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조련사 0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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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프롤로그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지난여름 때려잡은 모기가 거뭇한 흔적으로 군데군데 남은 고시원 방 천장.

구질구질해서 볼 때마다 지겨웠는데, 지금은 그 익숙함에서 묘한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실패인가?

지랄 맞게 속이 울렁거리는 것 외엔 딱히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해봤지만 다시 풀썩 쓰러졌다.

아, 골 울려.

아프진 않지만 넘어가면서 부딪힌 머리가 띵하다.

나는 실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몸 안에서 울렁거리는 뭔가가 강렬하게 끓어올랐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부작용인가?

힘의 조각을 복용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은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그렇다.

심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한계점까지 차오른 미지의 기운이, 마침내 피부 밖으로 수증기처럼 쏘아져 나왔다.

이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열 받은 압력솥? 아니, 이건 너무 없어 보이니까 기각.

그래, 굳이 말하자면 증기기관차 정도가 좋겠다.

얼결에 든 두 손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빛났다.

그 순간 난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능력개화!

능력을 부여받으면서 마력 개방이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이토록 정신이 맑고 고요해진 건 처음이다.

머리 깊숙한 곳에서 샘솟듯이 튀어나온 신비로운 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동시에 번쩍거리며 선명한 천연색들이 다채롭게 망막에 맺혔다 사라졌다.

클럽 조명이 돌아가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째서 10등급부터가 진짜 헌터의 시작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본능적인 감각.

갑자기 알게 된 지식들을 통해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금세 이해했다.

그리고 몹시 당황했다.

“어……?”

이거, 정말인가?

감동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앞선다.

10등급이 되고 백수 탈출, 그러니까 직업을 얻으면 환호하며 자축하려고 준비도 다 해놨는데…….

이게 뭐시당가.

나도 모르게 어릴 적 쓰던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아, 실수.

서울 생활에 적응한 도시남자답게, 차가운 머리로 상황을 이해하는 거다.

“괴수를 길들인다?”

손을 두어 번 쥐었다가 펴보았다. 괴수. 괴수. 즉 몬스터.

포털을 통해 나타난 정체불명의 생명체들.

지금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나는 그 몬스터들을 길들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당황스러워하는 거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괴수조련사?

그게 좋겠네. 괴수조련사.

뭐라고 달리 표현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는 없다. 살짝 얼빠진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조련이라니. 대체 어쩌라는 거야.

난 말이지. 이런 단어는 19금 매체를 통해서만 겨우 접해본 남자란 말이다!

“에…….”

그러니까.

나는 마력을 이용해서, 몬스터의 정신에 간섭하고.

그 몬스터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거지?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를 생각해 본다.

어, 맞아. 그래. 몬스터를 길들여서 부린다.

게임으로 말하자면…….

“테이밍을 한다는 거네?”

테이밍(taming)이라니. 이런 능력을 가졌다는 헌터는 지금까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어라……. 이거?”

눈을 깜박여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박이야! 이거 대박이잖아!

우와, 한마디로 잭팟이 터졌다!

몬스터는 보통 항력이라고 하여 재래식 무기에는 피해를 입지 않는 에너지 보호막을 가지고 있다.

이를 에너지 실드라고 한다.

애초에 헌터들만이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이유는 헌터의 마력이 보호막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터끼리는 예외다.

맞붙어 싸우면 서로의 항력이 상쇄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싸움에서 이긴 몬스터는 진 몬스터를 잡아먹고 더 강력해지기도 한다.

약육강식.

생태계의 진리는 몬스터라고 해도 피해가지 않는다.

이 능력을 사용한다면 난 10등급 헌터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가 된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들뜬 마음에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나는 곧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젠장, 몬스터는 어떻게 구하지?

조련사의 능력으로 몬스터를 얻으려면, 일단 몬스터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헌터들은 사냥을 하면 몬스터를 죽이지, 굳이 무력화시켜 살려두는 번거로운 짓 따윈 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잡아먹힐 판인데 뭐 하러 그런 무리수를 두겠는가.

이를 어쩐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10등급 헌터만 되면 인생의 꽃길이 열릴 줄 알았더니.

이렇게 골치 아픈 고민이 생길 줄이야.

한참을 끙끙대며 답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오, 바쁜데 누구야!”

다소 짜증스러운 기분으로 폰을 집어 들었다.

딴 데 정신이 쏠리다 보니 생각을 방해하는 세상만사가 귀찮다. 그럼에도 무시하지 않은 건 건 수익이 짭짤한 파티에서 연락 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다.

메시지를 보낸 건 평소 알고 지내던 11등급 보병 파티의 공대장이었다.

사냥하러 가는데 마침 인원이 한 명 부족하다나.

알려줘서 고맙긴 한데 처음부터 부른 것도 아니고, 인원 끼워 맞추려고 연락해 놓고 잔뜩 생색내는 건 좀 어이없다.

그때, 문득 새로운 발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10등급이 된 나는 11등급일 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그렇다면 나 혼자 몬스터 사냥에 나서는 건 어떨까?

적어도 최하급 몬스터 한 마리쯤은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거절하는 답장을 보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비 보관함처럼 쓰고 있는 옷장에서 창과 방패를 꺼내들고, 사냥에 필요한 물품이 가득 든 빵빵한 배낭을 등에 짊어졌다.

한시라도 빨리, 이 놀라운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백수보병, 직업을 얻다



최하급 몬스터의 서식지는 판문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판문점 앞은 장거리처럼 북적이는 헌터들로 가득했다.

서식지까지 가는 이동수단을 구하기 위해 우선 나는 렌트카 업체로 향했다.

다수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니 작은 트럭만 빌려도 충분할 터였다.

우연히 마주친 얼굴만 아는 헌터에게 예의상 고개를 까딱 숙이고 돌아섰을 때, 주머니 속에서 요란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 호식이냐?

“네, 어머니.”

- 요즘 통 네 연락이 없꼬……. 걱정돼서 전화해 봤는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제?

“그럼요! 걱정 마세요.”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니 마음이 아팠다. 차마 어머니는요, 라고 빈말이라도 물어볼 수 없었다.

- 밥은? 제때 잘 먹고 다니구?

“에이, 제가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매끼 잘 챙겨먹고 다녀요.”

대학 때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산 지 벌써 수년째.

그때부터 어머니는 연락을 하실 때마다 습관처럼 식사는 하고 사는지 물어보곤 하셨다.

철모르고 어릴 때야 귀찮게 여기던 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말소리에 묻어나는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 이후론 공연히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남들만큼 물질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자식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저런 식으로 에둘러 물어보신다.

혹시나 밥도 못 챙겨먹을 만큼 돈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걱정스러워서.

- 그 뭣이냐, 헌터란 건 여태까정 하고 있는 겨?

어머니의 물음에 할 말이 궁했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어머니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 내 아들. 평범하게 회사 다니믄서 월급 받으면 안 되것나? 어제도 뉴스에서 봤더니 헌터가 사망률이 높다 하드라. 아부지도 걱정 많이 하신다.

“괜찮아요. 요령만 붙으면 그렇게 위험할 일도 없고요.”

거짓말이다.

하급 헌터의 마력수치는 그리 대단할 게 못 되어서 신체를 완전히 보호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냥 중에 재수 없는 일을 당하면 불구가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렴풋이나마 그런 사정을 짐작하고 계셨던 어머니는 처음부터 헌터의 길을 반대하셨다.

- 우리 호식이. 공부도 잘하구 똑똑한 거 동네서 다 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평범하고 안전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시는 듯했다.

어렸을 적 제법 똘똘하여 공부를 잘했던 나는 고3때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성적이 괜찮았기 때문에 대학은 좋은 곳에 들어갔다.

SKY 같은 최고의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울 안에서 나름 중위권 이상 되는 학교로 취업도 잘된다고 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어 번 돈으로 해마다 내 등록금을 보태주셨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사람 좋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농부였던 아버지가 먼 친척의 보증을 서주셨다.

결과는 참담했다.

먼 친척임을 내세우던 놈은 튀었고, 1억이나 되는 빚은 모조리 아버지가 떠맡았다.

한번 시작된 불행의 도미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원래도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는 충격으로 몸져누우셨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던 여자 친구는 내 가장 친한 친구 놈과 바람났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건 우리의 연애에서 명백한 반칙이었다. 엉켜있다시피 바짝 붙어있는 둘을 목격한 나는 꼭지가 돌아버렸다.

다정한 연인들이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홍대의 어느 카페 한복판에서 난 미안하다는 친구 놈에게 분노의 페널티 킥을 날렸다.

내게서 헌터 자질이 발견된 게 그때였다.

느닷없이 발현된 마력이 실린, 나의 강력한 킥이 도망치는 놈의 등짝을 부숴놨던 것이다.

합의금 물어주느라 고생깨나 했지만, 당시엔 헌터가 된 게 암담한 내 인생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우습게도 그 후 어디서 헌터가 돈 잘 벌고 유망한 직종이란 걸 주워들었는지, 여자 친구가 뻔뻔스럽게 다시 사귀자고 돌아왔지만 딱 잘라 거절했다.

그해에 난 대학을 자퇴했다.

그리고 헌터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어머니, 저 정말 괜찮아요.”

단호한 내 반응에 이번엔 어머니가 할 말을 잃으셨다.

“아버지 빚, 다 갚았어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어머니는 건강만 신경 쓰세요. 병원비도 완납했으니까 퇴원 앞당기지 않으셔도 돼요. 치료 다 받고 나오세요.”

- 갑자기 그 큰돈이 워디서 났디야? 얘, 호식아!

“그럼 저 끊을게요.”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지만 서둘러 통화중지 버튼을 눌렀다.

더 이상 대화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였다.

헌터로 사는 게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쯤은 잘 안다.

사냥 때마다 매번 직접 실감하고 있으니.

내 수준에 맞춰 막공……. 그러니까 막 만들어진 공격대에 가면 진상이 꼭 하나씩은 끼어있었다.

그렇다고 눈을 높여 정규 공격대인 레이드의 문을 두드려 보자니, 잘해야 잡일꾼이고 그도 아니면 인간방패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않냐, 대수롭게 말하곤 했다.

세상에 돈 버는 방법이 헌터 하나뿐이겠냐고.

그러나 대학 중퇴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어중간한 내 스펙으로 어딜 가서 취업을 할 것인가.

힘들고 지쳐도 헌터로 구르면서 버는 돈은 꽤 많았다.

괴수조련사


지은이 : 검정볼펜

제작일 : 2022.02.2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김규영

표지 : 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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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11-81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