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간신이 되다 001화

삼국지, 간신이 되다
cover
삼국지, 간신이 되다

삼국지, 간신이 되다

 

지은이 : 몽작(夢作)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0-11-18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2동 163-2 서경빌딩 3층

전화번호 : 032-656-4452 

 

이 책은 도서출판 청어람이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전자책으로 발행된 것이므로 불법복제 및 유포, 공유를 금합니다.

1. 술은 곱게 마시자

 

 

“아, 머리야…….”

 

한 남자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이 남자의 이름은 유하다. 어제 절친이 자살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 장례식장에서 나오자마자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유하는 지금까지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화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었는데, 갑자기 자살이라니?

 

사회에 나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친구가 갔다. 바보 같은 놈, 나한테까지 자존심을 지킨다고 힘든 소리 한마디 안 하다니. 다시 생각하니 괘씸하기도 하고, 배신감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야 너무 보고 싶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자고 나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술도 이제 적당히 마셔야지. 몸이 남아나질 않겠어.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맙소사, 여긴 어디지? 분명 집은 아니었다.

 

유하는 어젯밤 기억을 더듬으려고 애를 썼다. 술에 만취해 거리를 배회하다가 눈앞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봤다. 이어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떨어지고, 몽롱한 상태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필름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아무튼 이곳은 기묘한 공간이었다.

 

집이라곤 할 수 없고, 민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초가집이 딱 맞았다. 아니, 거기보다 훨씬 더 허름했다. 벽에 금이 여러 군데 가 있어서 그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것 같았다.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사는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보고는 “오호”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꼭대기의 큰 구멍은 뭘까? 지붕창? 아무튼 저녁에 별을 보기는 좋았다. 집주인이 꽤 낭만적인걸.

 

그러고는 아래를 보니 바닥에 뭔가가 깔려 있었다.

 

“욘가?”

 

유하가 물건을 만져 보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 하나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깨어났어요? 진 노인장 말씀이 맞았네. 정말로 깨어났어.”

 

여자의 목소리였다.

 

“누… 누구세요?”

 

유하는 경계심을 가지고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나 그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유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다 낡은 옷을 입고 있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인데도 너무 아름다웠다. 여자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남자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뽀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소녀는 소진이라고 하옵니다.”

“소녀?”

 

요새 이런 말을 쓰는 사람도 있나? 가만, 이건 중국 사극에서 많이 듣던 대사인데. 혹시 저 여자가 중국 사람? 집 분위기도 시골 같고, 농촌 총각한테 시집온 여자일 수도 있겠군. 아참, 그런데 왜 나까지 중국말을 하고 있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유하는 좀 더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일단 침착하자, 침착해. 휴-

 

“선생의 상처가 아직 다 낫지 않았습니다. 좀 더 쉬십시오. 진 노인 말로는 뼈를 다쳐서 푹 쉬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날 선생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닌 것이 분명해졌다. 처음에야 경계심이 생기긴 했지만 이 여자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왠지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어떻게 여길 온 거죠?”

 

역시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중국어가 술술 나왔다. 그리고 정말 심하게 다쳤는지 말이 길어질수록 몸이 쑤시고 아팠다.

 

“산에서 굴렀는지 온몸이 만신창이였었어요.”

 

산에서 구르다니? 난 분명 도로를 걷고 있었는데. 유하는 답답한 마음에 입술이 바짝 탔다.

 

“물 좀 있나요?”

“선생은 어디서 오셨어요?”

 

소진은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유하에게 건네며 물었다.

 

“그게… 꿀꺽꿀꺽, 캬. 지금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나네요.”

 

상황 파악이 확실히 되기 전까지는 말을 아끼는 것이 상책이다.

 

“정말 괜찮으세요?”

 

소진이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유하의 머리를 가리켰다.

 

“괜찮고말고요. 머리가 좀 아파서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대답해도 되겠죠?”

 

소녀는 환자를 귀찮게 한 것 같아 사뿐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안히 쉬세요. 소녀는 나가 보겠습니다.”

“잠깐만요.”

 

유하는 급하게 소녀를 불러 세우고 가장 알고 싶은 문제를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상하다는 듯 유하를 바라보았다.

 

“여긴 서주(徐州)예요. 하지만 서주성이랑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흘은 가야 돼요.”

“서주? 서주?”

 

유하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사이에 소녀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한국에 서주란 지명도 있나? 그리고 서주성은 뭐고? 가만, 혹시 여기가 중국 서주? 중국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서주에는 왜 온 거지? 그것도 이런 깡촌에.

 

유하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 갔다. 자신의 입에서 중국말이 술술 나오고, 고대 사극에서나 볼 법한 집에, 여자의 차림이나 행동도 현대인과 전혀 달랐다. 순간 유하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시간여행!

마지막으로 본 환한 불빛은 어쩌면 자동차 헤드라이트 조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목숨을 잃었고, 몸과 영혼이 시공을 초월해 과거 중국으로 떨어졌다는 말도 안 되는 가설이 성립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설이지만 부정하기에는 아귀가 딱딱 들어맞았다.

 

* * *

 

서주…….

 

유하는 이 지명이 낯설지 않았다. 서주는 중국의 고대 지명이었다. 그는 서주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생각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짰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머리가 빠개지는 듯 아팠다.

 

“지금 시대가 태평성세면 좋겠구만, 행여 난세라도 만났다간 골치 아픈데.”

 

이때 갑자기 벽의 갈라진 틈에서 찬바람이 휙 불어오자 유하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바짝 움츠리고 옷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유하는 가장 먼저 은밀한 부분을 확인했다. 다행히 팬티는 입고 있었다. 위에 입고 있는 건 겉옷 같은데…….

 

유하가 옷감을 만져 보니 조금 거칠었다. 뭐로 만든 거지? 설마 옛날 사람이 입는 삼베옷인가? 거동이 편하긴 한데 까끌하고 얇았다.

 

“앉아만 있으니까 따분하긴 하네.”

 

유하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한 발자국 떼기 무섭게 온몸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특히 이마가 너무 아팠다.

 

유하는 벽을 잡고 힘겹게 집 밖으로 나왔다. 이때 얼굴로 불어오는 찬바람에 놀라 뒤로 발라당 자빠질 뻔했다. 문 앞의 나무에 잎이 다 떨어진 것으로 보아 늦가을쯤 됐나?

 

마당을 나온 유하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눈앞에 보이는 너른 밭에서는 바로 그 소녀가 일을 하고 있었다.

 

소진은 휴우 길게 숨을 내쉬고 하얀 팔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휙 돌아보니 유하가 우두커니 자신을 바라보는 것 아닌가. 그녀는 약간 경계하는 빛을 보이더니 이내 긴장을 풀었다.

 

“좀 더 쉬지 않고 왜 나오셨어요?”

 

소진은 물로 손을 헹구고 유하에게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유하가 멋쩍은 표정을 짓고 대답했다.

 

“집 안이 너무 답답해서요. 잠깐 바람 좀 쐬려고요. 전 유하라고 합니다.”

“유하요?”

 

이름은 꼭 부잣집 도련님 같았다. 그런데 머리가 왜 저렇게 짧지?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하는데. 설마 죄를 지어서 형벌을 받은 건가? 그러고 보니 옷도 아주 이상했다. 옷감이 튼튼해 보이긴 했지만. 특히 아랫도리가…….

 

소진은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가씨?”

 

유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눈앞의 여자를 불렀다.

 

“네?”

 

소진은 꼭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하, 참 멋진 이름이네요. 선생도 사인(士人)이죠?”

“그냥 유하라고 부르면 돼요.”

 

그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밭이 정말 좋은데요. 여기서 뭘 하는 거죠?”

 

소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의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대갓집 사람이라 내가 뭘 하는지조차 모르나?

 

“땅을 고르고 있어요. 그렇게 해야 수확이 좋아진다고 해서요.”

“내가 좀 도와줄까요?”

“네?”

 

작은 체구에 가는 손발. 딱 봐도 험한 일 한번 해 본 적 없는 공자였다. 소진은 유하를 보고 자꾸 웃음이 나왔다.

 

“상처도 아직 다 안 나았잖아요? 전 습관이 돼서 괜찮아요.”

“상처는 그렇게 심하지 않아요…….”

 

유하는 팔을 위로 들었다. 하지만 입에서 끙 하는 신음이 나오고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그는 팔을 몇 번 돌리고 겨우 말했다.

 

“봤죠?”

 

소진은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살짝 감동을 받았다.

 

“진 노인 말로는 뼈를 다치면 백일은 간다고 했어요. 상처가 심해 보이지 않아도 조심하셔야 해요. 그럼 이렇게 해요. 춥지 않으면 제가 일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가요?”

“당연히 안 춥죠.”

 

소진은 유하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몸을 돌리고 마저 일을 하러 갔다.

 

연예인 체험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지만 실제로 미인이 노동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아가… 소진, 여기가 서주라고 했죠? 올해가 몇 년이에요?”

 

유하의 입에서 나온 ‘소진’이라는 말에 소진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데 뒤이은 그의 질문을 듣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광화(光化) 6년이잖아요?”

“광화요……?”

 

유하는 의심으로 가득한 소진의 표정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했다. 광화면 언제지?

 

유하는 말을 얼버무리며 다시 물었다.

 

“저기… 지금 황제는 누군가요?”

 

황제가 누구냐니? 어디서 그런 치도곤 당할 소리를! 소진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 걱정스런 어투로 말했다.

 

“그런 말은 절대 밖에서 하지 마세요. 남들이 들었다간 큰일 나요.”

 

그녀는 사방을 두리번거린 뒤 잽싸게 말을 이었다.

 

“저한테만 말해 보세요. 어디서 왔죠? 아까부터 수상했어요.”

 

유하는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황제 이름을 가르쳐 줘야 뭐라도 대충 둘러대지. 어디서 왔냐고? 미래에서 왔다고 얘기할까?

 

“불편하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설명하자면 너무 복잡해서요.”

“알겠어요.”

 

소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딩동댕! 당연하지.

 

“참, 글자 아세요?”

 

소진이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진 노인 말이 올해 흉작이 든 건 천신(天神)이 노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갑자(甲子)’ 두 글자를 써서 문 위에 붙여 놓아야 액운을 막을 수 있다고 했어요.”

 

“갑자라고요?”

“네. 대현량사(大賢良師)도 모르세요?”

“대현량사?”

 

유하는 그제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감을 잡았다.

 

“그래, 장각(張角)! 여기는 동한(東漢)이야!”

 

맙소사, 그럼 내가 2천 년 전으로 넘어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