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지 마라. 내 안에 고룡있다
― 사디스틱 ―
1화. 더러운 인생 (1)
바닥에 수많은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봐도 족히 200명은 넘을 것이다.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것이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팔다리가 꺾인 건 물론이고, 새까맣게 구워진 것도 있었다.
너무도 연약한 모습이다.
허나 그들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S급 헌터 무리였다.
다수의 거대규모의 길드들이 합쳐져 결성된 인류 최강의 연합.
단 하나의 존재를 죽이기 위해 결성된 S급 헌터들이 이렇게 널브러진 이유가 뭘까.
쿠광―
하늘이 갈라지고 지축이 뒤집혔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산맥이 두 동강 났다.
입김이 한 번 불어질 때마다 대지의 지형을 바꿔버렸다.
이러한 천재지변 앞에서는 인류 최강의 연합은 버러지에 불과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대단하구나, 인간이여. 나를 여기까지 몰아세우다니.”
드래곤이 말했다.
하도 많이 베여서 고통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애써 일어서려고 했다.
허나 그는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날갯짓 한 번에 성층권을 찢어버리는 걸어 다니는 재해.
기존의 드래곤들과는 다르게 머리가 5개나 달렸으며, 잘려도 계속 재생되는 존재였다.
히드라를 비롯한 여러 별명으로 불려왔으며 수천 년 묵은 최강의 고룡이었다.
“이걸로 끝이다! 드라칼! 우리 연합의 원수를 갚아주마!”
마지막 남은 헌터가 분노했다.
만약 여기서 자신마저 당한다면 시체가 되어버린 연합을 볼 면목이 없었다.
헌터의 전투 복장과 성검은 사투로 인해 피로 더럽혀 있었다.
고룡을 만신창이로 만든 것 또한 헌터의 활약.
도무지 젊은이의 행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흐하하하하하! 오래간만에 피가 끓는구나! 덤벼라!!”
“히야아아아압!”
한 번 더 고룡과 헌터의 충돌이 이어졌다.
조금 전과 같은 천재지변이 한 번 더 야기했다.
드라칼의 입은 화염을 뿜었고, 헌터의 성검은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서로 충돌하며 생긴 섬광이 앞을 가렸다.
그리고 섬광이 사라지자 승패가 결정 나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드라칼은 머리 5개가 모두 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마지막까지 서 있는 건 바로 헌터였다.
사실 헌터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힘없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죽어있던 인간들은 이 결과를 위해 희생했던 거다.
다만 헌터도 사력을 다한 탓에 숨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훌륭하구나… 이 몸을 쓰러트리다니…….”
목이 잘렸음에도 드라칼의 말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본체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를 이렇게 만든 인간은… 네가 처음이다…….”
고룡의 목소리를 들은 헌터는 다시 검을 들고 일어섰다.
“일어설 힘조차 나오는 것도 어려울 텐데.”
그럼에도 본체에게 다가가 검을 들이댔다.
헌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고룡이 물었다.
“헌데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날 없앤 다음 뭘 할 셈이지……?”
헌터는 아주 단호하게 받아쳤다.
“너희들을 싹 다 박멸하는 거야.”
자존심 강한 고룡이라면 발끈할 만한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물을 뿐이었다.
“그다음엔?”
“…….”
딱 부러지게 대답하던 헌터의 말문이 멈췄다.
드라칼은 그 속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증오에 눈이 멀었군… 그 썩어빠진 정신… 추악하기 짝이 없구나.”
상대의 심리를 파악했으나 드라칼은 아무것도 못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기서 자기가 왈가왈부해봐야 소용없었다.
헌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일까.
낮게 으르렁거린 헌터가 검을 들었다.
“닥치고 죽어.”
헌터의 검이 고룡의 심장을 뚫었다.
고룡의 신이라 불리던 드라칼은 그대로 최후를 맞이했다.
* * *
삐비비빅 삐비비빅―
알람 소리에 청년은 눈을 떴다.
월요일 아침인지라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잠결에 나타난 꿈 때문에 기분이 영 찜찜했다.
“지금 몇 시지?”
그는 눈을 비비며 팔에 장식된 브레이슬릿을 터치했다.
그러자 현재 시각과 동시에 자신의 신상 정보가 홀로그램 식으로 떴다.
[현재 시각 08 : 01]
― 이름 : 마세윤
― 나이 : 22세
― 소속 : 오신룡 길드
― 헌터 등급 : F급
― 마력 레벨 : 1 Lv
― 헌터 랭킹 : 374561위
― 마나의 특성 : 화염 방출
(신상 비공개 모드 ON)
그는 거울을 보며 잠결을 깨고자 세수를 했다.
이름은 마세윤.
신상 정보대로 20대 초반의 남성.
외모는 그럭저럭 평타 수준이고 어깨도 제법 넓은 편이다.
남들이 보면 운동을 본업으로 삼는 청년으로 생각할 정도다.
‘설마설마 헌터한테 뒤지는 꿈을 꾸게 될 줄이야.’
꿈속에서 유명인들이 많이 나왔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 최강의 헌터 조직인 피닉스 길드와 아포칼립스 길드.
그 외에 200명이 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터들이 떼거지로 나왔다.
게다가 대한민국 최강의 헌터인 ‘드래곤 슬레이어’까지 있었다.
하지만 꿈의 내용 자체는 생각보다 기묘했다.
마세윤 본인은 몬스터 역할이었고,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이야기.
‘뭐… 나 같은 F급에겐 별 의미 없는 꿈이겠지만.’
다행히 꿈이 현실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마세윤은 마력 레벨 1에 F급이라는 낙인이 존재했으니까.
이는 안 좋은 의미로 전 국민이 입을 떡 벌리는 수치와 등급이었다.
‘아윽…! 젠장!’
고통을 느낀 마세윤은 상의를 탈의했다.
상처로 가득한 몸통이 드러났다.
등짝에는 붙어있는 하얀 천 쪼가리는 덤이다.
‘오늘은 제발 안 다치고 끝나길.’
일단 걸어보려고 했으나 병으로 보이는 게 발에 차였다.
정리되지 않은 술병들이었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방 곳곳을 뒹굴고 있었다.
심지어 컵라면 용기와 온갖 종이쪼가리가 방바닥을 가득 채웠다.
이곳이 정녕 사람 사는 곳인지 헷갈릴 지경.
우우우우웅―
그때 서랍 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마세윤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받는다.
“여보세요.”
스윽―
그 한마디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 휴대폰을 멀리했다.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안전행동과 마찬가지였다.
―야! 마세윤!!
“윽!”
고개를 뒤로 젖혔음에도 요란한 수준의 목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괜히 휴대폰을 멀리한 게 아니다.
그저 항상 있는 일이었다.
―너 이 새끼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오고 있는 거야!!
“…….”
―오늘 네가 선봉에 선다고 대놓고 말했잖아! 자신 있게 큰소리친 거 벌써 잊었냐!!
말이 길어져도 목소리 볼륨은 줄지 않았다.
그냥 소음공해가 따로 없는 수준이었다.
―뺑이칠 생각하지 말고 당장 대림역으로 튀어 와라! 안 오면 니네 집 찾아가서 다 엎어버린다. 알았냐!!
뚝―
“하… 개 같은 새끼.”
더 이상 휴대폰에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상대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억양.
마세윤은 이게 정녕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했다.
실제로 그의 휴대폰은 단 한 사람은 제외하곤 전부 다 [망할 놈], [어이없는 새끼]와 같은 비속어로 등록되어 있었다.
“오늘도 그냥 넘어가진 못하겠구나.”
―인…생… ■■참…■■
“응?”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하도 스트레스받는 탓에 환청이라도 들리는 걸까.
“잘못 들은 거겠지.”
딱히 상관없었다.
무덤덤한 그에겐 들리나 마나였으니까.
* * *
지금 환청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성깔 더러운 놈이 전화를 걸어 어디론가 튀어나오라고 윽박질렀기 때문이다.
시간은 금과 같았다.
집합 시간에 늦는다면 오늘도 개처럼 굴려질 것이다.
장소는 바로 대림역.
서둘러야 했다.
“택시!”
택시는 마세윤이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설령 약속 시간을 맞춘다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방금 전화한 놈은 아주 괴팍한 놈이다.
고작 1분 늦었다고 사람을 쥐 잡듯이 들들 볶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엄청 일찍 나왔음에도 본인보다 늦게 나왔다는 이유로 똑같이 들들 볶는다.
그냥 답이 없는 녀석이었다.
“보나 마나 오늘도 마찬가지겠지. 그 들러리 새끼.”
어느 선택을 해도 절망적인 일상.
그때 택시 기사가 위로하듯 말 걸었다.
“상사가 그렇게도 무서운가요?”
“말도 마세요. 사람 새끼가 아니거든요.”
“하긴, F급 헌터에게 좋은 사람이 붙어줄 리 없죠.”
“…….”
“안 그런가요? 마세윤 씨.”
사실 마세윤은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지망생 시절, 헌터가 되기 위해 마력 측정 검사를 받았었다.
지망생은 전부 다 거쳐 가는 등용문.
마세윤에게서 도출된 수치는 이랬다.
[마력 레벨 : 1 Lv]
대한민국 역사상 전례 없는 수치였다.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레벨 1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헌데 능력자인 마세윤에게서 이런 수치가 나왔으니.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지금도 식지 않았다.
“실례지만, 도착하고 사진 한 번 찍어 주면 안 될까요?”
마세윤은 대한민국 헌터계 밑바닥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대림역 8번 출구]
택시는 빠른 시간 내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그를 반겼다.
“야! 마세윤!!”
딱 들어도 성깔 더러운 놈들이 낼법한 목소리.
그 전화 통화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키는 마세윤보다 5cm 더 커 보였고 버섯 모양 머리와 안경을 쓴 남성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엔 여러 사람이 줄지어 서 있었다.
“뭐해! 빨리 안 타냐?”
당장 오라며 재촉하는 안경 쓴 남성.
그의 옆에는 대형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에는 [오신룡 길드 작전 차량]이라 적혀 있었다.
마세윤이 속한 길드 전용 차량이다.
“왜 이렇게 쳐 늦게 온 거냐? 선배 말이 우습냐?”
안경 쓴 남성은 어김없이 시비를 걸어왔다.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상관없었다.
그의 눈에 마세윤이 보이는 순간 매번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뭔 소리예요? 분명 9시까지 오라 했잖아요. 지금은 8시 51분이구먼.”
“원래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는 게 국룰인 거 모르냐?”
역시 오늘도 시작했다.
이젠 익숙해서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이건 오프닝에 불과했다.
“야 마세윤! 뭐해? 빨리 사과드려!”
“너 때문에 괜히 분위기 깨질라!”
“지금부터 싸우러 가는데 너 때문에 의욕 떨어지면 책임질 거야?”
주변의 같은 길드원들은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은 마세윤이 먹는다.
아무리 일상이라 해도 억울한 건 참는 게 고통이다.
[현재 시각 09 : 01]
참고로 어이없는 상황은 지금부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이쿠 광수야. 왜 이제 온 거야?”
“아침부터 배가 아픈 바람에 그만…….”
“괜찮아! 괜찮아! 그 정도라면 공감할 수 있지. 자, 빨리 타.”
그의 태도가 마세윤을 대하는 것과 천지 차이다.
녀석은 다른 상대 앞에선 저렇게 굽신거렸다.
특히 자신보다 센 상대를 만날 때는 더욱 가관이다.
마세윤은 그런 그를 항상 이렇게 부른다.
“어이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출발합니다.”
길드원이 다 모이자 버스는 출발했다.
아무도 앉지 않을 것 같은 마세윤의 옆자리.
그런 자리에 누군가가 자연스레 앉았다.
“잘 지냈냐?”
“어.”
아까 마세윤 보다 늦게 왔던 그 길드원이었다.
이름은 박광수.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세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 길드 내에선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냥 잊어버려. 조석필, 저 인솔 팀장이 진짜 개 같은 건 잘 알잖아.”
안경 쓴 남성의 이름이다.
마세윤이 속한 오신룡 길드 1번대 팀장이다.
길드원을 이끄는 역할이기에 항상 맨 앞에 서서 지휘한다.
“그건 그렇고 정말 미안하다. 너만 억울하게 혼나 가지고.”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너도 딱히 잘못한 거 없잖아. 그리고 내가 누구 덕분에 길드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전부 박광수 덕분이었다.
원래 마세윤처럼 ‘마력 제한증’인 능력자는 길드에 들어갈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가 도와준 덕분에 겨우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세윤이 길드에 속하는 건 어디까지나 프로 헌터인 박광수의 빽이다.
비록 B급 헌터라 해도 수많은 실적과 경험이 프로로 만들어줄 수 있다.
“아니 그보다도, 너 오늘 어떡하냐?”
“뭐가?”
“전부 들었어. 네가 인솔 팀장 대신 선봉에 서기로 했다며?”
중대한 사항이었다.
원래 선봉이란 실력 있거나 방어력이 높은 헌터만이 맡을 수 있는 위치다.
서게 되는 순간 목숨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만약 힘없는 놈이 서는 순간 100% 사망이다.
“아, 듣고 보니 오늘이 그 날이네?”
“뭘 그렇게 태평하게 말하는 거야? 너 죽을지도 모른다고!”
“괜찮아. 선봉이라 해도 다치는 경우를 두 눈으로 본 적 있냐? 살아남기만 하면 끝이야.”
조석필과 내기를 했었다.
만약 마세윤이 살아남기만 하면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겠다고 말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당한 만큼 복수할 계획이었다.
“그니까 걱정 마. 나 안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