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힐링식당입니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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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힐링식당입니다


1화 – 온새미로 (1)




“준성아, 여기 양파 떨어졌다.”

북적이는 주방 안 울려 퍼지는 목소리.

“네, 셰프님. 바로 채우겠습니다.”

“준성아, 식용유!”

“예.”

“태준성. 뚝배기 달궈 둔 거 어떤 거야. 빨리!”

나는 김준태의 말에 서둘러 뚝배기를 음식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나지도 않아 다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준성아, 태준성!”

“예, 갑니다.”


정신 줄을 1초라도 놓치면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이곳.

식당 ‘온새미로’의 주방이다.

한눈이라도 팔았다가 큰 사고가 나는 건, 도로 위의 차, 소방서 등.

위험 지대에 놓인 곳만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칼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열 개의 화구에서 화르륵 불길이 올라오고 있는 곳.

주방 역시 안전한 곳은 아니지.

눈에 불을 켜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이곳.

나를 애타게 찾던 셰프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온새미로의 셰프다.

물론 서브 셰프라, 메인 음식을 만드는 시간보다 재료 손질과 애피타이저, 디저트 등.

메인 음식 외에 시간을 많이 쏟는 자리기는 하지.

“홍석아, 아침에 들어온 전복. 창고에서 꺼내서 빨리 손질해서 채워.”

온새미로의 수석 셰프인 천민수가 막내인 임홍석을 향해 외쳤고.

임홍석은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그는 잰걸음으로 창고에 있는 전복을 한 아름 들고 와 조리대에 올렸다.

탁-.

그러고는 전복 하나를 손에 들고 당황한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저…… 수 셰프님. 전복 손질은 어떻게 해 두면 될까요?”

그의 말에 웍을 흔들던 천민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야 이 새끼……. 누가 그걸 다 들고 오냐.”

“아…… 바로 다시 가져다 두겠습니다.”

“하아…… 준성아, 네가 빨리 전복 손질 좀 해라.”

재차 주방에 울려 퍼지는 내 이름.

나는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조리대로 옮겼다.

“알겠습니다.”

이 식당에는 나만 있는 것도, 내가 막내인 것도 아니었지만.

메인 셰프인 김준태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태준성’.

나뿐이었다.

그만큼 내가 일을 빠릿빠릿 잘한다는 뜻일 거라 생각하며, 늘 긍정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아직도 막내 취급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한숨을 삼켜 냈다.


정신없이 점심 장사를 끝낸 후.

“다들 수고했다. 나 잠깐 밖에서 일 좀 보고 올 테니까, 쉬고 준비하고 있어.”

김준태는 앞치마를 풀며 말했고.

우리는 합창하듯 입을 열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온새미로의 메인 셰프이자, 사장인 김준태가 나가자마자.

수석 셰프인 천민수의 자세가 바로 풀어졌다.

“아오…… 오늘 점심 장사 개 힘들었다.”

그의 말과 동시에 최재진은 그에게 다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주방에 사람을 더 뽑든지, 브레이크 타임을 더 늘리든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되겠냐? 식당이 유명하니까, 아주 죽을 맛이다.”

천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재진아, 담배나 피우러 가자.”

“예, 수 셰프님.”

그러고는 앞치마를 툭툭 털며 주방을 벗어나던 중.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준성아, 너도 좀 쉬어.”

그의 말에 입을 열려던 찰나.

최재진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에이, 수 셰프님. 준성이랑 홍석이는 쉴 틈이 어디 있습니까. 뒷정리해야죠.”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성이 너도 그게 마음이 편하지 않겠냐?”

그의 말에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네, 선배님.”

나를 바라보며 씨익 올리는 입꼬리.

그 표정에 나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천민수는 고개를 치켜들고 내게 말했다.

“근데 재진이랑 준성이 둘 다 서른한 살이지?”

“예, 맞습니다.”

“그래. 둘이 동갑인데, 이제 편하게 말 좀 놓지. 아직도 준성이가 재진이한테 존댓말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최재진은 발끈하듯 몸을 일으켰다.

“수 셰프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선배인데, 태준성이 저한테 반말하는 건 아니죠.”

“야, 사회에서 동갑 친구 만나는 게 어디 흔한 일이냐?”

“에이. 여기가 동호회도 아니고요. 직장에서, 특히 주방은 선후배 관계 뚜렷한 거 아시잖습니까.”

최재진은 나를 바라보고 조소를 보내며, 말을 이어 갔다.

“준성이 너도 선배한테 반말하는 건 더 불편할 거 아니야. 맞지?”

그의 물음에 굳이 맞다, 아니다라고 답하며 이 이야기를 논란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최재진과 언쟁을 펼치는 시간조차 아까웠으니까.

같은 서른한 살.

온새미로에 입사한 연도도 같은 해였다.

고작 6개월 차이.

물론 최재진이 말한 대로 요리, 이 업계에서 선후배 사이가 뚜렷한 것은 사실이다.

업계 모든 곳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온새미로나 내가 겪은 곳들은 그러했다.

입사할 때부터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하며, 텃세를 부렸던 최재진이었기에.

그에게 존댓말이나 반말을 하는 건, 이제 와 내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재진은 그 한 가지가 자신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듯 보였다.

말을 놓는다는 말, 선후배에 관련된 말만 나오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기 마련이었다.

최재진은 이런 주제의 이야기에 홀로 흥분했는지, 앞치마 주머니를 뒤적이며 말했다.

“수 셰프님, 이제 담배 태우러 가시죠?”

그의 말에 천민수는 눈썹을 들썩이며 답했다.

“그래, 가자. 준성이랑 홍석이도 좀 쉬고.”

“수 셰프님이 그렇게 편하게 풀어 주시면 안 됩니다. 쟤네 버릇 나빠져요.”

최재진은 음흉하게 입꼬리를 찢으며 내게 소리쳤다.

“준성아, 아직 브레이크 타임에 쉴 짬 아니잖아. 주방 정리하고, 저녁 재료 손질도 하고 있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천민수를 따라 주방 뒷문을 통해 빠져나갔고.

한숨을 내쉬는 내게 임홍석이 다가왔다.

그는 주방 뒷문이 확실히 닫혔는지 확인을 하자마자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어휴, 진짜 최재진 선배는 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휘이 가로저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진짜 별로인 것 같아요. 아니, 성격이 대체 왜 저렇게 배배 꼬였는지. 자기가 무슨 꽈배기도 아니고…….”

임홍석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나는 옅은 미소만을 보낸 뒤, 주방 정리를 시작했다.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

잠시 식당 운영을 멈춘 시간.

말이 쉬는 시간이지, 실제로 식당 안에서는 직원들이 쉴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점심 장사의 뒷정리부터 저녁 장사 재료 손질과 준비.

그런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로 쉴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임홍석의 손은 설거지를 하면서도 입으로는 최재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쏟아 냈다.

“솔직히 재진 선배님, 온새미로에서 서브 셰프할 만큼 능력도 없잖아요. 부모 하나 잘 만나서…… 진짜 얄미워 죽겠습니다.”

스물여덟 살의 온새미로 막내, 임홍석.

나이도 어리고, 식당의 막내인 그는 최재진에 대한 마음을 내 앞에서 털어놓고는 했다.

그의 말에 틀린 말은 없었지만, 굳이 그와 함께 최재진의 뒷담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내 입에 오르락내리락할 만큼 최재진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았고.

“메인 셰프님이랑 재진 선배 부모님이 어떤 사이길래. 아니, 저희 메인 셰프님이 그 부모님들에게 약점이라도 잡히셨나?”

그는 조잘거리며 계속 구시렁거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체 재진 선배를 왜 온새미로에 넣으신 걸까요?”

“글쎄다. 그건 그렇고 설거지 다 했으면, 저녁 재료 손질 시작하자.”

“아, 넵.”

최재진의 부모가 김준태에게 부탁해, 이 식당에 들어온 것은 나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최재진은 흔히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식이었다.

금수저가 왜 이런 식당에서 일하냐고?

온새미로는 워낙 유명한 식당이고, 김준태는 업계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엄청난 셰프라는 건 부정할 수는 없다.

엄청 깐깐하고 예민해서, 김준태 밑에서 요리를 배운다면.

아무 능력이 없던 금수저 자식이라도, 요리의 실력이 쌓일 수밖에 없을 터.

그는 부모님의 재산으로 당장이라도 식당을 차릴 수는 있었지만.

그럴 만한 재능이 없었던 것이지.

최재진은 자신의 식당을 차릴 수 있을 때까지만, 온새미로에서 요리와 경영을 배워 가려는 듯했다.

재력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있는 집안.

최재진이 부족한 건, 성공의 명예.

그러니까 김준태를 통해 유명 셰프라는 타이틀 밑에서, 명예를 얻기 위한 베이스를 쌓는 중인 것이지.

그래서인지 최재진은 온새미로에서 일을 하면서도, 늘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거나, 식당이 바빠 힘이 들면 하는 소리가 있었다.

‘얼른 내 식당 차리러 나가야지’라는 말.

자신의 식당을 차리기 위한 포석 단계라고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재료 손질을 한 지 몇십 분이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천민수와 최재진.

나는 시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곧 저녁 장사 준비해야 하는데.”

내 말에 임홍석은 칼질을 하다 멈춘 채 내게 답했다.

“제가 나가서 이야기…….”

“아니야. 하던 일 마저 해. 내가 나갔다 올게.”

“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방 뒷문으로 향했고.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그들.

그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아…….”

문을 벌컥 열고 그들에게 걸어가던 도중 들리는 대화 소리.

“그래서 로또 사신 겁니까?”

“당연하지. 로또가 인생역전에 답이야. 나는 긁는 복권도 매주 몇 개씩 사.”

“저도 로또는 매주 삽니다. 하하. 근데 셰프님은 로또 당첨되면 뭐 하시려고요?”

최재진의 물음에 천민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음…… 나는 바로 식당 때려치우고, 백수할 거야. 돈 많은 백수가 꿈이다. 너는 집에 돈도 많은 놈이 로또는 왜 사냐?”

“저는 로또 되면, 차나 바꾸고 시계랑 이것저것 사고. 뭐…… 그러면 바로 돈 다 쓸 거 같은데요?”

“크으…… 역시 있는 집 자식은 사치에만 쓰는구나?”

“에이. 아닙니다. 하하.”

“로또만 사면 안 되겠어. 이따가 연금복권이랑…….”

대단하고 바쁜 일을 하고 있나, 싶었는데.

허황된 이야기를 펼치며 헤실대고 있는 그들의 한심한 저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는 길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마트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 연습할 것 중에 부족한 게, 오이랑 양배추…….”

나는 머릿속으로 집에 남은 재료를 떠올리며, 장바구니에 식재료를 담았다.

녹초가 된 몸임에도 집에 들어가 그대로 쉴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쉴 틈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어야만 이뤄 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당장 돈이 많이 생길 수는 없었고, 그동안 실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파는 음식도 아니고, 내가 연습할 거니까. 우유도 그냥 제일 저렴한 거로!”

나는 금액을 비교하며 장바구니를 채워, 계산대로 향했다.

삑, 삑-.

빨간 불빛과 함께 찍히는 물건들.

소리와 함께 올라가는 금액들.

나는 애써 금액을 외면하며, 멍하니 직원 뒤를 바라보았다.

직원은 내 시선을 따라 움직였고, 사무적인 말투로 내게 물었다.

“담배 드려요?”

그녀의 물음에 흐릿해진 시선을 바로잡자 직원 뒤에 가득 진열된 담배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루 내내 최재진이 휴식 핑계로 찾은 담배.

그놈의 담배…….

“아, 아니요.”

“네, 그럼 다 하셔서 45,000원입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고.

주머니 속에 있는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지폐가 수납되어 있는 칸을 확인하자, 안에는 딱 오만 원 권 한 장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오만 원짜리 하나를 내밀었고.

“네, 오만 원 받았습니다.”

탁-.

직원은 지폐함을 열어 오만 원 권을 넣고,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그러면서도 내 시선은 직원 뒤에 있는 담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담배를 바라보다 문득 최재진이 담배를 들고 복권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담배도 안 피우는데…… 담배 살 돈으로 복권이나 한번 사 볼까?

안 될 것도 없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매일 오천 원씩을 담배에 쓰고는 하니까.

마침, 내 손에 오천 원 한 장이 남았겠다.

나는 그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자마자, 직원을 향해 물었다.

“여기 복권도 파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럼 저 복권 좀 주세요.”

내 말에 그녀는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

“복권…… 어떤 복권이요, 로또로 드려요?”

그때 내 시선에 들어온 종이 한 묶음.

나는 그 종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연금복권이죠?”

“네. 이거 이번 주 발표 거, 딱 한 묶음 남았어요. 이거 드려요?”

“예, 주세요.”

복권을 자주 사 본 적은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로또보다 연금복권 당첨 확률이 높다는 것.

더군다나 하나 남은 저 연금복권 묶음이 왠지 모를 내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