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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1화 과거로 돌아가다
매년 초가 되면 스위스의 취리히에서는 성대한 무대가 열린다.
축구 팬들이라면 누구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무대.
그 해 최고의 축구 선수를 뽑는 피파 발롱도르 시상식 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성대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시상식 무대. 그 무대에 오를 선수는 단 한 명뿐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무대에 오를 후보 세 명을 잡아 주고 있었다.
2015 FIFA BALLON D’OR 최종 후보 3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중 두 명은 축구팬들 모두 익히 아는 선수들이었다. 한 명은 피파 발롱도르 4연패를 달성한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고 다른 한 명은 작년에 그런 리오넬 메시를 따돌리고 피파 발롱도르를 수상한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그러나 남은 한 명은 아직은 축구팬들에게 생소한 선수였다.
그렇지만 그가 14-15시즌에 세운 전무후무한 기록을 생각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가 이 자리에 있는 걸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그리고 트레블의 일등공신이 바로 그였으니까.
브라질의 축구 영웅이자 전설적인 선수 펠레가 무대에 서서 아래 앉아 있는 세 명의 축구 선수를 바라봤다.
그야말로 하나같이 이 시대를 호령하고 있는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다. 누가 피파 발롱도르를 타든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펠레가 무대 위에서 하얀색 큐 카드를 천천히 펼쳐 보이며 소리쳤다.
“태풍, 강!”
큐 카드에 적혀 있는 건 ‘Tae-pung, Kang’이었다.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강태풍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올라간 강태풍은 펠레와 포옹을 나눈 다음 시상식 앞에 섰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국인 최초로, 그리고 동양인 최초로 피파 발롱도르 후보 23인에 올랐고 이번에 피파 발롱도르까지 수상하게 됐다.
멀리 고국에서 텔레비전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가족 모습이 새삼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우선 영예로운 이 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첼시와 국가대표팀 동료 선수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상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강태풍은 북받쳐 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저 말을 이었다.
“상을 받은 순간 정말 기뻤고 제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도 이 활약을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피파 발롱도르를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시상식이 끝나고도 한동안 강태풍은 취리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사치레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강태풍은 소속팀 감독인 조세 무리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역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감독님. 감독님 덕분입니다.”
“태풍, 자네와 계약을 맺었을 때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나? 앞으로 이 년 안에 자네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 보이겠다고. 물론 일 년 만에 그렇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게 다 감독님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구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고 영입해 주셨으니까요.”
“그렇게 내 얼굴에 금칠을 하지 말게나. 어쨌든 마저 파티를 즐기게. 저기 자네하고 대화하길 열망하는 많은 아가씨들이 보이는군. 하하, 유부남인 나는 이쯤에서 빠지도록 하지.”
강태풍이 얼굴을 붉혔다.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은 저마다 여자 친구 혹은 아내하고 함께 이곳에 와 있었다. 자신만 여자 친구가 없었다. 매일 축구에만 파묻혀 살다 보니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 보니 같은 구단의 몇몇 축구 선수들은 자신에게 괜찮은 여자를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정도였다.
어쨌든 파티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 파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강태풍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서 새삼 자신이 피파 발롱도르 수상자가 맞는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마무리 파티가 끝나고 강태풍은 구단 선수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타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도 수많은 취재진들이 나와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오로지 강태풍에게 집중됐다. 이번 시즌 트레블을 달성하며 첼시 선수들 중 7명이 피파가 뽑은 월드 베스트 11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이었던 건 강태풍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마중을 나와 있던 팬들 몇몇에게 사인을 하고 취재진들과도 인터뷰를 나눈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우. 피곤했다.”
집으로 돌아온 강태풍은 진열장에 넣어 둔 발롱도르 트로피를 쳐다봤다. 트로피를 볼수록 욕심이 더 났다. 앞으로 갈 길이 멀었다.
리오넬 메시가 만든 피파 발롱도르 4연패.
자신은 그 위를 노릴 생각이었다.
프리미어 리그 경기는 5일 뒤 토요일에 있을 예정이었다. 상대팀은 스완지 시티로 원정 경기였다.
스완지 시티 하면 생각나는 건 같은 국가대표 선수 김혁민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코리안 더비라고 시끌벅적해져 있었다.
아침 일찍 트레이닝을 갔다 온 강태풍은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그는 컴퓨터로 게임 하나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종종 즐겨하는 게임으로 풋볼매니저라는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실제 이혼 사유로 인정되었을 만큼 중독성 높은 게임이기도 했다.
강태풍도 잠깐 시간이 날 때면 풋볼매니저를 하곤 했는데 지금 그가 맡고 있는 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이제 2년 뒤 2018년에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열리게 될 텐데 그때 꼭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었다.
병역 면제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스무 살 때 일찍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이었다.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은 것은 개인적인 야망 때문이었다. 펠레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그런 야망.
그렇게 생각해 보면 군 입대가 조금 아쉬워지는 게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하지만 지금 실력에 대한민국 스쿼드라면 굳이 군 입대를 하지 않았어도 월드컵이나 아시안 게임 우승을 통해 병역 면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만약 군 입대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로 해외 구단에 입단해서 그때부터 계속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첼시에 입단하는 것도 2년 가량 더 빨라졌을 테고 어쩌면 2014 피파 발롱도르도 차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또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출전할 수 있었을 테고 더불어 조별 예선 탈락이 아닌 그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물론 역사에는 가정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예측이긴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풋볼매니저에 시선이 갔다.
이번에 새로 나온 최신작 풋볼매니저는 과거 시즌부터 차례대로 경험할 수 있게 구현해 두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자신이 스무 살이었던 2010년부터 시즌을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게임에서라도 옛날부터 뛰어 볼까?”
강태풍은 새롭게 시즌을 시작하면서 시간을 2010년으로 맞췄다. 그렇지만 그 당시 그는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아예 선수가 생성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데이터를 참고해서 새로 만들어야겠네.”
내장 에디터를 불러온 다음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입력하기 시작했다.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포지션도 정하고 언어도 건드리고 능력치도 부여해 줬다. 주 포지션은 당연히 스트라이커였지만 골키퍼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도 전부 다 숙련도를 최대로 올렸다.
구사 가능한 언어로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능력치는 현재의 자신의 스탯에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더 올려 줬다.
첫 시즌부터 발롱도르를 타고 말겠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자신이 더 업그레이드되면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사기라고 하겠지만 어차피 게임이니 상관없었다.
“이 정도면 됐나?”
강태풍은 더 이상 건드릴 게 없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둘러보다가 스트라이커로서 마음에 안 드는 스탯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골 결정력 19.
이제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과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섭렵했고 피파 발롱도르를 탔으니 20으로 상향될 게 당연했지만 아직 풋볼매니저에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 로스터 때나 패치되어 20으로 올라갈 터였다.
“어차피 올라갈 거…….”
어차피 다른 스탯도 조금씩 올렸겠다, 다음 로스터 때 올라갈 스탯이기도 하니 미리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강태풍이 19로 되어 있는 골 결정력을 수정하기 위해 9 뒤에 커서를 두고 딜리트 키를 눌렀을 때였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기 시작하더니 정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컴퓨터도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아, 뭐야. 기껏 힘들게 수정해 놓은 능력치가 다 날아갔잖아?”
강태풍이 혀를 찼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짜 맞춘 능력치인데 모두 다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과전력으로 집 전체의 전력이 차단된 건지 아니면 컴퓨터가 쇼트 먹은 건지 켜지지가 않았다. 괜히 시간 낭비만 한 셈이었다.
“하아…… 오늘 하긴 글렀군.”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 무렵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오후 트레이닝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바깥을 내다보니 날벼락이 치던 하늘은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운동이나 하고 오자.”
강태풍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꺼져 있던 컴퓨터 전원에 저절로 불이 들어오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팅되기 시작했다.
운동을 갔다가 집에 돌아온 강태풍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몸이 무척 가벼웠다. 얼마 전 경기를 뛰다가 상대방의 태클 때문에 욱신거렸던 발목 통증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컨디션이 갑자기 좋아졌네? 뭐, 나쁠 건 없지.”
강태풍은 그렇게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강태풍은 잠시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뭐야.”
말이 안 나왔다. 눈을 떠 보니 푹신푹신한 침대 대신 투박한 침상이 느껴졌다. 그리고 군대 시절 항상 자신을 갈구던 재수 없는 선임 녀석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야, 강 일병.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와라.”
꿈에서라도 듣기 싫은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강태풍은 다급히 눈을 비볐다. 그럼에도 상황은 바뀌질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야?’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호화스럽던 자신의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볼품없는 관물대였다.
그리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건 매일 자신을 갈구던 고릴라를 닮은 선임 녀석이었다.
퍽.
강태풍이 계속 멍 때린 채 앉아 있자 재수 없는 선임 녀석이 뒤통수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이 새끼야! 오늘 사단 대회 있는 거 까먹었냐? 빨리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오지 못해? 너 연병장에서 굴러 볼래?”
“네?”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래도 헛꿈을 꾸는 모양이었다. 가끔 군대 생활을 꿈으로 꾸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볼을 세게 꼬집어서 느껴지는 통증은 진짜였다.
“으윽. 왜 이리 아파? 이거 설마 진짜야?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꿈이 아니라 생시라면 왜 하필 군대 시절로 돌아왔단 말인가?
허탈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 짬내 나는 군복을 벗어던지고 탈영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반투명한 창이 하나 보였다.
풋볼매니저가 제공하는 20살 강태풍의 능력치 데이터. 날벼락으로 컴퓨터가 꺼지기 직전까지 입력했던 그 스탯들이었다.
[기술]
개인기 20
골 결정력 1
드리블 20
볼 트래핑 20
일대일 마크 5
장거리 스로인 11
중거리 슛 17
코너킥 10
크로스 16
태클 5
패스 16
페널티 킥 16
프리킥 17
헤딩 19
[정신]
공격 위치 선정 19
대담성 16
리더십 14
수비 위치 선정 7
승부욕 18
예측력 15
적극성 15
집중력 9
창조성 17
천재성 20
[신체]
균형 감각 18
몸싸움 19
민첩성 16
순간 속도 17
점프력 18
주력 19
지구력 17
타고난 체력 17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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