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화
프롤로그
수많은 몬스터들의 피로 적셔진 길.
이 길은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신 잉크라의 신관, 무오라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선 검은 투구의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대, 대체 어떻게……!”
“어떻게 저 몬스터 군단을 혼자서 뚫고 왔냐고 묻고 싶은 거냐?”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쓴 사내의 투구가 무오라트의 정면을 향했다.
무오라트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마신의 권능을 받고 그 대행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인간의 기행에 치를 떨었다.
검은 투구로 얼굴을 가린 사내는 씨익 웃었다.
웃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사내가 말했다.
“약해 빠졌더군.”
약하니까 진 거다.
사내의 논리는 아주 간단했다.
스릉!
무오라트는 검을 빼 들었다.
언데드 드래곤의 뼈와 살점으로 만든 검, 데스브링어.
비정하고 차가운 칼날 아래에 수많은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사내는 오히려 무오라트의 모습에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사내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하고 낡은 레이피어 한 자루.
하지만 사내는 이 레이피어 하나로 무오라트가 자랑하던 몬스터 군단을 도륙내 버렸다.
무오라트는 검을 든 채 사내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데스브링어의 궤적에 따라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속칭 죽음의 불꽃.
이 불꽃에 닿은 모든 것들은 그 즉시 소멸된다.
그러나 사내는 아주 여유롭게 몸을 뒤로 빼면서 무오라트의 일격을 흘려버렸다.
계속해서 남자를 향해 데스브링어를 휘둘렀지만, 사내는 아주 간단한 동작들로 이 모든 공격들을 전부 회피했다.
무오라트는 레디너스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소드마스터다.
그런 그가 단 한 번도 공격을 적중시키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머리카락 한 올조차 스치지 못했다.
검사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더해서 사내의 태도는 무오라트의 수치심을 배가시켰다.
“마신의 신관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인가 싶었는데. 기대 이하로군.”
“네놈이 감히 나를 능멸하려고 하는 게냐!”
“능멸? 넌 그럴 가치도 없다.”
다시 한 번 무오라트의 공격이 이어지려고 하기 전.
사내의 레이피어가 무오라트의 심장을 꿰뚫었다.
언제 공격을 당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른 일격.
하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간 없다. 끝내자.”
레이피어를 위로 추켜올리자, 무오라트의 가슴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털썩!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무오라트.
사내는 갈라진 가슴 틈 사이로 사기(邪氣)에 중독되어 버린 나머지 검게 물든 무오라트의 심장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것을 발로 짓밟아 버렸다.
콰직!
사방으로 흩어지는 심장의 잔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무오라트의 최후는 허무했다.
* * *
무오라트를 쓰러뜨리고 왕궁으로 복귀한 검은 투구의 사내.
수십 번도 넘게 레디너스 대륙을 구한 영웅, 로드리 번스타인은 왕궁에서 마련한 성대한 환영 행사 의식에 반 강제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왕이 그에게 하사한 각종 금은보화도 로드리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수십 번도 넘게 레디너스 대륙을 구한 검은 투구의 영웅은 델론트 왕가의 성대한 승전 연회에 참석해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로드리는 검은 투구를 벗지 않았다.
왕은 그에게 각종 보화와 포상을 내렸지만, 로드리의 목소리는 무덤덤하기만 했다.
보은 하사가 있고 난 후 연회장
로드리의 절친인 디안이 취기에 잔뜩 취한 모습으로 물었다.
“너는 술을 마실 때에도 그놈의 투구는 왜 계속 쓰고 있냐? 안 불편해?”
“알잖나.”
의미심장한 로드리의 말을 듣자마자 디안은 몸서리를 쳤다.
“……생각하니 술이 다 깨는구만. 어으, 난 몰라.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은 디안은 이내 자신이 들고 있던 두 잔의 술잔을 연거푸 들이마셨다.
로드리는 연회의 주인공임에도 연회장 구석에서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화려한 옷을 입은 귀부인들조차 그에게 관심은 보이지만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로드리는 자리에서 일어서 걸음을 옮겼다.
“가야겠군.”
“아니, 벌써? 이제 막 흥이 올라오려는 참인데, 주인공이 빠지면 섭하지!”
“그딴 건 관심없어.”
지금 로드리의 관심을 끄는 건 오로지 단 하나뿐이었다.
‘드디어 얻었어.’
일생일대의 소원.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주는 존재.
로드리는 이것을 위해 영웅으로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로드리.
집사와 하녀들이 다급하게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로드리 님.”
“헬론드.”
오랫동안 그를 보필한 노집사, 헬론드가 로드리의 부름에 답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방에 아무도 접근시키지 말도록 해라. 알겠나.”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헬론드는 로드리의 명령에 물음표를 달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집사들, 하녀들. 전부 다 로드리의 방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다.
이후, 로드리는 혼자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런 뒤, 오른손을 뻗었다.
오른손 끝에서 파지직! 하는 강렬한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느 검 한 자루가 소환되었다.
무오라트가 지니고 있던 마검, 데스브링어였다.
데스브링어를 구성하고 있는 건 죽은 드래곤의 뼈와 살점만이 아니다.
이 안에 또 다른 코어가 봉인되어 있었다.
대서고의 현자, 카포라로부터 얻은 정보에 의하면 대략 이러했다.
“여기에 분명 아슈타르 여신을 일시적으로 강림시킬 수 있는 성물이 봉인되어 있다고 하던데.”
신성력이 가득 담겨 있는 성물이 이 데스브링어 안에 봉인되어 있다고 들었다.
이것 때문에 로드리는 생전 관심도 없었던 무오라트라는 존재를 토벌하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무오라트를 쓰러뜨린 게 아니다.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로드리는 혈혈단신으로 몬스터 군단을 상대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데스브링어를 한 손으로 거꾸로 세운 로드리.
그는 오른 주먹으로 데스브링어의 검날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쩌저저정-
커다란 균열이 생기더니, 이내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데스브링어가 조각조각 흩어졌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성물, ‘달의 눈물’.
보라색의 작은 구슬이 로드리의 시선 높이에 둥둥 뜬 채 머물렀다.
로드리는 그것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힘을 주면서 달의 눈물을 파괴했다.
안에 있던 신성력이 폭발하듯 빠른 속도로 방 안을 채웠다.
그 빛이 너무 밝아 로드리는 잠깐 눈을 감아야만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건 또 뭐야.”
그의 눈앞에 황당한 광경이 펼쳐졌다.
작은 빛의 기둥이 천장을 뚫고서 로드리의 눈앞에 버젓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빛의 기둥이 서서히 걷히는 순간.
인간의 형상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드리는 본능적으로 이 존재가 ‘아슈타르 여신의 현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신의 현신은 천천히 눈을 뜨면서 로드리를 내려다봤다.
“…오랜만에 느끼는 인간계야. 지금 상황은 그대가……?”
“일단은. 그렇다고 치는 게 맞겠군.”
예로부터 레디너스 대륙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신을 강림하게 만든 자.
대가로 소원을 이루어주리라.
“700년 만이다. …참 많은 게 변했어.”
아슈타르가 말하는 동안 그녀의 눈은 희미한 빛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슈타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말든 로드리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건 오로지 자신의 소원에 관한 거다.
“신을 강림시키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들었소.”
그 말을 들은 순간,
아슈타르 여신이 갑자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서 무오라트를 쓰러뜨린 건가? 세계의 평화가 아니라 개인의 욕심 때문에?”
로드리는 일말의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그렇소.”
로드리를 이토록 절박하게 만든 이유.
아슈타르 여신은 그게 궁금해졌다.
“말해보도록.”
로드리를 평생 괴롭혀온 저주.
그는 천천히 검은 투구를 벗었다.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는 그의 얼굴.
그리고 로드리의 얼굴을 본 아슈타르는 강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혐오 섞인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건… 끔찍하군.”
이런 여신의 반응과 상관 없이 로드리는 한이 서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잘생겨지고 싶소!”
* * *
로드리의 일생일대의 소원은 바로 이것이었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미남이 되고 싶다.
아슈타르 여신은 로드리의 얼굴을 좀 더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 뒤, 그녀는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소원을 빌려고 하는지 알 거 같군.”
어렸을 적부터 로드리는 외모로 인해 갖은 불행을 겪어왔다.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로 오해를 받아 돌팔매질 당한 시절도 있었다.
또한 그 얼굴을 보고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결론은 하나.
압도적인 추함.
기억하기 싫은 외모 혹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추함.
그 탓에 단 한 번도 여자와 손조차 한 번 잡아보지 못했다.
청년 시절까진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남자는 외모가 다가 아니라고.
그래서 강한 힘과 재력 역시 손에 거머쥐어 봤지만.
로드리에게 호감을 표한 여인이 그의 얼굴을 처음 본 자리에서 구토하는 걸 본 이후 모든 걸 내려놓았다.
“다 필요없고 잘생긴 게 최고더군.”
이것이 로드리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였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들은 잘생긴 쪽에 더 많은 관심을 줬다.
그래서 로드리는 검은 투구로 얼굴을 가리게 되었다.
이것이 검은 투구를 쓴 영웅의 남모를 비밀이었다.
여신은 로드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마법사들은 찾아가 봤나? 그들이라면 외모 정도는 충분히 마법으로 고쳐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온갖 방법을 써도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마법이 들지 않는다 했소.”
인간을 초월한 이 저주받은 추남은 인간의 능력으론 해결될 수 없단 결론.
그래서 로드리가 택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름다움과 미, 예술을 관장하는 신의 힘을 빌리는 것.
아슈타르 여신은 피식 웃었다.
“나름 많은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줬지만, 잘생겨지고 싶다는 소원을 비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로드리에게는 한없이 진지한 문제였다.
이 못생긴 외모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으니까.
“좋다. 그 소원, 들어주도록 하지.”
여신은 로드리에게 가까이 와보라고 손짓했다.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순간.
여신의 표정이 변했다.
“그렇군. 그대가 바로…….”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말을 하다가 도중에 끊으니, 로드리는 영 신경이 쓰였다.
“무슨 뜻이오?”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부터 네 소원을 들어줄 테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각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했던 로드리였지만.
여신의 말은 이내 사실이 되었다.
“잘생겨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뭔지 알고 있나?”
그녀의 물음에 로드리는 부정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알았다면 이렇게 당신을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후후, 하긴. 그렇지.”
잘생겨지는 방법.
그것은 바로…….
“다시 태어나면 돼.”
그 말을 끝으로 로드리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어지럼증이 로드리를 찾아왔다.
시공간이 뒤틀리는 그런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점점 빛이 사그라지더니, 몸 전체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몰려왔다.
잘생겨지는 과정은 다들 이렇게 험난한 걸까.
누군가가 자신을 들더니,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드리는 반사적으로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냈다.
‘우웩……!’
영 좋지 않은 기분이다.
더군다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의지를 관철해 눈을 뜨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이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남작님께 전해드려! 건강한 사내 아드님이라고!”
“네, 알았어요!”
“고생하셨어요. 부인!”
“우리 아이, 우리 아이가 왜 안 울죠?”
로드리가 시선을 옮겨 산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인간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게 이런 거였나! …아들은 어머니를 닮는다고 했지. 드디어…….’
그제야 로드리는 자신이 여신이 소원을 들어주어 환생한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로드리와 달리 주변에는 아기가 울지 않아 난리가 났다.
이내 누군가가 로드리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어서 울라고.
그러나 로드리는 울지 않았다.
‘내가 이까짓 거에 울 남자도 아니고.’
이 정도는 여유였다.
오히려 코웃음마저 쳐줬다.
그러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 이상하네? 왜 울지 않고 웃는 거죠? 이, 이런 경우가 있나요?”
“저도 처음 겪어보는지라 잘…….”
그때.
한 남자가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내 아들! 어디 있나!”
“여기 있습니다, 남작님.”
로드리는 이 ‘남작’이라 불린 자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깨달았다.
이제 막 태어난 막내아들을 안아 올린 남작, 루카스 레이든.
“어디 보자, 우리 아들! 허허!”
루카스의 얼굴을 본 순간.
로드리는 눈을 의심했다.
‘뭐지, 이 오크는!’
하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남작님! 어때요? 남작님의 얼굴을 완전 쏙 빼닮은 아드님이에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응애!!!
로드리는 서러움을 울음으로 토해냈다.
‘아슈타르!!!!!!!!’
아무래도 여신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