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의 두근두근 아카데미 생활 001화

0000

제 1화



제1편 프롤로그



아카데미의 정문이 보인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저만 믿으시면 아카데미의 모든 여학생이 주인님의 차지가 될 거예요!”

성검의 정령이 헛소리를 내뱉는다.

원래는 성검에 갇혀 있었는데, 정령을 연구하던 현자가 사고를 쳐 버렸다.

생김새는 한창때의 소녀로 그럭저럭 귀여운 편이지만, 속내는 그 누구보다도 시커멓다.

성검의 기원은 무려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과 함께한 정령은 당연히 마귀할멈일 수밖에 없다.

“……저, 절대 아니거든요! 하다못해 성검이 봉인돼 있던 세월은 빼야죠. 계산을 참 못하시네.”

그래도 엄청 늙은 세대인 건 분명하다.

평소에는 그냥 이 녀석, 저 녀석 하고 불렀지만.

성검과 분리된 이상 이름을 하나 지어 줘야겠다.

성검의 정식 명칭은 세나리오스.

대충 앞에 두 자를 따서 세나라고 부르면 되겠지.

“성의가 하나도 안 느껴져. 정말 너무해. 무려 10년을 봉사했는데…….”

녀석의 말마따나 우리는 10년을 함께한 둘도 없는 파트너다.

지금까지는 남매처럼 다퉜지만.

이제는 합심해서 난관을 이겨 내야 한다.

용사 데이.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미궁.

“……갑자기 호러물로 바뀌면 곤란한데요. 저는 무조건 주인님의 아카데미 생활을 연애물로 기획할 거예요.”

글쎄, 그게 마음대로 될까?

어쩌면 학원폭력물이 진행될지도 모른다.

“명색이 용사면서 도대체 왜 그래요? 우리가 이번에 상대해야 할 것은 마왕군이 아니라 순진한 학생들이에요. 무작정 때려눕히는 건 자제하시길.”

어떤 장르가 좋을까.

선택 장애가 찾아온다.

용사 활동을 하도 오래해서 요즘 유행을 모르겠다.

나는 어릴 적, 스승에게 납치되어 10년을 수련했다.

열다섯이 되자마자 용사가 되어 전장에 나섰고.

그런데 동료들이 죄다 트롤이라서 홀로 외롭게 싸워 왔다.

그 눈물겨운 사연은…….

“주인님의 심정은 제가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그건 생략하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렇다.

거의 모든 인생을 용사 활동으로 낭비했기에 청춘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나는 마왕군 휘하의 서큐버스가 반할 정도로 잘생겼다.

하지만 정작 연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고금을 통틀어 이렇게 억울한 사정도 없을 것이다.

“아니, 몇 번을 말씀드려요? 그건 마왕군 측에서 전략적으로 미인계를 썼을 뿐이에요. 주인님의 매력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말이죠.”

섹시함의 대명사인 서큐버스조차 홀리는 남자, 그것이 나다.

“귀를 닫고 사시네. 뭐, 됐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감을 갖는 게 좋겠네요.”

아무튼 나는 평범한 삶을 보내지 못했다.

사회적 교류가 매우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카데미를 괜히 미궁이라고 표현했을까.

고작 며칠 전만 해도 아카데미의 존재조차 몰랐다.

학생들과 어떻게 친해지지?

그런 건 배운 적이 없는데…….

분위기에 민감한 소년, 소녀들 사이에서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제가 따라왔잖아요. 알아서 다 떠먹여 드릴게요. 저를 못 믿으세요?”

용사의 감각은 아주 날카롭다.

거의 미래 예지에 가깝다.

이 할망구 정령은 나를 타락으로 이끌 게 분명하다.

“아, 정말 못 해 먹겠네. 그냥 때려 칠까요? 예?”

그럴 수는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히고 볼 일이었다.

“주인님. 제발 이번 일의 중요성을 떠올려 주세요. 세계의 평화가 걸린 문제예요.”

며칠 전, 나는 인생이 더 허비되는 것을 막고자 홀로 마왕성에 잠입했다.

마왕에게 칼침을 쑤셔 넣으며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순간, 반격을 당해 버렸다.

마왕의 저주.

그 저주는 대상의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스물다섯의 청년이 열다섯의 소년으로 변해 버렸다.

성검의 가호와 용사의 저항력 덕분에 그 정도로 끝난 거지, 자칫 잘못했으면 존재 자체가 지워질 뻔했다.

나쁜 새끼, 비겁한 새끼, 사악한 새끼.

칼침 좀 맞았다고 최상급의 저주를 걸어 버린다.

괜히 악의 대빵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개이득도 이런 개이득이 없었다.

“뭐, 그렇죠. 결과적으로는 회춘을 한 셈이니까.”

마왕은 뜻밖에도 고마운 녀석이었다.

덕분에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았다.

놈을 죽일 때는 고통 없이 보내 줘야겠다.

“그래도 저주는 풀어야 해요. 이유는 여러 번 설명했으니까, 아시죠?”

마왕의 저주가 회춘뿐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뒤늦게 뭔가 발동하면 나만 곤란해진다.

또한 저주에 걸림으로써 힘이 3할가량 줄어들었다.

그 힘을 메꾸고 더 성장해야 마왕을 완벽하게 족칠 수 있다.

“시간은 넉넉해요. 마왕도 치명상을 입어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거든요.”

내가 이 모양인데 마왕이라고 멀쩡할까.

녀석은 내게 저주를 건 대가를 실시간으로 겪는 중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주인님은 최대한 빨리 빛의 3요소를 얻으셔야 해요.”

빛의 3요소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사랑을 뜻한다.

용사는 본래 그러한 요소를 바탕으로 기적을 행사한다.

“하지만 주인님은 처음부터 강했죠.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혹독한 수련 때문일까.

나는 소년 시절에 이미 완성된 존재였다.

스승이 그렇게 말했고,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따라서 용기를 얻을 기회가 없었다.

용기를 얻는 조건은 난관과 마주칠 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인 적이 전혀 없었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기댈 여지가 좀처럼 안 생겼다.

동료들이 죄다 트롤이었는데, 뭘 믿고 희망을 가질까.

용기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인간, 그것이 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책임은 확실하게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주인님이 노릴 만한 건 그나마 사랑밖에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것도 어려워 보이는데, 어쩔 도리가 없네요. 그거라도 시도해 봐야죠.”

어려워 보인다고?

그게 무슨 실례되는 말씀일까.

다시 말하지만, 이 몸은 섹시함의 대명사인 서큐버스도 쓰러뜨렸다.

“……뭐, 아무튼 최선을 다하고 볼 일이에요. 주인님이 사랑을 얻을 수 있냐, 없냐에 모든 것이 달렸으니까요.”

내 행보에 세계의 평화가 걸린 셈이다.

어느 누가 이 고결한 희생정신을 알아줄까.

나를 이해해 주는 소녀가 단 하나라도 있기를 바랄 뿐이다.

푸르고 청명한 하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나이가 새 뜻을 펼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자, 일단 아카데미를 제패하는 게 순서겠지?”

“아이참! 그게 아니라니까요. 정말 미치겠네…….”

용사의 화려한 아카데미 데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제2편 신입생의 패기(1)



“사정은 들었네. 엘윈 군.”

나는 아카데미의 학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서 연륜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게 학장은 현자의 스승이었다.

현자는 유일하게 남은 동료였으며, 이번 일에 깊이 연관됐다.

한 다리를 건넌 연줄.

학장이 힘을 써 줘서 입학 수속이 순조롭게 치러졌다.

“그동안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써 줘서 고맙네.”

“알아주시니 고맙군요. 하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

“그렇겠지. 자네가 이곳을 찾게 된 것도 용사의 사명을 이어 나가기 위함이니까.”

내 목적은 빛의 3요소를 얻는 것.

그중에서도 사랑이다.

당연히 아카데미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덤덤한 어조와는 다르게 시선이 심상찮았다.

학장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반쯤 자식처럼 여겨질 터.

즉, 나는 딸내미들을 노리는 악한이 되시겠다.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나쁜 놈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나는 결백하다.

이 모든 건 마왕의 잘못이다.

나쁜 새끼, 비겁한 새끼, 치사한 새끼.

“자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이해할 수 있어. 인류의 평화를 위한 과정이니까. 한데,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나?”

범죄라…….

뭐, 그게 보편적인 시각일 것이다.

내 나이는 실제로 스물다섯.

여학생들을 노리기에는 좀 양심이 없는 나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다.

숭고한 일념으로 치러지는 신성한 의식일 따름이다.

고로 나는 떳떳하다.

설령 범죄라도 달라질 건 없다.

“저는 면책 특권이 있습니다.”

용사에게는 무조건 면책 특권이 주어진다.

지금껏 그걸로 재미를 많이 봤었다.

내 정체를 몰라보고 시비 건 놈들은 모두 감옥행이었다.

“자네도 짐작했겠지만, 그건 이제 사용할 수 없어. 그 점을 명심해 줬으면 좋겠군.”

물론 알고 있다.

특권이 갑작스럽게 회수된 건 아니다.

하지만 용사임을 숨겨야 했기에 있으나 마나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부디 사고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용사는 바른생활 청년의 대표주자다.

즉, 툭하면 사고를 칠 거라고 보는 건 이치에 어긋난다.

“괜한 걱정입니다. 저는 조용하게 지낼 생각이거든요. 물론 먼저 건드릴 경우에는…….”

“바로 그게 문제일세. 자네는 어떤 형태로든 주목받게 될 거야. 그럼 필연적으로 시끄러워지겠지.”

“시끄러워진다는 말씀은…….”

“이 시기의 소년들은 질투심이 아주 대단해.”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번 테마는 내 선택을 떠나서 학원폭력물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못된 소년들을 훈계하는 건 정의로운 일.

그저 기쁜 마음으로 용사의 사명을 행하면 된다.

“그래도 귀족이잖습니까?”

“뭔가 착각하고 있군. 귀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네.”

학장은 귀족의 명예와 자존심에 대해서 설명했다.

딱히 새겨들을 필요는 없었다.

내 앞에서는 평민이든 귀족이든 평등할 따름이다.

“저는 불의를 보면 지나칠 수 없는 성격입니다. 또한 잘못된 행실은 바로잡아야 마땅하고요.”

까불면 공작가의 후계자도 때려 팰 것이다.

물론 그 뒷수습은 학장에게 맡길 생각이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힘이 없어.”

“학장이 힘이 없다고요?”

“아카데미는 학생들의 가문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거든.”

학장은 자신의 힘이 그저 그렇다는 점을 고백했다.

“같은 맥락에서 자네의 뒷배가 되어 주는 건 어려워.”

“상관없습니다.”

“각오를 굳힌 모양이군.”

“네.”

“되도록 조용히 지낼 수 있겠는가?”

“되도록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

“…….”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용사에게 불의를 보고도 참으라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였다.

“학장으로서의 잔소리는 여기까지 해야겠군.”

“더 있습니까?”

“지금부터는 개인적으로 하는 말일세.”

진지했던 태도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학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 마음대로 하면 돼. 눈치 볼 거 없이.”

“……방금 했던 말과 완전히 다른데요?”

“그건 학장의 입장에서 의례적으로 꺼낸 말에 불과해.”

“그렇군요. 저야 좋지요. 이유도 함께 설명해 주시면 더 좋겠는데요.”

“자네의 눈에는 아카데미가 어떻게 보이나?”

“앞으로 겪어 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평화로운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 실상은 용담호혈일세.”

용이 사는 깊은 연못과 호랑이가 사는 굴.

학장의 한마디에 아카데미는 무시무시한 던전이 돼 버렸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미궁인 걸까?

“아카데미는 단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장소가 아닐세. 대륙 각지에서 모여들기 때문에 파벌이 형성될 수밖에 없어.”

칼만 안 들었을 뿐, 전쟁터가 따로 없단다.

잃어버린 청춘을 즐기고자 했건만, 결국에는 또 전장에 투입돼 버렸다.

무상한 인생.

내 행복은 당최 어디에 있는 걸까.

“제게 원하시는 바가 뭡니까?”

“아카데미에 파란을 일으켜 줬으면 좋겠어. 이미 혼잡할 만큼 혼잡해져서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이야. 자네가 맘껏 날뛰어도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말씀과는 다르게 내심 기대하는 것 같은데요?”

학장은 조용히 웃었다.

“딱히 강요하는 건 아닐세. 다만, 자네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게 바뀔 거라는 예감이 드는군.”

뭐라고 해야 할까.

돌발 퀘스트가 주어진 기분이었다.

왠지 모르게 보상도 있을 것 같았다.

“어지간한 사고는 아무도 모르게 손을 써 주겠네.”

학장의 신분으로는 가만히 있되.

개인적으로는 팍팍 밀어주겠단다.

“뭐, 일단은 용사의 사명을 우선해야겠지요.”

여학생과 친해지는 게 우선이다.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난해하게 느껴진다.

“귀족 영애들은 만만찮을 텐데, 좀 걱정되는군.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울 걸세.”

학장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귀족의 생리에 대해 꿰뚫고 있을 터.

처음부터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신분은 평민이다.

귀족 가문의 자제로 위장해도 됐는데, 아무래도 금세 들킬 것 같았다.

귀족 영애들이 평민을 어떻게 취급하려나.

잘은 모르겠지만, 투명인간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허들이 높아도 더럽게 높은 셈이다.

그에 대해선 내 파트너, 성검의 정령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무튼 자네가 지금껏 이룬 활약에 경의를 표하는 바네. 용사도 쉴 때는 쉬어야겠지. 모쪼록 아카데미 생활을 즐겨 줬으면 좋겠군.”

진심이 느껴진다.

내가 뼈 빠지게 고생한 걸 알아주는 사람은 몇 없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뭔가를 보여 드리죠.”

나를 존중해 주는 자는 존중할 가치가 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후에 학장실을 나갔다.



* * *



학장은 아카데미가 개판임을 암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검의 정령에게 이벤트가 발생했다.

혼자 남겨진 세나에게 한 무리의 남학생이 모여든 것이다.

보나 마나 녀석의 미색에 홀렸겠지.

속이야 어쨌든 외양은 꽤 그럴듯했으니까.

다가가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이다.

여기서는 모른 척하는 게 최선이다.

수백 년 묵은 정령을 걱정하는 건 지독한 낭비다.

나는 현명하게 대처했지만, 세나는 그보다 한술 더 떴다.

“주인님, 도와주세요!”

그렇게 외치며 달려오더니 내 뒤에 숨는다.

고개만 빼꼼 내밀며 겁에 질린 모습을 연출한다.

내 정령이 이렇게 가증스럽다.

자신에게 발생한 이벤트를 자연스럽게 떠넘긴다.

한숨을 내쉴 무렵, 세나를 노리던 남학생들이 나를 에워쌌다.

“처음 보는 녀석이군.”

“편입생인가?”

“가문을 상징하는 휘장이 없어. 평민이야.”

“그럼 신고식을 단단히 치러야지.”

“야, 따라와.”

“…….”

녀석들은 다짜고짜 잔뜩 화를 냈다.

지은 죄도 없건만, 이건 무슨 경우일까.

불의를 보면 치솟는 정의감이 주먹을 부른다.

아니지.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 한다.

상대는 한참 어린 애들이다.

어른인 내가 때려 패기에는 걸리는 점이 많았다.

“네가 뭘 잘못했냐고? 하, 이거 정말 웃긴 녀석이네.”

“평민 주제에 아카데미를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미 중죄야!”

“그뿐만이 아냐. 첫날부터 여자애를 끼고 다니는 게 말이 돼?”

“주인님은 또 뭔데? 설마 그렇게 부르도록 시킨 건 아니겠지?”

“이거 완전히 또라이네, 또라이.”

“…….”

결국 지들의 마음에 안 들어서 시비를 건 것이다.

나는 무력한 모습으로 녀석들에게 끌려갔다.

세나는 끝까지 ‘주인님, 힘내세요!’를 연이어 외쳤다.

“너는 이제 죽었어!”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마.”

신성한 교육의 샘터에 으슥한 장소가 있는 이유는 뭘까.

아무렴 어떠하랴.

나는 의문을 접은 채,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에 감사했다.

“하나만 묻겠다.”

“뭘?”

“용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불량배 소년들은 피식 웃었다.

내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 비웃음이 기폭제가 되었다.

퍽!

퍼퍼퍽!

녀석들은 고작 1분 만에 용사의 위대함을 깨닫게 됐다.

“뒤지기 싫으면 무릎 꿇고 손 들어.”

“───!!”

후다닥.

동작은 더없이 신속했다.

-평민 주제에 감히 귀족을 건드려?

-후환이 두려우면 당장 용서를 빌어라!

그런 사소한 과정은 생략됐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는 이처럼 입도 뻥긋할 수 없게 된다.

“벌써 끝내셨어요? 와! 완전 개박살을 내 버렸네.”

“너는 나중에 보자.”

“……아니, 잠깐만요. 이것도 계획의 일부예요.”

“오냐.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변명은 들어 주겠어.”

“우리는 아카데미의 실정을 하나도 모르잖아요.”

“그건 그렇지.”

“이 애들을 보세요. 딱 봐도 공부는 뒷전인 것처럼 생겼잖아요. 지금처럼 만만해 보이는 애들에게 시비를 걸고, 예쁜 여자애의 꽁무니를 쫓아다녔겠죠.”

“그래서?”

“이런 애들은 공부는 못해도 아카데미가 돌아가는 흐름은 기가 막히게 잘 알거든요. 즉, 정보원으로 쓰기에 제격이에요.”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럼요. 저는 이 애들의 신분도 맞힐 수 있어요. 대부분 보잘것없는 남작 가문의 차남, 혹은 막내일 거예요. 대장 격인 한 사람만 자작가의 후계자겠죠.”

나는 불량청소년들을 쓰윽 흩어봤다.

녀석들은 일제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움찔했다.

그 반응만 봐도 세나의 짐작이 적중했다는 게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미심쩍었지만, 조금은 신뢰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부터 너희는 묻는 말에 재깍 대답해야 한다. 당연히 거부권은 없다.”

“곧 수업이 시작하는데…….”

수업을 핑계 삼아 튀려는 모양이다.

속셈이 뻔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 그것까지 막을 권리는…….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 애들은 수업을 빼먹는 게 일상이에요.”

……그런 거였군.

용사의 고결한 도덕심을 이용하려 들다니, 참으로 괘씸하다.

참고로 나는 내일부터 수업에 참여할 예정이라 시간이 넉넉했다.

“우선 아카데미의 세력 현황에 대해서 설명해라. 자잘한 패거리는 생략해도 무방하다.”

세나가 고개를 갸웃한다.

“갑자기 웬 패거리예요? 신성한 아카데미에 그런 집단이 있을 리가…….”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아. 여기라고 예외일 수는 없어.”

“그런가? 뭐, 확인해 보면 알겠죠.”

나는 마왕군의 졸개들을 심문했던 경험으로 거세게 다그쳤다.

“머뭇거릴 시간 없어. 빨리 불어야 빨리 풀려난다.”

눈치를 보는 건 잠깐에 불과했다.

녀석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모든 걸 불었다.

내 예상은 적중하되 어떤 측면에서는 아예 빗나가 버렸다.

학장의 말처럼 파벌은 실존했다. 다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동부 왕국들의 연합체 ‘이스트 유니온’.

제국의 귀족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아이리스 엠파이어’.

아카데미의 최강 무력단체, 선도부.

그 선도부에 맞서는 암흑(?)세력 ‘나이트레이드’.

후작가 이상의 귀족 자제들이 모인 단체 ‘로열 클럽’.

일등 신랑감을 물색하는 소녀들의 단체 ‘순백의 로사리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기억력에 장애가 생길 정도로.

“……정말 말문이 막히네요. 몇몇 단체의 명칭은 아예 세계 정복을 노려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본격적일 줄은 몰랐다.

이런 곳에서 사랑을 찾는 게 가능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회의적이었다.

“힘내세요, 주인님. ‘순백의 로사리오’처럼 비교적 정상적인 단체도 있잖아요.”

일등 신랑감을 물색하는 소녀들의 단체라…….

장담하는데 거기도 뭔가 정상은 아닐 것 같았다.

고작 아카데미의 세력들을 알아본 것뿐인데, 벌써 머리가 띵하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

나는 세나에게 모든 걸 맡기고선 기숙사로 향했다.

용사의 두근두근 아카데미 생활


지은이 : 성검S

제작일 : 2020.11.04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심지은

표지 : 쵸쵸

주소 :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로 191, 502호(증산동, 두빌)

전자우편 : golem8182@gmail.com


※ 본 작품은 (주)고렘팩토리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전재 또는 무단복제 할 경우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ISBN : 979-11-7051-9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