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자꾸 먹고 싶어!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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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01



후르륵!

젓가락에 감긴 뜨끈한 면발이 입 안으로 매끄럽게 빨려들어 갔다.

면발이 사라지며 입가에 남은 건 벌건 짬뽕 소스.

얼큰한 고추기름에 얼얼해진 혀를 치즈가 부드럽게 감쌌다.

“와, 진짜 존맛.”

“그렇죠? 출출할 땐 짬뽕 파스타가 최고라니까요.”

“역시 CS 편의점 스테디셀러.”

“근데 이거 출시된 지 엄청 오래되지 않았나?”

“10년 넘었죠, 아마?”

간단하게 야식이나 먹자고 편의점에서 사 온 ‘짬뽕 파스타’ 컵라면은 꽤 반응이 좋았다.

그때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걔는 지금 뭐 하고 살까요?”

“걔라니, 누구?”

주어가 없는 말에 다른 이가 궁금한 듯 되물었다.

“그 있잖아요. 십몇 년 전인가? 되게 유명했던…….”

“아, 그 미각 신동? 이 짬뽕 파스타 만든 애?”

그 물음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도 없이 TV에서 사라져 버린 그 애의 행방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 때문에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TV에서 보게 되면 좋겠어요. 돌아온 천재, 뭐 이렇게.”

그녀의 말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나는 남들 몰래 쓰게 웃었다.

‘글쎄, 그럴 일은 영영 없을걸.’

확신의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사라진 그 미각 신동이 바로 나였으니까.

난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그 사고만 없었다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 텐데.’



* * *



맛을 보다.

아주 평범한 이 표현에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맛은 왜 본다고 하는 거예요? ‘맛을 먹다’가 맞지 않아요? 맛은 먹으면서 느끼는 거잖아요?”

“음, 그건 말이죠.”

기습적인 질문에 토끼반 선생님의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갔다.

평소 애들이 하던 “모래는 무슨 맛이에요?”, “똥은 왜 싸요?” 같은 질문이 아니라서 약간 놀라신 것 같았다.

선생님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그때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저 답 알아요!”

“그럼 일어나서 친구들에게 말해 볼까?”

선생님은 내가 나선 걸 무척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엄청 간단한 건데, 애들은 왜 모르는 거지?’

난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쨌든 반 애들 중에서 나 혼자만 손을 든 거니까.

그래서 힘차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 왜 맛을 본다고 하냐 하면요. 맛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 순간.

놀랍도록 주위가 조용해졌다.

날 보는 다른 애들의 눈이 하나같이 커다랗고 동그래졌다.

심지어 선생님조차 그랬다.

“맛이 보여? 어떻게?”

선생님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일제히 쏠린 수많은 시선 속에서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왜 모르는 거지?’

난 어색함에 주뼛댔다.

“어, 그러니까 짠맛은 네모, 단맛은 동그라미…….”

순간,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가 내 입을 막았다. 눈이 마주친 선생님은 소리 없이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때 알았다.

난 남들과 다르다는 걸.

내 이름은 유일한.

올해 나이는 아홉 살.

내겐 맛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 * *



맛있는 냄새가 폴폴 풍기는 초저녁의 부엌.

아빠가 내미는 숟가락은 언제나 내게는 쉽고 재밌는 문제였다.

“일한아, 이거 맛 좀 봐 줄래?”

“이게 뭔데요?”

“비빔국수 양념장.”

숟가락을 입에 넣자, 눈앞에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매콤한 삼각형.

달짝지근한 동그라미.

짭조름한 사각형.

꼬꼬마 시절부터 봐 왔던 익숙한 광경이었다.

날 진찰했던 어떤 의사 선생님은 내 능력을 ‘아마도 공감각일 확률이 높다.’라고 진단했다.

더불어 미각도 놀랍도록 발달한 케이스라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특출나게 예민한 내 혀는 일상에서 꽤 쓸모가 있었다.

지금처럼 요리를 할 때라든가?

“아빠, 고춧가루 조금 더요. 식초도 한 숟갈 더 추가.”

“오케이, 아들.”

아빠는 주저 없이 내 말을 따랐다. 그렇게 다시 만들어진 양념장의 맛이란.

“캬아! 끝내주네.”

아빠는 탄성을 내질렀다.

휴일 아침에 냉장고에서 막 꺼낸 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입에 묻은 양념장을 닦아 내기도 전에 아빠는 내 머리부터 격하게 쓰다듬었다.

“요 기특한 녀석, 우리 아들 덕분에 매일 밥 먹는 게 즐겁다니까!”

솜씨는 좀 서툴러도 요리하기를 즐기는 아빠. 부족한 맛을 꼭 집어 낼 줄 아는 어린 나.

요리를 할 때, 우리는 제법 합이 잘 맞는 콤비였다.

후르륵!

달고 매콤한 비율이 절묘한 비빔국수를 한입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아빠는 이 세상의 행복을 한 손에 모조리 거머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가방에 숨겨 놓은 2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꺼내는 것도 대개는 이런 타이밍이었다.

붉은 비가 죽죽 내린 시험지를 보고도 아빠는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괜찮아. 우리 일한이는 수학을 좀 못해도 혀는 아주 똑똑하니까!”

혀가 똑똑한 아이.

아빠의 평가는 정확했다.

혀가 똑똑한 꼬마에 대한 소문이 작은 동네에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김치 명인인 옆집 할머니의 비법을 딱 한 입만 먹어 보고 바로 알아맞혔을 때.

할머니는 진심으로 감탄하셨다.

“어린것이 참 용하기도 하지. 혀 하나는 타고났네, 타고났어!”

어떤 아줌마는 호들갑스럽게 이런 얘길 하기도 했다.

“그 있잖아요, 절대미각이라는 거! 유명한 셰프들은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던데, 일한이도 혹시 그 절대미각 아닐까요?”

절대미각.

아홉 살짜리 초딩에게 ‘절대’가 붙는 단어는 뭐든 꽤 근사해 보이기 마련이었다.

난 내 능력이 맘에 쏙 들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우리 집 부엌 말고도 뜻밖의 장소에서 빛을 발했다.

“일한아, 오늘도 편의점 갈 거야?”

“당연하지!”

먹을 걸 좋아하는 내 취미는 편의점 음식 섞어 먹기.

일명 꿀조합 찾기였다.

타고난 절대미각 덕분에 인터넷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꿀조합 레시피도 여럿 만들었다.

그래서 내 하굣길은 언제나 나와 함께 편의점에 가고 싶어 하는 애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막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데, 절친 준혁이가 스마트폰을 불쑥 내밀었다.

언제나 뽀얗던 그 애의 얼굴은 아침부터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뭔데 그래?”

코앞까지 다가온 폰 화면엔 웬 예능 방송이 재생 중이었다.

-지우 씨! 오늘 보여 줄 야식이?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요. 인터넷에서도 유명하죠? 미트떡 정식! 재료는 보다시피 편의점에서 쉽게 구하실 수 있고요.

CF의 한 장면처럼 상큼하게 미소 짓는 아이돌 스타.

그는 같은 반 여자애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아이돌 그룹 ‘포켓 비스트’의 비주얼 멤버였다.

“미트떡 정식! 이거 일한이 네가 처음 만든 거잖아?”

그거야 같은 반 애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이 꿀조합을 만들어 먹느라 우리 반 애들은 물론이고, 동네 초딩들의 용돈까지 편의점에다 몽땅 털리곤 했으니.

난 어리둥절했다.

“이게 왜 방송에서 나와?”

“네 꿀조합이 인터넷에서 완전 유명하니까 그렇지!”

날 보는 준혁이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너 쩐다!”라고 외칠 듯했다.

“매운 떡볶이에다 토마토소스 미트볼을 섞은 거 최고야! 치즈도 엄청 잘 어울리고. 마지막에 주먹밥 부숴서 싹싹 비벼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우리 큰누나도 무지 좋아해.”

핸드폰 너머로 보이는 준혁이의 얼굴은 꽤 신나 보였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만든 편의점 꿀조합들을 열심히 인터넷 커뮤니티에 뿌리고 다닌 게 바로 준혁이니까.

어쨌거나.

내가 만든 ‘미트떡 정식’은 방송에 나온 이후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 인기는 우리가 자주 가던 CS 편의점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 미트떡 정식 관련 제품이 엄청 잘나가니까 수량 꼭 체크해 놔라. 안 떨어지게.”

편의점 점장님은 교대하는 아르바이트 형에게 종종 이렇게 일렀다.

그래도 곧잘 품절되는 미트볼과 떡볶이 상품을 보면서 난 꽤 뿌듯함을 느꼈다.



며칠 뒤.

준혁이 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준혁이의 큰누나, 리아 누나는 내게 커다란 쿠키 상자를 건넸다.

의외의 부탁과 함께.

“일한아, 방송 나가 볼 생각 없니?”

“네, 없어요.”

난 단칼에 거절했다.

왠지 귀찮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꿈쩍도 않자 누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날 꼬드겼다.

“일한아, 걸그룹 누구 좋아해? 이번 게스트로 비비걸스도 나오는데.”

“진짜? 비비걸스 나와?”

나 대신 낚인 자신의 막냇동생을 보며 누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다른 제안을 해 왔다.

“일한아, 누나가 치킨 사 줄까?”

나도 모르게 볼이 움찔했다.

그 찰나의 반응을 리아 누나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내일은 떡볶이랑 순대 어때? 튀김이랑 만두도 같이. 아니다, 너 놀러올 때마다 누나가 야식 시켜 줄게.”

무한 리필 야식.

생각만 해도 입이 행복해지는 보상이었다.

“감자튀김 추가해도 돼요?”

“물론이지!”

“와, 대박! 누나가 웬일이야?”

친구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마침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송 나갈게요!”



* * *



리아 누나는 인기 예능 프로인 <골든 데이>의 방송 작가였다.

녹화 당일.

출연자 대기실에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잘못 섞여 있는 건 아닌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옆에서 들리는 다른 애들의 대화 때문이었다.

“난 요즘 대학에서 교수님께 수학을 배우고 있어. 너는?”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있어. 올해 국가대표로 뽑혔어.”

“국제 콩쿠르 나간 건 나뿐이야? 피아노로 상 탔는데.”

나와 함께 방송에 출연할 애들은 누가 봐도 신동들이었다.

자기들끼리 소개를 끝낸 애들은 유일하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나를 쳐다봤다.

“넌 어떤 분야로 섭외 받았어?”

“어, 나는…… 미각 신동.”

“그게 뭔데?”

“음, 그게.”

난 당황했다.

‘내 특기는 간을 잘 보는 것뿐인데.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한심해 보이고.’

사실 미각 신동이란 그럴듯한 호칭도 리아 누나가 지어 준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신동들이 바라보는 시선에 내가 머뭇거릴 때.

똑똑!

힘찬 노크 소리와 함께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리아 누나였다.

나와 눈을 마주친 누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물었다.

“애들아, 준비됐니?”



* * *



‘역시 나오지 말 걸 그랬어.’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연예인 게스트와 다른 신동들의 재촉하는 듯한 눈빛.

카메라 뒤에서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리아 누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어쩌면 좋지?’

육수가 펄펄 끓고 있는 냄비.

고민에 빠진 내 앞엔 접시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그 위에 놓인 멸치, 파, 다시마, 마늘, 표고버섯, 황태 등 다양한 재료들.

그것들은 끓인 육수를 단 한 모금 맛보고 내가 맞춘 재료들이었다.

여기까진 순조로웠다.

이제 남은 접시는 딱 하나뿐.

마지막 재료를 감춘 은색 커버가 조명 아래서 빛났다.

MC 아저씨를 비롯해 녹화장에 있는 모두가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자, 이제 마지막 재료! 미각 신동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요?”

호록.

난 육수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눈앞에 떠오르는 맛의 도형들.

그 조합 중에 한 가지.

절대미각이라고 불리는 내 혀가 알지 못하는 맛이 있었다.

자꾸자꾸 먹고 싶어!


지은이 : 기이한

제작일 : 2021.07.27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팜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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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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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