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쩔컨 트리오 001화

돌아온 쩔컨 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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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쩔컨 트리오

01화 프롤로그 - 빛나던 그 시절

 

 

19살. 셋이 함께할 때, 우리에겐 두려운 게 없었다.

25살. 우리는 더 이상 늘 함께할 순 없게 되었다.

그리고 40살. 불혹의 나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다 같이 만난 게… 도대체 언제였더라?

 

* * *

 

우리에게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었던 인생의 리즈 시절이.

“태형아! 1%! 1% 남았다! 딜딜딜! 어그로 좆까고 딜로 밀어!”

“알아! 예상 HP 8,200만! 가능성 있다! 간다!”

“으아아아! 씨뿌알!!! 엠통아, 버텨라!!”

눈앞에 서면 비늘밖에 보이지 않는 거룡이 눈앞에 있었다.

삼두룡 카드.

단신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거란 두려움에, 이제는 모조리 세상을 떠나 버린 옛 고신들이 힘을 합쳐 이차원에 봉인해 두었던 용 중 용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파멸을 바라는 자들 있어 거룡은 깨어나고 말았고, 놈의 처리는 이제 고신이 아니라 세상에 남은 수많은 필멸자들이 맡게 되었다.

그중 고르고 골라 모은 수십의 영웅.

고신들이 세상에 남겨둔 고기물을 온몸에 두른 그들은 거룡에게 도전하였다.

최고의 전사들답게 그들은 거룡과 싸워 이윽고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그 대가로 살아남은 자는 이제 단 세 명만이 남아 있었다.

세계 최강의 전사. 캇셀.

세계 최강의 암살자이자 도적. 사모예드.

세계 최강의 성자. 젠지.

이 세계에서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누구나 최고라고 쳐주는 세 명만이 남아 세계의 멸망을 저지하고자 하고 있었다.

하나 멸룡은 마지막 발악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후오오오! 거룡의 세 아가리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 단지 그것만으로도 서 있는 자리에서 앞으로 끌려 들어갈 정도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의 전조인지 셋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트리니티 브레스! 이건……!”

“씨발!”

사모예드와 젠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트리니티 브레스 패턴. 말 그대로 카드의 세 머리가 한꺼번에 브레스를 내뿜는 패턴이었다.

아군이 여럿이 살아 있을 때는 숨을 들이켜는 동안 일정 대미지를 누적시키면 브레스 방향을 세 곳으로 꺾이게 해서 파훼할 수 있는 패턴이었지만, 이제 셋만 남은 이 상황에서 그건 무리였다. 그리고 방향을 트는 데 실패한 트리니티 브레스는 반드시 아군 하나를 세상에서 지워 버리곤 했다.

조합된 셋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라진다면? 끝장이다! 그들의 머릿속이 새하얘진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쿠웅!! 한 손에는 도끼를, 한 손에는 온몸을 다 가릴 수 있는 커다란 방패를 든 남자가 땅에 방패를 박고 굳건히 태세를 굳히며 외쳤다.

“뒤로 모여!”

“뭐?”

“미쳤어?”

그가 외친 말이 무슨 뜻인지 그들은 순식간에 파악했다.

버틴다! 멸룡의 최강 브레스를 막아내고 놈을 친다! 그러면 이길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트리니티 브레스를 받고서 버틴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저 멸룡의 강함은 이제 시체조차 남지 않은 영웅들의 처참한 죽음이 증명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선 네 감을 믿는다!”

“<굳건한 방패>, <수호의 힘>, <저항의 고리>!”

그둘은 말보다도 빠르게 그의 뒤에 붙었다. 사모예드는 아예 캇셀의 허리춤을 끌어안아 딱 붙었고, 젠지는 그 와중에도 셋의 방어 능력을 동시에 극대화할 모든 주문을 쏟아부었다.

그 순간.

번뜩!

세계가 점멸하는 것만 같은,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오히려 모든 것을 검게 만들어버리는 힘의 폭풍, 아니, 격류가 그들에게 들이닥쳤다. 그야말로 태초의 폭발, 그 자체를 보는 것만 같은 섬광이었다.

1초. 3초. 5초…….

너무나 짧지만,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섬광과 어둠이 공존하는 멸룡의 입김이 멎었을 때.

“…태형아! 조져!”

초주검이 된 전사가 외쳤다.

그걸로 충분했다. 대답 없이 검은 전광이 멸룡에게 다가간다. 거리 그 자체를 접어버린 것만 같은 몸놀림으로 놈에게 다가간 암살자는 트리니티 브레스 이후 잠시 경직이 온 놈의 온몸을 난도질했다.

그뿐인가?

방패 뒤에 있던 성자, 젠지도 둔기를 들고 달려갔다. 이제 권능의 기반이 되는 마나가 다 떨어진바, 할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

마지막으로 달려든 건 캇셀이었다. 살아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운 몸으로 놈에게 도끼를 찍어 들어갔다. 죽음을 각오한 심경으로.

그렇게 그들의 무기가 동시에 카드의 몸에 꽂혔다.

그리고…….

“크어어어어어어!!! 피, 필멸자의 힘이 나를 해하다니! 고신들이여! 고신들이 선택한 용사들이여……! 너희에게 저주 있으라! 이 세계 전체에 저주를 내리노라!! 으아아아!”

문자 그대로 세계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과 함께… 마지막까지 고개를 치켜들고 있던 멸룡의 육신이 천천히 땅으로 가라앉았다.

지진과도 같은 땅 울림이 일었다. 그 광경을 셋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끝까지 카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그들 셋의 눈에 한 단어가 공통으로 들어왔다.

 

- 카드, 세상에 종말을 고하는 자 -

상태 : <죽음>

 

“주, 죽었나?”

“몰라. 아직 몰라, 무슨 이벤트 있을지, 무슨 통수 칠지.”

“헐…….”

굳은 석상처럼 ‘화면’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셋은 그 직후 하늘에서 고신의 전령이 빛과 함께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그들은 확신했다.

“잡았다! 잡았다, 씨발! 저거 아우레나잖아! 저년 나오면 끝난 거야! 우리가 해냈어! 씨발!”

“하. 진짜 잡았군. 결국 진짜 잡았어. 체력 84억짜리를 잡아버렸어.”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영광아! 태형아!”

덜컹! 성자 젠지의 ‘플레이어’인 ‘최진성’은 카드와의 결전에 참전한 전원을 아우레나가 부활시키는 광경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옆자리’에 있는 두 친구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남자 놈 겨드랑이에 머리가 들어간 거다. 당연히 평소라면 질색, 또 질색이었지만 오늘 같은 날만은 달랐다. 캇셀의 플레이어인 ‘주영광’, 사모예드의 플레이어 ‘정태형’ 역시 화색을 띠고서 머리가 끼인 채로 자기들끼리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해냈다. 카드 월드 퍼스트 킬. 결국 마지막 날에 이렇게 해치우는구만.”

“그래. 이제 미련 없다. 진짜로.”

“응. 게임 접기 딱 좋은 날이야!”

그렇게 말한 셋은 시원하게 웃고 있었다.

세계 최고 인기의 MMORPG 게임, 월드 오브 드래곤. 통칭 WoD.

방대한 볼륨과 시나리오로 극찬받는 이 게임에는 수많은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지만, 그중 두각을 보인 건 단연 이들 세 명이었다.

캇셀, 사모예드, 젠지.

월드 오브 드래곤 오리지널 초기 시절. 프로그래머가 만우절 장난으로 내보낸 오버 파워급 필드 레이드 보스를 고작 셋이서 공략하는 미친 기량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데뷔한 게임의 천재들.

그 뒤 그들은 지난 수년간 수많은 보스 월드 퍼스트 킬을 달성하며 월드 오브 드래곤의 살아 있는 전설로 게임 역사와 함께 호흡해 왔다.

월드 오브 드래곤의 플레이어들뿐 아니라,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게임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장 6년. 강산이 절반 이상 변한 그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이제 게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맞이한 현실이 더는 게임을 할 수 없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 이렇게 게임을 접게 되다니. 세상일 모르는 거야.”

“어쩔 수 없지. 태형이가 유학 가면 할 시간이 안 난다는데. 그럼 무슨 재미로 WoD 하겠어.”

“미안하다. 나 때문에…….”

“야, 그게 왜 태형이 때문이야? 우리도 취업 준비해야지. 언제까지 겜방 죽돌이 해줄 순 없잖아.”

“나, 나도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야. 알지?”

“알아. 당연하지. 그럴 놈이냐, 네가.”

서울 한 게임방. 그 구석에서 세 자리를 붙여 게임을 하고 있던 그들은 방금까지 흥분되어 있던 기색을 천천히 지우고 있었다. 이제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아쉬움, 그리고 씁쓸함이었다.

WoD의 전설을 쓴 3인조는 올해로 25살이 되는 청년들이었다.

같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반은 다르지만, 학교는 같았던 그들은 게임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후로 완전히 죽이 맞아 영혼마저 공유한다 자부하는 절친이 되었다. 군대까지 한날한시에 같이 갔을 정도로 말이다.

전역하고 나선 더욱 그랬다. 셋 모두 마치 게임에 인생을 건 것처럼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끝없을 것 같은 몰입도 이제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태형은 유학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잠시간 떠나야 하게 되었고, 다른 둘도 이제 더는 게임만 잡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곧 졸업하면 사회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길이 갈릴 때가 된 것이다.

이에 그들은 마지막으로 이번 확장팩 마지막 레이드 보스이자, 지금까지 13번이나 도전했지만 잡지 못했던 멸룡 카드에게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고 게임을 동시에 접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을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그들은 결국 오늘 카드를 잡아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 트리니티 브레스 막았을 때 캇셀 체력이 1% 남았었지?”

“어. 최대 체력의 1%만 남기고 5초 무적 걸리는 사용 효과 있었잖아. 방패 분쇄의 각오.”

“그거 썼구나. 어쩐지…….”

젠지의 마나는 이미 버프를 둘러준 이후에는 바닥나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트리니티 브레스를 몸으로 그냥 때웠으면 당연히 버틸 수 없다. 게임 특성상 브레스 패턴은 앞에서 막아주는 사람 뒤에 서면 대미지를 받지 않지만,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다시 대미지가 온전히 들어온다.

그걸 버티려면 정말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방패 분쇄의 각오. 캇셀의 방패에 있던 사용 효과.

이걸 쓰면 5초간 HP 1%를 남기고 무적이 되지만, 대신 방패 내구도까지 모두 소모되어 버린다. 내구도가 다 떨어지면 방어도를 제공받을 수 없고, 전투 중에는 수리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 그 자체였다.

그 1% 남았던 캇셀의 체력을 떠올린 젠지가 말했다.

“카드도 1%. 우리도 1%. 그 마지막 의지 싸움에서 우리가 이긴 거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마음까지 전부 쏟아부은 거지. 너에겐, 우리에겐 그렇게 강한 의지가 있어. 그러니 WoD를 그만두더라도, 우리는 어디 가서든 뭘 하든 잘될 거야.”

살진 몸매에 푸근한 인상의 진성이 감격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영광과 태형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팔뚝을 가볍게 툭 쳤다.

“야. 징그러! 시인 나셨네, 아주.”

“누가 들으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어.”

“그, 그래도!”

“됐네요. 겜 접는다고 우리가 아주 안 만날 것도 아니고. 그지? 야. 술이나 땡기러 가자.”

“그래. 마시자. 오늘은 나도 마실게.”

“어. 진짜? 태형이 너도 마신다구? 와. 얼마 만이야!”

진성의 감상적인 발언 덕분일까? 방금까지 있었던 침울한 분위기였던 셋은 금세 다시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임에서 이룰 건 다 이뤘으니까 이제 현실에서 술에 꼴으러 가려는 것이다. 바로 그때.

“아. 잠깐만.”

무언가를 불현듯이 떠올린 영광은 다시 자리에 앉아 세 캐릭을 번갈아가며 조작했다.

“뭐 해?”

“그래도 마지막인데 스샷 하나는 남겨야지.”

“아. 그러네.”

그제야 그 둘도 다시 자리에 앉아 온갖 포즈를 취하며 6년간 즐겨온 게임에 마지막 추억을 새겼다. 게임방 컴퓨터에 저장된 스크린 샷 파일도 착실히 이메일 등으로 보내서 챙겼다. 그리고…….

“자. 하나, 둘, 셋.”

찰칵.

셋은 마지막 전설을 남긴 게임방 컴퓨터와 의자를 뒤에 두고서는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 한 방을 찍었다. 그제야 그들은 깨끗하게 마음을 접고서 게임방을 떠날 수 있었다.

그 뒤엔 술이 사람을 잡아먹을 때까지 달렸다. 그 잠깐 사이 사진 수십 방을 찍은 건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기행 아닌 기행을 1박 2일이나 하고 나서야, 그들은 웃는 얼굴로 서로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친구뿐 아니라, 사랑했던 게임까지 전부.

 

25살의 여름.

그때는 자각하지 못했던, 주영광의 인생 최전성기가 끝나던 날이었다.

 

* * *

 

“…기. 자기. 일어나. 출근해야지.”

“헉……!”

옆에서 들려온 여자 목소리에 주영광은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는 부스스한 머리칼로 힘겹게 눈을 뜨고 있는 30대 후반의 여자가 보였다.

“국 해놨어. 먹고 가.”

“어? 어…….”

멍하니 대답한 주영광은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계를 보아하니 이제 6시. 창밖은 아직 어둑어둑했다. 학생 때라면 다시 한 번 드러누웠을 시간.

“또 그때 꿈 꿨구만.”

그렇지만 이제 나이 40.

WoD 역사 최고의 전사 캇셀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직장인이 된 주영광은 꿈속의 이상에서 돌아와 현실을 마주했다.

“…….”

머리맡에 두고 잔 스마트폰 패턴을 열어 자는 도중 온 메시지가 있나 확인한 영광은 그러다 휴대전화 배경 화면, 올해로 9살 된 아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해야지… 우리 아들 교육비 벌려면……. 으쌰!”

게임 세계의 미래가 아닌, 한 가정의 미래를 등에 진 가장의 삶이 오늘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온 쩔컨 트리오

돌아온 쩔컨 트리오

 

 

지은이 : 아모리아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5-07-02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본사 :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 483번길 40 서경B/D 3F (우) 14640

편집부 : 서울특별시 구로구 디지털로 272 한신IT타워 404호 (우) 08389

전화번호 : 02-6956-0531 

 

이 책은 도서출판 청어람이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전자책으로 발행된 것이므로 불법복제 및 유포, 공유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