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1화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게시판에 올라온 몇 줄짜리 글에 불과했으니까.
내용은 간단했다. 지금 삶에 불만 있으면 글을 남겨라.
그럼 2회 차를 살게 해 주마. 아무리 봐도 어그로였지만.
이상하게도 조회 수가 전혀 올라가지 않는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에 글을 클릭했다. 그게 실수였다.
[ㅋㅋㅋ 인생 2회 차임? 나쁘지 않네. 나 좀 시켜 주셈.]
내용을 읽고 나도 모르게 반쯤 장난으로 글을 남긴 것이다.
사실, 내 인생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삶이었다.
공장에서 하루 벌어서 겨우 하루 먹고사는 그런 삶.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어린 시절에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재산도 친척에게 빼앗겼다.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다만 대학조차 나오지 못한 나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간 다 됐네. 빨리 끄고 자야지.”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새벽 6시까지 출근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시간은 오후 10시. 나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게 어제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눈앞에 있는 반투명한 메시지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인생 2회 차 복권에 당첨되셨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라피스 드라펠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 게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십시오.]
라피스 드라펠른.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는 내가 즐겨 하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일 것이다.
다만, 그리 중요한 역할은 아니다. 오히려 엑스트라에 가깝다.
내가 하는 슬레이어라는 게임은 전형적인 판타지 게임이다.
그리고 라피스는 초반에 등장하는 보스다…… 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초반 보스라고 보기에도 애매했다.
왜냐하면 진짜 라피스는 이미 진작에 마족에게 살해당했으니까.
정확히는 변신 능력이 있는 악당이 라피스를 죽이고 변장한 거다.
즉, 진짜 라피스는 게임에 정식으로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문제는 내가 그 라피스 드라펠른이 되었다는 소리인데.”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캐릭터 중에 이 녀석이냐.
초반에 나오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엑스트라로 뭘 어떻게 하라고.
원래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게다가 게임 캐릭터가 되어 버린 배경도 어이가 없다 못해 웃긴 게.
그냥 답글을 달았을 뿐인데 이렇게 되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물론 하나하나 따지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일단 귀족은 귀족이고.
거기다 자신의 영토를 가진 영주니까. 단지, 모든 걸 뺏기니 문제일 뿐.
슬레이어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대륙을 지배하는 마왕에게 대항하는데.
이때 쥐뿔도 없는 주인공의 기초 세력이 되어 주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즉, 주인공의 거름이 되어 주는 것이 라피스의 존재 의의라 할 수 있겠지.
“진짜 싫다.”
갑자기 날벼락 맞은 것도 기분 나쁜데. 초반에 죽는 거름 같은 놈이 되다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어버렸고.
학창 시절에는 겨우 고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철저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아무런 힘도 빽도 없는 나를, 학교에서 굳이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자리 좀 잡고 사람구실 하려 했더니. 이렇게 나를 엿 먹여?
“그냥 이대로 놀고먹다가 죽을까.”
그렇게 썩 나쁜 것은 아니다. 원래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인생이었으니까.
차라리 지금은 미련 없이 놀고먹다가 죽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천천히 그걸 읽어 보았다.
[게임을 클리어할 경우. 보상으로 원하는 것을 한 가지 얻을 수 있습니다.]
[부, 명예, 인맥. 당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는 겁니다.]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된다고?”
이제야 조금 관심이 생겼다. 원하는 거? 당연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지.
이를테면 사고로 잃은 부모님이라거나. 아님 평생 놀고먹을 정도의 돈도 있고.
물론 게임을 클리어했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그 정도야 뭐.
오히려 이건 나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왜냐면 난 게임 1,700시간 고인물이니.
“퀘스트도 있어?”
정말 게임처럼 퀘스트가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퀘스트 : 생존』
등급 : S
내용 : 라피스 드라펠른의 운명을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용사 파티가 영지에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생존하십시오.
조건 : 5년 동안 생존 [남은 기간 : 1,825일]
보상 : 능력치 스텟 200, 상급 스킬 북
실패 : 게임 오버
스킬 북은 이 게임에서 스킬을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소비 아이템이었다.
슬레이어는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스킬 북이 없으면 상급 스킬을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상급 스킬 북을 얻으려면 대도시로 가거나, 네임드 몹을 잡아야 했다.
즉, 상급 스킬 북의 가치는 높으면 높았지, 절대로 낮은 가치라고 할 수 없었다.
“일단 하나하나 다 살펴볼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길 수 있으니까.
나는 가장 먼저 상태 창을 열었다. 우선 라피스의 기본 스텟 확인이 먼저였다.
『상태 창』
이름 : 라피스 드라펠른
레벨 : 1
직업 : 영주 [남작]
성향 : 중립
『능력치』
근력 : 30 민첩 : 25
지능 : 17 마력 : 10
『스킬』
영주의 권한(C), 검술(B), 연공법(D)
일단 전체적으로 애매하다. 엄청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먼저 능력치는 마력이 낮은 것만 빼면 초기 능력치치고 오히려 높은 편이었다.
다만, 스킬이 쓸모가 없다. 검술은 검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초 스킬이고.
연공법도 말 그대로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초 of 기초 스킬이었다.
요약하자면 개나 소나 전부 가지고 있는 스킬만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즉, 스킬로 따진다면 초반에 얻는 동료들 중에서 단연코 최악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영주의 권한은 처음 보는 스킬인데. 난 영주의 권한을 한번 살펴보았다.
『영주의 권한』
숙련도 : C
종류 : 패시브
설명 : 영주로서 영지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경비병을 동원하는 등. 여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본인의 영지에서는 능력치가 20% 증가한다.
말 그대로 영주로서 권력을 뜻하는 스킬인가. 일단 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본인의 영지에서 전투할 경우, 무려 모든 능력치가 20%씩이나 증가한다니까.
문제는 나중에 주인공에게 영지를 빼앗기면 쓸모가 없어지는 스킬이라는 건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산더미처럼 있는데.
거기다 5년 뒤에 찾아올 주인공 파티를 지금 걱정할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이렇게 누워서 놀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우선 이거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라피스 드라펠른이 사망하고, 그 변신쟁이가 나를 대신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언제부터 가짜로 변했는지는 모른다. 누구도 눈치 못 챘으니까.
심지어 10년 넘게 섬겼던 집사조차 가짜로 변한 것을 전혀 몰랐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애초에 라피스가 좋은 영주는 아니었다는 소리인데.”
주인공 파티가 도착했을 때, 이 영지는 빈말로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영지민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뼈가 앙상했고. 온갖 범죄는 다 일어났었다.
그런 주제에 소문으로 영주는 세금을 횡령해 고기와 술로 배를 채웠으니.
만약 정말 라피스가 선했었다면, 갑자기 변했다고 언급이라도 있었겠지.
근데 그런 게 없다는 것은 변하기 전의 진짜도 거의 다를 게 없었다는 뜻.
『영지』
이름 : 드라펠른 남작령
영주 : 라피스 드라펠른 [영지민 지지도 25%]
군사력 : 보병 100명, 궁병 50명
인원 : 17,000명
세금 : 매우 무거움
방어 : 매우 낮음
영지 창은 영지 정보와 설명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영지 스텟 창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드라펠른 남작령의 상황은 최악이나 마찬가지였다.
드라펠른 남작령에서는 걷은 세금의 7할 이상을 본인이 쓸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세금을 엄청 걷는데도 방어가 매우 낮다는 것은 대놓고 세금이 낭비된다는 뜻이다.
“이걸 어떻게 한다…….”
세금을 줄이긴 해야 한다. 지금은 엄청나게 무거우니까. 하지만 크게 줄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반발이 심하니까. 애초에 지방 이민족들이 투항해 생긴 영지라 기득권의 힘이 매우 강하다.
거기다 세금을 줄이면 내 돈이 줄어드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영지민을 처지는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막나가면 원작의 라피스처럼 죽을 게 뻔하니까. 나는 바로 집사를 호출했다.
내가 부르기 무섭게 바로 문을 열고 들어온 집사는 하얀색 머리카락에 수염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빈센트. 모험하느라 바쁜 주인공을 대신해 영지를 관리하는 영지 관리 NPC다.
[산적들이 습격했습니다, 영주님.]
[보급품을 구해 왔습니다.]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영주님.]
[거래를 제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지가 습격당하면 알려 주는 것은 물론이고. 영지에 필요한 각종 보급품을 구해 오거나.
심지어 상단과 거래를 주선하는 등. 거의 만능 NPC나 다름없기 때문에.
커뮤니티에서는 사실 세계관 최강자가 빈센트다라는 밈도 존재했었지. 빈센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지금부터 영지 내부에서 걷고 있는 세금을 20% 줄인다. 그리고 앞으로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자료를 조사해서 내게 가져오도록.”
“다른 분들이 별로 좋아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상관없다. 불만 있으면 내게 오라고 해.”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저 무거운 세금은 아주 조금이라도 줄이긴 해야 한다. 돈이 줄어드는 것은 좀 그렇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영지민 지지도를 어떻게든 높여서 지지를 얻는 것이었다.
이 게임에서는 영지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그 영지의 지지도가 높아야 한다.
즉, 지지도가 낮으면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 된다.
『영지』
이름 : 드라펠른 남작령
영주 : 라피스 드라펠른 [영지민 지지도 25%]
군사력 : 보병 100명, 궁병 50명
인원 : 17,000명
세금 : 매우 무거움
방어 : 매우 낮음
아직 공표되지는 않은 모양인지. 영지민 지지도에는 그렇게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영지민의 지지도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영지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배가 부르게 하면 그만이다.
말로 기본적인 의식주만 보장을 해줘도 영지민 지지도가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비록 아직은 지지도가 낮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할 터.
“영주님! 이게 사실입니까?!”
“멋대로 세금을 줄이시다니요!”
“이건 지독한 폭정입니다!!”
“…….”
문제는 영지의 기득권 세력이지. 가득 몰려온 그들을 보며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으로 안타깝다. 만약 지금 내게 힘이 있었다면, 저것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는 건데.
슬기로운 악당 영주생활
지은이 : 맨첼
제작일 : 2022.04.27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조하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405-006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