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아카데미의 망나니 001화

0000

제1화



제1편 빙의, 그리고 재판



엄숙한 분위기.

교직원과 학생회가 주관하는 약식 재판이 시작됐다.

“제이스 크로데인.”

“그대의 악행은 아카데미의 이념에 어긋납니다.”

“가문의 위신을 믿고 힘없는 여학생을 희롱했으며.”

“패배를 인정하기는커녕 등을 돌린 상대에게 검을 휘둘렀지요.”

“그 외에도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자, 당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이의가 있다면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드리죠.”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하나같이 악의를 강렬하게 내비친다.

“…….”

이 상황에서 변호를 어찌하랴.

내가 봐도 제이스는 인간쓰레기였다.

모든 게 사실이라서 동정할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제이스가 아닌데?

뜬금없이 그 몸에 빙의된 선량한 청년일 뿐…….

타이밍이 참 공교롭다.

하필 막바지에 와서 빙의가 됐다고?

X은 다른 놈이 쌌는데 치우는 건 나의 몫인 격.

전생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스쳐 지나간다.

어떤 사고. 병원. 갇혀 있는 삶. 모바일 게임…….

매우 흐릿했지만.

헛된 망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곧 머릿속에 제이스의 미래가 펼쳐졌다.

세상을 저주하며 마왕군에 투신.

흑화(黑化) 의식을 치른 후, 사천왕의 일좌를 차지하게 된다.

그야말로 인류의 적.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

‘그렇게 되면 곤란하지…….’

물론 내용물이 바뀌었기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겠지만, 어지간하면 아카데미에 남아야 했다.

대륙 최고의 교육기관인 만큼.

안전할뿐더러 강해질 여지가 많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선택지는 배제하련다.

크로데인 가문의 가주.

즉, 이 몸의 아버지가 노발대발하겠지.

반쯤 죽을 게 뻔하다.

심하면 쫓겨날 것이고.

기껏해야 떠돌이 용병이 될 텐데.

그럴 바에는 마왕군의 사천왕이 되는 게 낫다.

“…….”

둘 다 싫어!

개똥밭이라도 아카데미에서 구를래.

어찌어찌 졸업만 해도 가문에서 쫓겨날 일은 없을 것이다.

본래의 제이스는 분노했겠지만, 나는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저자세를 보여서는 안 돼.’

약식 재판이 진행됐다는 것 자체가.

고개를 숙인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님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협상밖에 없다.

제이스를 구제 불능의 망나니로 여길 터.

그럼 구제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저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

의아하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당연히 발악을 할 거라고 예상한 듯싶다.

망나니처럼 난동을 피울 경우.

그 점을 꼬투리 삼아 강제로 퇴학시켰겠지.

나는 짐짓 의연하게 할 말을 쭉 이어 나갔다.

“단, 저는 크로데인 가문의 후계자입니다.”

“재판까지 열어 가며 귀족 학생을 내보내는 것.”

“짐작건대 썩 달갑지 않은 선례로 남겠지요.”

“그래서 감히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얻고 싶군요.”

“그 기준은 당신들에게 맡기겠습니다.”

퇴학은 최후의 수단이다.

학생들의 기득권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

제이스가 하도 쓰레기라서 거의 금기된 과정이 진행된 것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논리가 정연한 게 오히려 수상합니다.”

“아니, 저 망나니가 이제 와서……!”

“우리에게 맡기겠다고 했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고 판단됩니다.”

퇴학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처벌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기숙사 퇴거. 수업 참여 금지.”

“1달 이내에 검기를 발현할 것.”

“그럼 처벌을 철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껏 저지른 짓에 비하면 꽤 관대했다.

사실, 제이스는 망나니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떠오르는 신성.

수석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천재.

성격도 좋아서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불의의 사고를 겪음으로써 마나를 못 다루는 몸이 돼 버렸다.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그에 좌절하며 차츰 망나니가 된 것이다.

‘즉, 재판의 결과는…….’

관대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잔인한 셈.

시한부일지언정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1달의 유예 기간을 받은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다짐할 무렵.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업적 달성 : 올바른 선택]

[보상 : 업적 점수 +1,000]


응? 이건 또 뭔데?

정말로 게임 속에 갇힌 거였어?

기억이 흐릿한 탓에 긴가민가했지만.

시스템 창이 뜬 시점에서 모든 게 확실해진다.

“…….”

그뿐이랴.

심지어 퀘스트도 존재했다.


[서브 퀘스트]

[육체 단련 :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 달리기 10km를 매일 반복할 것]


아앗, 뭔지 알 것 같아…….

희미하게 뭔가 떠오르려고 해!


[메인 퀘스트]

[마왕을 쓰러뜨릴 것]


이건 허들이 너무 높다.

일단은 그냥 넘어가야겠다.

그 외에도 자잘한 퀘스트가 많았다.

‘겸사겸사 업적까지 달성한다고 치면…….’

희망이 보인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망나니의 몸에 빙의됐으면 이 정도 혜택은 있어야 마땅하다.

마나를 못 다룰 뿐, 육체의 상태는 썩 나쁘지 않았다.

“…….”

나는 밑바닥을 경험해 봤다.

어떤 시련도 이겨 낼 것이다.



* * *



기숙사에서 짐을 뺀 후.

나는 아카데미 바깥의 숲에 내던져졌다.

“…….”

아니, 조금 심하잖아?

하다못해 헛간에서라도 자게 해 줘야지?

청소년의 인권을 주장해 보려 했지만.

한 소녀의 싸늘한 눈빛에 입이 닫혔다.

“1달 동안 이곳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세리아 카르멜.

학생회 소속이자 재판에 참여했던 1인.

그리고 제이스와 약혼을 한 관계…….

몸이 기억하고 있듯, 갑작스럽게 가슴이 뜨거워진다.

“…….”

지금까지는 보류하고 있었지만.

머지않아 파혼이 결정될 것이다.

나는 가만히 제이스의 최후를 떠올렸다.

차후, 세리아는 용사의 동료가 되어.

마왕군의 사천왕이 된 제이스와 맞서게 된다.

악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기에.

제이스는 우세를 쭉 이어 갔지만, 갑자기 흑화가 풀렸고 세리아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엇이 그렇게 후회스러웠을까.

인류의 배신자는 옛 연인에게 한탄한 뒤, 숨을 거뒀다.

“…….”

더없이 허무한 결말.

응. 마왕군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할 거야.

그냥 죽으면 죽었지, 그런 배드 엔딩은 절대 사절이다.

아무튼.

이 몸은 약혼녀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바보 같은 녀석…….

그럼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 냈어야지.

파혼은 기정사실이었기에 어쩔 방법이 없었다.

“학생회의 일원이 돌아가면서 당신을 살펴볼 겁니다.”

감시까지 하시겠단다.

그건 사생활 침해인데?

뭐, 이 몸의 업보라서 따질 도리가 없었다.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는 게 좋겠군요.”

나는 운명을 바꿀 예정이다.

그녀와 관련된 배드 엔딩도 피할 것이다.

예전과 달라짐으로써.

약혼 관계가 유지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운명은 순탄치 않을 듯했다.

나는 세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이스가 그녀의 생일에 선물해 준 머리핀.

그것을 아직도 사용하다니,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꿈틀거렸다.

“너는 여전히 가질 수 없기에 아름답구나.”

“───!!”

움찔, 그리고 정색.

곧이어 도망치듯이 내게서 멀어진다.

“…….”

그냥 해 본 말이다.

왠지 그 대사를 꺼내야 할 것 같았다.

그녀의 반응으로 봤을 때, 일말의 미련도 싹 털어 낸 듯했다.

욱신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릴 무렵.


[업적 달성 :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

[보상 : 업적 점수 +5,000]


새롭게 갱신되는 시스템 창.

하루도 안 지났는데 벌써 2개를 완료했다.

음, 기분 탓인가…….

막 퍼 주는 것 같은데?

준다면 고맙게 받겠지만, 분위기를 멋지게 망쳐 놓았다.

나는 곧 상념을 떨쳐 냈다.

앞으로 살아갈 궁리를 하는 게 먼저다.

‘오두막은…… 안 지어도 되겠지.’

결과가 어찌 되든 1달만 버티면 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동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나는 누구처럼 좌절하지 않았다.

절망을 논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상황.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좋았다.

최소한 스스로 움직일 수는 있었으니까.

용사 아카데미의 망나니


지은이 : 성검S

제작일 : 2022.05.0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쵸쵸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405-009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