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의 음악 천재 001화

예고의 음악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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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의 음악 천재

1화

 

 

가로등 불이 깜빡이는 어두운 골목길.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다닐 것 같은 비좁은 골목길이지만, 누군가에겐 하굣길이다.

 

베이지색 교복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아디다스 바지를 입고서, 껄렁하게 신발을 끌던 학생은 힘겹게 언덕을 올랐다.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마친 터라 졸음이 몰려온다.

 

“아… 피곤하네.”

 

학생은 옷소매로 두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무리하게 연습을 했는지, 오늘따라 더 다리가 무겁다. 모래주머니라도 찬 것처럼 축축 늘어지는 걸음.

학생은 여느 때와 같이 따분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늘 가던 길에,

늘 있는 가로등.

지극히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평범한 하굣길.

 

그때였다.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광경에 시선이 닿은 것은.

 

“뭐야?”

 

언덕 끄트머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벤치. 이따금 힘들 때 잠시 앉고 가던 그 벤치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것도 너무 편하게.

 

“우음…….”

 

새우깡 박스를 이불 삼아 누워 있는 인간.

 

그 밑에는 스케치북에 대충 끄적여 둔 문구가 있었다.

 

전령의 신 임시 파업

 

그리고 그 밑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 아래에는, 네임 펜으로 주절주절 써 놓은 듯한…….

 

파업 문구.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아니.

 

“뭐 하는 애야?”

 

학생은 질색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옅은 갈색 머리에 깔끔하게 새하얀 얼굴. 새우깡 상자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충 제 또래쯤 되어 보이는 애다.

 

학교나 가야 할 녀석이 왜 여기서 저러고 노숙을 하고 있나.

 

“집 나온 앤가? 가출청소년?”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정체 모를 노숙자를 아래위로 훑던 순간이었다.

 

“어?”

 

잠깐만.

 

“어어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명찰을 문질거리던 손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음… 춥다…….”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웅얼거리면서 다시 돌아눕는 저 멍청한 녀석.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서을예고… 신서진?”

 

서을예고의 문제아.

 

자퇴를 앞두고 있던 녀석이.

 

“쟤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뭔가 더 이상해져서 돌아왔다.

 

* * *

 

두 시간 전, 서초동의 한 전화 부스.

 

다급히 다이얼을 누르던 한 남자는 충격적인 소식에 입을 떡 벌렸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못 온다고?”

 

둥글둥글한 인상과 순해 보이는 얼굴. 그와 다르게 곱게 자란 듯한 특유의 분위기는 온몸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실제로 곱게 자라기도 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

제우스의 아들이자, 올림포스의 신.

허우대 멀쩡한 이 신이…….

 

미아가 되었다.

그것도 지구 미아가.

 

“그러면 언제 올 수 있지?”

-제우스 님이 저를 붙잡고 놔주질 않으십니다…….

“뭐라고?”

 

21세기의 인간계는 처음이건만.

가이드 역할을 해 줘야 할 시종 미켈이 제우스에게 붙들렸다.

헤르메스는 난처한 얼굴로 수화기를 붙들었다.

 

전령의 신 업무는 파업.

인간계에서 한탕 하는 신이 많길래 내려왔더니, 처음부터 제대로 꼬여 버렸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을 뱉었다.

 

“몰래 빠져나갈 방법은 없나?”

-걸리면 저 죽습니다…….

“아니, 그러면 나는…….”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혹시 돈은 있으실까요?

“돈?”

 

21세기에도 돈은 인생의 진리인 법. 헤르메스는 텅 빈 주머니를 확인하고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금 덩어리라도 몇 개 들고 튈 것을, 하나도 들고 오질 못했다.

 

수화기 저편에서도 탄식이 들려왔다.

 

-아이고.

“지금 아이고,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대책은?”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제가 그래도 다 계획이 있습니다. 저번에 드렸던 입학신청서 가지고 계시죠?

“어.”

 

서을예고 재입학신청서.

헤르메스는 손에 쥔 서류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근데 이걸 왜 준 거지?

 

그 이유를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그 답이 들려왔다.

 

-일단… 학교에 들어가시는 겁니다!

“뭐?”

-학교는 밥도 주고… 집도 주고… 어쨌든 기숙사라는 게 있거든요. 헤르메스 님이라면 지내시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스타가 된다고 하셨잖아요.

“스타?”

-네, 그거 되려면 거기 들어가야 한답니다.

“…여기만 들어가면 할 수 있나?”

-물론이죠!

 

자신감에 가득찬 미켈의 대답.

 

서을예고…….

어딘지는 몰라도 21세기의 스타를 육성하는 공간인 모양이었다.

 

-거기가 가장 유명한 학교입니다! 매년 스타를 몇 명씩이나 배출해 낸다고요.

-저를 믿고 따라 주시면 후회는 안 하실 것…….

“알겠다.”

 

약 파는 느낌이 살짝 나긴 하는데.

 

미켈의 말을 대강 이해한 헤르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총명한 제 시종은 와중에도 쉬지 않고 계획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니, 들어가시기 전에 며칠만 숙식을 해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으음…….”

 

돈이 없다 했던가?

신전으로 돌아갔다간, 제우스에게 붙들려서 못 나올 것 같으니…….

 

우선 인간계에서 해결해야 할 터인데.

 

곤란하군.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던 헤르메스는 빠른 결론을 내렸다.

 

“인간들에게 슥삭, 하면 되나?”

-네?

 

전령의 신이자, 상업의 신.

아니, 도둑의 신이기도 한 헤르메스의 사고는 자연히 이쪽으로 흘러 버렸다.

 

-잘못 들은 거죠? 그런 거죠?

-설마. 그런 미친… 아니, 그런 무모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시죠?

 

맞는데?

헤르메스는 두 눈을 반짝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조금만, 살짝… 슥삭?”

-안 됩니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21세기에는 CCTV라는 게 있어서 그러다가 경찰서 갑니다!

“나, 신이야. 그 정도는 안 걸리게 슥삭…….”

-절대 안 됩니다! 절대!

“…….”

-절대로!

“아… 귀청 떨어지겠네…….”

 

투덜대며 수화기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헤르메스.

 

-도둑질만은 아니 됩니다!

 

비록 신계와 인간계.

닿지 않을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미켈의 충성심만은 그대로다.

 

공기 중에는 미켈의 외침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사고 치지 말고!

 

-뭐 훔치지도 말고!

 

-학교나 제발 들어가세요!

 

* * *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류의 중심.

서울 북부에 위치한 최초의 K팝 사관 학교.

SW엔터가 글로벌 진출을 대놓고 노리곤 세운 것이 바로 이 서을예고였다.

 

때문에 일반적인 교육과정이 아닌, 철저히 기획사의 프로그램을 따라간다.

고등학생 때부터 확실히 글로벌 스타로 키우겠다는 방향성이 잡혀 있는 학교.

 

“후.”

 

그 명성답게 건물 외벽부터 남달랐다.

감각적인 건축자가 지은 듯한 예술적이고 유니크한 외관.

유리문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아름답다. 일개 고등학교라고 칭하기 어려울 정도로.

헤르메스는 듣던 대로 화려한 건축물에 시선을 빼앗긴 채 잠시 감탄했다.

 

“여기가 한국 최고의 예술고등학교… 미켈이 말한 곳이 여기지?”

 

여기서 살아남기만 하면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는 건 보장받는 셈이라고 했던가.

 

“아, 먹고 살아야 하는데.”

 

헤르메스는 그 앞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했다.

 

“…….”

 

21세기의 사람들은 그다지 신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저 신화의 이야깃거리로 그렇게 소비되어 갈 뿐.

 

그 어느 누구도 올림포스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토록 휘황찬란하던 신전들도 조금씩 무너지고, 사람들의 믿음 없이는 이전의 견고한 힘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신들은 그렇게 힘을 잃어 갔다.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우스를 상대로 파업을 하고, 올림포스를 박차고 나온 것 또한 그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나도 늙었어…….”

 

힘들어!

 

“이젠 관절이 쑤시다고…….”

 

몇천 년을 부려 먹었으면 되었지 않나?

 

“내가 무슨 쿠x맨도 아니고…….”

 

우편 배달일은 이제 지쳤다.

자신 또한 다른 신들처럼 인간계에서 광명을 찾을 생각이었다.

 

힘을 되찾을 기회.

앞서 인간계로 향한 신들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스타가 되는 것.

인간들의 숭배의 대상이나 다름없는 연예인.

 

그중에서도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다른 신들이 부럽지 않을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단다.

 

그러니, 헤르메스의 목적도 그와 같다.

 

“…유명해지는 거다.”

 

헤르메스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연예인이 되어야겠어.”

 

어서 힘을 되찾아서…….

우편 배달일은 때려치우고, 평안한 노년을 즐기겠다.

 

헤르메스는 서을예고 복도에 들어서며 작게 중얼거렸다.

 

“튼튼한 관절… 완벽한 노후…….”

 

아주 좋아.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헤르메스는 유리 창문에 비치는 얼굴을 한 번 다시 확인하고선 말했다.

 

“이 얼굴도 나쁘지 않아.”

 

갓 열일곱이 된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180이 넘은 훤칠한 키에, 당장 데뷔해도 손색없을 비주얼.

 

살짝 어설퍼 보이는 구석은 있어도 가꾸면 빛이 날 본판이었다.

 

“으음. 잘생겼네.”

 

헤르메스는 만족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쓸 만한 영혼으로 잘 선별했단 말이야.”

 

몸체의 본래 이름은 신서진.

가족 하나 없는 혈혈단신에 17세의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

 

“안된 인생이긴 하다만.”

 

신계의 자신을 도와주는 대가로 저승에선 편안히 쉬게 될 테니.

그 친구로서도 나쁘지 않은 거래일 테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중, 2층 복도 앞에 도착했다.

 

헤르메스는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고요한 복도.

은근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기분 탓인가?

 

헤르메스는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받아치며 복도 끝 편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때였다.

 

수군수군.

 

뒤이어, 그의 뒤편으로 들려오는 달갑지 않은 말소리.

 

“신서진 아냐?”

“맞는 거 같은데?”

“뭐야, 쟤가 왜 돌아왔어?”

 

의아해하는 탄성.

 

뒤통수에서 싸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헤르메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신서진이라면…….

 

“내 이름인가?”

 

곱씹어 본 끝에 알 수 있었다. 대낮부터 웬 놈들이 동급생을 저리 헐뜯나 했더니만.

제 이름이 맞았다.

 

“뭐야? 월말평가 F 받고 알아서 때려치운 거 아니었냐?”

“작년에 학교 관두려던 거 아니었어?”

“그걸 굳이 또 기어 들어오네.”

“용케 진급은 했네. 나 같으면 쪽팔려서 때려치우겠다.”

“…….”

 

헤르메스의 눈썹이 살짝 들썩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는 확실히 짐작할 수는 없었으나, 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원래 이 몸이었던 신서진이라는 친구가.

 

이 학교에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

 

나아가, 재능이 많이 없는 친구였다는 것.

 

“으음.”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비켜 주지?”

 

헤르메스는 고개를 까닥이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녀석을 가볍게 밀었다. 가장 시끄럽게 조잘대고 있었던 탓이다.

 

화악-

밀쳐진 녀석이 두 눈을 부릅뜨고 이쪽을 올려다본다.

 

“야, 너 뭐야! 왜 갑자기 사람을 밀어!”

 

시끄럽군.

녀석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한 헤르메스는, 대수롭지 않게 복도를 걸었다.

 

“여긴가?”

 

복도에서 몇 걸음.

헤르메스는 고개를 돌려 아크릴 간판을 확인했다.

 

C반.

 

“맞네.”

 

길을 잃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제대로 찾아왔다.

 

헤르메스는 씨익 웃으며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서을예고의 버려진 학생들이 모여 있는 비운의 학급.

 

낙인처럼 박혀 있는 C반에.

 

문제아 신서진이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예고의 음악 천재

예고의 음악 천재

  

지은이 : 강서울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2-04-22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본사 :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 483번길 40 서경B/D 3F (우) 1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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