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스타의 재능 서고
탑스타의 재능 서고
탑스타의 재능 서고
지은이 : 강서울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1-04-22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2동 163-2 서경빌딩 3층
전화번호 : 032-656-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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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의 재능 서고
1화. 1만 시간의 법칙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싸늘한 한마디가 내 심장을 향해 꽂혔다.
“이 따위로밖에 못 해?”
3년 전에 소속사에 들어온 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에 매달렸다.
거의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매일매일, 쉬지 않고 내 청춘을 쏟아부었다.
만 시간?
만 시간이라면 족히 넘었을 터였다.
전문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 언저리, 아니 중간이라도 제발 따라줬으면.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랐건만.
그런데도.
“이게 춤이야? 목각 인형도 너보단 잘 추겠다.”
나는 여전히 이따위였다.
쏟아부은 노력이 밑 빠진 독에 물 넣기 수준일 정도로.
재능 없는 인간.
“후우.”
한숨 소리와 함께.
한심하다는 듯한 최 실장의 눈초리가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더 연습해서…….”
“연습? 누가 너 연습 열심히 한 거 모른대? 나도 알고, 뒤에 얘네들도 다 알아.”
“…….”
“넌 그냥 재능이 없는 거야, 알아?”
“죄송합니다.”
뒤에 선 B반 연습생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고개를 들었다.
입은 습관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뱉어내고 있지만.
머리로는 글쎄, 잘 모르겠다.
타고나기를 재능이 없는 것을, 죄송해야 할 문제인지.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남들 쉴 때도, 밥을 먹을 때에도.
데뷔, 그거 하나만 바라보면서.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던 순간이었다.
“상준아.”
거듭 독설을 뱉어내던 최 실장이 마침내 비수를 꽂았다.
“관둬라.”
“예?”
벼락이 머리에 내리꽂힌 기분이었다.
설마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너 아이돌 해볼 생각 없니?’
나를 데려온 것도, 가능성이 있다고 응원한 것도.
여기 있는 최 실장이었다.
내가 특출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오직 그만 믿고서 여기까지 따라왔다.
그러니 지금도 그냥 정신 차리라고 던진 말일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냉정했다.
“새끼야, 노래 못 부르는 건 립싱크라도 하지. 춤까지 못 추면 어쩌자는 거야? 아이돌이 그렇게 만만해 보였어? 너, 데뷔는커녕 이제 여기 연습생으로도 못 있어. 그동안 네가 여기서 버틴 게…….”
독설을 이어가던 최 실장이 말을 멈췄다.
크흠.
헛기침이 이어지고, 최 실장이 고개를 돌렸다.
“넌 얼굴은 되잖냐. 네가 아까워서 그런다.”
“…….”
“네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놓아주는 게 맞으니. 이쯤에서 관둬라, 너도.”
최 실장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아이돌 연습생들 중에서도 가히 독보적인 마스크.
처음 들어올 때부터 데뷔는 따놓은 당상이라며 중얼거리던 말들.
물론.
춤 한 번 추고, 노래 한 번 부르고 나니 다 사그라든 소리였지만.
그게 아까우니, 차라리 배우라도 해보라는 소리였다.
물론, 지금 이 회사에서는 여력이 없었지만.
고로.
필요가 없으니, 나가서 네 갈 길을 찾아라.
돌려 돌려 그 말이었다.
“실장님.”
나도 모르게 악에 받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아는 기획사 소개해 줄게. 거기가 배우 쪽으로는…….”
나름 나를 생각한답시고 던진 말이었으나, 결론은 변함이 없었다.
거기서도 데뷔할 보장 없이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으니.
차갑게 식은 내 얼굴을 본 최 실장이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내일까지 고민해 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나를 봐온 이의 뒷모습치곤, 너무나 차갑고도 냉정했다.
덕분에 나 역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이제 와서 그를 붙잡기엔, 내 재능이 너무도 형편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분해서 미칠 것 같았지만, 그게 이곳의 현실이었다.
재능이 없는데 아이돌을 시켜달라는 건.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과 다를 게 없었으니까.
씁쓸한 한마디가 뒤를 이었다.
“내일까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
뒤에서 수군대는 다른 연습생들을 뒤로하고.
나는 유리문을 박차고 원래 있던 연습실로 돌아왔다.
“하아.”
깊은 한숨이 적막한 연습실 안을 메웠다.
몸을 두툼하게 덮고 있었던, 무거운 코트를 집어 던지고는 거울을 노려보았다.
마지막으로라도 이 연습실을 누비고 싶은 충동이 차올랐다.
“정말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으로 춤 한 번 추고.
깔끔하게 마음을 접어야지.
쉽게 그럴 수 없을 리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향한 세뇌를 마치고.
손을 뻗어 마지막 연습곡을 틀었다.
두-두두두.
빠른 일렉트로니카의 리듬이 몸을 깨웠다.
그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허억, 헉…….”
거친 숨소리가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오는 데도.
이를 악문 채,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삐걱거리는 움직임과 부자연스러운 시선 처리.
부정하고 싶어도, 눈앞의 저 목각 인형은 나였다.
“하. 정말 더럽게 못하네.”
씁쓸한 탄식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음악을 꺼버렸다.
울컥, 쌓아두었던 응어리가 목구멍을 치고 올라온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어도 나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정말 때려치울까.”
나도 모르게 작게 읊조리던 순간이었다.
번쩍.
환하게 연습실을 비추고 있던 조명이 꺼졌다.
지지직-.
낯선 마찰음에 경직된 어깨로 주위를 둘러보던 순간.
연습실의 조명이 완전히 암전되었다.
“뭐, 뭐야…….”
정전인가.
갑작스러운 어둠에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탓에, 찌푸린 얼굴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때려치우게?”
“실… 실장님!”
인기척도 못 느꼈는데.
화들짝 놀란 얼굴로 벌떡 고개를 들었다.
어둠 탓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서늘하고도 냉철한 이 목소리는, 최 실장이 분명했다.
“왜 여기에…….”
아까까지만 해도 내게 독설을 퍼붓던 최 실장이 눈앞에 서 있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습관적으로 고개부터 숙였다.
때려치우라던 게 방금 전인데 또다시 재촉하는 듯한 그의 한마디에, 나 역시 곱지 않은 투로 말이 나갔다.
“그만두는 건은 아직 고민 안 해봤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주시면…….”
“억울하지 않아?”
“…네?”
고개를 들어서 올려다본 최 실장은, 어쩐지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충분히 냉철한 이미지였지만, 이번에는 묘하게 달랐다.
어둠 때문이었을까.
마치 신을 마주한 듯한 위압적인 분위기에,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최 실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를 몰아쳤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 돼서. 열받지도 않아, 넌?”
“그… 그게.”
“재능이 없잖아, 넌.”
묵직한 최 실장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날카로운 말을 던져서라도 강제로 나를 내쫓고 싶은 걸까.
둘만 남겨진 연습실까지 찾아와서 굳이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는 그의 의중을 알아챌 수 없어, 입술만 잘근거리던 순간이었다.
“재능, 갖고 싶어?”
“예?”
황당한 듯 묻는 내게, 최 실장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내밀었다.
어둠 속에서도,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 때문일까.
신비롭게 빛나는 듯한 책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나는 마른 입술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방금 하신 말, 무슨 말씀이신지…….”
“노력한 만큼, 재능이 가지고 싶다며.”
그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수도 없이 외쳐댔겠지만.
하지만 그런 반박도 하기 전에, 그가 묵직한 책을 내 쪽으로 던졌다.
“가만히 지켜보려 했는데. 네가 조건을 달성했거든.”
“조건이요?”
우두커니 서 있던 내 시선이, 책의 표지로 향했다.
[1만 시간의 법칙].
그러면 그렇지.
겨우 이런 자기 계발서 하나 던져주겠다고, 친히 찾아오신 건가.
씁쓸한 미소를 애써 감추며, 또 습관적인 말을 내뱉으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최 실장의 말이 더 빨랐다.
“맘껏 노력해 봐.”
“…….”
“이제 네가 원하던 재능이 따라올 테니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묻고 싶었으나.
그럴 새도 없었다.
멀쩡하게 연설을 늘어놓던 최 실장의 눈빛이 돌연 흐려졌으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푸욱.
“실장님! 실장님……!”
최 실장의 몸이 기울어지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실장님, 정신 차리세요!”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한 터라.
누워 있는 최 실장을 깨우기에 바빴지만.
놀란 와중에도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
“뭐야…….”
나는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책이.
아까보다 강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재능 없이 죽어라 버텼던.
1만 시간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