에는 부회장이 회장이란 말이 돌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기업이 커질수록 그토록 가까웠던 2대 회장과의 사이는 조금씩 벌어졌다. 미친 듯이 30여 년을 일하며 충성했으나 그런 우천을 어느 순간부터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런 회장의 심중을 알게 된 우천은 깨끗이 물러날 준비를 하였다. 그래서 맡고 있던 임무를 하나씩 아랫사람들에게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그룹 중추인 종합기획실 중간관리자가 양심선언을 해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오랫동안 관리해 온 비자금의 차명계좌가 문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런저런 목적으로 비자금을 관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양심선언으로 드러난 계좌는 회장이 사사로이 사용하던 계좌였다.

이대로라면 회장이 실형을 살아야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구축해 놓은 법조 인맥을 총동원했다. 그룹 변호사들과 함께 최고의 전관을 모조리 찾아다니며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사용처가 개인적이고 너무도 명확해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고심하던 우천은 결심했다.

평생 회사에 충성해 온 우천은 회장을 대신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로 했다. 그것이 회사를 위하는 마지막 충정이라고 생각했다.

우천이 그룹을 총괄하고 있다는 사실은 세상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천이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면 그걸 검찰이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결심을 한 우천은 회장과 독대해서는 생각을 밝혔다. 회장은 우천의 손을 잡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고마워했다.

며칠 후.

우천은 검찰에 자진 출두했으며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그룹도 모든 법조 인맥을 총동원해 5년 형으로 막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5년 형기를 모범수로 4년 만에 나왔지만 회사에는 더 이상 우천의 자리가 없었다. 우천 역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출소 후 회장과는 딱 한 번 대면했다.

회장과 독대하면서 위로금조로 적잖은 돈을 받기는 했다. 우천 스스로도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퇴사에 미련은 없었다.

그런데 회사가 우천을 그냥 두지 않았다. 회사 비밀을 워낙 많이 알고 있었기에 회장이 불안해했다.

사람을 시켜 우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바람에 제대로 된 모임도 갖지 못했으며 사회 활동은 더더구나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업보라고 생각했다.

우천도 현역 시절 비슷한 지시를 내린 적이 많았기에 묵묵히 견뎠다. 외국에 나가 있던 자식들도 웬만한 일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우천의 존재가 모두의 기억에서 스러질 무렵, 그 뒤를 이어 2인자에 올랐던 후배가 은퇴를 하며 우천을 찾아왔다. 그동안 회사에서 누구도 우천을 찾아온 적이 없었기에 반갑게 그를 맞았다.

그러나 반가운 시간도 잠시.

후배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모든 일이 2대 회장의 조작이었다고.

양심선언도 우천을 옭아매려 일부러 만들었다고 한다. 만일에 대비해 검찰과 치밀하게 A안과 B안까지 기획했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그냥 두어도 알아서 물러났을 우천이었다. 그럼에도 회장은 우천을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키기 위해 모략을 꾸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허망했다. 

회사가 커지면서 회장은 언젠가부터 우천을 은근히 멀리했다. 그러고는 우천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측근을 이용해 회사를 장악해 갔다.

우천은 그런 경계심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회사의 주인은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장은 자격지심에 의한 질투 때문에 우천을 파멸시켰다고 한다. 회사를 위해 목숨의 위험도 감수하며 충성했는데 회장은 겨우 자격지심 때문에 우천을 몰락시켰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고 허망했다. 

대를 이어 회사에 충성한 결과가 질투에 의한 파멸이라니. 어이없고 비통해하는 우천을 보며 후배는 아쉬워하지 말라했다.

후배는 우천이 일을 너무 잘한 것이 화근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찾아온 것도 회장의 마지막 지시 때문이란 말까지 했다.

두 번 죽이는 셈이었다.

후배의 말을 듣는 순간 피가 솟구치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평생을 살얼음판 위에서 살아온 우천은 너무도 쉽게 피가 식었다.

절로 상황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알아챘다. 

이제는 어떠한 움직임이나 하소연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후배가 회장의 말을 전한 까닭은 우천이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무력감이 치솟았다.

후배는 그런 우천을 한동안 바라보다 일어났다. 그러고는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이 말이 더 치욕스러웠다.

죽이지 않고 살려 준 것에 감사하고 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후배가 돌아가고 한동안 넋을 잃고 지내야 했다. 

분노도 치밀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무력감이 우천을 옭아맸다. 

그로부터 10년여의 말년은 아쉬움과 외로움의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당부를 듣지 않았어야 했다. 직접 회사를 차려서 경영하지 못한 아쉬움과 한이 절절히 사무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쉬지는 않았다. 

마치 숙명처럼 죽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지냈다. 하루하루를 철저하게 시간을 쪼개서 다양한 지식을 얻고 배우며 살았다. 

그렇게 원 없이, 한 많게 생을 끝냈다. 

아니 죽었었다.

다행히 죽음은 힘들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책을 보다 잠자리에 들었고, 그러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 오면서 잠깐의 격통과 함께 의식의 끈을 놓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독한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이상했다.

“정신이 드느냐?”

분명 잠자리에 들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젊은 여인의 급한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을 보는 순간 생각지도 않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어머니!”

“그래, 어미다. 어미를 알아보겠느냐?”

어머니란 말은 처음에는 쉽게 나왔다. 그러나 그녀의 채근을 받고 말을 하려니 순간 두 개의 기억이 뒤엉키면서 바로 나오지 않았다.

“어, 어머니.”

이 모습 본 여인이 놀라 급히 몸을 만졌다.

“아직도 많이 불편한 것이냐?”

“아, 아, 으윽!”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은 어쩔 줄 몰라 하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 어머니…….”

그녀를 가지 못하게 부르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시 정신을 잃었다.


* * *


다행히 어렵지 않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놀랐다.

‘여기가 조선이라니. 그리고 내가 홍경래?’

너무 놀란 탓인지, 머리 부상 탓인지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서 부상도 어느 정도 회복하였고 처한 상황도 겨우 인정되었다.

누워 있던 홍경래가 일어났다.

“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구나. 분명 죽었었는데 조선에서 깨어난 것도 모자라 내가 민중 봉기를 일으켰던 홍경래라니.”

이런 독백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살폈다. 믿을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건 어린 몸이 분명했다.

“허! 구십 가까이 살았던 내가 열다섯이 되었다니. 조화속도 이런 조화속이 없구나.”

홍경래는 평안도의 몰락 양반 출신이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과거를 봤다. 

그러나 낙방한 뒤 평안도 출신 배척과 세도정치의 횡포를 개탄하며 과거를 단념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입산독서(入山讀書)하면서 혁명을 꿈꿨다.

이후 홍경래는 다수의 지지자들을 모아 민중 봉기를 준비했다. 그러던 순조(純祖) 11년, 흉년으로 인심이 흉흉한 틈을 타 병력 2천여 명으로 거병했다.

이어서 각급 지휘관을 임명하고 스스로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가 되었다. 홍경래의 혁명군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단숨에 평안도 북부 일대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홍경래는 조정의 진압군에 패배하고는 정주로 들어가 장기전을 벌이며 지원군을 기다렸다. 그러다 화약으로 성벽을 폭파하고 공격한 관군과 맞서 싸우다 패하면서 전사했다.

조선의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다.

그런 민란의 시초가 된 것이 홍경래가 일으킨 반란이었다. 비록 그가 주도한 민란이 실패했지만 억압받던 조선 민중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홍경래가 된 것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며칠이 지나도 바뀌지 않은 현실을 체감하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21세기를 살았던 자신이 조선의 홍경래가 된 사실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홍경래의 기억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실에 대한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래서인지 다친 부위가 지끈거렸다.

홍경래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으으! 머리야. 아무리 유희거리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돌팔매 놀이를 할 수가 있는 거야. 깜빡했으면 돌팔매질에 죽을 뻔했잖아.”

홍경래는 정월대보름에 열린 돌팔매 싸움, 석전(石戰)에 참여했다가 머리를 크게 다쳤다. 홍경래가 머리를 손으로 만지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약이 귀한 시기라고 해도 그렇지. 돌을 맞아 다친 머리에 된장을 붙이다니. 이거 덧나지나 않을지 모르겠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