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주의 막내 제자 001화

무림맹주의 막내제자(650)

 





무림맹주의 막내 제자

— 문지기 —

1화. 서장(序章)




“쿨럭…….”

중년 사내의 입에서 거친 기침이 나왔다.

몸이 좋지 않음에도 그의 눈빛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검붉은 핏빛의 무복을 입은 노인이 나직하게 말했다.

“허허허, 깨끗하게 목을 내놓지, 이리도 지저분하게 사시고 싶소? 교주.”

“빠드득… 혈태상(血太上).”

그곳에는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혈태상이란 자와 비슷한 핏빛의 무복을 입고 있는 자들과 검녹빛 무복을 입은 자들 그리고 백의, 흑의 고수들마저 몰려왔다.

그들은 교주와 그의 수하들을 중심으로 완벽하게 포위했다.

그 수가 족히 일천은 넘어 보였다.

빠드득!

“사태상(四太上)… 본좌의 전우이자… 스승이었던 그대들이 어찌…….”

“닥쳐라! 천마(天魔). 아니, 네깟 천한 놈을 우리가 진정 교주로 생각하는 줄 아느냐!”

검녹빛 무복을 입은 자들의 수장인 독태상(毒太上)이 호통쳤다.

그 말에 천마는 이를 악물었다.

설마 아직도 자신의 출신 성분을 문제 삼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빠드득… 그럼 왜 본좌를 교주로 추대한 것이더냐! 본좌를 교주로 추대한 건 너희 사태상 아니더냐!”

“흥! 쌍로(雙老) 그 망할 것들이 본교의 머저리들을 선동하니 그 자리를 잠시 맡겨놨을 뿐이다. 아니면 중원 출신인 네놈이 어찌 본교의 교주가 될 수 있겠느냐!”

전대 교주 마존(魔尊)의 가신이자 당대 교주 천마의 후원자인 천마쌍로(天魔雙老).

그들은 마존의 선택을 받은 천마를 지지하고, 하급 마졸부터 젊은 대마두들까지 선동했다.

그로 인해 실질적으로 천마신교를 이끄는 사태상도 마지못해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허나 시간이 흐르고 천마의 든든한 후원자인 천마쌍로가 죽게 되었다.

그렇게 천마의 지지세력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빙태상(氷太上) 아니, 장모시여! 어찌 당신까지 이 사위에게 칼을 겨눌 수 있단 말입니까!

―닥쳐라! 지금 누굴 보고 장모라 하느냐! 네놈을 믿고 내 여식을 맡겼거늘! 초야조차 치르지 않은 놈이 그딴 개소리가 나오더냐!

―그건…….

빙태상의 전음에 천마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천마와 그의 부인 천마후(天魔后) 슬하에 자식이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은 초야조차 치르지 않았다.

그건 두 사람 이외에 알지 못하는 비사인데, 빙태상이 알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천마쌍로의 영향력이 대단해도 사태상과 맞서긴 어렵다.

그러나 사태상의 한 명인 빙태상 소수마후의 여식과 혼인을 하면서 천마는 그녀의 든든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마저 등을 돌리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후… 변명하지 않겠소. 오시오. 어차피 본좌를 죽여야 끝날 싸움이오. 허나 본좌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잊지 마시오.”

“건방진 놈…. 우리가 누구인지 잊었더냐!”

사태상(四太上).

천마신교의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대 마왕.

태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들의 권위는 교주에 맞먹을 정도였다.

허나 그가 교주가 된 건 그저 천마쌍로의 지지를 얻은 덕분이 아니다.

천마의 손에 한 자루의 검이 빛나고 있었다.

이를 본 검태상의 눈빛에 탐욕이 번들거렸다.

“천마신검(天魔神劍)…. 네놈에겐 과분한 보물이지.”

“원한다면 가져가 봐라. 대신 네놈의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검태상(劍太上).”

천마신교 제이의 검객 검태상.

천마로 인해 신교제일검의 칭호를 빼앗긴 거인이다.

그는 자신이 신교제일이검이 된 건 천마의 무위가 아닌 저 천마신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태상은 독문검법인 암흑마검(暗黑魔劍)을 펼쳤다.

그 가공한 위력은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허나 천마신공의 하나인 천마삼검(天魔三劍)은 그 찾기 어려운 적수 중 하나였다.

콰쾅!

“큭!”

“쳇! 도웁시다!”

“어쩔 수 없지요.”

검태상이 밀리자 독태상과 빙태상이 움직였다.

암흑마검에 이어 앙천독장(仰天毒掌)과 소수(素手)의 압박에도 천마는 버텨냈다.

천마는 괜히 천마가 아니었다.

태상들로서는 망신이었다.

뒷짐을 지고 있던 혈태상이 나직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안 돼!”

혈태상은 사태상의 수좌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마저 움직인다면 아무리 천마라도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다.

혈태상이 움직인 걸 본 신마가 절규하며 끼어들었다.

이를 느낀 천마는 기겁하며 호통을 쳤다.

“이런! 돌아가라! 신마(新魔)! 네가 낄 자리가… 큭!”

“흐흐흐… 왜 아니오?”

충성스러운 표정을 짓던 신마의 얼굴에 비열함이 어려 있었다.

그런 그의 손에 쥐어진 비수가 천마의 허리에 박혔다.

천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태상이 그의 등을 돌렸지만, 천마지존대(天魔至尊隊)는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들은 천마와 사태상의 격전에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들이 움직이는 순간 사태상의 수하들마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 충성스러운 천마지존대의 부대주 신마가 예상치 못한 배신을 한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신마 네 이놈! 감히 주군을!”

“뭐 하느냐! 놈들을 막지 않고!”

신마의 배신에 충격은 받은 건 천마만이 아니다. 천마지존대 역시 분노했다.

천마지존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움직이려고 하자 사태상의 수하들 역시 움직였다.

그렇기에 신마는 동료였던 천마지존대를 무시한 채 천마에게 조소를 지었다.

“흐흐, 그만 뒤져… 큭!”

“네놈이 본좌를 배신… 쿨럭… 이건…….”

예상치 못한 배신을 당했지만, 천마는 천마다.

신마는 천마의 일장(一掌)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허나 그의 배신이 무의미한 것 아니었다.

도검불침을 넘어 금강불괴에 근접한 천마의 몸에 상처를 냈으니까.

그런데 천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건 그가 중독되었다는 의미였다.

천마는 비수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쿨럭… 천독비(千毒匕)…. 어찌 네 손에… 쿨럭…….”

“흐흐흐… 그럼 네놈이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겠구나.”

독태상은 죽어가는 천마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일천 가지의 독을 품고 있다는 천독비는 독태상의 보물이었다.

그걸 신마가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천마의 반격에 나가떨어졌던 신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는지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창피한지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젠장! 죽여…….”

“물러나거라. 놈은 이 사부가 죽이마.”

“사…부…….”

천마에게 다시 달려들려는 신마를 저지한 자가 있었다.

놀랍게도 혈태상이었다.

그는 신마를 향해 스스로 사부라 청했다.

두 사람 사이에 그러한 비밀을 알지 못했던 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혈태상, 저 녀석의 아비인 본인이 놈을 죽이는 게 더 낫지 않겠소?”

“으음… 독태상의 뜻이 그렇다면 양보하리다.”

혈태상이 신마의 사부인 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독태상은 그의 아비라니 경악할 일이었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검태상과 빙태상 역시 신마와 연관이 있는 눈치챌 수 있었다.

서로 견제하던 사태상이 힘을 뭉친 것이 단순히 천마 때문이 아니었다.

“흐흐흐… 그만 죽어라! 앙천독…….”

그들의 행태를 보던 천마가 이를 갈았다.

목숨을 포기하려던 그의 내면에 일말의 복수심이 떠올랐다.

“빠드득…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라신선이 와도 목숨을 구할 수 없는 천마를 상대로 독태상이 전력을 다했다.

자신의 아들을 완벽하게 교주로 세우기 위해선 사태상 중에서도 가장 큰 공을 세워야 한다.

천마신검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검태상과 아직도 주저하는 빙태상은 설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혈태상과 공을 다투어서 우위를 차지하긴 어렵다.

그런데 혈태상이 양보해주니 일이 쉬워졌다.

콰콰쾅!!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가공한 위력에 다들 경악했다.

허나 단 한 명, 혈태상만은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죽여… 버리겠…다!”

잠을 자던 소년이 벌떡 일어나더니 난데없이 소리를 질렀다.

어린 소년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될 너무도 무서운 말이었다.

그때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사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이놈! 사태상의 수하더냐!”

다급히 들어왔던 중년 사내는 소년의 말에 기겁했다.

사태상(四太上)은 십여 년 전, 천마신교를 배신하려던 전대 교주 천마를 무찌른 영웅들.

허나 그건 천마신교의 시선일 뿐, 중원 무림의 입장에서는 공적(公敵)이라고 할 수 있는 절세마두들이다.

무림맹 현무당 소속의 호위무사인 중년 사내로서는 기겁하는 것이 당연했다.

“사공자님, 농이 지나치십니다. 어찌 그런 불쾌한 말씀을 하십니까.”

사내는 불쾌감을 꾹 억눌렀다.

화가 났지만, 소년은 그의 호위대상이었다.

게다가 소년의 신분을 생각하면 아무리 자신이 현무칠위(玄武七衛)라도 화를 낼 수 없었다.

반면, 소년은 아해(兒孩)들에게나 부를 법한 공자(公子)라는 호칭에 자신이 조롱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나 소년의 행색을 본다면 사공자라고 불리는 게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그것을 모르는지 소년은 버럭 화를 냈다.

“이놈, 뉘보고 사공자라고 칭하… 윽! 으으윽!”

“헉! 사, 사공자님! 왜 그러십니까!”

현무칠위는 소년의 무례는 잊어버릴 정도로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년의 이름은 담운.

바로 무림맹주의 막내 제자였다.

현무칠위는 괴로워하는 담운을 들쳐 안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리 평소에 개차반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호위대상이자 존경하는 무림맹주의 제자다.

그가 잘못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현무칠위는 무림맹 요인의 특별호위답게 순식간에 약선각(藥仙閣)에 당도했다.

“각주님! 각주님!”

“신성한 본각에 웬 소란이더냐!”

너무도 다급한 목소리에 백의(白衣) 노인이 호통을 쳤다.

노인을 본 현무칠위는 그제야 안도하며 다가갔다.

노인 역시 그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자넨 현무칠위 아닌가?”

“맞습니다. 각주님! 공자님을! 사공자님을 살려주십시오!”

“음? 이놈은 그 사고뭉치구나?”

약선각주는 현무칠위의 품에서 괴로워하는 담운을 발견했다.

상대가 무림맹주의 제자이건만 그는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약선각주는 백의약선(白衣藥仙)이라고 불리는 천하 삼대신의(三大神醫) 중 한 명이었다.

한 곳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던 그를, 무림맹주가 삼고초려해서 간신히 모신 거인이다.

그런 백의약선이니 맹주의 제자라고 한들 담운을 어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각주님! 빨리 치료를…….”

“이놈아!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법! 그만 좀 보채거라!”

백의약선의 핀잔에 현무칠위는 마음이 더 다급해졌다.

하지만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백의약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운을 살폈다.

그러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짓을 버렸기에 뇌호혈(腦戶穴)이 꼬인 게냐!”

“뇌, 뇌호혈이 꼬였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신 사나우니 모르면 좀 닥치고 있어!”

“넵!”

버럭 화를 내는 백의약선을 보며 현무칠위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뒤로 한 채 백의약선은 긴 대침을 쥐었다.

“후… 이놈아, 사부를 잘 둔 덕인 줄 알아라.”

“윽!”

푸욱!

백의약선은 대침을 거침없이 담운의 뇌호혈을 꽂았다.

뇌호혈은 한 치의 실수만으로 담운을 백치로 만들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혈이다.

그럼에도 백의약선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성인의 손바닥보다 긴 대침이건만, 뇌호혈을 통해서 머리 깊숙이 박혔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는 현무칠위는 등골이 서늘하기만 했다.

“후…….”

백의약선은 긴 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는 호흡을 가다듬을 뿐 아직 치료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부터가 진짜다.

백의약선은 양손의 검지를 담운에게 가리켰다.

그때였다.

그의 양손 검지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기(氣)였다.

“하합!”

푹! 푸푹! 푹푹푹!

백의약선의 양손 검지는 수십으로 늘어나더니 소년의 전신 혈(穴)들을 눌렀다.

그 모습을 본 현무칠위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백의약선의 손가락이 아닌 검이었다면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양 검지를 거둔 백의약선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져 있었다.

호흡 역시 무척 거친 것이 그가 지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헉… 헉… 헉…….”

“괜…찮으십니까, 각주님?”

“헉… 후… 자넨… 내가 괜찮아 보이는가?”

“죄, 죄송합니다!”

현무칠위는 그의 까칠한 말에 당황해하며 사과를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백의약선이 피식거렸다.

“사람 참 농도 구분 못 하는가?”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제 사공자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그를 보며 백의약선은 나직하게 말했다.

“깨어날 때까지 지켜봐야 하네. 맹주에겐 내가 말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현무칠위는 백의약선의 말에 당황했는지 허둥지둥거렸다.

허나 백의약선은 그런 그를 무시한 채 소년을 내려봤다.

‘이 망할 녀석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