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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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만약 악당이 된다면 어떤 운명을 살고 싶니?>

<운명에 순응할 거니?>

<아니면 거스를 거니?>

<그것도 아니면…….>


시끄럽네.

머릿속을 간질이는 듯한 헛소리에 참지 못하고 눈을 뜬 나는 가슴이 철렁한 심정으로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믿기지 않는 것을 보았으니까.

“……뭐야.”

딱딱한 의자에서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불편함이 느껴진다.

창밖의 풍경이 지나가는 것을 보니 여긴 열차 안인 걸까.

이상하군.

조금 전까지 나는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을 텐데.

납치라도 당한 건가?

나 같은 놈은 몸값도 안 나올 텐데.

그러고 보니 어쩐지 시야도 평소와 약간 달라진 것 같다. 몸뚱이도 어쩐지 기운이 넘치네.

마치 잃었던 젊음을 되찾은 느낌?

이해하지 못할 기시감에 도통 진정하지 못할 때였다.

나를 태운 열차가 터널로 들어갔다.

어두워진 차창 쪽으로 별생각 없이 시선을 돌린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허억?! 이거 진짜야?”

믿기지 않는 내 얼굴.

아니, 이상한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야.

그 차창에 희미하게 비친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소년의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실내의 조명에 반사되어 이따금 보랏빛의 기이한 기운을 내뿜는다.

그리고 약간 창백한 피부와 금색의 눈동자.

“내 얼굴 거참 잘생겨졌네.”

요즘 납치극은 피해자의 성형도 지원해 주나?

그럴 리가 없겠지!

나는 이 소년의 얼굴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말도 안 되기에 내가 미친 것인지 이 망할 세상이 돌아 버린 것인지 의심해야 했지만.

역시 틀림없으리라.

“시안이 되었어?”

내가 가장 마지막에 클리어했던 게임의 일개 악역.

걸어 다니는 경험치 덩어리.

어째서인지 몰라도 나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악역의 얼굴을 갖게 된 거 같았다.

1장 - 악역의 새싹이 된다면?



회상해 보자.

내가 ‘시안’이 아닌 ‘안시한’으로서 살고 있던 시절을.

그럭저럭 밥벌이는 하는 게임 유X버로서 채널을 운영하던 내게 어느 시청자가 단 댓글이 계기였을지도 모른다.


-요즘 ‘연애 전기’라는 게임이 핫한데, 혹시 플레이하실 예정은 없으신가요?

-그거 참 갓겜입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해야지!

유행에 편승한다! 그것이 하꼬 유X버가 살아남는 길!

게이머들 사이에서 최근 입소문에 오르고 있는 게임이 있었으니.


<연애전기(戀愛傳記)>

네 연애가 세상을 구할지어니! 소년, 소녀여! 인연을 쌓고 세계를 구하라!


‘대체 언제 적 게임이냐!’라고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광고와 네이밍 센스를 내건 이 게임은 발매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광고가 구렸으니까!

너무나 구렸으니까!

그러나 게이머란 한가해지면 저기 구석에 굴러다니는 게임이라도 지나치지 못하는 법이지.

호기심에 플레이한 게이머들 사이에서 차츰 호평이 나왔고, 점차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본적인 콘셉트는 연애와 구원.

제국의 아카데미라는 청춘 무대에서 주인공은 다양한 캐릭터와 얽히며 때로는 우정을, 더 나아가서는 연애라는 인연을 쌓아 간다.

차츰 세계의 비밀이 드러나고 때로는 한때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료와도 갈등을 빚는다.

마지막에는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결전.

그 결전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쌓은 인연을 내세워 세계를 구원한다.

정석적이지만, 그 기본이야말로 사람의 심리에 가장 와 닿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최종 보스 앞에서 염장질이라니…….

-저거 그거지.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 그거?

-불쌍하신 최종 보스님.

-부디 저 사악한 커플에게 저주를!


……여러 가지 의미에서 화젯거리가 된 모양이지만.

‘연애 따윈 알게 뭐냐! 진짜 사나이는 연애 따윈 안 해!’라고 외치는 플레이어를 위해 인연이 아니라 오로지 주인공의 힘과 실력만으로 클리어하는 시나리오도 마련되어 있었다.

일명 극한 난이도 솔로 엔딩.

‘나도 연애 X까! 하고 외치면서 플레이했지.’

그야 빡겜을 해서 고통받아야 모두가 좋아하잖냐.

덧붙이자면 더럽게 빡셌다.

괜히 극한 난이도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지.

연애를 주제로 내세우는 게임답게 인연이 깊어질수록 파워업 이벤트라든가 주요 보스의 디버프 이벤트 등 난이도를 낮춰 주는 요소가 들어가게 마련.

솔로 공략을 한다는 것은 파워업 이벤트건 뭐건 쥐뿔도 없이 그냥 혼자 싸우겠다는 뜻.

인연이 없으면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이라고?

‘훗, 인연 따위 레벨과 근육 앞에서는 하잘것없다!’

어찌 보면 사나이답지 않냐.

몸뚱이 하나로 세상을 구한다는 감성이 마음에 들어 일부러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유저도 적지 않았다.

‘덕분에 고생도 했지…….’

몇 번이고 리트라이를 반복하느라 날밤을 새우면서 실황을 해야 했다.

아슬아슬하게 한 대만 스쳐도 뒈질 것 같은 상황에서 최종 보스를 쓰러트렸을 때의 달성감은 말할 것도 없지.

“깼다으아아아아아아아아!”

달성감에 터져 나온 외침이 울려 퍼졌다.

겨우겨우 방송을 끝내고 그 여운을 식힐 겸 잠시 편의점이나 다녀오고자 했다.

묘하게 정신이 고양돼서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거든.

‘그래선 안 됐는데.’

밤을 새웠으면 그냥 밥 먹고 자야 한다.

제발 허튼짓하지 말고.

‘하긴, 누가 생각했겠어.’

고작 집에서 걸어서 3분도 되지 않는 편의점을 다녀오다가 차에 치일 줄이야.

“……그러고 눈뜨니 이 꼴인가.”

회상을 끝내고, 지금의 내 두 눈이 보고 있는 세상에 주목했다.

열차 특유의 속도감과 흔들리는 승차감. 그리고 제법 빠르게 흘러가는 창밖의 풍경.

처음 보는 풍경일 텐데도 왠지 눈에 익었다.

굳이 말하면 모델링 된 풍경을 본 기억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 그 게임 속 세상에서 눈을 뜰 줄이야.”

<연애전기>의 세계.

제국의 수도로 향하는 열차에서 눈을 뜰 줄이야.

이 세계의 정체를 깨닫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풍경만 보고도 기시감이 들었으니까.

거기에다 무엇보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으니…….’

그 게임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의 얼굴이 내 얼굴이 되었으니 부정하지도 못하지.

‘응, 이거 시안이네.’

시안.

‘하필 고르고 골라서 시안이냐.’

분명 게임을 해 본 녀석들이라면 단번에 이 소년의 얼굴을 알아볼 것이다.

문제는 이 소년의 운명.

‘허어……. 이놈 전형적인 악역의 관상이로다.’

이런 장르의 게임이라면 꼭 있기 마련이잖아.

주인공을 막아서고 질투하고, 심지어 히로인에게도 수작을 부리는 존재.

그런 인물.

주인공의 대척점이자 결국에는 주인공에게 칼침 맞고 돌아가실 운명.

흑마제 시안.

낯짝이 화끈거리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 장래의 악역의 새싹.

“하필 그 시안이란 말이지?”

나는 지금의 ‘시안’에 대한 설정과 장래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가만히 내 왼손을 펴서 바라보았다.

‘내가 시안이 되었다는 증거.’

조금 의식을 가하자, 자연스레 그 손바닥에 검은 기운이 모이면서 응축되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 왼손에 흑염룡이 아니랏! ……나와랏! 마기!’

마기(魔氣).

사악한 속성을 지닌 특수한 마나를 분류하는 명칭.

이 소년이 악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던 자질.

흑마법사로서 이상적인 재능이라 할 수 있는 짙은 마기를 바라보던 나는.

“후후후후후…….”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타오르는 모닥불을 구경하는 것처럼 푹 빠져서 내게 피어오르는 이 힘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꽤 멋지지 않아?’

오른손에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을 움켜쥔 채 즐거이 웃는 악역이라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 시절 두고 온 어린 감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아아, 동심이 되살아나고 있어.

이해하지?

사내라면 자고로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기운을 피어오르면서 멋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이곳이라면 당당하게 누릴 수 있다.

누구도 나를 안타깝게 보지 않아!

왜냐하면 이곳에는 마법도, 검기도 존재하는 세상이니까.

‘오른손에 흑염룡이 피어오르는 게 가능한 세상이라니!’

꿈과 희망이 가득하구나.

‘……의외로 좋은 거 아냐?’

처음에 시안이 되었을 때는 당황했다.

그야 악역이 된다는 건 장래에 비명횡사한다는 뜻.

특히나 시안의 최후는 썩 유쾌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악행의 끝을 달린 시안은 결국 그의 갱생조차 단념한 주인공에게 자비 없이 썰리며 세상을 저주하면서 죽어 갔으니까.

당연히 이렇게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런 미래를 알면 절망하는 게 보통이리라.

나도 처음에는 두통을 느꼈을 정도니까.

하지만.

‘죽지 않으면 되잖아?’

인생은 긍정적이어야 하는 법.

개척하는 길을 오로지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뿐.

‘그리고 달리 방법도 없고.’

아마 나는 다시는 ‘안시한’의 인생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묘하게 본능이 이를 가르쳐 준다.

그날의 나는 죽었다고.

그렇다면?

‘시안으로서 살아가야지.’

악역으로 살아갈 운명이 되었다.

그럼 이에 대한 올바른 반응은 무엇일까?

절망하고 생존을 갈망하면서 겁을 먹은 채 구석에 숨어서 그냥 덜덜 떨어야 할까?

주인공에게 아부를 떨며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이라도 해?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저기 어디 정글에라도 처박혀 있을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그게 무슨 재미가 있는데?

모처럼 게임 속 세상에 왔다.

‘그럼 인생을 즐겨야지.’

실은 이 얼굴도, 마기가 피어오르는 이 몸뚱이도 제법 마음에 든다.

감성을 자극하는 게 묘하게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단 말이지.

그 외에도 이 세상에는 내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차고 넘친다.

‘죽지 않을 악역이 되면 되는 거야.’

미워할 수 없는 악이라는 게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멋지다고 생각한 악역이 있지 않은가?

주인공보다 응원하고 싶고.

주인공보다 강하고.

‘저 비겁한 주인공을 응징하소서!’

매번 새로운 무기니 동료니 심지어 애인까지 데려와서 염장이나 지르는 주인공에게 쓰러지는 악을 동정한 적이 있는가?

“이 인생 살아 볼 만하지 않아?”

운명을 거스르는 방법만을 고민할 게 아니라 역으로 거머쥐어 지배하자.

부하에게 관대하며.

누구보다도 강하고.

어느 누구도 감히 얕잡아 볼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보면?

무엇보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니, 누구보다 큰 꿈을 꿀 권리가 있다.

예를 들면 세계 정복?

주인공보다는 악당에게 어울리는 진취적인 꿈이 아닌가.

“……즐겁겠는데?”

이 얼굴로 살아갈 의욕이 갑자기 팍팍 치솟기 시작하는군.

손에 움켜쥔 마기를 그대로 쥐어 터트리듯 거두며, 나는 웃음을 지었다.

순진하게 웃는 게 아니다.

좀 더 품위 있고 고고하게.

다리를 꼬고 세상을 얕잡아 보는 느낌으로.

“이왕 게임 속 세상에 온 거 즐겨야겠지?”

이곳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무엇이 나를 죽게 할지.

무엇을 하면 내가 더 강해지고 부유해질지.

그리고.

“뭘 해야 내가 멋져 보일지도.”

즐기지 않는 게 손해지.

모처럼 얻은 인생을 낭비하기에는 내 미래가 기대되어서 주체를 할 수가 없군.

‘악당! 까짓것 해 보자!’

수틀리면? 그건 그때 방법이 있으니까.

나만의 밝은 미래를 꿈꿔 보고 있으니 슬슬 열차의 풍경이 바뀐다.

평원 끝에 도시의 방벽이 보인다.

“오오……. 드디어 도착하는군.”

목적지인 제국의 수도.

그리고 그곳에 있는 아카데미.

게임의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곳이자 앞으로 나 ‘시안’의 인생이 펼쳐질 곳.

“여기가 내 인생의 무대다!”

그래, 주인공의 시대가 아니다.

바로 시안의 시대가 열릴 곳이니.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악당이 될지어다.

“그럼 어디 이 망할 게임이나 즐겨 보자.”

망할 연애 엔딩도.

극한 난이도 솔로 엔딩도 아닌.

나만을 위한 최고의 엔딩을 보여 주자.

나는 시안이 되자마자 목표를 정하였다.

나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


지은이 : 송수하

제작일 : 2021.11.12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시월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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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11-39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