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협객전 001화

마도협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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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협객전

 

지은이 : 주비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1-04-01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2동 163-2 서경빌딩 3층

전화번호 : 032-656-4452 

 

이 책은 도서출판 청어람이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전자책으로 발행된 것이므로 불법복제 및 유포, 공유를 금합니다.

마도협객전

 

 

금유협 기행수불궤어정의 연기언필신 기행필과

今游俠 其行雖不軌於正義 然其言必信 其行必果 

이락필성 불애기구 부사지액곤 기이존망사생의

已諾必誠 不愛其軀 赴士之阨困 旣已存亡死生矣

 

작금의 협객은 비록 행동이 법도에 맞지는 않으나, 그들은 반드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켰고, 행동은 과감하며, 약속한 바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보면 자신의 생사를 넘어선다.

 

유협열전서(游俠列傳序)- 사마천 사기(史記)

 

* * *

 

진마(眞魔) 육영마군(六影魔君)에 대한 보고서

일(一)

 

달리 흡정마군(吸精魔君)이라고도 불리는 무진이라는 자는 남경이 있는 강소성의 구산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보입니다. 유년기를 보낸 정무관이라는 곳이 지금은 문을 닫았기에 더 이상 추적할 방법은 없으나, 동네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할 때 무진이라는 자가 무림으로 나가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년기는 평범한 촌민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무림 출세의 계기가 된 것은 천순(天順) 7년에 있었던 정무관 혈사에서 만난 정천맹의 정의검과…….

 

……(중략)…….

 

마군지병(魔君之兵) 육마겸(六魔鎌)을 소유.

구룡성(九龍城) 오신마(五神魔) 중 살마(殺魔)의 후예.

나살층층공(羅殺層層功)과 진마흡정공(眞魔吸精功)을 수련.

이 모든 점을 종합해 볼 때 그를 특급 위험인물로 꼽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가 정천맹(正天盟)의 추마대에서 활약한 전례가 있다는 점과 이제껏 싸워온 상대가 마기가 폭주한 마인(魔人), 혹은 혈교의 무인들로 국한되는 점으로 볼 때 섣불리 평가를 내리는 것은 어렵다고 사료됩니다. 중요 인물인 만큼 조금 더 관찰을 해서…….

 

이원무림전집(二元武林全集)

마도편(魔道編)中

 

* * *

 

강소성(江蘇省). 회음현(淮陰縣)의 구산(龜山) 근처.

 

“우욱.”

모든 것은 한 아이가 식사 중에 헛구역질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체구가 작고 몸이 마른 아이였다. 아삼(兒三)이라 불리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허리를 구부린 채 전날 먹은 음식까지 다 토해낼 것처럼 심하게 구역질을 했음에도 주변의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음식이 맛없다는 것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아삼이라는 아이는 원래부터 식성이 좋지 못했다.

오늘 정무관(正武官)의 점심 식사로 나온 것은 딱딱한 겨가 반 정도 섞여 있는 누런 밥 한 덩어리와 이상야릇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국물이 전부. 입관한 지 오 년이 넘은 관원들도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감히 손을 못 대고 있을 정도였으니, 원래부터 허약했던 아삼은 그 반응이 어떻겠는가?

관원들은 질린 얼굴로 그들의 앞에 놓인 음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체 이 녹색 국물의 원재료는 뭐란 말인가? 또 시큼한 냄새와 함께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저 물컹물컹한 것은 또 뭐고.

아삼의 근처에 있던 소년들은 젓가락으로 국을 이리저리 휘젓다가 이내 슬그머니 국그릇을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건 무리다.

우스갯소리로 정무관(正武官)의 점심 식사는 거지도 안 얻어먹는다는 말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정말로 거지도 이 밥은 안 먹을 것 같았다.

“우웨엑-!”

결국 빵빵하게 볼을 부풀리고 있던 아삼이 결국 참지 못하고 국그릇에 뭔가를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옆에 있던 소년 관원들이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험악한 얼굴로 그들의 팔에 튄 찝찝한 액체를 털어냈다.

“야! 적당히 안 해? 밥맛 떨어지게!”

“하루 이틀이냐? 적응을 하란 말이야!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안 먹고 있다가 나중에 뒷산에서 머루라도 따 먹으면 되지!”

“에잇, 입맛 배렸네.”

“멍청한 아삼!”

우우-!

소년들은 일제히 야유를 했다. 맛없는 밥에 대한 원망은 모조리 아삼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젓가락을 집어던지며 멍청한 아삼이라고 노래까지 만들어 합창을 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우욱!”

억울한 표정으로 뭔가를 항의하려던 아삼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배를 잡고 어깨를 움찔움찔 떨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 하지만 이미 놀리는 데 흥이 돋은 소년들의 눈엔 그저 허약한 아삼이 엄살을 떠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소년들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허약한∼아삼∼! 멍청한∼ 아삼∼!”

소년들의 야유가 커질수록 아삼의 떨림도 점점 심해졌다.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는 소년들과 입에서 침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아삼. 잠시 후, 어깨를 들썩이던 아삼이 갑자기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식탁 위로 쓰러졌다.

우당탕-!

식탁이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 위에 있던 식기들이 쓰레기처럼 바닥을 굴렀다. 노랫소리가 멎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소년들이 멍한 얼굴로 굳어져 버렸다.

“뭐, 뭐야? 아삼! 야, 아삼!”

도마 위의 생선처럼 몸을 펄떡대던 아삼이 시뻘건 덩어리를 입에서 울컥 토해낸다. 소년들은 점차 겁에 질렸다. 아삼의 토끼처럼 자그마한 몸이 한겨울 냉수를 뒤집어쓴 것처럼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삼이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등이 활처럼 휜다. 눈, 코, 입의 구멍이란 구멍이 모두 찢어질 듯 벌어지며 기묘한 모습이 되었다.

“꺼… 꺼어…….”

“어이, 아, 아삼?”

소년들은 조심스레 아삼에게 다가왔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자세히 보니 아삼이 토해낸 핏덩이에서 뭔가가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버, 벌레가 있어!”

정무관의 관도로서 나름대로 스스로 용맹하다고 생각하는 소년들이었지만, 그래 봤자 십대 초반의 어린아이들. 이런 괴이하기 짝이 없는 기사(奇事)에 태연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보기만 해도 끔찍한 ‘그것’을 하염없이 응시했다.

“회, 회충 아냐? 우리 아버지 말이, 가끔 뱃속에서 나온 회충이 삼 척이나 될 때도 있다고…….”

“멍청아! 우리가 회충도 모를 것 같냐?”

“그, 그럼?”

“세상에 주먹만 한 회충이 어딨어? 저건 말이지… 저건…….”

소년 관도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석우(石牛)가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지만 시뻘건 애벌레를 보니 선뜻 답이 나오질 않았다. 시골생활 십여 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다. 석우가 더듬거리며 입만 벙긋거리는 사이, 바들바들 떨던 아삼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삼의 눈, 코,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소년들은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꾸구구-

핏덩이 속에서 꿈틀거리던 애벌레는 점점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마치 뱀 앞에서 스스로의 몸을 부풀리는 두꺼비처럼. 주먹만 했던 것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펑!

“으아아악-!”

괜히 가까이 갔다가 벌레의 살점과 끈적끈적한 체액, 거기다가 아삼의 핏덩이까지 뒤집어쓴 석우가 기겁하며 몸을 뒤틀었다. 석우만큼 많이는 아니지만, 그 핏방울은 주변의 소년들 모두에게 튀었다.

살갗에 닿는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느낌.

십대의 소년들 중에 그런 상황에 제자리에 서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으아아악-!”

소년들은 정무관도로서의 체면 따윈 집어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정무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소식을 전해 들은 정무관의 사범들이 다급하게 달려왔지만, 아삼은 이미 차가운 시체로 변해 버린 뒤였다.

강소성 회음현에 정무관이 세워진 지 팔 년.

역사상 최초로 관내에서 시체가 나온 것이다.

사범들은 쉬쉬하며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 했으나, 구산의 근처 같은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그런 큰 사건이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불과 한 시진도 되지 않아 그 기괴한 사건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정무관의 관문을 넘어 근처 마을에까지 퍼져 나갔다.

토지신의 저주가 내렸느니 요괴가 출몰했느니 해괴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 어느 것도 증명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삼이 죽은 지 이틀 뒤, 괜히 아삼의 곁에 다가갔다가 피를 뒤집어썼던 석우는 그동안 방 안에서 끙끙 앓다가 아삼과 똑같은 모습으로 끈적끈적한 핏덩이를 토해내고 오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비극은 반복되었다.

핏덩이 안에서 기어 나온 벌레는 이내 주먹만 한 크기로 부풀어 올라 터져 버렸고, 졸지에 석우의 곁을 지키던 부모님과 동생들이 그 피를 뒤집어썼음은 물론이다.

아삼과 똑같은 증상. 그리고 똑같은 죽음.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도협객전

제1장 구산의 나무꾼 (1)

 

 

이틀 뒤, 죽은 석우의 곁에 있었던 동생 중 한 명이 또 한 번 벌레를 토해내고 죽었다.

이제 마을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자. 인원이 삼백 호(戶)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벌써 세 사람이다. 다음 차례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냈고, 누가 코피만 흘려도 나병환자를 대하듯이 멀리 내쫓아 버렸다. 근처의 도관과 절에는 매일같이 무사 안전을 기원하는 참배객들로 넘쳐났다.

흉신악살에 대한 소문은 본래 나라님에 대한 소문보다도 빠른 법. 정무관의 소문을 전해 들은 강소성의 성주는 역병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 성에서 가장 뛰어난 의원, 곽가를 보내 진상을 살피게 했다.

곽가는 차분하고 명석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무관에 도착해 하루 동안 아삼과 석우, 그리고 세 번째 소년의 시체까지 모두 꼼꼼히 살펴본 뒤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역병이 아닙니다.”

정무관의 관주 이무혁(李貿奕)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애매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역병이 아닌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이 기괴한 일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글쎄요.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이것과 비슷한 증상을 들은 적은 있습니다.”

“비슷한 증상이요?”

이무혁은 다급하게 되물었다. 곽 의원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는 것이 심상치 않게 느껴진 탓이다.

“혹시 무림에서 원한을 얻으신 적이 있습니까?”

“…무림 말입니까?”

“예. 도산검림(刀山劍林) 풍운지협(風雲之俠)의 그 무림 말입니다.”

이무혁의 얼굴은 난감하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무관. 즉, 무(武)를 닦고 몸을 단련하는 곳이니 무림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하나, 그래 봤자 성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변두리의 무관일 뿐이었다.

정무관이라는 밋밋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저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동네 소년들이 손발 놀리는 법을 배우는 동네 도장일 뿐.

정무관 출신 중에 가장 잘된 것이 고작 강소성 성주의 병사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보시다시피… 이곳은 시골의 작은 무관일 뿐입니다.”

“예, 그렇군요.”

“…대답이 되지 않았습니까?”

“관주, 본인은 어떻습니까? 무림에서의 원한이 없으십니까?”

곽 의원의 지적은 제법 날카로웠다. 무림에서의 원한이란 것이 꼭 정무관 전체를 향할 필요는 없는 일. 관주 본인에게만 향하는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으음…….”

하지만 이무혁은 그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했다.

“저는 잘해 봐야 이류에 불과한 무인입니다. 사람을 죽여본 일도 없으니 무림에서의 원한이 있을 리 없습니다.”

정무관 관주 이무혁은 소림의 속가제자에게 배운 육합신권(六合神拳) 하나가 전부인 사람이었다.

말이 육합신권이지 저잣거리에 널린 육합권에 불가(佛家)의 토납법을 합한 것에 불과하다. 열심히 수련한 덕에 이류에 오르긴 했으나, 타고난 성정이 순박한데 어디 그걸 써볼 일이나 있었겠는가?

자그마한 비무대회에 몇 번 나가본 뒤 고향에 다시 돌아와 버렸으니, 그나마도 차마 무림에 출두했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경력일 뿐.

그런 그이니 원한이라는 말조차 사치였다.

“그렇다면 관내에 원한을 만들 만한 사람은 없습니까?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라던가, 최근에 뭔가가 변했다던가…….”

“없습니다. 이곳은 십 년 전과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사범들은 오 년째 그대로고, 소년 관도들은 모두가 삼 대째 이곳에 사는 토박이 아이들뿐입니다.”

“허어…….”

곽 의원은 집요하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무의미한 대답뿐이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답답한 신음을 내뱉었다.

“끄응, 독(毒)과 고(蠱)가 관련되었으니 무림의 당가나 독문(毒門), 또는 사도(邪道)의 술사들일 텐데…….”

곽 의원은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안타까운 얼굴로 이무혁을 쳐다봤다.

“이것은 병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고의 알을 소년들에게 퍼뜨린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