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외공
절대외공
절대외공
지은이 : 김대산
발행인 : 서경석
전자책 발행일 : 2022-05-18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등록번호 : 제387-1999-000006호
본사 :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 483번길 40 서경B/D 3F (우) 14640
편집부 : 서울특별시 구로구 디지털로 272 한신IT타워 404호 (우) 0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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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외공
1화. 1장. 신체(新體)
와르~릉!
은은한 진동음과 함께 갑작스런 현기증이 일어난다.
땅이 흔들리고 있다. 며칠 사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이나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열흘 전쯤에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의 심한 땅 흔들림이 있었다.
오백여 리 떨어진 성도(省都)에서 집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대형 지진이 발생했단다. 그 여파와 여진이 이곳에까지 미치는 거라고 한다.
엊그저께는 동리(洞里) 뒷산의 야트막한 계곡 한가운데서 난데없는 땅 갈라짐이 생겼다고 한다. 그 폭이 1장에 길이는 3장여에 달하며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균열이 드러났다는데, 커다란 돌을 떨어트려 봐도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다.
무저갱(無低坑)!
동네 사람 중에서 글 좀 읽었다는 이가 그럴싸한 이름까지 붙였다.
이런 변방 구석의 한적한 지역에서는 좀처럼 없을 큰 구경거리다. 동리는 물론이고 인근 촌락의 사람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한 번씩은 다 구경을 갔다 온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데엔 별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더욱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딱 질색이다.
* * *
두두~둑!
두두~둑!
뒤쪽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급하게 가까워진다.
벽촌의 한적한 동리에서 말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그래서 그것 자체로 구경거리가 된다.
뒤를 돌아보니 말 한 필이 좁은 동리 길을 거침없이 질주해 오고 있다. 나는 얼른 길섶으로 비켜선다.
말은 거센 바람을 휘몰며 나를 스칠 듯이 지나쳐 간다. 뒤이어 한 무더기 누런 먼지구름이 나를 덮친다.
‘제기랄!’
그때다.
“워~!”
앞쪽에서 짤막하고도 날카로운 호통이 울린다. 방금 나를 지나쳐 갔던 말이 급하게 멈춰 서고 있다. 그러더니
따~각!
따~각!
천천한 뒷걸음질로 다시 되돌아온다. 그 모습이 마치 기수가 기마술을 뽐내는 듯도 하다.
말은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멈춘다.
“함주권왕가(咸州拳王家)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면 되나요?”
기수가 내게 묻는다. 청아한 목소리다.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여자다.
그제야 시선을 들어 재빨리 살펴보니 늘씬한 체형과 예쁜 얼굴의 미녀다. 그러나 나는 얼른 다시 시선을 땅바닥으로 돌린다.
여인이 말 탄 모습도 처음이거니와 마상에 높이 앉아 내려다보는 위용이라니!
더욱이 여인의 오른쪽 어깨 위로 비스듬히 솟아 나온 검의 손잡이에 나는 지레 주눅이 들고 만다.
무림인이다. 높은 무공을 지니고 무림 혹은 강호라는 바깥의 큰 세상을 자유분방하게 종횡한다는 사람들!
나는 무림은커녕 동리 바깥으로 나가 본 적도 없다.
“곧장 이 길을 따라서 오 리(五里)쯤 더 가시면 그곳이 나옵니다.”
나는 한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해 준다. 그런 중에 나의 다른 한 손은 얼굴을 가린다.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습관 같은 것이다. 낯선 사람을 대할 때면 반사적으로 그렇게 된다.
여인이 잠시 나를 응시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시선을 들지 못한다. 길을 가르쳐 준 데에 대한 감사 인사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어서 빨리 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랴~!”
여인이 나직하게 호통을 뱉는다.
두두~둑!
두두~둑!
말이 곧장 치달려 나간다.
“후우~!”
나는 그제야 애써 참고 있던 숨을 급하게 뱉어 낸다.
* * *
나는 다시 팽팽한 긴장에 휩싸이고 만다.
저만큼 달려가던 그녀가 되돌아오고 있다. 나는 한 손으로 얼굴부터 가린다. 시선은 지레 바닥으로 떨어트려 놓고 있다.
“그대는 혹시 함주권왕가에 대해서 아는가?”
여인의 말투가 달라졌다. 대뜸 하대에다 건조하고도 날카롭다. 눈빛마저도 쏘는 듯이 따갑다.
“예! 조금은…….”
나는 조심스레 얼버무린다.
“그곳에 이검명(李劍命)이라는 자가 있다는데 아는가?”
순간 나는 흠칫 당황하고 만다.
여인이 추궁하듯이 질문을 보탠다.
“그자의 몰골이 흉측하기 그지없다던데, 그대도 본 적이 있는가?”
여인의 질문에는 그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하라는 강요마저 녹아 있다.
문득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말을 잇는다.
“얼굴을 가린 그 손을 내려 보라!”
순간 내 가슴은 다시금 ‘쿵!’ 내려앉고 만다. 내가 주춤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서는데, 그녀가 말을 내게로 바짝 붙이더니 돌연히
“하!”
날카롭게 소리치며 거칠게 말고삐를 챈다.
“이히히~힝!”
말이 두 발을 높이 치켜든다. 그대로 나를 짓밟으려는 기세다. 나는 질겁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그런 나를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던 여인이 차갑게 외친다.
“이검명을 그대에 비하자면 어떠한가? 더 추괴한가? 아니면 덜한가?”
그 서슬에 나는 문득 직감한다.
‘아아! 그녀다! 연소청(延昭淸)!’
그리고 그녀의 표독한 추궁과 잔인하다고 해야 할 조롱과 멸시에서 나는 다시금 직감한다. 그녀가 내가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 * *
“그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야겠군요!”
연소청은 다시 돌변한 모습이다. 방금까지의 매섭고 표독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도도하고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이다. 더욱이 상냥한 웃음까지 짓고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토씨 하나도 더하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 이검명에게 전하세요!”
그녀가 잠시 틈을 두고서 말을 잇는다.
“이검명 공자! 설마하니 선대들의 어처구니없고 허황된 약조를 빌미로 해서 나 연소청에 대해 일말의 기대나 미련 따위를 가지고 있을 리는 없겠지요. 나는 공자가 그렇게 무도하며 무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세상의 소문이란 때로 너무도 쉽게 엉뚱한 조롱거리를 만들기도 하니, 이런 일일수록 그 맺고 끊음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겠지요. 하여 오늘 이렇게 공자에게 나의 분명한 입장을 전하는 것이에요. 또한 조만간에 다시 함주권왕가를 공식적으로 방문할 거예요. 하니 그날 양가의 만남에서는 서로가 한 점의 구질구질함도 없이 명확하고도 명쾌한 매듭을 지을 수 있도록 공자는 미리 귀측의 입장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도록 하세요!”
* * *
두두~둑!
두두~둑!
말발굽 소리가 멀어져 가고 있는 중에도 나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지독한 가위에 눌린 듯하다.
말발굽 소리가 멀리 사라져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된 다음에야 나는 길게 한숨을 토해 낸다.
“후우우우~우!”
난 여태껏 그녀를 만날 엄두조차 내 본 적이 없었다. 감히 단 한 번도! 혹시 그쪽에서 만나자고 한다면, 지레 도망치리라는 작정까지 해 놓은 바다.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그저 있는 것 자체로 만족스러운! 그러나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불행해지고 마는 멀리 산 너머에 걸린 무지개 같은 그런 존재!
또한 그녀는 내 삶의 마지막 끈이기도 했다. 내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이어 놓아 어느 순간에는 허망하게 끊어져 버릴 슬픈 끈!
오늘 그 끈이 끊어져 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각오도 되어 있지 않았던 내 가슴에 비수가 틀어박혔다.
하늘이 온통 노랗게 변하고 있다. 지독한 허탈과 허망과 절망이다.
애써 도망쳐 왔던 그것들이 마침내 나를 덮치고 있다.
나는 이제 더는 감당할 수가 없다. 나는 그대로 질식하며 침몰해 간다.
이제는 그만 끝내고 싶다. 이 끝없는 절망을! 이 저주받은 삶을!
* * *
나는 문득 무저갱을 떠올린다. 그곳이면 적당하겠다.
나는 곧장 뒷산 쪽으로 향한다.
뒷산의 첫 번째 등성이를 넘어 무저갱이 있다는 계곡 입구까지 가는 동안에 어느덧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게다가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질 듯이 하늘이 우중충해진다.
우르~릉!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천둥이 운다. 축축한 바람이 부는 것이 금세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다.
그래! 나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어울리는 날씨다.
계곡의 초입에 들어서자 이미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았다. 기어코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한다.
저 앞쪽에서 안개가 제법 크게 소용돌이치는 광경이 보인다. 무저갱이 가까운 모양이다. 무저갱으로부터 세찬 바람이 솟구쳐 오른다더니 그것이 주변의 안개를 흩어 놓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때다.
‘엇?’
나는 가벼운 당황과 함께 걸음을 멈추고 만다.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는 안개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보이고 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셋쯤으로 보인다.
당황스럽다. 무저갱이 생긴 지 벌써 며칠째다. 볼 사람은 웬만큼 다 봤을 터다. 더욱이 이런 늦은 시간에 금방이라도 한바탕 비가 쏟아질 듯 험상궂은 날씨에 이 으슥한 계곡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되돌아갈까 하는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기왕에 모진 작정으로 여기까지 온 마당이다. 나는 독하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걸음을 뗀다.
* * *
‘이런……!’
대여섯 걸음 정도를 더 다가가다가 난 다시금 흠칫 소스라치며 걸음을 멈추고 만다.
하필이면 그놈들이다. 다른 때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되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 놀랐던 심정은 이내 다시 덤덤해진다. 기왕에 모든 걸 놓아 버린 마당이다. 놈들 아니라 누구인들 거리낄 것은 없으리라.
그때 저쪽에서도 나를 알아본다.
“흐흐흐! 이게 누구신가? 이검명 공자님 아니신가?”
껄렁하게 웃으며 지껄이는 놈은 전호(田浩)다.
“여긴 웬일이셔? 혹시 우리하고 놀아 주려고? 우리가 심심할까 봐서 일부러 여기까지 와 준거야? 아이고, 이렇게 고맙고 반가울 데가 있나? 크크크!”
장단을 맞추는 놈은 장칠(張七)이다.
두 놈 다 동리의 소문난 파락호들이다. 술이나 처먹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행패나 부리는 인간쓰레기들! 두 놈은 특히 나를 가장 괴롭히는 인간들이기도 했다.
내게로 다가온 놈들은 내가 마치 장난감이라도 되는 듯이 좌우에서 툭툭 건드린다.
그때다.
“감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검명 형님에게 무례를 범하다니! 너희들 눈에는 나 이도명(李度命)이 보이지 않느냐?”
뒤에 서 있던 나머지 한 인물이 얼굴빛을 굳히며 차갑게 뱉는다.
제법 위엄이 서린 그 서슬에 전호와 장칠이 흠칫 굳고 만다.
* * *
“검명 형님이 여긴 웬일이오? 세상일에 아무 관심 없다는 듯이 유유자적하더니 이런 덴 또 흥미가 생깁디까?”
이도명이 냉기를 거두었으나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덤덤히 말을 뱉는다.
도명은 내 사촌 동생이다. 숙부의 하나뿐인 아들! 나도 친형제가 없는 독자이니 서로에게 하나뿐인 사촌이다. 꽤나 가까울 법한 관계다.
그러나 나는 이도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녀석도 나를 싫어한다. 아마도 내가 그를 싫어하는 것보다 녀석이 나를 더욱 싫어할 것이다.
전호와 장칠은 이도명의 소위 말하는 따까리들이다.
물론 어렸을 때 그랬다는 것이다. 도명은 요즘 이런 파락호들 따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때와는 확연히 신분이 달라진 것이다. 다만 무저갱을 보러 오랜만에 동리로 나온 길에 예전의 따까리들을 만나 함께 오게 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