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화
제01편 프롤로그
죽었다가 눈을 떠 보니 과거였다.
과거로 돌아온 것도 어처구니가 없어 죽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도구들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처음은 피아노였다.
하기야 죽었다 과거로 돌아오는 일도 일어나는 마당에 피아노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게 대수기는 하겠느냐만.
제02편
짹짹-
맑은 새소리가 아세트 공작가의 아침을 밝혔다. 레온 아세트는 그 새소리에 눈을 뜨며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
무심코 들으면 참새 소리. 하지만 지금 울리는 새소리는 드넓은 공작가를 뒤덮고 있었다. 보통 참새라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이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새의 정체는 비도프니르.
전설에서 이르길 태양과 생명의 새로서 그 심장을 바치면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심장으로 죽었던 영웅을 되살렸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레온 혼자뿐이었다.
‘10년 뒤에나 정체가 밝혀지니까.’
지금 사람들은 그저 신기하고 영험한 동물로 여길 뿐이었다.
레온은 가볍게 기지개를 켠 후 대충 옷을 걸쳐 입었다. 그리고 저택의 뒷마당에 있는 정원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황금빛 깃털을 가진 수탉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도프니르야?”
레온의 부름에 그 수탉이 다가왔다. 만약에 수탉을 돌보고 있는 집사가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어떤 이름에도 이 수탉은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이 새의 진정한 이름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불렀기 때문이다.
“꼬꼬-”
레온은 피식 웃었다.
아까는 분명 ‘짹짹’ 소리를 냈는데. 지금은 ‘꼬꼬’ 거리며 울고 있다. 그것이 레온이 보기에 퍽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절로 나온 것. 사실 비도프니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도 이런 특이함 때문이었다.
‘가문에서 바라보면 정말 운이 좋았지.’
공작 부인은 과거 어느 날 우연히 금빛 수탉의 그 특이함을 보고 사들여서 이 정원에 풀어놓았다. 하지만 호기심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작 부인은 수탉을 찾지 않고 내버려 뒀다. 매우 오랫동안.
‘그런데 그 수탉이 알고 보니 보물 중의 보물이었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그래서 비도프니르가 ‘짹짹’ 외에도 ‘꼬꼬’ 거리며 운다는 사실은 가문 내에서도 나름 유명했지만 막상 들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꼬꼬’ 거리면서 크게 울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정원은 공작가의 직계와 따로 허가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곤 들어올 수 없는 곳. 때문에 비도프니르를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자, 이거.”
“꼬꼬!”
레온은 비도프니르에게 몰래 챙겨둔 장미 잎을 건네주었다. 비도프니르가 가장 좋아하는 별미가 장미 잎이라는 것도 지금은 레온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레온은 그렇게 잠깐 동안 비도프니르와 친분을 다졌다.
‘미리미리 친해져야지.’
추후 심장과 관련된 것 외에 또 다른 전설이 나중에 밝혀지길. 비도프니르가 진정 주인으로 따르게 된다면 굳이 심장을 꺼내지 않더라도 또 한 번의 목숨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사실은 비도프니르의 심장이 꺼내진 후에야 밝혀진다.
‘그나저나 비도프니르, 너무 긴데.’
애칭을 지어 줄까?
빨리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서로를 가깝게 부르는 것.
“비프라고 불러도 될까?”
“꼬꼬-!”
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것이 확실히 사람 말을 알아듣는 영물이다.
“잘 있고 다음에 또 보자.”
“꼬꼬꼬꼬!”
레온은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와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후.”
사실 레온이 지금 그 누구도 모르는 지식을 알고 있는 이유는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마족과 싸우다가 죽었는데.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상처였는데. 비도프니르의 심장이라도 가져오면 모를까.
하지만 대륙에 단 하나뿐인 비도프니르의 심장은 이미 사용했다. 설령 있다고 한들 이 전쟁터에서 사용할 수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사용해도 자신이 아닌 다른 귀중한 이에게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마족이 죽기 직전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했다. 마족은 영혼에도 간섭할 수 있으니까. 죽은 이의 영혼을 괴롭히는 마족의 악취미는 익히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레온은 세상을 거부했다. 이러한 마족의 수작을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가짜 세상과 나 자신을 단절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지.’
레온은 몸을 일으키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다소 망나니이긴 했지만 그래도 귀하디귀한 공작가의 막내아들이 갑자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방안에 틀어박혔다. 백번 양보해서 그냥 틀어박힌 거라면 몰랐을까 식사도 거부했으니. 심지어 물조차 마시지 않았기에 난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로 과거로 돌아온 것이었을 줄은.’
레온이 현실을 인정한 것은 신성력을 느끼고 나서였다. 물조차 먹지 않았기에 쓰러지는 것은 빨랐고, 공작가에선 쓰러진 레온을 위하여 신관을 초빙했다. 당연히 신관은 레온에게 신성력을 퍼부었는데 그때 레온은 깨달았다.
현실이구나.
진짜 과거로 돌아온 것이구나.
마족이 아무리 인간을 괴롭히는 데 공을 들인다고 한들 절대로 이런 신성력을 구현해내지 않을 테니까.
레온은 솔직히 아직도 믿기 힘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계기라곤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대의 유물이라거나. 혹은 신의 계시라거나. 하지만 자신은 그저 죽었을 뿐이다.
‘과거로 돌아온 것은…… 좋은데, 이제 뭘 어떻게 하지?’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앞으로가 문제였다. 어차피 세상은 24년 후 멸망한다.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멸망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마족 침공. 대륙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인간들끼리의 전쟁 직후 나타난 마족의 군대는 인류에게 치명타였다.
거대한 위협 아래 인간은 단결했으나 한계가 명확했다. 국가 간의 전쟁은 인류의 힘을 무척 축소 시켰다. 심지어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와중에도 내부 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레온이 죽기 직전 인간이란 종족의 개체 수는 1만 남짓. 더불어 그 1만 역시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그 정도면 멸망이라는 표현도 과언이 아니었다. 레온이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운이 좋아서였다.
레온은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원래라면 망나니에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이 시절의 자신이었다면 이야기 속의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을 터.
하지만 그런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레온은 달랐다. 세월의 흐름은 레온에게 주제 파악과 겸손이란 능력을 갖추게 했고, 레온은 자신이 이야기 속의 영웅처럼 될 수 없음을 잘 알았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강력한 힘이야.’
하지만 레온은 자신이 없었다. 일신의 영달이라면 모를까. 인류를 위해서라니. 세상을 구한다니.
“내 주제에 어림도 없지…….”
자신이 미래의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들 멸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어림도 없었다. 몇 년이라도 늦추면 다행이었다.
‘1년? 2년?’
물론 자신이 그런 인류 멸망을 위하여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레온은 알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미래의 지식을 이용하여 적당히 재물을 얻은 뒤 유유자적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아마도 미래는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하.”
머리가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차라리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예컨대 인류의 영웅이었던 레이노프 여왕이 회귀했다면 눈곱만큼이라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을 텐데.
똑똑-
레온의 상념은 전속 메이드 레나의 노크 소리에 깨어졌다.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아, 응. 일어났어.”
“세안하실 물과 갈아입을 의복을 챙겨왔습니다.”
“부탁해.”
메이드는 탁자에 놓여 있던 장미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꽃잎은 사라지고 줄기만 남았던 탓이다.
“도련님 분명히 어제 장미꽃을 구해다 드리지 않았었나요?”
“한동안 쓸 곳이 있으니까 앞으로 한 송이씩 부탁해.”
“그…….”
“왜?”
“제 선에선 계속 구해다 드리기가 어려워서요.”
아, 하기야 이 추운 시기에 장미꽃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내 핑계 대고 구해와. 꼭 필요하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매일 한 송이씩 필요로 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받는 시중은 참 어색하면서도 편했다.
* * *
오전을 느긋하게 보낸 후 점심 식사를 끝내고 레온이 방으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레나였다.
“도련님 오늘부터 다시 피아노 수업을 재개하라고 공작님께서 명하셨습니다.”
“피아노?”
“네, 이번 사교계 데뷔 때 피아노를 준비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레온은 현재 자신의 나이가 16살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통 귀족가의 남자는 대부분 16살에 사교계에 데뷔한다. 그리고 데뷔하는 날엔 다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예술과 관련된 무언가를 준비하곤 했다.
가장 흔하게 준비하는 것이 악기였다. 무릇 귀족이라면 하나 정도의 예술 분야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레온의 경우엔 그것이 피아노였다.
‘피아노라.’
지금이야 평화로운 시대이기에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시되는 것이 문(文)과 예술이었다. 아세트 공작 가문이 검술 명가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예술이란 분야에 신경을 쓰곤 했다.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현 공작은 검에 뛰어났으나 예술엔 재능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아, 맞다.’
레온은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더 깨달았다. 이 무렵에 공작은 자신의 데뷔 때 예술로써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아버지라는 칭호를 허락한다고 했었다. 심지어 공적인 자리에서조차.
그것은 대외적으로도 레온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기에 레온은 이때 불철주야 피아노에 매진하곤 했다. 지금 시점 레온은 서자였고 가문 내에 받아들여지긴 했으나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
그렇기에 레온은 당시 필사적으로 피아노에 매달렸고 훌륭하게 사교계 데뷔를 치렀다.
‘이후 암살 위협도 받았었는데.’
레온은 과거를 회상하며 내심 쓰게 웃었다. 서자이긴 하나 공식적으로 가주의 인정을 받는다면 승계할 자격이 생기는데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공작 부인의 견제가 시작된 것.
‘다 추억이지.’
그때 당시엔 두렵고 무섭고 어려웠던 과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조차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약간 얄미운 감정. 딱 그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저나 문제네.’
너무 시간이 흘러서 피아노의 음계나 간신히 기억할까. 이번 생의 사교계 데뷔는 망칠 것 같은데.
‘내가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쳐본 게 언제였더라?’
오래된 전란 속에 피아노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었다.
“일단 피아노 방으로 가자.”
“네, 이미 루웰 교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 *
레온이 피아노 방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것은 루웰 교수가 아니라 집사였다.
“교수님은?”
“중간에 일이 생기셔서 조금 시간이 지체되신다고 합니다.”
집사는 그렇게 한 마디 남긴 다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졌다.
‘음.’
어차피 잘 되었다. 사실 피아노를 친 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하아.”
오늘 한숨만 몇 번째 쉬는 건지. 레온은 현재 자신이 얼마나 피아노를 칠 수 있을지 일단 테스트해 보기 위해 피아노에 손가락을 올렸다.
‘어?’
그러자 갑자기 피아노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한 메시지가 등장했다.
[아카식 레코드 드라이브 시스템 가동.]
[역사적인 유물과 접촉.]
[자동으로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동시에 레온의 손가락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루웰 교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작가 막내아들은 다재다능
지은이 : 공중누각
제작일 : 2020.02.13
발행인 : (주)고렘팩토리
편집인 : 이주희
표지 : 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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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449-76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