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직전의 세계를 달리는 만능헌터 1화
최강의 마나 소드 마스터
전쟁은 끝났다.
살아남은 자들이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있는 이 시간.
노을이 지는 적막한 호숫가에 젊은 남자가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하이데린 드라코.
아무도 없는 곳에 서 있었지만, 세상 모두가 그를 알고 있었다.
마법과 검술 모두 최고의 레벨에 도달한 판테하 최강의 마나 소드 마스터.
대륙 9개국의 모든 국왕으로부터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는 절대 영웅을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마스터 하이데린.
드래곤로드를 무찌르고, 침략의 통로인 게이트를 소멸시켜 몬스터들과의 전쟁을 끝낸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 하이데린의 마음은 무거웠다.
승리했다고 해도, 판테하는 거의 멸망 상태였다.
살아남은 자들은 있었으나, 그들의 살던 세계는 파괴되었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
피처럼 붉은 노을이 지는 서쪽 하늘을 보며 마스터 하이데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다른 세계로 가는 차원의 문을 열고 그 세계로 이동하는 것.
최고 레벨의 마나 소드 마스터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배후에서 전쟁을 계획하고 조종했던 자가 아직 살아있다.
테이하무드.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만들 수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
마스터 하이데린의 스승이 목숨을 던져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자, 테이하무드는 차원의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도피했다.
그놈이 살아있는 한, 이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놈을 찾아 죽이지 못하면, 판테하의 수많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된다.
“테이하무드. 너는 지금 새로운 세계에서 안심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네가 있는 세계를 향해, 내가 지금 찾아갈 테니까.
파아앗!
갑자기 호수의 표면 위로 빛의 기둥이 나타났다.
마스터는 망설임 없이 호수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촤악 촤악.
물살을 밟으며 마스터가 빛의 중심을 향해 물 위를 걸어 나갔다.
파아아앗!
갑자기 빛의 기둥이 커지며 강렬한 빛이 그를 감쌌다.
빛 속에 잠긴 마스터는 사방에서 조여 오는 거대한 압박을 느꼈다.
번쩍! 하얀빛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쿠아아아앙!
호수 위에서 거대한 물길의 회오리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시작인가?’
꾸룩.
그런데 갑자기 콧속으로 물이 들어왔다. 마스터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빨리 주문을!’
하지만 마법을 위해 입을 벌리는 순간.
파압. 입안으로 물이 밀려들어 왔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빠르게 위로 몸을 움직였다.
푸하!
이내 수면 위로 그의 몸이 솟구쳤다.
“응?”
그런데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
잔잔한 호수 대신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빠르게 주변을 돌아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 높이 치솟아 불빛을 뿜어내는 기괴한 사각형의 건물들.
세상의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이건…….’
그제야, 차원의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넘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촤아앗.
마스터는 망설이지 않고 강가를 향해 빠르게 헤엄쳐 갔다.
* * *
달빛이 비치는 강가.
돌바닥 위에서 마스터는 강을 보고 있었다.
뚝. 뚝.
몸에서 많은 물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성… 공… 한 건가?”
말을 마친 후에 마스터는 격동에 휩싸였다.
자기 입에서 나온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 생소한 소리였지만 바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스터는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데 여긴 어딜까?’
-한강.
갑자기 마치 머릿속에서 누군가 대답하듯 답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듣자 더 호기심이 생겼다.
‘한강이 뭔데?’
-서울을 관통하는 강.
서울은 또 뭐냐고 생각하자 바로 답이 찾아왔다.
-한국의 수도.
더불어 한국은 지구라는 커다란 세계의 일부인 것도 바로 알 수 있었다.
“크하하하하!”
마스터는 밤하늘을 향해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바로 원하는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니.
최고 레벨에 도달해 저 강력한 드래곤로드를 물리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 위를 걷고 하늘을 날며 불과 바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때도 이런 능력은 없었다.
이 세계로 오면서 또 한 번 레벨이 상승한 게 분명했다.
-젠느.
일명 최후의 레벨.
최고의 레벨을 넘어선 궁극의 경지를 부르는 명칭.
도착과 동시에 마스터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세계는 마법을 모른다는 것을.
‘그럼 이 세계에서 나는…….’
-신과 같은 존재!
마스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강력한 테이하무드도 쉽게 해치울 수 있다!’
문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매일 보던 양손이 낯설게 느껴졌다.
손만이 아니었다. 신체의 모든 감각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강가로 가서 엎드린 후 얼굴을 물에 비추었다.
“……!”
처음 보는 얼굴이 물속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자신도 모르게 또 이 세계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성호진.
이번에도 역시 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지금 이 얼굴을 가진 사람의 이름인 것 같았다.
‘일단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어떻게 된 일인지…….’
촤아아!
갑자기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영상들이 밀려들었다.
이번에도 젠느의 영역에 도달한 마나 소드 마스터의 능력이 답을 하는 모양이다.
“…….”
잠깐 영상을 보고 다시 스스로 질문해 보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성호진은 술을 마시고 밤중에 강가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끄러지며 물에 빠지고 말았다.
수영은 할 줄 몰랐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결국 그대로 익사하게 된 거지.’
하지만 저쪽 세계를 떠난 마스터의 영혼과 정신은 이 세계의 육체가 필요했다.
의식이 사라지고 생명이 끊기는 그 찰나의 순간, 육체가 완전히 죽기 전에 마스터의 영혼이 들어왔던 것이다.
‘육체까지 이 세계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나?’
안타까움과 함께 새로운 현실이 다가왔다.
판테하에서와 마찬가지로 테이하무드는 이곳에서도 정체를 위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단서를 찾으며 비밀스럽게 추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난 성호진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우선 이 인물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자, 다시 답변과 영상이 쏟아졌다.
촤아아!
“…….”
그런데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마스터는 탄식을 터뜨렸다.
“하이고!”
국가의 관리가 되는 시험을 준비하는 27살의 평범한 남자.
현재는 특별한 직업도 없이 여기저기 잠깐씩 일을 해서 먹고 살았다.
아르바이트.
아마 이 세계에서 그런 일을 부르는 명칭인가 보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의지도 약했고 끈기도 부족했다.
가볍게 한숨을 쉰 후에 마스터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성호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세계의 사람들은 위대한 판테하의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더불어 성호진이라는 이름은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게 될 것이다.
-마스터 성호진!
세계가, 역사가, 인류가 기억하게 될 이름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바로 성호진이다!”
맹세와 동시에 성호진이 한 손을 들었다.
위대한 마나 소드 마스터라고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법의 힘으로 외부의 압력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그래서 주변에 화염 계열 마법을 시전하기로 했다.
한 번도 마법을 경험한 적이 없던 세계에 최초로 판테하의 마법이 나타나는 순간.
“훗.”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혼자만 봐야 한다는 것이 아쉽군.’
호진은 짧고 강력하게 주문을 외웠다.
파아앙! 파아앙! 화르르!
……하고 요란한 불꽃 소리가 연속으로 울려 퍼져야 했다.
그런데 들리는 것은…….
구구구…….
비둘기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옆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날아다녀야 하는 녀석이 살이 너무 찐 모양이다. 걷는 게 더 편한 듯 아주 느긋했다.
“…….”
매일 숨 쉬는 것처럼 사용하던 마법이 처음으로 발동하지 않았다.
빠르게 자신의 몸속을 살펴봤지만,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바로 이해가 갔다. 성호진의 몸이라면 마력이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상관없어.’
몸 안에 있는 마력도 원래는 대기 중에 흩어져 있는 마력을 모아서 담는 것. 급할 때는 대기 중의 마력을 바로 사용할 수도 있다.
스윽.
호진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
하지만 손을 들어 올린 호진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 대기 중에 마력이 없어.’
그 말은, 이 세계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 잠깐만…….”
현실을 인식함과 동시에 더 분명하고 냉혹한 결론이 밀어닥쳤다.
“그,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면…….”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마법과 검술 모두 최고 레벨에 도달한 판테하 최강의 마나 소드 마스터. 대륙 9개국의 모든 국왕으로부터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은 유일한 영웅.
그 모든 것들은…….
그저 기억으로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금 테이하무드를 만난다고 해도 돌멩이를 던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이런!”
그제야 신의 마법이라고 잠시 여겼던 것의 정체도 깨닫게 되었다.
저절로 떠오르던 해답은 신의 능력도, 마법도 아니었다.
기억이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이 가지고 있던 기억.
그런 줄도 모르고 잠시나마 인간을 넘어선 존재를 꿈꿨던 거다.
“신은 개뿔!”
이 세계의 언어가 점점 더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어찌 되었든 이대로라면 최악의 상황이다. 신은 고사하고, 평범한 인생도 아닌 거다.
별다른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27살의 백수. 능력은 전혀 없었고 성격에도 문제가 많았다.
“푸헤헤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헤헤헤헤헤!”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서 웃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계속 웃을 수도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밤하늘을 향해 성호진이 울부짖었다.
한참을 그렇게 소리를 지른 후에 호진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
문득.
한 가지 묘한 생각이 호진을 사로잡았다.
이 세계는 모든 것이 다르지만 하늘만큼은 저쪽 세계와 똑같았다. 별들이 있었고, 달도 똑같이 하나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마력을 사용할 방법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지구라고 불리는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지구에도 게이트가 있다.
뭐?
다시 기억을 통해, 지구에도 외계의 몬스터들이 출현하는 게이트가 30여 년 전부터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
차원의 문을 열어 이동하고, 게이트를 만드는 것은 모두 테이하무드의 능력이다.
그가 지구로 왔다면 당연히 이곳에도 게이트가 생기기 시작했을 거다.
“잠깐, 그렇다면…….”
게이트의 출현과 함께 판테하 사람들의 마력은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되었고 마법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었다.
기억에 집중하자, 지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각성.
게이트의 출현과 함께 지구인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한 초능력 현상을 부르는 말.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에너지인 오러는 지구의 대기에 섞여 있는 블랭크 오러와 반응하며 만들어진다.
“……!”
순간, 대기의 힘을 이용할 방법이 떠올랐다.
“만약…….”
지구의 블랭크 오러를 내 몸 안에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바꿔 간다면?
마치 물을 정화하는 것처럼 지구의 에너지를 이 몸 안에서 마력으로 바꿔 간다면?
“……!”
마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력을 운용하는 방법은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좋았어!”
마력만 만들 수 있다면 마나 소드 마스터의 모든 능력을 다시 전부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다만…….’
문제는 30년 전에 이미 지구에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사실.
테이하무드가 도착한 시간으로부터 30년 후에 지구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놈을 쫓아오는 과정에서 시간 축이 어긋났군.”
호진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건너편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을 배경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까지.
평화롭고 일상적인 하루의 끝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어떤 시기가 오면.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의 진화 속도가 사람들의 각성과 레벨업 속도를 추월하게 된다.
그 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몬스터를 이길 수 없는 시점이 오게 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 세계의 멸망이 시작될 것이다.
판테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
호진은 다시 한번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 봤다.
마력을 회복할 방법을 찾았다고 해도 역시 문제는 3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
“테이하무드에게 그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판테하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 세계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문득, 이 새로운 기억 속에서 단서가 튀어나왔다.
-헌터.
특수한 능력을 인정받아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각성자들.
헌터가 된다면 게이트를 자유롭게 뒤지면서 테이하무드의 단서를 추적할 수 있다.
연속으로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헌터가 된다면…….’
게이트로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며 레벨업을 할 수 있다.
판테하에서의 경험과 지식이 있으니, 다른 헌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 몬스터의 폭발적 진화가 일어나기 전에 테이하무드를 찾아낼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제는 성호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마법과 검술 모두 최고 경지에 오른 판테하 최강의 마나 소드 마스터.
그가 지구에서 헌터가 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