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천의 사슬 (개정판) 001화

북천의 사슬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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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의 사슬 개정판 1화

1화. 삼나무 숲 (1)

 

 

클로드가 그 사람에 관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어깨를 놓는 두 손이었다.

언제 즈음이라 말할 수는 없다. 클로드도 자신이 정말 몇 살이었는지 모르니까.

사실, 클로드가 몇 살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느 과정으로 생겨났는지도 다들 몰랐다.

그저 어느 날 나타났고, 그래서 누군가는 어디선가 닮은 사내아이 하나 데려온 게 분명하다 말하기도 했다. 닮기는 제법 닮았으니까.

머리카락 색은 좀 달라도 눈동자 색은 비슷하고, 생각에 잠기거나 조용해지면 꼭 닮은 얼굴이었다.

자라나면 한 도면으로 만든 물건처럼 똑같을 거라고들 말했다.

이 정도면 보통은 아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클로드는 그 사람이 정확히 어떤 관계라 말한 적이 없어서 확신하지 못했다.

난 그 사람의 뭘까.

아들이라 말한 적은 없어도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한 적도 없다. 다정한 편이지만 아주 귀여워하는 건 아니고, 친밀해 보이지만 썩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저 아이는 뭐냐고 물어보면 다들 둘러대듯 대충 말하게 되었다.

아, 얼마 전 데리고 오셨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식을 낳지 못하니 분명 데려온 온 걸 테죠. 닮아서 맘에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아예 자식으로 삼을 생각은 없나 봅니다. 보세요, 저 아이는 그분을 어머니라 부르지도 않잖아요.

그래도 많이 닮기는 했네. 더 자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리 보면 누구라도 모자지간이라 생각하겠어.

저도 그리 생각한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라기에는 이상한 데가 많다고 여기고 있다.

클로드는 대체 어디가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비교할 데가 없었으니까.

사실, 이게 나쁜 건지도 잘 모르겠다.

불만족스러운 것도 없고 서운하거나 슬픈 적도 없었다.

서로 고집을 피우거나 실랑이를 벌일 때는 분명히 있었다.

클로드가 실수해서 혼나는 적도 있고 그 사람이 실수하고는 슬쩍 넘어가려 할 때도 있다. 그러나 특별히 심각하거나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어머니라 부른 적은 없다. 어른들 말을 듣고 한번 그리 불러 봤더니, 좀 망설이다 앞으로는 ‘아피’ 라고만 부르라 했다.

분명 더 온전하고 긴 이름이 있을 게 분명하지만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그 후 클로드는 항상 아피라 불렀고, 곧 익숙해졌다.

어느 정도 자라 몸이 단단해지자, 아피는 클로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을 모자지간이라 생각하고 말을 걸었다. 안에서 볼 때나 좀 이상하지, 밖에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들은 그저 젊은 어머니와 그와 닮은 귀여운 아들일 뿐이었다.

그때만큼은 아피도 클로드가 자기 아들이라 마음껏 말했다. 아름다운 모자지간에 호의를 품은 사람들은 좋은 말만 해 주었다.

엄마 닮았네요, 귀여워라.

몇 살인가요? 아, 여섯 살. 또래보다 크네요. 앞으로도 더 크겠네.

시장에 나가면 뭐든 사 달라는 대로 다 사 주었고, 소풍 나가기 좋은 벌판이나 숲에 가면 마음껏 뛰게 해 주었다.

그렇게 지내다, 일곱 살 남짓 되었을 무렵이었다. 일곱 살이라 생각한 건 그즈음 밖에 나가면 아피가 그리 답했기 때문이다.

아피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대충 넘기거나 적당히 오해할 만한 진실만 말할 뿐이지.

그 나이인 건 맞을 거다. 아피가 잘못 셀 수는 있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일곱 살이라 믿자.

어느 날 아피가 한참 돌아오지 않았다. 종종 돌아오지 않는 날이 있긴 했지만, 길어야 사흘이나 나흘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열흘을 넘어 돌아왔다.

돌아온 그 몸에서 낯선 냄새가 풍겼다. 비릿한 쇳내에 낯선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몇 번이나 씻고 씻었을 테지만 감각이 예민한 클로드에게는 선명하게 느껴졌다.

며칠 지나며 그 낯선 냄새는 많이 사라졌다. 아피의 표정은 예전 같지 않았다. 곰곰이 클로드를 살피며 생각에 잠기고, 좀 쓸쓸해하거나 멍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피는 즐겁게 지내려고 번잡스럽게 애썼다. 밖으로 나가 시장을 돌아다니거나 무성한 풀밭을 거닐었다.

사람들이 물어보면 친절하게 답하고, 그들이 클로드에게 말을 시키거나 관심을 보이면 처음에는 경계심을 보이다가도 곧 풀어져 웃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건 강가에 갔을 때였다.

수위가 얕아 바닥이 훤히 보이는 강물은 정말 맑았고, 그 아래로 물고기들이 수북하게 떼 지어 다녔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좋은 냄새와 함께 풀밭이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쏴아-

클로드는 그 소리가 좋았다.

물이 찰랑이고, 은빛 물고기들이 펄쩍펄쩍 높이 뛰어올라 벌레를 잡아먹고는 풍덩 떨어졌다. 다리가 가느다란 물새들이 그 근처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았다.

클로드와 아피는 한참이나 그 광경을 보았다. 아피의 잉크처럼 검은 머리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클로드가 그런 아피를 올려다보자, 그 짙푸른 눈이 클로드를 보았다. 눈매는 정말 닮았지만, 클로드보다 아피의 눈동자 색이 더 짙었다. 클로드의 눈이 맑은 바다 같은 푸른색이라면 아피의 눈은 밤바다처럼 짙었다.

클로드는 아피의 몸에 기대다 곧 찰싹 달라붙었다. 아피가 곧 깔깔 웃고는 그런 클로드를 안아 주었다.

얼마 지나자 아피는 평소와는 달리 클로드에게 제대로 옷을 입힌 다음 목을 덮을 정도로 자란 검회색 머리카락을 빗겨 주었다.

아피가 아이 돌보는 솜씨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어서, 클로드는 아피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거울을 보며 다시 머리카락을 다듬고 단추도 풀었다가 모두 잠갔다.

 

“이제 가자, 클로드.”

 

아피는 제가 휘저어 놓은 머리와 클로드가 다시 다듬은 머리의 차이도 모르고 뿌듯하게 본 다음 말했다.

어디로?

아피는 두 손으로 클로드의 머리를 감싸 주고는 볼에 입 맞췄다.

 

“거긴 추울 거야.”

 

거기?

이곳은 겨울 빼고는 별로 춥지 않다.

눈은 엄청나게 펑펑 내리지만, 고요하게 쌓이는 눈이라 그다지 춥지도 않고 금방 녹는다.

그런데 추운 곳이라니, 혹시 멀리 가는 걸까.

 

“거기 도착하면 그 사람이 다 설명해 줄 거야.”

 

그 사람?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을 거야. 뭐든 나보다 잘하니까. 너에게도 더 잘할 테지.”

 

아피의 길고 서늘한 손가락이 클로드의 얼굴 여기저기를 섬세하게 매만지다 내려갔다.

 

“그 사람과는 분명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언제까지?

그러나 물어보진 못했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오래오래, 언제까지인지 장담 못 할 정도로 아주 오래.

아피의 눈에는 쓸쓸함이 담겨 있었지만, 며칠이나 다짐하고 준비했던 일이기에 반드시 하리란 의지가 담겨 있었다.

클로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구나.

아직 얼마 살지 못했지만, 클로드는 때론 반드시 앞으로 가야 하는 때가 있다는 걸 알았다.

머뭇대거나 돌아서면 일이 더 나빠지는 그런 때, 도망치거나 회피하면 도리어 엉망이 되는 그런 때가.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내키지 않거나 미루고 싶어도, 지금 해야 한다.

아피는 클로드를 보내야 했고, 아무리 보내고 싶지 않아도 그래야만 했다.

그게 옳고, 맞는 과정이었다.

 

“잘 지내야 해.”

 

볼을 매만지던 손이 어깨를 잡았다. 워낙 키가 큰 사람이라 거의 앉다시피 해야 클로드와 눈이 마주칠 수 있었다.

 

“안녕, 클로드.”

 

클로드는 그 눈을 보고 그게 마지막 말임을 깨달았다.

내키지 않는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슬픔이 그 눈에 담겨 있었고, 클로드는 그 감정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슬퍼하는구나.

그 슬픔이 클로드에게도 번져 왔다. 가슴이 서늘하게 무너지는 것 같았고, 두려움과 외로움이 밀려 들어왔다.

곧 마주 보는 아피의 푸른 눈동자가 점점 어두워졌다. 주변이 얇은 커튼을 치듯 어두워지더니 곧 컴컴해졌다.

마치 해가 지고 어스름이 깔리는 것 같았다.

아피의 두 손이 어깨를 놓았다. 클로드는 아피의 손을 잡을 수도, 잡아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너무 순식간에 바뀌어 버려서.

어둠은 왔을 때 그랬듯 곧 겹겹이 사라지며 차츰차츰 밝아져 왔다.

드디어 환해지자, 어디에 있는지 훤히 보였다. 거친 둥치와 바늘 같은 잎을 가진 전나무로 가득한 숲이었다.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진했다.

그 순간, 엄청난 소리가 쏟아졌다.

쏴아아-.

 

“!”

 

소나기 소리 같기도 하고 모래가 쏟아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소란스럽기만 하던 그 소리는 언어처럼 그 흐름이 느껴지는 소리로 변했다. 더 커지고 요란해졌다. 귀로 듣는 거 같지 않다. 소리가 들리는 동안 심장이 쾅쾅 울렸다. 심장으로 그 소리를 듣는 것 같다.

낯선 풍경보다는 그 소리에 더 놀라 눈만 크게 뜨고 가만히 있었다.

소리에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어떤 건 적대감이고 어떤 건 욕망이고, 어떤 건…

소리 자체가 담은 무지막지한 감정에 압도되어 클로드는 멍하니 있었다.

놀란 클로드의 얼굴을 향해 크고 마른 손이 다가왔다.

곧 그 손이 가만히 귀를 눌렀다. 아피의 손과는 달리 달군 모래처럼 뜨거운 손이었다.

일순 주변이 고요해졌다. 완벽한 정적이 뚝 하고 찾아왔다.

소리가 잦아들자, 클로드는 앞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검회색 머리카락에 비슷한 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나이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얼굴은 분명 젊어 보이는데 눈을 보면 늙어 보이고, 힘 있어 보이는 몸이었지만 가만히 있는 걸 더 좋아할 것 같았다.

마주한 남자의 눈이 커졌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다 놀라워하더니, 곧 그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너무 기뻐서 차라리 슬픈 건지 모를 미소였다.

복잡해 보여도 그래도 그 눈에는 반가움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환영의 미소다. 좋은 시작이다.

남자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 말했다.

 

“이제 그 소리는 들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

 

그러곤, 남자는 다시 클로드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눈이 가늘어지며 뜨거운 손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내 이름은 크로노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크로노스 버젤이지. 이제 네 이름도 클로드에서 클로드 버젤이 될 거다.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말하렴. 그럼 더 설명할 필요 없을 거다.”

“…….”

“마음에 안 드니?”

 

클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상하긴 하지?”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노스는 클로드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클로드의 얼굴이 온전히 드러나자, 크로노스의 미소도 더 진해졌다.

 

“정말 많이 닮았구나.”

“…….”

“그 사람 어린 시절에 꼭 이랬지.”

 

그 눈이 먼 추억을 더듬듯 깊어졌다.

클로드는 아피에게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아피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아피를 까마득하게 오래된 사람인 듯 대했으니까.

홍염의 성좌 개정판

북천의 사슬 [개정판]

  

지은이 : 아울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5-05-14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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