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경렴 선협전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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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유경촌

1화 유경촌, 경씨 종문의 종주 경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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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족(靈族):싸리빗자루, 멧돌, 바늘, 솥 등의 사물에 영성이 생겨 수사(修師)가 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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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호 정도가 모여 사는 유경촌(瑜倞村)은 유(瑜)씨가 100여 호(戶), 경(倞)씨가 70여 호 정도 모여 사는 유씨와 경씨의 씨족 마을이다.

이 중에 유씨는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학문에 힘썼고, 경씨는 수렵을 하며 무예를 갈고 닦았다.

유경촌은 낭산(狼山:늑대산)을 배산(背山:등에 지고 있는 산)으로 둔 마을인데, 낭산은 또 대랑산맥(大狼山脈)이란 산맥의 끝자락에 붙은 산이다.

산과 산맥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경촌 주위에는 늑대들이 많았는데, 그런 탓에 마을이 생길 때부터 무력을 담당한 경씨들의 고생이 심했다.

그러던 어느 해, 경씨의 종주(宗主)가 신선을 도운 일로 보물을 얻었다.

그로부터 보물의 힘으로 마을의 안전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을이 흥해 지금 300여 호의 큰 마을이 되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수백 년이 흐른 지금 유경촌의 주인은 경씨가 되었고, 유씨는 경씨의 뜻에 따라 마을을 다스리는 행정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경렴(倞廉)은 열여섯 살로 경씨 문중의 현 종주다.

그의 조부는 일 년 전에 노환으로 죽었고, 부모는 그보다 일찍 낭산에서 사고를 당해 죽었다.

경렴에게는 숙부들이 셋이나 있지만 그럼에도 작금 경씨 종문의 주인은 경렴인데, 이는 신선의 보물 때문이다.

대대로 경씨 문중에 내려오는 신선의 보물은 위급한 상황에서 마을을 지킬 수 있는 결계를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데, 이는 오직 보물을 받았던 종주로부터 가장 가까운 혈족만이 가능한 일이다.

조부가 죽은 후에 제일 나이가 많은 숙부가 보물의 주인이 될 것이란 예상이 있었으나 결과는 경렴이 보물의 주인이 되었다.

이는 보물 스스로 주인을 정하는 것이기에 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어린 경렴이 경씨 문중의 종주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피이잉! 퍼벅!

“아앗!”

 

화살 하나가 팔뚝을 스치듯 지나가 나무를 절반이나 관통하여 박힌다.

그 기세에 경렴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틀었다.

오늘 아침 일찍 무구를 챙겨들고 홀로 사냥 훈련을 나왔던 경렴이었다.

종주라고 하지만 사냥이 업인 가문의 수장이니 훈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낭산을 얼마쯤 들어온 후, 복면을 한 엽사(獵師) 다섯이 나타나 경렴에게 활을 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경렴은 그 화살에 담긴 내공이 경씨 가문의 것임을 알았고, 활을 쏘는 것이 경씨의 가전 공부인 궁술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는 가문의 혈족이 자신을 죽이려 함인 것이다.

이에 경렴은 두려움을 느끼고 화살을 피해 달렸는데, 엽사들은 어떻게든 경렴이 마을로 돌아가지 못하게 몰아가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 아직은 내공이 일천한 경렴으로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계속 산을 타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경렴은 자신이 대랑산맥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문제는 앞쪽에 막다른 절벽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절곡이라 부르는 그곳은 깊은 계곡이 동에서 서로 길게 늘어진 곳인데, 갈라진 계곡의 넓이가 백여 장에 이르기에 새가 아닌 이상,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뛸 방법이 없다.

 

“감히 경씨가 어찌 종주에게 활을 쏜단 말이냐!”

 

경렴은 뒤돌아서 복면의 엽사들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피이잉! 퍼벅!

“허엇!”

 

하지만 돌아온 것은 머리를 노린 화살.

경렴은 급히 몸을 틀어 화살을 피했다.

엽사들은 경렴과 한 마디도 말을 섞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반드시 죽는다.’

 

경렴은 생각했다.

활을 쏘는 이들은 경씨들이다.

체형이나 몸의 움직임을 보면 대충 누구인지 짐작도 된다.

 

‘저들은 큰숙부의 편에 선 자들이다.’

 

큰숙부 경주형이 경씨 문중의 종주 자리를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조부가 병석에 누웠을 때부터 다음 종주는 자신이 되리라고 은연중에 뒷짐을 지고 배를 내밀던 이였다.

그런데 막상 가문의 보물이 그가 아닌 경렴을 선택하니 그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실상 경렴 하나만 사라지면 그 이외에는 종주가 될 이가 없다.

이번 일은 바로 그런 연유로 벌어진 일이 분명했다.

지금 다섯 엽사를 이끌고 있는 놈도 분명 경주형의 아들인 경재영이 분명하다.

복면을 했다고 그 체형을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경렴은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보았다.

나이가 어려서 아직 대랑산맥 깊은 곳까지 들어온 일은 없다.

하지만 가문의 서고에 있는 기록들은 대부분 살펴보았다.

그래서 낭산은 물론이고, 그 뒤로 펼쳐진 대랑산맥의 지형도 제법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절곡(切谷)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경재영을 비롯한 다섯 놈들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무리해서 경렴을 죽이려 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경렴은 그런 사실을 이전부터 알아차렸지만, 방법이 없었다.

 

피이잉! 푸우욱! 퍼벙!

 

화살 하나가 날아와 아름드리나무를 관통하더니 화살촉이 삐죽 솟아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화살촉이 폭발을 일으킨다.

사냥감의 몸에 화살을 박은 후에 화살촉을 폭발시켜 살상력을 높이는 폭시(爆矢)다.

내공의 소모가 커서 자주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맞으면 가벼워도 팔다리가 날아가는 것이고, 중하면 절명할 수밖에 없는 수법이다.

이는 경렴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의 표현이 분명했다.

 

“내가 너희를 용서할 것 같으냐? 반드시 너희에게 가문의 법도가 무서움을 알려주고 말 것이다!”

 

경렴이 달아나며 등 뒤의 엽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경재영이 분명한 복면 엽사가 나타나더니 아무 말도 없이 화살을 건 시위를 당겼다.

다른 넷은 보이지 않으나 좌우로 간격을 넓혀 경렴이 다른 길로 빠지지 못하게 막고 있을 터다.

 

“죽일 놈들! 내가 살아 돌아가면 반드시 너희를 찢어 죽이고 말······!”

 

종주를 해하려 한 이들에 대한 형벌은 가혹하다.

경렴은 가문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이번 일을 갚아줄 것이라고 외쳤다.

 

피이잉! 피이잉! 피이잉!

 

하지만 그런 외침이 복면 엽사들을 자극했는지 서로 다른 곳에서 한꺼번에 세 발의 화살이 경렴을 향해 날아왔다.

경렴은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리고 갈지(之)로 뛰며 내달렸다.

 

‘반드시 이 원한을 갚고야 말······. 허억!’

 

하지만 화살을 피해서 뛰며 복수를 다짐하던 경렴은 한순간 발밑이 허전한 것을 느끼고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작은 관목을 뛰어넘었는데, 그곳이 마침 땅이 갈라진 곳이었던 것이다.

 

“아아아아악!”

 

경렴은 비명과 함께 깜깜한 땅 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섯의 복면 엽사가 나타났다.

 

“계획대로 되었군.”

 

다섯 모두 체격이 건장하였으나 그중에서도 제일 덩치가 큰 자가 갈라진 틈을 내려 보며 말했다.

“절곡의 균열이 이곳까지 이어진 것을 놈이 몰랐던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제일 덩치가 작은 이가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고작 보름 전에 이 균열이 생겼고, 그것을 아는 이가 몇 없으니 당연하지. 그리고 이제 종주는 아버님께서 되실 것이다.”

“하하. 그렇지요. 어린 종주가 실종이 되었으니 이제 주형 당숙께서 종주가 되실 수밖에 없겠지요.”

 

경재영의 말에 키 작은 복면 엽사가 아부를 늘어놓았다.

 

“한동안은 입단속들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는 길에 화살들을 남김없이 수거하고, 아울러서 여기까지 왔던 흔적을 깔끔하게 지워야 한다.”

“어차피 당숙께서 대충 마무리를 하시겠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 절대 허점을 남기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만 돌아가자.”

 

거한의 말에 다른 넷은 한 올의 미련도 두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체를 확인했으면 좋았겠지만 절곡과 이어진 벼랑 아래로 떨어졌으니 절대 살아나올 수 없을 것이다.

지금껏 절곡으로 들어가서 살아나왔다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들의 머릿속에 갈라진 땅 밑으로 떨어진 경렴은 이미 죽은 놈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갈라진 땅 틈으로 떨어지던 경렴은 그들의 짐작과는 달리 즉사를 면하여 숨이 붙어 있었다.

추락할 때, 경렴은 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경공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가닥 기이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몸 안의 내공을 흩어 놓았다.

그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을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가 떨어진 곳은 직각으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밑으로 갈수록 틈이 점점 좁아지며 굴곡이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양쪽 벽에 부딪혀 낙하 속도가 제법 줄어들었다.

거기에 더하여 경렴이 나이가 어려 몸이 유연하고, 신체 강건한 경씨들 중에서도 유독 강골을 타고 난 것이 즉사를 면하게 해 준 것이다.

 

터더더 턱!

“아악!”

 

하지만 그것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수준일 뿐.

이리저리 부딪히며 떨어진 경렴은 짧은 비명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빛 한 점 들지 않은 깊은 대지의 틈 속.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의 경렴이 가느다란 숨을 끈질기게 이어가며 시간은 흘러갔다.

 

***

 

투두둑! 투둑!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쓰러진 경렴의 머리 위에서 흙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양이 조금 늘어나는가 싶더니 뭔가 커다란 덩어리가 경렴의 가슴으로 떨어져 내렸다.

 

퍼벅!

“으으으.”

 

제법 충격이 있었지만 경렴은 낮은 신음만 흘릴 뿐,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하고, 정신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흐르는가 싶었는데, 경렴의 가슴에 떨어진 흙무더기에서 흐릿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숨을 쉬듯 천천히 명멸(明滅:밝아졌다 어두워졌다)을 반복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화화화화홧!

 

제법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더니 경렴의 가슴에 쌓여 있던 흙무더기가 푹 하고 꺼져 버렸다.

흙더미 안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며 그만큼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후우우우, 후우우우우!”

 

그런데 그 이후로 경렴의 숨소리가 점점 안정되며 길어지더니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뿌드드득! 뿌드득! 뿌득뿌득!

 

경렴의 몸에서 뼈 부딪히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부러지고 어긋난 뼈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신을 잃고 있는 경렴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깊게 안정된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흘렀을 때, 드디어 경렴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살았구나!”

 

경렴은 천천히 제 몸을 더듬었다.

 

“다친 곳이 없다. 아니, 다쳤던 몸이 다 나았다.”

 

경렴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식을 집중해서 내면을 관조했다.

그러자 곧바로 이전까지는 없었던 의식 영역이 나타났다.

 

“의념공간.”

 

그것은 의식 속에 만들어진 관념의 공간이며 동시에 현실과도 연동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경렴은 그 공간에서 자신을 살려준 보물을 확인했다.

 

도자기로 된 녹색의 호리병.

 

의념공간의 중앙에는 그것이 놓여 있었다.

 

‘이것이 신선이 되려다 실패한 영족 수사의 유체(遺體:죽은 자의 몸)란 말이지?’

 

언제 어떻게 이 호리병이 땅에 묻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경렴이 이곳에 떨어지며 땅에 묻힌 호리병에 충격을 주었고, 그것이 이후에 경렴의 가슴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기이한 인연으로 호리병이 경렴의 영혼과 연결되어 의념공간에 머물게 되었다.

경렴이 아는 것은 그 과정에서 호리병에 담긴 기운이 자신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

그리고 이전보다 자신의 신체 능력과 내공 수준이 크게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호리병의 비밀은 차후에 밝혀도 된다. 지금은 가문으로 돌아가 가문의 역적을 찢어 죽이는 것이 급하다.’

 

경렴은 자신이 얻은 기연을 깊이 궁구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었다.

지금 급한 것은 서둘러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반역도들이 어디론가 도망가기 전에!

대환장 경렴 선협전

대환장 경렴 선협전

  

지은이 : 탁목조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3-12-07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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