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화
1. 죽은 헌터
삐, 삐, 삐.
병실에 심전도 모니터가 울린다. 벌써 반년이 넘도록 들어 온 소리. 규칙적이고, 아주 건조한.
그리고…… 엄마는 오늘도 눈을 뜨지 않았다.
“성재학 군.”
재학은 고개를 들었다. 하얀 가운에 뿔테 안경을 쓴 초로의 남자.
엄마의 주치의, 박 교수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찰칵, 병실 문을 닫고 나오자 박 교수는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이런 말 꺼내기 나로서도 쉽지 않네만…….”
슬슬 다른 선택도 생각을 해 볼 때라네, 교수는 말했다.
다른 선택.
재학은 그게 안락사의 다른 말임을 알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어머님 병증은 세계에도 몇 건 보고되지 않은 질환이라네. 게이트가 열린 후 새롭게 나타난 병 중 하나라고 짐작만 할 뿐이지.”
유전적 기저 요인이 의심되는 특발성 뇌병변.
엄마의 진단명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무슨 병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반년이지만 앞으로 몇 달, 몇 년이 될지 모른다는 뜻일세. 치료법이 없으니 소생 가능성도…… 현실적으로는 높지 않다고 봐야겠지.”
교수가 말을 이었다.
“자네 어머님도 하나뿐인 아들이 평생을 본인 병원비에 허덕이길 바라시진 않을 걸세. 한 번 생각해 보게.”
“…….”
박 교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재학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재학은 병실 문 너머, 손등에 링거가 꽂힌 채 움직이지 않는 엄마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았다.
* * *
밤이 되자 노원구의 골목에는 굵은 장맛비가 쏟아졌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사이로 빗물이 작은 강을 이루고, 희뿌연 가로등 불빛이 그 위를 미지근한 기름처럼 떠다닌다.
그리고 그 빗속을 뚫고 한 대의 경찰차가 천천히 달렸다.
“그러니까 결국 다 하나님 잘못이다, 이거야.”
성민이 조수석 창문을 살짝 열고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성경에 보면 나온다고. 응? 6일 동안 세상을 존X 열심히 만들고 딱 하루 쉬셨기 때문에 일주일이 7일인 거라잖아.”
“그래서?”
“첫 단추부터 조진 거지. 한 사흘 만에 대충 만들고 하루 쉬었다고 쳐 봐. 일주일이 나흘이야. 월, 화, 토, 일. 응? 월, 화 토, 일. 씨X 얼마나 좋아.”
“……제발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고 다니지 마라.”
운전대를 잡은 재학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경찰이 종교 비하한다고 욕 존X 먹는다.”
“월, 화, 토, 일이 좀 양심 없으면 월, 화, 수, 토, 일도 괜찮잖아. 3일 일하고 이틀 쉬고 그랬으면 주말 야간 순찰도 웃으면서 한다, 이거야. 안 그러냐?”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성민은 결혼을 좀 많이 일찍 해서 벌써 아이가 하나 있었다. 계획은 아니었고, 사고에 가까웠다나. 어쨌든 재학의 동기 중 자식이 있는 유부남은 아직 성민이 유일했다.
“그리고, 야, 세상이 이 꼬라지가 났는데 씨X 종교 좀 비하하면 안 되냐? 난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우리 엄마 교회 권사인 거 알잖아?”
“알지.”
아닌 게 아니라 성민은 꽤 신실한 집의 아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목에 묵주 팔찌를 차고 있는 것이다.
성민네 어머니가 어디 유럽에 성지순례를 다녀오시며 사 오신 물건인데, 밖에 나갈 때는 항상 몸에 지니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했다. 기독교도가 천주교의 묵주를 찬다는 건 또 미묘했지만 어쨌든 부모의 사랑은 종파를 모르는 법이었다.
그리고 성민은 늘 투덜거리면서도 항상 그 묵주를 손목에 차고 다녔다.
“근데 지금 세상 꼴을 봐라. 게이트가 열리고 무슨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이 씨X 지랄 쌍판을 치는데 이게 하나님의 뜻이냐?”
“나한테 지랄이냐. 난 무굔데.”
“토끼 같은 아내가 토끼 같은 딸을 낳았는데, 주말 밤새 너랑 처박혀 있으려니 분하고 억울해서 그런다. 왜.”
성민이 커피를 마신 종이컵에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재학은 어쩔 수 없이 웃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노원구의 골목은 뿌연 빗소리를 담요처럼 덮고 있었다. 따뜻하고, 또 조용하게.
“……어머니는 좀 어떠시냐?”
“똑같으시지.”
“그러냐.”
성민은 잠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앞 유리의 와이퍼를 보았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낡은 경찰차의 엔진음이 부드럽게 감쌌다.
“혹시 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 있으면 말해. 언제든.”
뜬금없는 말에 재학은 피식 웃었다.
“갑자기 가오는 왜 잡아. 됐어. 아직은 그럭저럭 괜찮아. 그럴 돈 있으면 제수씨 보약이나 지어 드려.”
“제수씨가 아니고 형수님, 인마.”
성민이 말했다.
“그리고 뭐가 괜찮아. 너 돈 때문에 선수 생활도 그만둔 거 아냐. 저번 달에 집도 팔았잖아. 내가 븅신이냐? 경찰 초봉으로 입원비를 어떻게 감당해.”
“안 그래도 의사가 오늘 병원비 얘기하더라.”
“뭐, 돈 더 내래?”
“아니. 뭐…… 벌써 반년째 의식도 없고…… 병원비도 부담스러울 텐데…….”
다른 방법.
“안락사도 고려해 보라더라.”
성민이 재학을 보았다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가, 다시 재학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틀린 말…… 은 아닌데. 너 같으면 그렇다고 호흡기 뗄 수 있냐?”
“못 하지.”
“그렇지? 근데 더 X같은 게 뭔지 아냐.”
“뭔데.”
“안락사도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재학은 애써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아, 드디어 끝나는구나…… 하는.”
“…….”
성민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학은 그 침묵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큰 이해가 되는 순간도 있는 법이므로.
“……분위기 조져서 미안. 좀 재밌는 얘기 할까?”
“말 잘했다. 잠깐 이것 좀 들어 봐 봐. 어제 우리 수진이가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워 왔는데 진짜 세상에서 제일 귀엽…….”
컹! 컹! 컹! 컹!
크르르…… 컹!
성민이 핸드폰에서 동영상을 재생하려 몸을 숙이는데 갑자기 멀리서 개들이 짖어 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니 드디어 우리 딸 자랑 좀 하려는데 무슨 개들이 짖어.”
“또 어디 들개 떼라도 꼬였나……?”
괴수의 초기 피해가 컸던 노원구에는 아직 수습되지 못한 폐건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재학과 성민이 지나는 곳도 아직 그런 폐허가 몰려 있는 골목이었는데, 겨울이면 떠돌이 개들과 괴수에게 주인을 잃은 반려견들이 추위를 피해 숨어들곤 했다.
컹! 컹! 컹!
컹! 컹! 컹! 컹!
“야, 내려서 한 번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거 느낌이…….”
“앞에!!”
그때, 갑자기 순찰차 앞으로 시커먼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재학은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하고 타이어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이미 한 박자가 늦고 말았다.
쾅!
순찰차가 한 차례 크게 들썩였다. 차에 치여 튕겨 나간 검은 형체는 한참을 날아 저 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씨X.”
재학이 내뱉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머리가 새하얗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덜컥, 성민이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씨X…….”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아스팔트에 쓰러져 있는 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폭우로 인해 인상착의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남자. 나이는 아마도 30대 언저리…… 그리고 품에 검은색 스포츠 백을 하나 껴안고 있다.
“……아직 몰라. 아직 몰라. 제발.”
뒤따라 나온 재학이 남자에게로 뛰어갔다.
“저기요, 저기요? 선생님?”
재학은 푹 젖어서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한 손으로 걷으며 필사적으로 남자를 불렀다.
“선생님. 대답 좀 해 보세요. 제발요…….”
남자는 반응하지 않았다. 성민은 남자의 맥박을 확인하려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성민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남자가 번쩍 눈을 떴다.
“헉……!”
성민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남자는 헐떡거리며 핏발이 선 눈으로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선생님,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재학은 너무 안도한 나머지 눈물이 나오려 했다. 하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선생님. 구급차를 불러 드리겠…….”
“괜찮아. 괜찮아요. 각성잡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두 다리로 일어섰다. 그러고는 가방을 고쳐 메더니 절뚝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재학과 성민은 황급히 그를 따라갔다.
“선생님, 잠시 멈춰 보세요. 아무리 각성자라도…….”
“멀쩡합니다.”
“아니, 지금 다리 저시잖아요. 뭐가 멀쩡해요.”
컹! 컹! 컹! 컹!
또다시 개들이 일제히 짖어 대기 시작했다. 왜인지 아까보다 훨씬 가까워진 것 같았다…….
남자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개 소리를 쫓아 신경질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뒤따라온 성민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선생님, 그러지 마시고 구급차를…….”
“너무 늦어요…….”
“네?”
남자는 아주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홱 고개를 돌려 재학을 보았다.
“부탁 하나 합시다.”
“네?”
“아니, 협박 하나 합시다. 경찰이 민간인을 차로 치었다는 거, 언론에라도 나가면 곤란하시죠?”
남자가 말했다.
“오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남자는 메고 있던 스포츠 백 안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매끈한 흑단으로 깎은 작은 나무 상자였다.
남자는 그것을 재학에게 내밀었다.
“이걸 좀 맡아 주십시오.”
“네……?”
남자는 당황한 재학에게 거의 반강제로 그것을 쥐여 주었다. 그 손길에서는 일말의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선생님……?”
남자는 재학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재학의 손을 단단히 붙든 채, 재학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제 얼굴을 기억하십시오. 제 이름은 도영, 정도영입니다. 내일 다시 찾으러 오겠습니다.”
“아니, 저…….”
“그때까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그걸 넘기면 안 됩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재학이 엉겁결에 상자를 받아 들자 남자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미안하다고 작게 덧붙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다시 절뚝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각성자라는 말이 진짜였는지, 남자는 그 불편한 걸음으로도 골목길을 뛰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뭔데, 씨X.”
한참 뒤에 성민이 투덜거렸다.
“……X나 뭐에 홀린 기분이네.”
“야, 일단 서에 가서 젖은 옷 좀 갈아입자. 팬티까지 다 젖었다.”
다행히 차는 멀쩡하네, 성민이 경찰차 앞을 살피는 동안 재학은 흑단 상자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정도영? 재학은 그 이름을 몇 번 입안에서 굴려 보았다. 까끌까끌하게 긁히는 느낌이 어디서 한 번 들어 본 이름인 것 같기도 했다.
“뭐 하냐, 빨리 가자.”
성민이 자동차 시트에 우비를 깔고 앉아 머리를 털며 말했다. 재학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자를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몸을 돌려 순찰차로 향했다.
남자, 정도영이 근처 야산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것은 다음 날 아침의 일이었다.
죽은 헌터를 위한 파반느
지은이 : 김사유
제작일 : 2021.05.27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진선미
표지 : 고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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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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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59-60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