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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마스터 - 1화
“이제 막 도착했어요. 형설관에 바로 가 보려고요. 있다가 연락드릴게요. 끊어요.”
한수는 제대한 이후 처음 찾은 대학교 전경을 둘러봤다. 2년 만에 찾은 대학교 캠퍼스는 그때 모습 그대로였다. 바뀐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교는 건물을 새로 올린다, 연구소를 설립한다 등 투자가 이뤄지며 매일매일이 새롭다고 했는데 한수의 대학교는 이렇다 할 투자 없이 2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인서울이긴 하지만 워낙 외곽진 곳에 위치해 있고 또 입결도 지방국립대보다 더 낮다 보니 ‘그런 대학교도 서울에 있었어?’라는 말을 듣기 부지기수였다.
그것도 잠시, 한수는 저 멀리 보이는 여자 신입생 무리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허벅지를 반쯤 가리고 있는 타이트한 미니스커트에 쭉 뻗은 각선미, 하얀색 와이셔츠에 노란색 리본형 넥타이는 그녀들이 항공서비스학과에 다니고 있는 학생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한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짧게 깎은 스포티한 머리카락이라고 하고 싶지만 누가 봐도 3mm로 친 군대 머리임이 티나 보이고 있었다.
제대 이후 칼복학한다고 병장된 뒤 나름 머리를 길렀지만 하필이면 전역 3일 전 식당에서 밥 먹다가 연대장한테 걸려서 머리를 박박 밀어야 했다. 영창 안 갔다 온 것만 해도 다행이었지만 지금 한수의 머리카락 길이 상태는 막 입대를 앞둔 훈련병에 가까웠다.
“휴, 올해부터는 제대로 공부해야지.”
한수는 속으로 다짐하며 형설관으로 향했다.
형설관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고시원이었다. 공무원시험뿐만 아니라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각종 고시를 준비 중인 고시생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휴학생, 졸업생들에게도 지원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는 고학번자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형설관으로 걸어가는 도중 한수는 도서관을 스치듯 지나쳤다.
아직 개강까지는 한 달 넘게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서관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들 모두 공시생들이었다.
청년실업률이 급증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한수도 군대를 갔다 오기 전 공시생이었던 적이 있었다. 반년 반짝 공부했다가 때려치고 입대한 거였지만 그렇다 보니 쉬지 않고 공부하고 있는 저들이 안타까웠다.
“어휴, 나라가 개판이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치인들은 자기들끼리 나뉘어 헐뜯기 바꾸고 정부는 국민 알기를 개가 닭 보듯이 하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서민들만 삶이 퍽퍽해져가고 있었다.
“누가 화끈하게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줬으면 좋으련만.”
혀를 차며 도서관을 지나갈 때였다.
“어? 한수야! 너 한수 맞지?”
한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자리에는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성숙한 미녀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지금 저 부르신 거예요? 누구세요?”
그녀가 환하게 웃어 보이며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야! 강한수! 너 되게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너 군대 가서 연락 준다며? 연락은커녕 문자 한 통 없더라?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말이야. 휴대폰 번호도 바뀌어서 연락도 못 했잖니. 안 그래도 누나가 시간 내서 면회 한 번 가려 했는데…….”
재잘재잘 떠드는 그녀를 보며 한수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지금 보고 있는 그녀와 닮은 사람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결국 한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한데 누구시죠?”
“어? 나 몰라? 나 민서야. 박민서. 기억 안 나?”
“서, 설마 민서 누나? 제가 아는 그 민서 누나 맞아요?”
한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박민서와 이 민서 누나는 도저히 매칭이 되질 않고 있었다.
그 말에 민서가 미간을 좁히며 한수를 째려봤다.
“너 그 눈빛 되게 마음에 안 든다? 왜 나 몰라봤어?”
“그야…….”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민서는 지금 민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항상 눈보다 훨씬 큰 잠자리안경을 쓰고 있었고 복장도 엄청 프리했다. 무릎이 나온 해진 트레이닝복에 목이 늘어난 후줄근한 면티, 그게 항상 그녀가 고수하는 옷차림이었다.
그러나 민서는 지금 오피스룩의 모든 걸 보여주다시피하고 있었다. 새하얀 와이셔츠에 까만색 치마였는데 타이트한 옷 덕분에 굴곡진 S라인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거기에 모공의 잡티란 잡티는 모두 감출 만큼 두꺼운 화장을 하고 있으니 한수가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한수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되게 예뻐지셔서요. 형설관에서 뵐 때하고는 전혀 딴판이시잖아요.”
“아, 그때는 화장도 안 하고 꾸미지도 않았으니까 그렇지. 제대하고 복학한 거야?”
“네, 누나는요? 취업…… 하신 거예요?”
대학교를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만 매달렸던 누나였다. 그런데 지금 복장은 한눈에 봐도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한수 말에 그녀가 웃어 보였다.
“아니. 취업은 무슨. 너 이야기 못 들었구나. 나 작년에 공무원 시험 합격했어. 지금은 임용대기 중이고. 약속 있어서 왔다가 우연히 널 보게 되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에 한수가 놀란 눈으로 민서를 쳐다봤다.
“누나. 저, 정말 합격하셨어요?”
“얘는. 오늘이 만우절도 아닌데 내가 널 왜 속이겠니? 그보다 너는? 아직 개강하려면 멀었잖아. 혹시…… 공무원 시험 다시 준비하려고?”
한수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래야죠.”
“학교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겠어?”
한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휴학할 형편이 못 돼요. 사실 엄마는 학점관리 잘한 다음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길 원하시거든요. 그래도 한때 해봤던 거니까 다시 도전해 보게요.”
“그렇구나.”
한수는 부러운 눈빛으로 민서를 쳐다봤다.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9급 공무원. 민서가 그 공무원이 됐다고 하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민서야.”
한수가 어색하게 서 있을 때 뒤에서 민서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고개를 돌려보니 훤칠한 사내가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본 민서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성환 오빠!”
“내가 늦은 거 아니지? 오래 기다렸어?”
“아뇨. 아끼던 후배를 만나서 대화하고 있었죠. 아, 인사해요. 형설관에서 알고 지내던 제 후배 강한수. 이쪽은 내 남자친구 최성환이야.”
“처음 뵙겠습니다. 강한수라고 합니다.”
“우리 민서 후배님이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최성환입니다. 제가 올 때까지 우리 민서 심심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시간이 되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영화 시간이 다 돼서요.”
“벌써? 한수야, 미안한데 나중에 또 이야기하자. 내 폰번호는 그대로니까 꼭 문자해. 밥 사줄게.”
순식간에 떠나버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수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는 애꿎은 땅바닥만 신발로 툭툭 치며 화풀이를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전화가 왔다. 휴대폰 액정을 확인해 보니 엄마였다.
“학교 도착했대두요. 있다가 연락드릴게요.”
[그거 말고. 너 내일 늦지 말고 와야 하는 거 알지?]
“내일요? 왜요?”
[내일 할아버지 창고 정리하기로 했잖아. 늦지 말고 오전 여덟 시까지 미리 가 있어. 쓸데없이 약속 잡지 말고 형설관 갔다가 바로 돌아와.]
창고 정리란 말에 한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냥 저 안 가면 안 돼요? 오늘 약속 있는데…….”
[안 오면 용돈 없다. 그래도 괜찮으면 오지 말고.]
“알았어요. 갈게요. 간다고요!”
한수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휴대폰을 끊었다.
그것도 잠시 한수는 민서를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그렇게 바라던 9급 공무원에 민서가 됐다고 하니 자신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공무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군대도 갔다 온 만큼 정신 차리고 제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꼭 졸업하기 전에 합격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형설관에 들어가야만 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곳인 만큼 지원을 잘해 주는 데다가 숙식도 제공하다 보니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기엔 제격이었다.
그러나 막상 군대 가기 전 함께 방을 썼던 00학번, 04학번 선배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했다.
그 형들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까? 아니면 아직도 형설관에 남아있을까?
그들이 아직도 형설관에 남아있다면?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청년들로 하여금 공무원 시험만 보게 만드는 이 세상이 너무나도 갑갑했다.
* * *
한수는 오랜만에 찾은 형설관 총무 사무실을 낯선 얼굴로 돌아봤다.
예전에만 해도 담배 연기가 자욱한 너구리굴을 보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잘 치워진 진짜 사무실 느낌이 확 나고 있었다.
뿔테 안경을 쓴 형설관 총무가 한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재작년에 여기 계셨다고요?”
“예. 군대 갔다 오느라 관뒀는데요. 혹시 계속 다시 다닐 수 있나 알아보고 싶어서요.”
“잠시만 기다려주실래요? 확인 좀 해볼게요.”
“예. 그런데 새로 오셨나 봐요. 이전에 계시던 총무님은…….”
처음 보는 낯선 총무가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성욱 선배 말하시는 건가요? 그 형은 작년에 관두고 중문 옆에 미라클PC방 차렸어요. 거기로 가보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아하,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성욱은 한수가 형설관에 있을 때 총무였던 고학번 선배로 축구는 오질나게 못하는데 매번 원톱 자리만 섰던 형이었다.
그 형도 형설관 총무 노릇을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는데 PC방을 차린 걸 보면 공무원 시험은 포기한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컴퓨터로 학적부를 뒤적이던 총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네요. 신입생 때 들어오셨고 군대 때문에 관두신 거 맞네요. 공무원 시험 다시 준비하려고요?”
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대한 만큼 열심히 준비하려고요. 왜요?”
“음, 작년에 원장님이 새로 부임하면서 입관조건이 많이 까다로워졌어요. 입실시험을 봐야 하고 토익 성적표도 최근 6개월에 본 걸로 새로 제출하셔야 해요.”
“예? 입실시험에 토, 토익 성적표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한수가 인상을 구겼다.
‘토익을 본 적이 있긴 있었는데…… 재작년이었나?’
군대 가기 전 토익을 한 번 본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성적은 처참했다.
“네, 입실시험은 닷새 뒤 있고요. 토익은 최소 650점을 넘기셔야 해요. 잠깐만요. 토익 보신 적이 있으시네요? 그런데 성적이…… 공부 제대로 안 하셨나 봐요?”
모니터를 보던 총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신입생 때는 다 놀다 보니까……. 아, 어쨌든 잘할 자신 있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재작년하고 지금은 많이 달라요. 학교에서 지원이 늘어난 만큼 매년 꾸준히 합격생이 나오길 바라거든요. 오히려 애꿎은 시간 낭비하느니 학점관리 잘해서 취업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입실시험은 닷새 뒤 치른다고요?”
“예. 접수해 드릴까요? 토익 성적표는 개강하기 전까지 제출해 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한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시작부터 암초에 걸리게 생겼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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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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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발행일 :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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