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기업, 제품 및 사건과 배경 등은 모두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기업, 제품 및 사건과 배경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으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제1화
1화. 되돌아왔다!
게임을 좋아했다.
단순히 하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로.
그게 내가 게임 디자이너가 된 이유였다.
흔해 빠졌지만 아주 훌륭한 직업 선택의 동기였고, 나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기나긴 개발자 인생. 어느새 조금 보태 20여 년.
드디어 기획부터 서비스까지 ‘내 게임’이라 불릴 만한 걸 만들 수 있었다.
서비스한 지 1년이 되어 가는 모바일 게임 ‘텐 메이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아쉬운 점도 많고, 또 고생 역시 그만큼 했었지만, 나름 뿌듯한 성과를 거둔 게임이었다.
물론, 그 기쁨도 오늘이 끝일 테지만.
『 사직서
- 상기 본인(텐 메이지 총괄 PD 강범건)은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이 사직서를 제출…….』
“에휴.”
불이 꺼진 원룸 방. 유일하게 빛을 내뿜고 있는 모니터를 보자니 한숨이 연신 흘러나왔다.
아마 내 표정 역시 사정없이 구겨져 있겠지. 책상 옆에 한가득 쌓인 캔 맥주들처럼 말이다.
“빌어먹을 PM(Product Manager, 프로덕트 매니저) 새끼. 개 같은 사장 새끼.”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멍청한 놈들은 동화 속에서나 있는 줄 알았는데, 설마 현실에도 존재했고, 또 그게 내 윗사람들일 줄이야.
다시 생각해도 열이 뻗친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오늘 오후에 있던 5번째 대형 업데이트를 앞둔 회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서 헛바람이 든 건지 PM 놈은 시작부터 왈왈 짖어 대더라.
우리 텐 메이지의 BM(Business Model, 비즈니스 모델), 이익 창출 방법은 한계가 명확하니 MG 소프트의 게임인 라인 에이지, 일명 란이지의 것을 그대로 벤치마킹하자고 했던가?
유료 뽑기의 추가와 이를 통해 얻은 아이템을 소모시켜야만 채울 수 있는 컬렉션 시스템의 추가. 그와 연관되는 최상위 아이템 뽑기 간 변동 확률 적용. 빙고 형식의 변형 컴플리트 가챠(모든 뽑기 아이템을 얻어야만 보상을 얻는 방식), 모든 필드 PK 허용을 통한 세력전의 강화 등등…….
듣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PM 새끼의 말을 사장 새끼는 옳다구나 동조하기 시작했다.
물론, 난 그걸 가만히 듣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니, 있을 수 없었다.
자식 같은 게임이 망가지는 걸 볼 수 없기도 했거니와, 총괄 PD로서 순항 중인 게임을 망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열받네. 현재 양대 마켓 평균 매출 순위 40위권 대. 업데이트할 때마다 탄력받으면 10위권에 오르는 성과를 내는 중인데, 이런 게임의 BM을 멋대로 바꾸자는 게 무슨 개소리야!”
거기다 란이지는 과금 구조의 호불호를 떠나,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유저 간 상대 경쟁이 메인 콘텐츠라 저 괴랄한 BM이 가능하고 먹히는 거다.
하지만 우리 텐 메이지는 그게 아니잖아?
커뮤니케이션이나 캐릭터 몰입이 우리 게임의 기반이기에, 그에 맞춰 소수의 핵과금 유저가 아니라 다수의 중소 과금러를 유치하는 걸 타깃으로 개발되었으니 말이다.
뭐, 당연히 이런 내 반발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기 싫으면 개발팀이 아니라 CS(Customer Service, 고객 서비스)팀으로 꺼지라 하더라고.
그리고 난, 이런 불합리한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뭐……. 그 결과는 보다시피 나가리였고 말이다.
“쪼잔한 사장 새끼. 지는 맘대로 왈왈 짖으면서, 책상 좀 뒤엎었다는 걸로 좌천에 징계를 줘? 내가 괜히 그랬나. 그 개소리 멈추려고 그런 거지. 쯧!”
내 더러워서라도 때려치우고 말지.
속은 후련한데 머리는 복잡하다.
아니다 싶은 걸 보고도 웃으며 참는 게 훌륭한 월급쟁이의 완생(完生)이라던데, 난 아직 미생(未生)도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순항 중인 게임 보고 흐뭇해하기 vs 자살하기’ 중 자살하기를 선택하는 걸 가만히 따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게임 과금 모델을 무작정 반대하거나 혐오하는 건 아니었다.
난 그런 머릿속에 꽃밭만 가득한 애송이가 아니거든.
게임의 과금은 악(惡)이 아니라 회사의 생존 문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게임 회사도 기업.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추구란 당연한 이야기를 차치하고서라도, 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중에서도 가장 비싼 비즈니스에 속한다.
일례로 2013년에 발매한 <GTA 5> 게임 개발엔 영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다시 찍을 수 있을 정도의 돈이 투입되었을 정도였다.
저런 극단적인 AAA급 게임의 사례가 아니라도 마찬가지. 흔한 모바일 게임들의 평균 개발비들 역시 어지간한 영화나 음악의 제작 평균을 한참 웃돈다.
그런데 그렇게 큰돈을 투자한 게임이 돈을 못 번다면?
그럼 당연히 새 콘텐츠를 개발, 아니 유지조차 못 하는 거지.
특히 모바일이든 PC든 실시간 라이브 서비스 덕에 비용이 지속해서 나가는 게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그러므로 나 역시 텐 메이지의 기획 초기에 수익을 낼 BM 개발에 꽤나 오래 고심했었다.
배틀 패스의 도입, 던전의 추가 입장권 한정 판매, 물욕을 한계까지 끌어 올릴 코스메틱 아이템과 캐릭터의 가챠 설계 등등.
이것들이 내 자식 같은 게임에 장수와 번영을 가져다줄 테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확실한 선(線)만은 잊지 않았다.
과금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등급이 낮은 캐릭터와 무기만으로도 모든 스토리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밸런스를 잡는 것은 기본이오.
무과금이나 소액 과금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게임 재화를 주기적으로 공급한다거나.
뽑기로 얻는 고등급 캐릭터의 몰입을 위한 서사 구축. 그리고 코스메틱 아이템들의 퀄리티에 더 신경을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수익을 내되, 유희라는 본질은 잃지 않도록.
돈을 쓰게 하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게 게임의 기본 상식이었으니까.
“에휴, 지금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 어차피 회사에서 꺼지라고 내 자리를 뺐는데. 더러워서라도 내 발로 나가야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숨이 턱턱 막힌다.
내 나이도 이제 40이 훌쩍 넘었는데 진짜 어쩌나.
누가 모함했는지 몰라도 업계에 ‘실력은 좋은데 심각한 꼴통’이나 ‘미친개’ 같은 나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문이 퍼져 있어 이직도 잘 안 될 거 같단 말이야.
난 게임을 만들고 싶지, 치킨 셰프를 하기는 싫다고!
“쩝, 이딴 걱정 하려고 게임 개발을 시작한 거 아닌데.”
속이 타서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불콰한 취기와 터져 나오는 한숨이 섞여 무거운 한탄이 된다.
내가 처음 이 바닥에 발을 디딘 이유는 꿈 때문이었는데…….
갓겜을 마구 만들어 게임계의 스티브 찰스이자 빌 게이츠, 제2의 미야모토 시게루. 아니, 그 이상이 되어 보겠다는 꿈 말이다.
철없고 유치해 보이겠지만, 이건 아직까지 놓지 못한 내 현재 진행형의 목표이기도 했다.
“흐흐. 지금 내 꼬라지엔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 말이지.”
만약 지금 회사가 아닌, 따로 내 회사를 창업해 게임을 만들었다면. 그렇다면 뭐가 조금 달라졌을까.
아니지. 이전에도 기회는 있었지.
그때 만약 결단을 내렸더라면…….
“흐흐. 다 결과론적인 후회일 뿐이지.”
자본, 인력, 퍼블리싱, 마케팅 등등…….
그때 창업을 포기한 것 역시 나름의 계산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지 않은가.
웃긴 건 그걸 잘 알면서도 내 가슴에 박힌 미련이란 이름의 쐐기는 낙담하는 게 아니라, 더 크게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거였다.
그 마지막 도전이 진짜 인생 최후의 발버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쩝. 진짜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기회가 찾아오지 않으려나. 에휴.”
그래. 다 부질없는 넋두리일 뿐이지.
난 실소를 흘리며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으로 텐 메이지를 실행시켰다.
이내 흘러나오는 익숙한 BGM과 게임의 로고를 보자니…….
뭐랄까.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애인과 마주하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었다.
아, 이젠 전 애인이 되었지만.
멍한 시선으로 게임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띠링! 하는 알림음이 내 정신을 일깨웠다.
“어? 뭐야?”
게임 화면에 커다란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단장님! 후회와 절망으로 점철된 현재를 변화시키고 싶으신가요? 꿈을 좇기 위해 이를 악물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과거로 돌아가 재도전을 위한 각오가 되어 있으신가요!
그런 단장님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 이벤트 아이템을 받으시겠습니까? [ 네 / 아니오 ]
보상 : 특별히 더 영롱히 빛나는 붉은 수정.』
그건 뜬금없는 이벤트 메시지였다.
동시에 내가 기획한 적 없는 낯선 이벤트이자 보상 아이템이기도 했고 말이다.
“……붉은 수정이야 원래 텐 메이지 뽑기 재화니 그렇다 쳐도, 앞에 붙은 수식어는 뭐야?”
난 재차 눈을 비비면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떠오른 채였다.
뭐야. 버근가?
아니면 사장이 맘대로 업데이트한 이벤트가 있는 건가?
아니면 취기에 내가 헛것을 보는 건가?
몇 번이나 눈을 끔벅이던 나는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이제 와서 아무렴 어때.
“크흐흐. 그래.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리트해야지! 그리고 이번엔, 히끅. 게임의 왕, 그걸 뛰어넘은 나만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빡세게 구르는 거지. 크크.”
물론, 이런 진심 가득한 혼잣말과 달리, 화면을 향하는 내 손가락엔 당연히 그 어떤 기대도 담고 있지 않았다.
취기에 몸을 맡긴 채, 그저 애들의 시답잖은 장난에 어울려 주듯 무심하게 손가락을 툭 움직였을 뿐.
하지만, 내 손가락이 ‘네’란 선택지에 닿는 그 순간에 벌어진 일은 절대 일반적이지 않았다.
빰빠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재도전을 시작합니다!]
팡파르 소리가 점점 커지며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내 정신은 다 타 버린 전구처럼 까무룩 끊어졌다.
- 욕망의 총량을 계산 중입니다! 되돌아갈 과거 시점을 결정합니다. 회귀 시기가 결정되었습니다! 199…….
그게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내가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 * *
깊은 물 속을 헤엄치는 듯한 부유감.
참을 수 없는 몽롱함.
짜악!
“크헉!”
그 모든 걸 깨부수며, 내 의식을 끌어 올린 것은 등짝에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이었다.
“강범건! 얘가 낮잠을 무슨 하루 종일 자고 있어. 빨리 안 일어나!”
동시에 귀에 들려오는 날카로운 잔소리까지!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도, 난 아직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고개를 탈탈 털었다.
그제야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비치는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그리운 얼굴은…….
“어, 어머니?!”
왜 여기에 계시지?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이 젊어 보이셨다. 고생에 찌든 안색도 아니셨고.
“하이고, 소스라치는 거 봐라. 아무리 방학이라도 그렇지, 내일모레 고등학생 된다는 애가 이렇게 잠이 많아서 어쩌려고 그래! 곧 아버지 오신다! 빨리 일어나!”
어머니가 나가며 방문을 닫는 소리에 내 멍한 정신은 그제야 일깨워졌다.
난 퍼뜩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에 놓인 투박한 책상과 옆에 딱 붙은 3단 책꽂이.
그 안에 꽂힌 <엣센스 한영사전>과 <먼나라 이웃나라>, <과학동아>, ‘서태지와 아이들’ 카세트테이프 등등…….
책상 옆 벽에 붙은 <슬램 덩크>와 <펄프 픽션>,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의 포스터들까지.
익숙한. 한편으론 아련한.
어린 시절 썼던 그대로의 내 방이다.
“맙소사…….”
뺨을 때려 본다. 아프다.
허벅지를 꼬집는다. 역시 아프다.
허둥지둥하던 난 베게 옆에 놓인 물건을 보며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마트폰 대신 놓인 손바닥 반 개 크기의 네모난 플라스틱 기기.
삐삐!
[1995-12-21. 17 : 35].
화면에 뜬 투박한 흑백 디지털 숫자는 지금 상황을 확실히 일깨워 주는 물건이었다.
“……뭐야. 그게, 꿈이, 꿈이 아니었다고?”
그래.
난 중3 겨울 방학이 시작된 지 딱 하루가 지난날로 회귀했다.
천재 개발자 게임으로 역대급 재벌
지은이 : 술부엉
제작일 : 2023.11.30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레아
표지 : 소혜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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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05-226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