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세계 8대 미궁 중 하나인 ‘서울 대미궁’.
이곳은 추정 층수만 해도 최소 100층 이상이며, 하루에도 국내외의 헌터 수백, 수천 명이 드나드는 거대한 미궁이다.
현 최상위 등급인 SS랭크의 헌터조차 70층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한 인외마경.
이 미궁의 산림 구역(14층~27층), 제18계층 외곽 깊은 숲속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D랭크 헌터 박광열을 공대장으로 세 명의 E랭크 헌터와 비각성자 캐리(짐꾼) 유준영으로 구성된 공격대였다.
보통 헌터들의 사냥 경로에서 꽤 떨어진 외곽 지역이었기에 이들이 머무는 숲속은 무척 고요했다.
“준영아, 적당히 하고 와서 쉬어라. 에너지바라도 하나 먹고 해.”
“맞아요, 준영 씨. 쉬엄쉬엄하세요. 몬스터 시체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네. 이거만 정리하고 갈게요.”
박광열과 공대원 이하나의 목소리에 유준영은 손질하던 [사일런트 울프]의 사체를 내려놓았다.
캐리를 그저 노예나 미끼로 보는 다른 여타의 헌터들과 달리 두 사람은 유준영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이들이었다.
박광열은 유준영 또래의 아들이 있다며 무척 살갑게 챙겨 주었으며, 이하나는 태생적으로 굉장히 선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미궁을 드나들면 각성할 수 있다는 출처도 모르는 미신 같은 소문 하나만 믿고, 벌써 10개월째 캐리로 일해온 유준영으로서는 처음 만나보는 마음씨 따뜻한 헌터들.
유준영은 한 달 전쯤 새롭게 합류한 이번 공격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우리도 그냥 좋은 아이템 가방 하나 사자니까요.”
“아이고. 우리가 잡은 몬스터가 다 들어갈 만한 아이템 가방이 얼마나 비싼 줄 알고? 그거 하나 구하는 것보다 시간 좀 들더라도 다 해체해 가는 게 낫지.”
“맞아요. 게다가 쉬는 시간도 틈틈이 있고, 이게 훨씬 낫죠.”
“쳇….”
유준영이 휴식을 위해 잠깐 뒷정리를 하는 사이, 공대원 중 하나인 김준수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괜스레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유준영을 노려보았는데, 그 시선에 유준영은 잽싸게 이하나의 곁으로 몸을 숨겼다.
김준수의 눈빛이 한층 더 험악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것보다 아까 그거는 어쩔 겁니까? 내다 팔 거예요?”
잠자코 한쪽에서 장비를 정비하던 또 다른 공대원 신재준이 대뜸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흘깃 유준영을 향하고, 덩달아 다른 이들의 시선도 유준영에게로 모여들었다.
신재준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들은 유준영이 허겁지겁 제 허리춤의 아이템 가방을 열었다.
그리 큰 용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쓸 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유준영은 곧 조심스러운 손길로 둥그런 알을 꺼내 들었다.
그의 상체보다 조금 더 작은 크기를 가진 커다란 알로, 겉껍질에 괴상한 무늬가 있는 녹색의 알이었다.
“어쩌긴 뭘 어째? 당연히 내다 팔아야지.”
“어떤 몬스터 알인지나 알고 내다 팔아요? 혹시 굉장한 녀석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쯧. 굉장한 녀석이 들어 있건, 뭐건 간에. 우리는 쓸 수가 없잖아. 우리 중에 테이밍 스킬 가진 녀석이라도 있어?”
“스킬이라면 나중에 스킬북으로 사면 되잖아요.”
불만스럽게 구시렁거리는 김준수의 모습에 박광열이 짧게 혀를 찼다.
그러고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김준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왜 그렇게 봐요!”
“한심해서 그런다. 한심해서!”
욱해서 소리치는 김준수를 따라 박광열 역시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아, 생각을 해봐라. 스킬북 하나에 가격이 얼만데! 더군다나 테이밍 스킬이면 또 얼마나 비싼데!”
“윽…!”
“게다가 굉장한 놈이 들어 있긴 뭐가 들어 있겠어. 이 근처 몬스터라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긴데! 끽해봐야 고블린 같은 거나 나오겠지!”
“…고블린은 알 안 낳거든요!”
“아니, 예시를 든 거잖아. 예시를!”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소리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유준영을 포함한 다른 공대원들이 쓰게 웃었다.
잠시간 상황을 지켜보던 이하나가 보다 못해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자, 두 분 다 진정하세요.”
“하나야, 이놈이!”
“하나 씨, 이 아저씨가!”
“뭐!? 아저씨!? 너 이 시끼! 지금 말 다했냐!?”
“아니! 아저씨 맞잖아요! 배도 툭 튀어나온 주제에! 우리만 한 아들도 있다면서!”
“아니, 이놈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팩폭도 범죄인 거 모르냐?!”
“모르거든요…! 악?! 무기 꺼내지 마요! 범죄는 지금 아저씨가 칼 뽑는 게 범죄지!”
말리는 이하나의 행동도 무시한 채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무기까지 꺼내 든 게 어찌 보면 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평소에도 연례행사처럼 투닥거리던 두 사람이었기에 말리던 이하나는 물론이고, 지켜보던 유준영이나 신재준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 씨. 그쯤하고 이리 오세요. 알아서 그만두시겠죠.”
“…네. 어쩔 수 없네요, 정말….”
-질리지도 않는지….
한숨처럼 중얼거리던 이하나가 막 유준영의 곁으로 몸을 돌리던 찰나였다.
불현듯 숲이 흔들렸다.
“억─?!”
“아, 아저씨?!”
비명처럼 내뱉는 김준수의 외침과 함께 유준영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숲속에서 튀어나온 길쭉한 무언가. 검은 비늘로 뒤덮인 샛노란 눈의 포식자.
커다란 뱀이 박광열의 머리통을 덥석 물어 삼키고 있었다.
“…베놈 바이퍼?!”
“못해도 C랭크의 몬스터가 왜 여기에…?!”
당황한 목소리가 고요하던 숲속을 울렸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모두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어둠 속의 습격자가 마저 행동을 개시했다.
뚜둑─
기분 나쁜 소리가 한차례 울리고, 머리 잃은 박광열의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쓰러진 그의 몸에서 시뻘건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꺄, 까아악! 아, 아저씨!”
“젠장! 도망쳐!”
패닉에 빠진 이하나와 제정신을 못 차리는 김준수를 대신해 신재준이 버럭 소리쳤다.
비명을 지르는 이하나의 팔을 붙잡고, 신재준이 곧장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김준수와 유준영이 급히 두 사람을 뒤따랐다.
-Shaaaa────!!!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숲속을 울렸다. 분노한 상위 몬스터의 울음에 저랭크의 몬스터들이 몸을 피했다.
“빨리 달려!”
“X발, X발, X바알…!”
“아저씨…! 아저씨이이…!!”
“헉…! 허억─!”
다리가 부서져라 달렸지만, 비각성자인 유준영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삼키며 유준영이 다급히 뒤편을 살폈다.
샛노란 한 쌍의 눈동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 같이 가요!”
흉포한 포식자의 눈빛을 마주한 유준영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도움을 바라는 다급한 시선이 앞서 달려가는 세 사람의 등을 향했다.
“…….”
선두에서 달리던 신재준이 흘깃 뒤편을 살폈다.
그 시선이 한차례 유준영을 향하더니, 곧 그 너머의 뱀을 향했다.
그의 눈가가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젠장… 금방 따라잡히겠는데….”
나지막이 중얼거린 신재준의 시선이 재차 유준영을 향했다.
그리 짧은 않은 고민 끝에 무언가를 결정한 신재준의 눈빛이 차게 가라앉았다.
그 차가운 눈빛에 무언가를 직감한 유준영이 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안 돼요! 제발…! 가, 같이 가주세요!”
악을 쓰며 소리치는 목소리에 김준수와 이하나의 시선도 그제야 유준영을 향했다.
가장 먼저 김준수가 살짝 입술을 깨물더니 곧 냉정히 등을 돌렸다.
달려나가는 그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아, 안 돼!”
그렇게 김준수가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자 유준영은 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간절한 시선이 이하나를 향했다.
“하, 하나 씨! 제발…!”
평소 상냥하고 친절하던 이하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유준영이 간절히 빌었다.
설마하니 그녀는 아닐 것이라 믿으며 유준영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그런 시선에 이하나가 꾹 입술을 깨물었다.
“…미, 미안해요.”
중얼거리듯 내뱉은 자그마한 목소리를 끝으로 이하나마저 몸을 돌렸다.
앞서 치고 나간 김준수를 따라 그녀 역시 빠른 속도로 멀어져간다.
그런 이하나의 뒷모습에 유준영의 눈앞이 새하얘졌다.
이로써 남은 것은 신재준뿐이다.
신재준은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유준영의 곁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그런 행동이 유준영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신재준이 무엇을 할 것인지 짐작하고 있던 까닭에 그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질려갔다.
“…재, 재준 씨! 자, 잠깐만요! 제발! 제발!”
“…….”
유준영이 간절히 소리쳤지만, 신재준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흘깃 뒤편을 바라보더니 곧 조용히 유준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미안하다.”
퍽─
짧은 타격음과 함께 유준영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나름 손에 사정을 둔 것인지, 헌터인 신재준의 공격에도 비각성자인 유준영에게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준영이 그것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Shaaaaaaaaa!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재차 숲속을 울린다.
한차례 바닥을 구른 유준영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신재준은 저만치 달려나간 이후였다.
“X발! X발…! 야 이 개자식드라아!”
저만치 멀어져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준영이 악에 받친 비명을 내질렀다.
곧장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디 부딪히기라도 한 것인지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유준영의 입에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개자식들…! 이 천하의 개쌍놈의 자식들…!”
유준영이 더듬거리며 제 아이템 가방을 뒤적였다.
그가 찾는 것은 미궁 사냥용으로 제작된 소총이었다.
고블린 따위의 저랭크 몬스터라면 비각성자인 유준영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게 해주는, 비각성자용의 무기다.
물론 못해도 C랭크 이상인 저 습격자에게 통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지만 말이다.
“X발! 어딨어?! 어딨는 거야?!”
아이템 가방 속에서 수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해체해놓은 몬스터의 부산물이나, 약초 따위의 채집물,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아껴놓았던 포션 같은 것 말이다.
평소라면 제가 찾던 것쯤이야 쉽사리 찾았을 유준영이었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에 전에 없을 정도로 손을 떨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뒤적이다 막 정체불명의 몬스터 알까지 꺼내었을 때쯤.
유준영은 마침내 그리도 찾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찾았…!”
-Shiii───
귓가로 낮은 울음소리가 울린다. 유준영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샛노란 눈동자. 가볍게 날름거리는 두 갈래의 혀. 제 덩치보다 커다란 머리통.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포식자를 다시 한번 맞닥뜨린 유준영은 저도 모르게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그렇게 간절히 찾았던 소총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Shiii….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샛노란 눈동자가 조용히 유준영을 훑었다.
그리고 근처에 널려 있던 잡동사니들을 잠시간 바라보더니, 이내 커다란 알에도 그 시선이 닿았다.
-Shiii───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스산하게 귓가를 스쳤다.
유준영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의 포식자가 왜 자신들을 쫓아왔는지 말이다.
“…X발, 네 알이냐?”
나지막이 중얼거린 목소리에 당연하게도 답은 없었다.
잠시간 유준영을 바라보던 뱀이 쩌억- 주둥이를 벌렸다.
180도 가까이 벌어진 입과 그 속의 칠흑 같은 어둠을 바라보며 유준영은 몸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제 앞으로 느릿하게 다가오는 뱀의 아가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욕지기를 내뱉었다.
“X발.”
덥석- 눈앞을 덮쳐오는 어둠을 끝으로 유준영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기에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 또한 들을 수 없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각성하셨습니다.】
【상태창을 통해 자신의 현재 능력치 및 스킬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닙니다.】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을 시, 곧 사망하게 됩니다.】
【위급 상황에 따라 스킬 <유체이탈SS>이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사용 불가능한 육체를 대신해 새로운 육체를 찾습니다.】
【기본 능력치가 매우 낮아 차지할 수 있는 알맞은 대상을 선별할 수 없습니다.】
【대상의 범위를 넓힙니다.】
【발견. 현 상태에서 가장 알맞은 육체를 확인했습니다.】
【대상. ‘일리걸 베놈 바이퍼의 알’】
【대상과 영혼을 조화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