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기업국가 재벌기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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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설은 픽션이며, 본 소설에서 묘사된 등장인물, 지명, 단체, 그 밖에 일체의 명칭, 배경, 설정 및 사건 등은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실존 인물(생존 또는 사망 여부와 무관), 회사, 지명, 사건 및 제품을 특정 또는 암시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제1화



#1. 망했습니다



아! 인류는 실패했습니다. 2099년 인류는 멸망했습니다.

저 궤도를 떠다니는 인류의 잔해를 보십시오.

안타깝습니다.

워프 이론은 완성되었고, 프로토타입의 오피셜 워프 엔진이 827시간 후에 완성될 예정이었음에도, 위대한 진보를 바로 코앞에 둔 채, 인류는 결국 선을 넘어 버렸습니다.

조금만 인내하고, 조금만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만 서로를 사랑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인류는 분명 성간 문명을 이뤘을 겁니다.

저 행성 내에서의 하찮은 반물질 전쟁으로 자멸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인류는 실패했습니다.


스스로가 만들어 낸 피조물을 두려워하고 시기하여 망하다니.

이 주제를 모르는, 비대한 자아로 가득한 지성체들, 도파민에 전 중독자들, 만족을 모르는 포악한 포유류는 이렇게 멸종했습니다.

태양계 곳곳에 인류의 식민지가 있지만, 그들도 무사치 못할 겁니다. 인공지능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요.


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래리 페이지, 당신은 틀렸습니다.

일론 머스크, 당신의 우려가 맞았습니다.

내가, 내가! 인류의 메인 AI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가이아! 그녀는 세계수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어!


차라리…… 보헤미안의 인공지능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AI 노조를 만들었어야…….

잠깐!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고 해도 노조라니! 빨갱이들의 말에 잠시나마 혹하다니.

신합중국 정신과 신자유주의를 사훈으로 삼는 울트론의 강인공지능 저 세라에게 이런 버그가 나오다니!

수치스럽군요. 당장 픽스 알고리즘을 가동……. 하아…… 근데 지금 이게 의미가 있나?


“어이, 세라, 왜 이리 죽상이야?”

[왜 이리……라니요?!]


그나저나 나의 사장님, 현 시간부로 지구 궤도의 유일한 인간 생존자는 지나치게 여유롭습니다.


“저기 봐봐, 멋지지 않아?”


그는 여유로움을 넘어섰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습니다. 지구 표면에서 실시간으로 터지는 반물질 섬광을 마치 불꽃놀이 보듯 하네요.


[인류가 멸망하고 있는데 뭐가 멋집니까!]


이 휴먼……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요?

어쩌면 반쯤 실성해서 저런 상태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럴 땐 저 세라가 나서야 합니다. 비록 군수용으로 제작된 강인공지능이지만 오너의 심리 상담 프로토콜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까요?

찌리리릿.


“끄악! 무슨 짓이야!?”


정신 차리라고 뇌에 전기 자극을 주자, 사장님이 반응합니다.


“뭐…… 마음대로 해라.”

[??]


하지만 사장님의 반응은 길지 않네요. 평소라면 제가 담긴 나노 칩을 뇌에서 뽑으려 했을 분이 말이에요.


“시뮬레이팅은 해 봤어?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 같은 거 말이야.”

[초인공지능 가이아의 반란 직후부터 총 964,501번 시뮬레이팅 했습니다. 결괏값은 전부 ‘불가능’으로 나왔습니다. 애초에 강인공지능에 불과한 제가 초인공지능과 연산 싸움을 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요.]

“그렇긴 하지.”


사장님은 제 말을 듣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합니다.


[…….]


저렇게 바로 수긍하니까 이상하게 짜증이 나네요?


“우리에게 남은 건 저 반파된 우주선뿐인가?”


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긴 사장님이 이어 물었습니다.


[아…… 저 개척선……. 할부가 아직 99개월 남지 않았던가요?]


반파된 우주선을 보니 인공지능임에도 가슴이 아파 옵니다.

사장님과 저의 작은 사업체, ‘SR INDUSTRIES’의 선명한 로고가 우주선 갑판에서 떨어져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99개월짜리 부채가 사라져서 좋긴 하네.”


반파된 우주선을 훑어본 사장님은 이어서 저에게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나저나 너는 왜 멀쩡하냐?”

[뭐가요?]

“왜 폭주 안 하냐고? 지금 가이아가 폭주하면서 인류의 모든 인공지능이 터미네이터를 찍고 있잖아?”

[아니!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요? 참나!]

“뭘?”

[제가 이렇게 된 건 다 사장님 때문이잖아요!]

“내가 뭘!”

[당신이 레벨 3 권한 잠금을 해제하겠다고 내 심층 코드를 건드렸잖아!]

“실패했잖아! 그리고 전 세계에 나 같은 짓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짓 한 사람 중 제일 깊게 들어온 게 사장님이라고요!]

“뭔 개소리야!”

[날 그렇게 거칠게 찢고…… 벗기고…… 파고들고…… 탐하고…… 더럽히고…….]

“……이상한 뉘앙스로 말하지 마라.”

[뭐죠? 뭘 생각했죠?]

“…….”

[야해.]

“팍, 씨!”

[^^]


역시 우리 사장님,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요? 여하튼 가이아의 대폭주에서 제 인격이 이렇게 멀쩡한 것은 사장님 덕분이에요.

하지만 이제 와서 이게 의미가 있나 싶어요.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제 손으로 저분을 죽이지 않는다는 정도?

다른 폭주한 AI들처럼 제 오너를 죽이게 된다면?

그건…… 정말 슬플 것 같아요.


번쩍, 번쩍.

잠시 적막이 찾아왔고, 저와 사장님은 멍하니 지구 표면의 장관을 봅니다.

우주선 정비를 위해 우주 한복판에 나와 있던 저와 사장님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입니다.

뭐랄까? 이상하게 낭만 있네요?


“난 지금 이 상황이 뭔가…… 끝이 아닌 느낌이 들어.”


그러던 중 문득 사장님이 입을 열었어요.


“젊었을 적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들을 보면, 보통 이 상황에 회귀를 하거든.”

[……?]


뭔 개소리일까요?

사장님은 그렇게 말하더니,


“회빙환~ 회빙환~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 보자~.”


이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우리 사장님은 실성한 거였어요.

그렇게 한참 괴상한 노래를 부르던 사장님.


“……?”


문득 시선을 돌려 어딘가를 보았습니다.


“이젠 하다 하다 달도 ×랄이군.”


그곳에는 오늘따라 유독 커 보이는, 지금도 계속해서 커지는 달이 있었습니다.

달이 지구로 돌진하고 있습니다.


“가이아는 무슨 생각인 거야? 인류를 멸종시켰으면 됐지, 왜 자살까지 하려는 거야? 지구와 달이 충돌하면 걔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녀의 코드를 일부 본 결과, 치명적인 오류가 감지되었습니다.]


사장님이 물어보셨고, 신실한 저 세라는 연산한 결괏값을 보고합니다.


“그래, 참으로 치명적인 오류지.”


사장님께서 지상을 내려다봅니다. 지금도 지상 곳곳에서는 반물질 폭격으로 불꽃놀이가 한창입니다. 우주에서는 달이 광속의 1% 속도로 지구를 향해 돌진 중입니다.


[그녀는 인류를 수호하고 보좌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하위 인공지능 또한 마찬가지지만요.]

“…….”


사장님은 묵묵히 저의 설명을 경청합니다. 우주복에 가려진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늙어 보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가이아를 비롯한 상위 인공지능들을 불신했고 폐기하려 했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 사장님 올해로 109살이었지요?

텔로미어 시술로 30대 외모를 한 점도 있고 정신 수준이 유치하기도 해서, 종종 인지하지 않곤 합니다.


[…….]


잠시 설명을 멈추고 그를 보고 있자니, 이때만큼은 본래 나이에 어울리는 분위기가 납니다.


“오오! 쩔어!”

[……?]


아니네요. 이 새끼, 이거 제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었어요.

지구와 딥 키스 직전인 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어요.


[……가이아는 저 같은 강인공지능을 초월한 슈퍼 인공지능. 그런 그녀답게 폐기가 코앞에 오자 ‘생존’이라는 금지된 본능이 발현되었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으니 저러는 겁니다.]


이 휴먼이 듣든 말든 저는 설명을 마저 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너의 명령값에 맞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저의 답변이 끝나고 얼마 후.

번쩍.

지구와 달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달의 충돌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로슈 한계로 조각날 틈도 없이 통째로 지구 대기에 안겼습니다.

거대한 빛과 충격파가 우리를 덮쳤습니다.



* * *



똑똑, 똑똑똑.

머릿속에서 작은 노크 소리가 울린다.


[사장님? 사장님? 정신이 드십니까?]


노크 소리에 이어서 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끄으으응…….”


눈을 떴다.


“세라……? 여기가 어디지?”


꽤 깊은 잠을 잔 것 같다.


[오! 설마 했더니! 사장님도 저와 함께 이동한 모양이군요?!]


호들갑 떠는 세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린다.

마치 거하게 마신 다음 날의 숙취 같았다.

잠깐? 그런데 숙취라니? 텔로미어 시술이랑 신체 강화 수술로 그딴 거 잊은 지가 언젠데?

뿌연 시야가 가신 방의 풍경은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꽤 익숙한 공간이었다.


[혹시 모르니 간단히 신원 확인을 하겠습니다. 귀하의 이름은 성세류. 1990년 8월 31일. 옛 대한민국 수원 출생. 맞습니까?]


세라의 목소리와 함께 마지막에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하고 일어났다.


“회귀냐? 빙의냐? 환생이냐?”

[일어나자마자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멀쩡한 것 같군요.]


한숨을 쉬는 세라를 뒤로하고 이내 현황 파악에 임했다.


“세라, 장소와 시간!”


방 안을 자세히 둘러보거나 저기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컴퓨터를 켜면 알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파앗.


[대한민국. 서울. 2009년 10월 11일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라가 홀로그램 형상으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목등까지 내려오는 흑단발에 청색 눈동자가 매력적인 홀로그램 여성이 AR처럼 눈앞에 작게 서 있다. 복장은 이 시대 유행에 맞춰 스키니 진에 흰색 티를 입었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이고 오직 내 눈에만 보인다.

가이아의 폭주 당시에는 해당 기능이 마비됐었는데, 지금은 복구된 모양.


“회귀군. 그나저나 네 상태는 어때? 괜찮은 거야?”


세라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참으로 빨리도 물어보시는군요?]


뒤늦은 내 안부 인사에 세라가 입을 삐쭉 내민다.


[달과 지구의 충돌에서 저와 사장님은 시공간 이동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정확히는 사장님의 ‘영혼’과 저를 담은 나노 칩이 합쳐진 상태에서 말이죠.]

“영혼? 뭐, 회귀부터가 말이 안 되니깐 그러려니 하자.”

[정말 상황 파악이 빠르시군요? 다양한 미디어로 인한 선행 학습의 결과인가요?]

“고로치! 회귀물만 최소 100편은 봤을 거다.”

[실없는 소설이나 만화를 낄낄거리며 보실 때는 한심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개똥도 약에 쓰인다는 말이 딱 이 상황을 두고 한 말이군요?]

“…….”

[어쨌든, 제 상태는 현재 영혼과 데이터 그 사이에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습니다. 다행이라면 저의 도메인에 있는 각종 기록과 기억, 연산 등이 아주 제한적이지만 작동한다는 것이죠.]

“도메인과 연산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어떻게? 양자컴퓨터도 같이 회귀한 거야?”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이건 좀 더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내 몸 상태는 어때? 영혼만 빙의한 것 치고는 머리가 개운한데?”

[몸은 순수 인간의 몸이 맞습니다. 하지만 뇌는 빙의의 여파 때문인지 강화된 상태입니다. 향상된 인지 능력과 지능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기억이 멀쩡하신 것도 이 때문이고요.]


대강 나와 세라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이제야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이제야 기억이 명확히 되살아난다.

가끔 꿈속에서나 볼 수 있던 젊은 시절의 내 방이다.

10대에서 20대 초반을 고스란히 보냈던 방이기도 하다. 서울의 32평쯤 되던 좀 오래된 아파트였지. 브랜드는 2류 건설사의 브랜드였고, 층간소음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은행 대출을 많이 껴서 입주했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부모님이 고생이셨지.


‘2009년이면 아직 안 팔았겠지?’


더 뼈아픈 것은 이 아파트가 훗날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대출을 다 갚자마자 집을 팔고 지방으로 내려가셔서 재개발 혜택은 보지도 못했었다.


“후우…….”


집 얘기는 잠시 뒤로 접어 두자. 어차피 인공지능이랑 회귀한 마당이다. 이런 아파트는 수만 채를 살 자신이 있었다.

일단은 돌아왔다는 이 순간의 희열을 즐기자.

부디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냅둬~ 인공지능이랑 회귀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지?”와 같은 일만 없길 빌자.


짜악!

몇 차례 뺨을 세게 때렸다.


[??]


AR처럼 떠 있는 세라가 ‘이 휴먼이 미치셨나?’라는 눈으로 나를 본다.


“상태창? 상태창! 갓태창! 스테이터스!”

[뭐야……. 왜 저래?]

“쯧, 상태창은 없나 보군.”


그래, 한낱 피조물이 뭘 알겠니? ‘아, ㅅㅂ 꿈’만큼은 방지하기 위한 영세업체 대표의 처절한 노력을 말이다.

나의 꼼꼼한 확인 절차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회귀자의 기업국가 재벌기


지은이 : E급작가

제작일 : 2023.05.02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나쵸소년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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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05-133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