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평소와 같은 산책길.
공무원이 되겠답시고 3년째 허송세월 중인 나는, 오늘도 자취방 근처에서 밤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음, 오늘은 한적하고 좋네.”
평소엔 드물게나마 마주치던 사람들이 오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인데.”
인기척 없는 거리.
깜빡거리는 가로등.
괜히 요새 자주 꾸는 악몽이 떠올라 고개를 털었다.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자.’
절대 귀신이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인적 드문 곳에서 해코지당할까 봐 그렇지.
그렇게 웃긴 영상을 찾아보며 걷고 있자, 맞은편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간만에 마주친 사람에 안심하던 것도 잠시.
‘뭐…….’
가로등 아래 드러난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맨몸.
뼈와 가죽만 남아 있는 몸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배.
처음 보는 괴기한 모습에 뇌가 정지했다.
우웅-
몸이 굳어 그대로 들고 있던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풍선. 접촉. 전염.』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영문 모를 내용의 메시지.
나는 조용히 휴대폰 화면을 끄고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X발.’
눈 마주쳤다.
타타타타탓-
“으아아아!”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 뛰는 걸 보자마자, 나 역시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빨리 뛰는 건지 모르겠다.
“쉬익쉬익쉬익……!”
무슨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쫓아오는데, 소름 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점점 힘이 빠져서 속도가 줄어들고 있을 때, 이번엔 반대편에서 한 쌍의 커플이 등장했다.
“도망치세요! 빨리 좀……!”
도무지 길을 비킬 생각이 없어 보이는 커플.
나는 어쩔 수 없이 골목 쪽으로 뛰어들었다.
“뭐야, 왜 저래?”
“오, 오빠. 저기 이상한-”
덥썩.
순식간에 다가온 괴물이 커플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이이익……!”
커플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이런 미친?! 저게 뭐야!’
괴물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커플.
이젠 3마리가 된 괴물들이 나를 쫓아 골목으로 들어왔다.
“허억…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우당탕!
젠장, 발이 꼬여 넘어졌다.
이젠 도망칠 힘도 없는데.
‘저놈들한테 잡히면… 나도 괴물이 되는 건가?’
쉬익거리며 다가오는 괴물들을 보다 눈을 질끈 감았을 때.
탕-! 탕탕!
총소리가 들리더니 괴물들이 모두 쓰러졌다.
“‘풍선 인간’ 3마리 사살. 민간인 1명 발견.”
“팀장님. 상황 종료됐답니다.”
그리고 이어서 특수부대 같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넵!”
팀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나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저희는 특수 임무를 맡은 정부 소속 요원들입니다. 오늘 겪으신 일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 그게 저는 매일 산책을 하는…….”
나는 열심히 괴물에 대해 얘기하던 중, 문득 의문의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풍선, 접촉, 전염……. 아까 분명 풍선 인간이라고 했어. 괴물과 닿으면 똑같이 변했었고.’
왠지… 왠지 이건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군요. 협조 감사합니다.”
얘기가 대충 끝난 듯 하자, 다른 남자 요원이 다가왔다.
“이제 뿌릴까요?”
“그래. 상태 확인 후 복귀하지.”
“옙! 아아- 기억소거제 살포 바람.”
요원이 무전을 한 뒤, 얼마 안 있어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와 이상한 액체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죠? 분명 기억 소거라고…….”
“안심하세요. 몸에 나쁜 건 아닙니다.”
지끈.
졸리고 머리가 이렇게 아픈데, 몸에 나쁜 게 아니라고?
수면 아래로 끌려가던 의식이 점차 선명해졌다.
‘……아.’
오늘 겪었던 것과 비슷한 일이 이전에도 있었다.
괴상한 생명체를 봤던 일,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목격했던 일.
단편적인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마다 받았던 문자 메시지까지.
“정신이 드세요?”
“……네.”
“혹시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세요?”
“괴물한테 쫓기던 걸 여러분이 구해주셨죠.”
내 말에 표정이 심각해지는 사람들.
“이 사람, 왜 기억소거제가 안 통하지?”
“양이 좀 부족했다거나…….”
“기억소거제는 양에 상관없이, 한두 방울만 닿아도 효과가 있다.”
작게 말하는 듯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다 들렸다.
‘기억을 왜 없애려는 거지? 그 괴물 같은 걸 봐서?’
힐끗 쳐다본 팀장 요원의 험악한 얼굴은 더 그늘져 있었다.
“그건 기관에 가서 알아보도록 하지.”
얘기가 끝난 팀장 요원이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위압감이 엄청나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일 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아무래도 저희와 동행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권유 같으면서도 협박 같은 분위기.
“제가 무슨 이유로 따라가는 건가요?”
“죄송하지만 현재로선 자세한 걸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만약 동행을 거부하신다면, 기관 지침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팀장의 묵직한 목소리 때문인지, 처리한다는 말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동행하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내 대답에 남녀 요원 둘이 다가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어두워진 시야.
‘뭐야?’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만지니, 눈에 무언가가 씌워져 있었다.
“기관 지침상 어쩔 수 없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불편해도 참아주세요.”
나는 그렇게 요원들에게 이끌려 정체 모를 곳에 도착했다.
‘이건… 병원 냄새?’
요원이 눈에 씌운 걸 벗기자, 주변이 너무 환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몇 번 눈을 깜빡여 초점을 맞춘 후에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예상한 것처럼 내가 온 곳은 치료 시설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특별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실 겁니다.”
그런 거라면 받는 게 좋지.
순순히 요원의 말에 따라 검사를 받기로 했다.
한두 개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검사는 꽤 많았다.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데, 이 정도까지 한다고?
“이제 진료실로 가시죠.”
조심스럽게 의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내가 뭐 때문에 여기에 끌려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저 검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몸은 아주 건강하시네요.”
의사는 내가 긴장했다는 걸 눈치챈 건지 부드럽게 말했다.
사실 그게 더 긴장되었다.
당근 뒤에는 늘 채찍이 오는 법이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분은 기억소거제에 내성이 있습니다.”
“내성이 있다는 말은 기억소거제가 아예 안 듣는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이전에도 기억소거제를 여러 번 맞아본 적이 있는 경우죠.”
이전에도 기억이 지워진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떠올린 단편적인 기억들이 지워졌던 일들인 건가.
“환자분, 혹시 오늘 있던 일 말고 기억나는 일은 없는 건가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기이한 일을 몇 번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꿈을 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에도 이런 일에 휘말렸었다면, 기억소거제를 여러 번 맞았을 확률이 높네요.”
의사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환자분께서는 괴이 감응력도 평균보다 높아요. 요원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할 수 있을 만큼.”
괴이 감응력……?
내 표정을 의사가 아차 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아, 괴이는 오늘 당신이 본 괴물 같은 걸 의미합니다. 감응력은… 팀장님이 설명해 주실 겁니다.”
그 외에는 멀쩡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진료실에서 나왔다.
“따라오시죠. 설명은 저희 사무실에서 드리겠습니다.”
“네, 네.”
슬쩍 본 팀장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제 내 ‘처리’에 관해서 말하려는 건가?’
점점 사무실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엄청나게 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착한 대응1팀이라고 적힌 사무실.
단발머리에 눈꼬리가 처져 나른해 보이는 여성이 팀장을 발견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뒤에 있는 사람이…….”
“아, 부팀장. 이쪽이 아까 말했던 이현이라는 사람이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까 치료할 때 인적 사항 적은 걸 공유했나?
“의사에게 듣기로 이 사람은 기억소거제에 내성이 있다더군. 또한 감응력이 일반 요원보다 높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굳은 부팀장과 다른 요원들의 표정.
대체 감응력이 뭐길래 다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팀장이 내 쪽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괴이 감응력이 높다는 말은, 괴이와 파장이 잘 맞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오늘 겪었던 것처럼 괴이가 나타나는 현상을 ‘비틀림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에 많이 노출될수록 감응력이 올라간다고 한다.
“요원은 감응력이 높으면 좋은 점이 있지만, 일반인의 경우는…….”
그저 비틀림 현상에 잘 휘말리게 될 뿐이라고.
“이현 씨는 감응력 수치가 꽤 높습니다. 이전에도 자주 휘말려왔던 걸 보면,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타고나신 것 같군요.”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휘말리게 된다는 소리잖아.
“감응력을 낮출 방법은 없나요?”
“안타깝지만 현재로써는 없습니다.”
“없다고요……?”
왜 없는 거지?
측정도 할 수 있고, 그런 괴상한 생명체를 잡을 정도라면 있을 법한데.
“후천적인 요인으로 그렇게까지 감응력이 높아진 요원들은 많이 없었고, 있다고 해도 요원에겐 장점이니까요.”
팀장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날 놔두고, 다른 팀원들에게 다가갔다.
“이 일은 생각 외로 중대 사항이다. 기억을 지울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이 사람이 이대로 사회에 돌아간다면, 비틀림 현상에 휘말리는 사람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니었기에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이쪽 입장에서도 큰일이었다.
일반인 하나 때문에 위험이 증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니.
“팀장님 말이 맞아요. 예상외의 일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부팀장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날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려는 거지?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해야겠군.”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 설마 죽는 건가?’
두려운 마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의견이 나왔다.
“혹시… 저희 팀에 넣는 건 어떨까요?”
의외의 말을 꺼낸 건 다른 남자 요원이었다.
남자의 말에 놀란 건 나뿐만 아니었는지, 모두가 놀라 그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만 뺴고.
“그 이유는?”
“감응력이 높다는 건… 이쪽에서는 재능충이라는 뜻 아닐까요?”
남자 요원은 어차피 기억도 못 지우겠다, 마침 팀에 인원도 부족하니 채용하자고 주장했다.
‘다행히 죽이는 건 아닌가 보네. 그러면… 나 취업하는 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긴 생머리에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 요원이 날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역시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