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화
서장
휘이이잉.
그는 바람이 몹시 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사귀던 여자 친구를 밀쳐내고 대신 차에 치였던 기억이 난다. 뼈가 부러지고, 몸이 으스러지는 그 고통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싶은 순간 모든 것이 편안해졌고,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 안긴 듯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 행복한 세계에서 부유하다가 갑자기 내팽개쳐지는 감각을 느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이 알던 환경이 전혀 아닌 곳에 있었다.
몸은 몹시 무거웠고, 알몸으로 있는 듯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찌르고 있었다.
뭐야? 나 안 죽은 거야? 여기는 어디지?
생각이 나는 순간 입을 열어 뭐라고 말하려고 했다.
“우. 아우.”
그런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손발도 꼼지락거려 보았지만 제대로 움직이기가 버거워서 겁이 덜컥 났다.
뭐야? 반신불수라도 된 거야? 제기랄! 여자 친구를 구한 대가로 반신불수라니! 이런 빌어먹을 상황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렇게 부르짖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눌러 참았다.
그러고는 주변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황당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활활.
주변에는 사극에서나 보았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은 채로 쓰러져 있었고, 나무로 만든 듯한 집들이 불타고 있었다.
이게 뭐야?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저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웬 사극 영화장 세트에 누워 있는 건가? 대체 내가 왜 이런 데 있지? 이거 혹시 꿈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멍하니 있는데 파직하고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짚을 엮어 만든 신발을 신은 발 하나가 보였다.
그래서 고개를 좀 더 올려 보니, 그곳에는 침중한 표정을 지은 노인 한 명이 서 있었다. 노인은 척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특히 그 두 눈에서 빛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뭐야? 이 노인 무서워.
그렇게 생각하는데, 노인이 자신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데 그 크기가 몹시 커 보였다.
“아우. 아우우.”
하지 마. 뭐야. 당신 누구야?
“이 마을에서 살아남은 건 너 혼자구나.”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두 가지 이유로 엄청난 충격을 받아야 했다.
우선 노인의 말이 중국어라는 점이 첫 번째 충격이었고, 자신이 그 중국어를 마치 한국어처럼 생생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두 번째 충격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속으로 그렇게 아우성을 쳐도, 입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무량수불. 이것도 인연인 게지…….”
노인의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 순간 그는 다시금 혼절할 정도로 놀라 버렸다.
그 눈동자에 비친 모습이 영락없는 갓난아기였기 때문이다.
여기저기가 찢겨진, 허름한 천 옷을 입고 있는 1살 정도의 어린 아기. 바로 자신이 그런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꿈이지? 이건 꿈일 거야.
“내 말을 알아듣기나 하겠느냐마는…… 본도의 도명은 무량이라고 한다. 네 사조가 될 말코도사이니 기억이나 해 두거라.”
자신을 무량이라고 밝힌 노인은 두 손으로 그를 부드럽게 안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화끈한 열기가 손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몹시도 신기한 그 경험에 그는 일순 눈이 풀리며 몸이 늘어졌다.
‘졸, 졸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엘리스가 된 기분으로, 그는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어린 아기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몹시 힘겨운 것이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고,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죽는 것보다야 낫긴 하지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청진과는 참 다른 아이구나. 허허. 그 녀석은 다섯 살 때에도 참 많이 울었는데.”
그는 자신을 안은 무량이라는 이름의 늙은 도인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노도인의 두 눈은 조금 매서웠고, 몸은 깡말랐다.
수염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새하얀 것이 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만 노인의 몸임에도 피부에 검버섯이 없었고, 두 눈에는 힘이 들어가 젊은이 못지않은 것이 평범한 노인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런 외양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그는 이 노도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손을 대고 잠시 숨을 고르면, 뜨거운 열기가 온몸 구석구석에 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열기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몸의 혈관을 타고 움직이며 몸 안에서 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노인은 가끔 그를 안고 뛸 때도 있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무공!
그는 이 노도인이 자신이 살아생전에 즐겨 보던 무협소설, 혹은 중국의 무협영화에나 나오던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어를 수월하게 알아듣는 것도 놀랄 지경인데, 무공을 실제로 익히고 사용하는 사람과 만날 줄이야!
이제는 용을 본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초에 혼원이 있었고, 그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이 나왔도다. 이후 천지가 태어나고, 천지의 사이에 사람과 짐승이 생겨났으니 이를 세상이라고 불렀느니. 이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를 태을(太乙)이라고 할지어다…….”
노도인은 그 뜨거운 열기를 몸 안에서 움직이면서 마치 주문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나, 특정한 문구가 나올 때에 특정한 부위에 기운이 흘러들어가 크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게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다가 과거 본 무협소설의 구절을 하나 생각할 수 있었다.
진기도인!
기운을 조종하여, 타인의 몸에 불어넣고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노도인은 그러한 작업을 하는 한편, 이 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 보니 이것이 바로 무협소설에서 말하던 내공심법이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실 그 말은 외울 수 있어 보였지만, 그 뜻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태반이었다.
그런 날들을 몇 날 며칠이고 보내었다.
노도인은 추운 겨울날 그를 안고 계속 이동하고 있었고, 그는 노도인의 수발을 받으며 안겨만 있었다.
아기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잠을 자거나, 대소변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비록 아기의 몸일지라도, 그 정신은 성인의 그것이었기 때문에 울지 않았다. 정확히는 울 일이 없었다.
노도인은 그런 아기를 신기해했지만, 그 아기의 정신이 환생한 자의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금 며칠이 흘렀을 때 노도인의 품 안에 안긴 그는 아예 태을기공이라고 하는 내공심법의 구결을 전부 외울 수 있었다.
“아. 우. 아. 우.”
그는 구결대로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구결에 따라서 기운이 몸 안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해도 노도인이 진기도인을 해 줄 때와 같은 효과는 없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할 일이 없기에 그런 고민을 매일 했다. 그 답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어느 날. 노도인은 산중에 위치한 제법 큰 건물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대문의 현판에는 한문으로 무어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문구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여기는 어디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이에 노도인은 대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백님!”
대문에는 4명의 도사가 서 있었다. 노도인과 똑같은 복장을 한 그들 중 한 명은 노도인을 알아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간 별래 무양하셨습니까?”
중년의 도사는 노도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로구나. 본파에 별일은 없었느냐?”
“별일이 있겠습니까. 무탈합니다.”
“무탈한 것이 좋은 법이지. 내 이대로 장문인을 만날 것인 즉. 따로 기별할 것 없다.”
“그런데 그 아이는…….”
“청진이 맡을 아이다.”
“아! 혹 건선처럼…….”
“그렇지는 않아. 인연이 닿아 데려온 아이니…….”
노도인은 그리 말하고는 더 말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아기는 그러한 일련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가 대체 어디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그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밝혀지게 된다.
이곳의 이름은 종남파.
이 중원강호에 제법 이름이 알려진 명문문파였다.
* * *
어린 아기가 되어 버린 그는 주변의 소리를 듣고, 이곳이 종남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남파.
한때는 구파일방의 일원으로 불리었던 명문대파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 세력이 많이 쇠하여 구파일방의 자리에서 밀려난 곳이었다.
비록 구파일방의 자리에서 밀려났다고는 하여도, 명문대파로서의 저력이 남아 있어 쉬이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기인 그는 아직 그러한 사실을 몰랐지만,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은 알았다. 척 봐도 도사들 전부가 무공을 익혔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종남파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 사이에 노도인은 종남파 안쪽의 산중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3층 전각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현판에는 무서각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아기인 그는 말은 알아들어도 한문을 읽을 수는 없었기에 뭐하는 건물인지는 전혀 몰랐다.
“청진, 게 있느냐?”
노도인은 전각 안으로 들어서며 외쳤다. 전각 안은 많은 책장과 책들이 있었으며, 책의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
나이가 한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안쪽에서 걸어 나와서는 노도인에게 공손히 몸을 숙여 인사를 했다.
두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상당히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조금 마른 사내였다.
“받거라.”
아기가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양 불쑥 내미는 노도인.
그의 행동에 청진이라 불린 사내는 아무런 말 없이 아기를 받아 들었다.
“네 녀석 아직 제자 없지?”
“그렇긴 합니다만…….”
“제자로 삼거라.”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기는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끔벅거렸다.
제자라니? 지금 나보고 도사의 제자가 되라는 거야? 무협소설 보면 도사는 결혼도 못 하고, 여자랑 응응도 못 한다고! 안 돼! 안 돼!
얼토당토않은, 그리고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청진은 그다지 당황하지 않은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이유가 있습니까?”
“글쎄…… 인연을 느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게다. 제자로 삼을 테냐? 아니라면 저잣거리의 백성에게 맡길 터다.”
차라리 날 다른 사람에게 맡겨 줘!
“아우아우!”
아기의 입으로 열심히 외쳐 보았지만, 그래 봤자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기는 그런 자신의 현실에 좌절했다.
도사 강호 1화
지은이 : 기공흑마
제작일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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