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매니저지만 데뷔하겠습니다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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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1화



“형은 이 일이 참 좋은가 봐요.”

새로 맡게 된 지 얼마 안 된 이준범이 나를 보고 말했다.

하얀 피부에 동글동글한 귀염상으로, 아직 정식으로 데뷔를 하기도 전인데 누나 팬들이 제법 생겨난 아이였다.

러블리, 큐티에 섹시 콘셉트까지 갖다 붙이는 대로 어색하지 않게 소화한다는 평판을 듣고 있어 회사에서 기대가 많은 녀석인데 주위 사람도 제법 살갑게 챙길 줄 아는 모양이었다.

“어, 응. 그렇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운전을 하며 웃으면서 물었더니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알긴요. 당연하잖아요. 좋아서 하는 게 아니면 누가 이런 병신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웃으면서 일해요.”

“……어?”

내가 잘못 들었나?

“뭐가 어예요? 형 귀 안 좋아요? 하긴, 안 좋을 만도 하겠다. 형, 저는 형 같은 사람들 심리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다른 사람을 향한 함성을 항상 들으면서 들러리로 사는 인생은 어때요? 저건 내 몫이 아니니까 괜찮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게 안 되던데. 저보다 인기 많은 놈들은 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인기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나를 보고 웃었다.

기분이 어땠냐고?

놀랍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놈이 한둘이어야지.

“그래도 너,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데뷔도 하기 전에 아웃이야. 요즘에는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한두 사람만 있는 곳에서 한 얘기가 다 퍼지기도 해. CCTV 없는 곳을 찾기도 어렵고.”

“그거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내가 너를 협박해서 뭐 하겠냐. 나 네 매니저야. 아직 데뷔도 하기 전에 회사에서 이 정도로 지원해 준다는 건 너한테 기대가 많다는 뜻이고 네가 잘못되면 회사에도 타격이 간다는 말이잖아. 나는 회사 오래 다니고 싶다.”

“아아…….”

어련하겠냐는 표정이 돌아왔다.

이 바닥에서 이런 놈을 보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내가 할 일에만 신경을 썼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하는 게 내 목표다.

이준범도 더 이상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회사에서는 데뷔 전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SNS에 녀석의 활동을 계속 올렸고 지금은 그 촬영을 위해서 이동하는 중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이준범은 환하게 웃으며 예의 바르게 굴었다.

그래. 사회생활 해야지.

일단 이동을 마치고 나자 시간 여유가 생겼다.

그 틈을 타서 나는 밀린 웹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별 볼 일 없던 삶을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다른 곳에서 눈을 뜨고 그곳에서 승승장구하는 내용인데 나한테도 한 번만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될까 하면서 소설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남들이 로또를 사서 1등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는 빙의를 꿈꾸고 있었다.

그게 될 일이냐고 비웃을 건 없다.

1등에 당첨되는 건 뭐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도 그건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하는 일 아니냐고?

빙의도 모르는 거다.

어딘가에 정말 빙의한 사람이 있는데 비밀이 밝혀지는 게 이로울 게 없어서 조용히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촬영이 끝나 갈 무렵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가수 팀의 한민우 실장이었다.

“예, 실장님.”

-어. 너 지금 하는 일 없지?

“준범이 촬영하는 중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급한 일이 생겼다.

그 급한 일이라는 것은 드라마 촬영 중인 솔렉스 멤버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으니까 가서 픽업해 오라는 거였다.

이런 일에 내가 동원되는 일은 많았다.

처음에는 멤버를 데리러 갈 사람이 없는 이유를 둘러대기라도 하더니 이제는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가기 싫다고 했는데 그때 내 이름이 떠올랐나 보지.

나는 그런 현장에 가는 것도, 차를 운전하는 것도 싫지 않아서 싫은 내색 없이 가곤 했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천직이라고 할 만큼 나는 현장을 좋아했다.

솔렉스를 처음에 맡은 건 나였다.

아이들이 연습생일 때부터 같이했었고 도저히 못 하겠다면서 집으로 가 버린 아이들을 설득해서 데려오기도 했다.

다행히 녀석들은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그 후에도 연예계에서 입지를 다져 가고 있었다.

솔렉스가 잘되면 보상이 따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키운 아이돌이 회사의 간판스타가 되면 내 영향력도 커지고 승진도 할 거라고 생각하며 꿈에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일은 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될 것 같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제부터는 자기들이 하겠다며 아이들을 데려갔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이제야 자기들도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렸다.

그러면서 진저리를 냈고 그 후로는 나와 마주쳐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부지기수였다.

출발하고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실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야, 거기는 됐고. 너 지금 어디야.

한 실장은 다른 곳에 일이 생겼다면서 그쪽으로 가 보라고 했다.

지금 가야 하는 곳보다 더 먼 곳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솔렉스 멤버를 데리러 가는 게 귀찮아서 그 일을 나에게 토스했던 사람이, 더 귀찮은 일이 생기자 그냥 자기가 솔렉스 멤버를 데리러 가겠다고 한 것이리라.

그리고 한 실장은 이번에도 이유조차 말하지 않고 나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는 거고.

“…….”

내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한 실장이 자기도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말했다.

-아니, 타이포 민재가 사람들이랑 시비가 붙었나 봐. 그 자식은 그렇게 조심하라고 하는데도. 자격지심이지. MR 잘못 틀어서 립싱크 논란 일어나서 애가 골치 많이 썩었잖아. 그런 일은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알겠습니다. 위치 찍어서 보내 주세요.”

-그래.

처음에는 열정이었다.

무너져 가는 사람들을 다독이고 일으켜 주는 데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격려하는 말을 듣고 다시 힘을 내서 꿈을 이루고 데뷔하는 아이들을 보면 성취감도 들었다.

돌아오는 게 없어도 나는 그 아이들을 만든 게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것은 내가 키운 연습생을 가로채는 사람들과 어린 연습생의 비아냥, 그리고 이런 궂은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냥 내가 문제인 건가?

주소와 함께 한 실장이 한마디를 더 보냈다.


-하드 캐리 쇼케이스 두 시간 남았으니까 응원해라. 네가 발굴한 애들이잖아.


하드 캐리 역시 내가 업어 키우다시피 했다가 한 실장이 막판에 가로채 간 애들이었다.

이제부터는 자기가 하드 캐리를 맡을 테니까 다른 연습생들 데리고 다니면서 업무 처리 잘하라고 했던 게 몇 달 전이었다.

확인 사살을 하려고 하는 건가?

이번에도 아이들의 데뷔 현장에 내가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면서 상처를 후벼 파기라도 하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건 자기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데 그 말을 듣고도 무감했다.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자주 겪다 보니 둔감해진 건가.

한 실장이 그러는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해도 마땅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에게 맡겨진 애들 중에 데뷔한 애들이 많은 걸 보면 내가 아이들을 잘 케어 하나?

그런 애들을 데려가 데뷔시키면서 애들이 잘 된 게 나 때문이 아니라 자기 능력인 것처럼 하려고 나를 배제하고 따돌리려 한 걸까?

에이. 아무래도 그건 내가 너무 나간 거겠지.

내가 도착했을 때 타이포 민재는 제 매니저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거기까지 간 게 의미 없게 돼 버렸지만 그래도 복잡한 일을 할 필요가 없어서 잘됐다 싶었다.

민재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번호를 바꾸고 나에게 알려 주지 않은 것이다.

내 손을 떠나면 아이들은 매뉴얼이라도 되는 것처럼 번호를 바꿨다.

화가 나야 하는데 따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따져도 바뀌는 게 없고, 왜 미리 전화를 해주지 않았냐고 하면 내 말에 대꾸를 하지도 않는다.

폭탄을 떠넘긴 사람을 보는 것처럼 화가 난 얼굴을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그게 맞을 거다.

내가 넘긴 게 아니라 그들이 가로챘다는 것을 잊어서 그렇지.

한 실장에게 보고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웬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지.

도로가 순식간에 빗물에 잠길 정도로 엄청난 폭우였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오던 차 한 대가 그 빗길에서 미끄러져 내 차를 덮쳤다.

눈이 부신다 싶더니 날카로운 굉음이 귀를 때렸다.

통증을 느끼며 든 생각은 피곤하다는 거였다.

모든 게.



* * *



의식을 찾았지만 바로 눈을 뜨지는 않았다.

‘제발. 제발. 제발.’

이번에는 빙의다.

빙의하는 거다.

기필코. 기필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후회하냐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럼 그 삶을 계속 살고 싶냐고?

아니. 그렇게까지는.

그 삶은 충분히 살아 봤으니까 이제 재벌 4세 같은 거로 깨어나자.

나는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얼마 만에 깨어난 건 줄 아냐면서 나를 보고 놀라고, 밖에서 나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명품으로 휘감은 부인이 왜 엄마를 못 알아보는 거냐며 눈물을 찍어 내고.

그러면 뭐라고 말할지도 알고 있었다.

수많은 설정, 수많은 대사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을 기억해 냈다.

‘그래. 나는 준비됐다.’

그리고 눈을 떴다.

“…….”

아무도 없었다.

내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병실?

그런 것도 없었다.

그냥 삭신이 쑤시고 아플…….

응?

그건 또 아니었다.

교통사고가 났으니까 특별히 부러지고 찢어진 곳은 없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픈 게 정상일 텐데.

그러다가 아까부터 눈앞에 뭔가 걸리적거리는 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집중해서 보자 홀로그램 같은 것이 나타났다.

‘뭐지? 설마…….’


[업적(아이돌 데뷔시키기 10/10)이 달성됐습니다.]

[1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업적이 달성돼? 혹시 어제 그 쇼케이스로?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게 다 뭐야? 빙의는 아니지만 상태 창은 보인다 이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고?’

나는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한 채 상태 창을 자세히 보았다.


[진행한 업적]

낙심한 연습생을 설득하세요. (10/10)

낙심한 연습생을 설득하세요. (100/100)

낙심한 연습생을 설득하세요. (1,000/1,000)

낙심한 연습생을 설득하세요. (10,000/10,000)

연습생의 가창력을 향상시키세요. (10/10)

연습생의 가창력을 향상시키세요. (100/100)

연습생의 가창력을 향상시키세요. (1,000/1,000)

연습생의 가창력을 향상시키세요. (10,000/10,000)

연습생의 춤 실력을 향상시키세요. (10/10)

.

.

.


‘뭐가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지?’

그동안 내가 못 본 건가?

이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혼자서 업적을 달성한 건가?

덕분에 내가 모은 포인트가 5,812나 되었고…….

잘된 건 잘된 거네. 나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보상이 쌓여 있다니.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사실은 4년 전부터 그랬습니다.)]

[재능 향상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멤버를 선택해서 멤버에게 필요한 재능을 포인트로 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연습생 시절을 함께한 아이들의 프로필이 하나씩 떠올랐다.

아이돌 매니저지만 데뷔하겠습니다


지은이 : 여주

제작일 : 2021.12.02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한서진

표지 : 아지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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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11-48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